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연출가 한태숙 “관객을 충동질하고 싶었다”

인간의 음습하고 강렬한 내면을 예리하게 표현해 내며 국내에서 대표적인 연출가로 꼽히는 한태숙. 그가 올해 [이아고와 오셀로]에 이어 [강철]로 관객을 찾아왔다. 여전히 깊숙이 내면을 찌르는 메시지와 여운이 살아 숨쉬어 정통연극에 목말라 하는 관객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되고 있다.
원래 ‘작품 자랑만 할 거 같아서’ 인터뷰는 잘 응하지 않는다는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이번 연극에 대한 그의 심도 있는 해석을 조금이나마 무대 밖에서 내보였다. 그에게선 연출가로서의 고집과 완벽주의가 흘러 나왔다.

제목이 독특하다. ‘강철’은 무슨 뜻인가.
강철은 감옥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 연극의 원제는 [Iron]이다. 사실 그대로 직역하자면 ‘무쇠’라고 해야 하지만 무쇠는 강하고 부러지는 성질을 가지고, 강철은 탄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제목을 강철로 택했다. 좀 더 면밀히 말하면 강철과 무쇠를 합친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연극은 인물이 만들어 내는 긴장이 크긴 하지만 서릿발처럼 바짝 서기만 한 것도 아니고, 감성적인 면도 있기 때문이다.

[강철]은 국내 초연이다.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3년 전에 이 작품을 처음 봤다. 직접 본 건 아니고 번역만을 봤을 뿐이지만 상당히 끌렸다. 우리나라에도 모녀 드라마가 굉장히 많지만 대부분 멜로드라마가 주종을 이루지 않나. 결국은 서로 용서하고, 결말이 안 날 것 같은 싸움에도 화해하고, 그것을 눈물로 감싸는 연극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가 않았다. 살인죄로 복역중인 엄마를 딸이 찾아오자 관객은 기대한다. 저 여자, 사실은 그럴 여자가 아닐 것이라는, 그래서 딸이 그것을 풀어갈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는 게 이 작품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이 작품을 사회적인 작품이라고까지 했다. 사회 정치적인 부분이 연극 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기존의 모성이 아닌 새로운 신종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 우리가 떠올리는 모정이 아니라는 말인가.
물론 이 작품 안에도 모정이 있다. 따뜻한 모녀간의 정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무한한 모정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울고 불고 용서하고, 이런 엄마가 아니라는 거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근본적인 모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강철]는 아가멤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을 떠오르게도 하고 다른 그리스 신화를 떠오르게도 한다. 앞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룰 때는 이런 시각이 더해져야지 지금의 관객들이 현실감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배우 네 분이 모두 나랑 작업을 했던 배우들이다. 딸 역으로 나오는 서은경씨는 정말 저 친구가 연습 중에 목을 조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할 정도로 집중력을 보였다. 윤소정씨는 연습 중에 이 친구가 무섭다고 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배우에게 불을 지르는 게 대단하다.
여자 교도관으로 나오는 서이숙씨는 [고양이 늪]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준 배우다. 이분은 이 작품을 위해서 20년 동안 길러오던 머리를 짧게 잘라 이미지 변신을 했다. 남자교도관인 손진환씨는 우리가 몰랐던 교도관의 세계와 교도관들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

윤소정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웃음).
윤소정씨는…사실 나는 이 작품을 윤소정씨와 하려고 2년을 기다렸다. 윤소정이란 배우는 정형화되지 않은 배우다. 배우는 나이가 들면 안정이 되고, 자기 틀을 갖는다. 그것은 색깔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윤소정씨는 이 틀이란 굴레가 없다.
[강철]에서 엄마란 인물은 참 불량하다. 17살 먹은 애, 80살 먹은 음흉한 노인, 아니면 반 미치광이, 혹은 성적 매력이 가득한 사람을 오가는, 꿈틀 꿈틀한 요소가 살아있는 캐릭터다. 윤소정이라는 배우는 이러한 복합적인 캐릭터를, 15년을 감옥에 갇힌 자폐적인 인물을, 살아 숨쉬듯 표현한다. 배우 본인도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집중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배우 윤소정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연출 스타일은 어떻다고 보는가.
배우들을 많이 의심하는 편이다. 잘하고 있는데도. 배우들이 그런다. 나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매너 있게 말하지만 사실 굉장히 마음을 후벼파서, 그 날 설사를 하게 하거나 잠을 못 자게 하거나 가슴을 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고. 그러니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이 나를 좋아할 리 없다. 힘들게 하니까(웃음). 아마 연습량도 다른 작품의 3배 정도 하는 거 같다. 하지만 나는 효과적으로 연습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데도 젊은 연출자처럼 강행군을 하곤 한다.

완벽주의인가.
완벽을 지향하지만 작품이 완벽하진 않다. 관객을 충동질하고, 관람 후 망치를 얻어 맞은 것과 같은 작품이 되도록 노력할 뿐이다. [강철]은 특별한 오브제를 쓰거나 탐미적인 방법을 쓰기 보다는 내가 보고 싶은 연극을 만들었다. 내가 이런 연극을 참 보고 싶었다. 조용히 이야기 하는데 파장이 긴 연극 말이다. 강철은 묵직하지만 어둡고 침침한 작품은 아니다. 아주 날렵하고 획이 잘 그어진 연극이다.

[강철]은 어떤 관객에게 권하고 싶나.
이 작품은 어둡고 깊은 맛이 있지만, 그만큼 깊숙이 들어갔기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맛도 있다. 이러한 점과 배우 윤소정을 보기 위해 주부팬들이 많이 찾겠지만 개인적으로 아들과 딸들이 많이 봤으면 한다. 과연 딸로서, 아들로서, 나라면 어떨까, 내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반성 같은, 그런 취지가 아닌 본질적인 생각으로.

항상 무게 있는 작품만 맡고 있다. 다른 장르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나.
그렇지 않아도 다음 작품은 난생처음 로맨틱 코미디를 한다. 그런데 불안하다. 사람자체가 유머도 없고, 어둡지 않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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