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장> 거침없이 황홀한 그녀의 바이올린

4살 꼬마의 장난감이었던 작은 바이올린은, 1년 뒤 필라델피아 지역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5살 연주자의 훌륭한 악기로 변신했다. 9살에 링컨센터에서 뉴욕 필과 공식 데뷔 후 15년간 수 많은 거장들의 찬사와 함께 세계를 누비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위해 내한한 그녀를 만나본다.

지난 주 화요일 귀국, 바로 부산 초청 공연의 리허설과 연주를 마치고 새벽에 서울로 올라왔다는 사라장. 서울에서의 첫날, 라디오 방송까지 마치고 돌아온 그녀에게 피곤하진 않냐는 우문을 던졌더니, “맨날 이러는데요, 뭘, 괜찮아요.”하고 호쾌한 현답이 돌아온다. 한국어와 영어를 활발히 오가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인터뷰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서울에서 곧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LA필)과 협연를 앞두고 있습니다. 어떤 색을 가진 오케스트라 인가요?
“너무너무 좋은 오케스트라에요. 사람들은 LA 하면 영화, 헐리우드만 주로 생각하는데,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익사이팅한 도시에요. LA에 있는 디즈니 홀(Walt Disney Hall)이 최근의 현대적인 홀 중에서 거의 제일 좋다고 사람들이 그러거든요. 그래서 LA는 1년에 꼭 한번씩 가서 디즈니 홀이나 헐리우드 볼(Hollywood Bowl)에서 연주하죠. 1년의 반은 유럽에서 공연하고 레코딩은 특히 유럽에서 많이 작업하지만, 제가 미국에서 태어났고, 줄리어드를 다녔으니까 미국 오케스트라와 토론을 하면 편한 점은 있어요. 제가 아는 소리, 제가 아는 포멧이니까. 특히 이번 LA필에는 줄리어드를 같이 다닌 친구도 많고, 어렸을 때부터 같이 연주했던 경험도 많으니까 마음이 편해요.”

LA필을 17년간 이끌어 오던 에사 페카 살로넨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런던 필의 상임지휘자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마지막 투어를 함께 하게 된 사라장을 “엄청난 재능 뿐 아니라 연주할 때마다 즐거운 아티스트”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말을 듣고 “오히려 그분이 굉장히 굉장히 익사이팅하다”며 그녀는 한참을 웃는다.

파이널 투어를 같이 한 지휘자가 많으시죠?
많죠. 제가 너무 어렸을 때부터 연주를 시작한데다가 나이가 많으신 지휘자 분들과 특히 함께 많이 했어요. 주빈 메타, 쿠르트 마주어, 이분들이 다 60, 70, 쿠르트 마주어는 80이 넘으셨으니까. 그 분의 런던 필 파이널 투어도 제가 하고. 생각보다 파이널 투어가 많더라고요. 그러면서 다음 세대들이 지휘자로 오는 것 같아요.

그녀가 곧 서울에서 LA필과 협연할 곡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에사 페카 살로넨과 시벨리우스는 모두 핀란드를 고향으로 하고 있어, 표현에 있어 더욱 기대가 큰 선곡이다.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죠?
굉장히 어렸을 때 배웠고, 8살 때부터 제일 많이 연주한 곡 중에 하나에요. 어떤 곡은 하다가 정말 쉬고 싶을 때도 있는데, 이 곡은 항상 굉장히 좋아했고 무대에 섰을 때 너무나 재미있는 곡이에요. 테크니컬 한 면도 있지만 아주 드라마틱 하고, 스칸디언식으로 굉장히 차가운 면도 있고요. 그 밸런스가 아주 특이한 것 같아요. 10년 전쯤 베를린 필과 레코딩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완벽하고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셨기에 레퍼토리 확장이 사라장에게도 중요한 부분인지 궁금하네요.
그럼요. 브람스와 베토벤은 연주할 시기를 기다렸던 작곡가에요. 학생 때 배우기는 했지만 연주는 안 했어요. 브람스는 한 18, 19살 때, 베토벤은 21살 때 쯤에야 처음 연주 했습니다. 바하도 매일 혼자 연습하는데 레코딩은 좀 기다리고 싶어요.

역사 속의 명곡들로 화려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던 그녀가 의외로 ‘현대 작곡가의 곡’에도 관심이 있음을 내비친다.

“저도 컨템퍼러리 한 곡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실 이번에 오기 전에 주말까지 프리미어(처음으로 연주) 한 곡이 있는데 그리크 라는 미국 작곡가가 절 위해서 쓰신 콘체르토 곡이에요. 지난 2년 동안 같이 한 곡이고, 지난 주에 월드 프리미어를 했으니까 한국에서 너무너무 연주하고 싶었는데, LA필 투어하고는 맞지 않아서 못하게 되었어요. 언젠가 꼭 한국에서 하고 싶어요.”

최근에 그녀는 TV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솔직하고 거침없는 이야기로 대중들에게 한껏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 화제다. 천재, 거장에서 쾌활하고 발랄하며 예쁜 것을 좋아하는 스물 아홉의 친구로 한 뼘 다가온 느낌이다.

