애환을 간직한, 우리는 개그맨이다
작성일200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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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압구정에 위치한 작은 연습실. 그곳에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다. 연락하라며 명함 다발을 날리던 개그맨 한민관이 보이고, 달인의 어벙한 조수 노우진과 일출 김재욱도 들어선다. ‘형님’ 뒤에서 네 형님을 따발총처럼 연발하던 이상호, 이상민 형제와 근육맨 이승윤, ‘독해~’의 오나미도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밤 9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지만 달인 김병만과 류담 등은 금요일 밤의 끔찍한(?) 교통체증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다. 각자 바쁜 스케줄에 익숙한 탓인지 연습이 늦어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이곳은 최근 예능프로그램의 강자로 다시금 자리를 굳힌 ‘개그 콘서트’의 주역들이 나서는 뮤지컬 <우리는 개그맨이다>의 연습실. 무려 25명의 배우가 개그맨들로만 이루어져 눈길을 끌고 있는 작품이다. 얼마 전에는 티져포스터가 화제를 끌기도 했다. 영화 새드무비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포스터에서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개그맨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고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상승시키기에 충분했다.다음 달 초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이 뮤지컬을 미리 맛보기 위해 찾아간 연습실은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다. 떠들썩하게 장난 치는 사람도 없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아니다.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 전 각자 맡은 파트를 반복하며 연습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쌍을 이루어 안무 연습을 하고, 연습실 구석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모습에는 어떤 연습실보다 차분하지만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개그맨들이 모였다고 해서 짧은 꽁트를 본다고 생각한다면 오산. 나석구(김재욱 분) 이양달(이동윤 분) 유치한(노우진 분) 노철수(송준근 분) 네 명의 개그맨이 각자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되돌아 보며 개그맨이라는 직업에 회의를 갖는다는 데서 극은 출발한다. 네 주인공들의 애환에선 진지한 드라마가, 멀티맨들의 활약에선 강한 웃음을 보여줄 예정. 재미있는 건, 극 중 캐릭터가 실제 연기하는 개그맨들의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단 점이다.
이 작품을 위해 각자 스케줄이 있는 개그맨들이 모이는 시각은 저녁 8시 이후. 늦은 밤에야 연습이 시작돼 새벽에야 마치는 강행군이 이어지고 있었다. 삼삼오오 개별 연습 중인 이들에게 짬을 얻은 짤막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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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진(유치한 역) 개그맨이 항상 즐겁기만한 사람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제로 보니 못 알아 보겠어요. 분장한 모습과 인상이 다른데요. 개그콘서트 ‘뮤지컬’이란 코너를 마치고 바로 ‘달인’에 들어갔는데 뮤지컬의 노우진이 달인의 노우진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너무 다르다고. 실제가 좀 더 낫잖아요(웃음).
<우리는 개그맨이다>에서 맡은 캐릭터에도 반영이 됐다고 들었어요.
그 캐릭터가 그대로 극에 들어가 있어요. 우리 작품을 보면 어느 정도 연기하는 개그맨의 현재 상황이 반영됐다고 보시면 되요. 전 코너는 떴지만 분장을 지우면 못 알아보는 개그맨이에요. 또 사랑하는 여자친구 부모님이 반대해 여자친구와 헤어져야 하는 역할이에요. 다른 캐릭터도 다 실제 상황을 반영했고요.
개그 이외에 연기를 해본 적 있나요?
처음이에요. 개그콘서트에서 ‘뮤지컬’은 제대로 모르고 흉내를 냈을 뿐이고 실제 긴 극에서 감정 연기를 하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요즘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고 있어요. 개그맨 특유의 개그본능을 자제하고 조금 진지하게 연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더군요.
긴장되나요?
긴장은 되지 않아요. 100% 설레임이죠. 개그맨의 이야기를 좀 더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우리 개그맨들이 항상 즐거운 사람들은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도전하는 거에요
.
개그맨도 슬프고 힘들 때가 있단 것?
연기자나 가수도 물론 힘든 점이 많을 거에요. 하지만 개그맨들은 남들을 웃기기 위해선 본인이즐겁지 않으면 진짜 힘들거든요. 그래서 슬픈 일이 있어도 무대에 오르기 전 자기 암시를 통해 즐거워져야만 해요. 무대 위에선 절대 보이지 않죠. 개그콘서트를 생각하고 오시면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그래도 모두 개그맨들이다 보니 웃음 포인트가 다른 작품보단 많을 거에요.
한민관(멀티맨) 저 원래 좀 무뚝뚝해요
계속 뭘 먹고 계시네요. 새벽까지 연습하려면 칼로리를 좀 채워줘야 하거든요.
보통 몇시까지 연습하는데요?
새벽 2~3시까지 보통 해요. 그런데 전 분량이 많지 않아요.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멀티맨을 맡았어요.
그래도 연습실에 일찍 나오셨네요.
나오라고 하니까…
실제로 보니 별로 말랐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남자다보니까 골격은 있는데, 살이 안 쪄요. 많이 먹어도 그래요.
이 작품에 참여한 이유가 있나요?
해보고 싶었어요. 큰 역할은 아니지만.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도전해 보니까 어떤가요.
배운다는 생각으로 해요. 정말 힘든 사람은 주인공을 맡은 분들이죠. 그분들에 비하면야…저 같으면 힘들어서 죽지 않았을까..일단 주인공들은 노래, 안무가 굉장히 많아요.
이작품의 메시지는 뭔가요.
개그맨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사고로 다쳐도 무대에선 웃겨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개그맨은 유독 무시를 받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르는 개그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성격이 진지해 보여요.
일상 생활에서는 진지해지려고 노력해요. 원래 좀 무뚝뚝하기도 해요.
요즘 인기가 많아졌죠?
요즘에는 어른 분들도 알아 보시던데요. 고정으로 들어가는 프로그램도 몇 개 생겼고요. 그래도 개그콘서트가 항상 먼저에요. 더 노력을 해서 더 보답을 하고 싶어요.
김재욱(나석구 역) 뮤지컬, 생각보다 몇 배는 힘들어요
주인공이신데요. 정극 연기는 처음인가요? 어린이 뮤지컬은 해봤지만 정식 뮤지컬은 처음이에요. 어린이 뮤지컬은 힘들지 않았는데 이건 원래 생각보다 몇 배는 힘든 것 같아요.
개그맨들도 기본적으로 연기 연습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많이 하지만, 연기의 호흡이 다르거든요. 게다가 진지한 연기를 해야해도 개그맨이다 보니까 자꾸 장난스럽게 하려는 것도 있고. 진지한 연기를 할 때면 저 안 같아요. 가끔 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도 모르겠고(웃음). 외워야할 노래도 많고..어깨가 무거워요. 연습실에 나올 땐 출근한다고 거짓말 하고 공원으로 가는 실업자 같은 기분이에요(웃음).
어깨가 무겁나봐요.
걱정되는 부분도 있어요. 아버지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내 이야기와 비슷해서…어머니는 몰라도 아버지는 보러 오시라고 못할 것 같아요. 동윤이랑 저는 슬픈 이야기를 맡고 있는데 거의 비슷해요. 그래서 더 어려운 점도 있어요.
극중 캐릭터가 엄청난 짠돌이던에요(웃음)
전 짠돌이는 아니고요. 다만 내기를 안 좋아해요. 차라리 내면 냈지, 가위바위보로 져서 내면 분해하는 타입이에요. 승부욕이 강해서(웃음).
이상호 이상민 (멀티맨) 성격 급한 캐릭터, 실제 우리 모습이에요.
정말 똑같이 생기셨네요. 어느 분이 형인가요. 이상호 제가 형인입니다. 이름 새긴 목걸이 보고 판단하는 사람도 많아요.
두분 항상 다니나요.
이상호 네 잘 때도 손잡고 자요.
이상민 코너를 같이 하다보니 더 그렇죠. 떨어지고 싶어도.
이상호 중하교 때 한번 떨어져 봤어요. 초중고에 대학교 같은 과, 개그맨 공채 시험도 같이 붙었고요.
이상민 질긴 인연이에요. 안 보고 싶어도 안 볼 수 없어요.
이상민 그런데 한 명이 없으면 힘을 발휘 못하는 게 쌍둥이의 단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상호 난 힘을 발휘하는데(웃음)
이상민 좋게 좋게 가려고 하고 있잖아~
지금 개콘에서 활약하는 캐릭터와 실제 모습이 비슷한 것 같아요.
이상민 형과 내가 성격이 비슷해요. 아주 급하거든요. 우리가 대화를 하면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요. 우리끼린 서로 알아듣는데 말이죠. 이런 걸 캐릭터로 잡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해서 만들었죠.
이번 작품에서도 함께 나오나요?
이상호 아주 중요한 역할이에요. 저희가 없으면 없으면 극이 진행이 안 되요.
이상민 제가 멀티 2이고, 형이 3이에요. 제가 더 잘났기 때문에 2죠.
이상호 작가님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정한거죠.
이상호 저흰 이번 무대에서도 항상 같이 등장해요. 씬 마다 안 마주치는 게 없어요(웃음).
이상민 최고의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건 포스터에 저희 사진이 없단 거에요. 그래서 좀 건의를 했어요. 개그맨의 ‘맨’자에 얼굴 좀 넣어달라고..안 넣어주시네요?(웃음)
주원성 연출 새로운 컨셉의 뮤지컬입니다
개그맨들과의 작업이 어떤가요. 지금은 기대반 실망반이에요. 농담이에요(웃음). 다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요.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이 오래 갈 것 같은데요(웃음).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하는데, 생각보다 잘 하는 개그맨이 있다면.
사람마다 강점이 다 달라요. 노래인 사람, 춤인 사람, 연기인 사람…그 중에서 굳이 꼽자면 동윤씨가 잘 하더군요. 무대 경험이 있는 친구라 더 그런 것 같아요.
관람포인트는 무엇인가요.
폭소와 감동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개그콘서트처럼 짤막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진 않아요. 그 동안 소극장 공연은 조금 있었는데 큰 극장에서 이런 컨셉은 사실 처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창작 뮤지컬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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