“무릎팍 도사는 처음에는 굉장히 하기 싫다고 그랬어요. 그 분이 하시는 한국말을 알아듣기 힘들더라고요(웃음). 저는 여기 사는 사람도 아니고 미국에서 엉터리로 겨우 한국말 하는데 내가 어떻게 이걸 하냐, 그랬는데 많은 분들이 정말 재미있는 쇼라고(웃음). 그런데 정말정말 재밌었어요. 그 분이 운동하셨던 분이라 그런지 운동하고 음악하고 그 밸런스가 굉장히 똑같은 게 많았고, 그걸 많이 이해해 주셨죠.”
또한 한 프로그램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인사동도 가보고 거리 음식도 먹어 봐서 행복했다는 그녀는 연주와 삶, 그에 수반되는 많은 것들을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일과 사생활, 사라장에게는 모든 것이 ‘삶’으로 녹아 드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정말 친구와 패밀리는 원 라이프고 연주는 일로 생각하시는데, 제겐 연주하고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큰 부분이라서요, 지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2, 3년 스케줄까지 나와 있으니까 이걸 다 생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라이프가 됩니다. 그런데 무대 설 때 열심히 서고, 놀 때는 또 무섭게 열심히 놀고(웃음). 친구들이 굉장히 저에게 컴플레인(불평) 하는게, “너는 왜 안 자냐” 그런 거거든요. 시차적인 문제도 았지만, 자는 것이 레귤러(일정) 하지 않으니까 특히 밤에 더 포커스가 잘 맞춰져요. 많은 음악가들이 근데 그렇잖아요(웃음).

뉴욕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보스톤 심포니 등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베를린 필, 비엔나 필, 런던 필,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등 유럽의 최정상 오케스트라와 수 많은 협연을 해 오고 있으며 다니엘 바렌보임, 제임스 레바인, 주빈 메타, 콜린 데이비스 등의 거장들과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 1993년 그라모폰 어워드 ‘올해의 젊은 아티스트상’, 1999년 에이버리 피셔상, 2006년 뉴스위크지가 뽑은 차세대 여성 리더 20인에 속하는 등 ‘대단함’ 이라는 말을 더욱 무색하게 만드는 그녀의 경력에 ‘콩쿨’은 없었다.

“전 콩쿨을 되게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2, 30년 전에는 굉장히 이팩트가 있고, 이기면 레코딩과 연주 컨택트가 생겼는데, 요즘에는 안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지난 10년간은 차이코프스키 컨페티션… 누가 이겼는지 저도 몰라요. 예전에는 기돈 크레이머, 빅토리아 뮬로바, 그랬을 때는, ye, sure! 정경화씨도 레벤트리트에서 우승하셨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도 그런 식으로 프린트 인터뷰(서면 인터뷰 등 기사화) 안 하지 않나요? 해요?”

“음악이라는 것이 트레이닝 스킬도 아니고, 1등, 2등, 3등을 어떻게 누가 제일 잘 했는지 어떻게 스코어(평가)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내일 연주가 저도 다른데요. 콩쿨에서 2등하셨지만 지금 세계적인 연주자분들도 계시고, 1등 했지만 나중에 아무도 모르는 사람도 있잖아요.”

세계 속 한국 음악계의 모습은 어떤가요?
외국에서는 한국사람들이 모든 일에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줄리어드, 커티스 이런데 가보면요, 한국 분들 굉장히 많아요. 줄리어드 들어가면 영어 안 해도 되요(웃음). 뉴욕필, 시카고 심포니와 협연할 땐 한국분들이 많이 계셔서 저도 굉장히 뿌듯해요.
또 외국 오케스트라하고 외국 매니저들이 한국 오케스트라 어떠나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제가 몇 년 전부터는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왜냐면 모르니까. KBS 교향악단과 몇 번 하긴 했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런던 필, 비엔나 필하고 하고…외국 오케스트라하고만 하게 되요. 이제 저도 로컬한 오케스트라, KBS 교향악단이든, 서울, 부산… 등 로컬 오케스트라와 많이 협연하고 싶어요.

최근 국내에는 많은 젊은 한국 연주자들의 성장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말요? 잘 알진 못했지만 그렇게 시작해서 외국에서 잘 되면 너무너무 좋죠. 그런데 뉴욕필, 베를린, 비엔나, 런던 심포니…등의 탑 서킷(많이 협연하는 최상의 연주자들)을 보면 이름들이 똑같아요. 오케스트라 시즌, 연주회 일정, 연주자 수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요요마, 아가레츠 등 컬리그(만나게 되는 솔리스트)들은 계속 보죠.

사회활동이나 교육 등 음악을 통한, 혹은 음악 이외의 활동에는 관심이 있으신가요?
저도 그런 거 정말 하고 싶어요. 연주자로서 그런 리스펀스빌러티(책임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지금 어리니까 시간이 있는 것도 알고 있고요. 정명훈씨, 지역을 위해서 활동하는 이야기 들었는데 댓츠 리얼리 판타스틱! 너무너무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요즘엔 오케스트라마다 에듀케이셔널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리허설이나 콘서트장에 학생들이 오든지 아니면 제가 시간이 되면 학교로 가든지. 조금씩 그런 걸 시작하긴 했는데 학교 강의는 일단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간상으로도 안되지만, 제가 너무나 좋은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전 그 정도로는 못할 걸 알거든요. 그걸 배우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년에는 브람스 앨범 녹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5월에 독일에서요.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해 주시고. 18살, 19살부터 마주어와 브람스를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너무 어리다, 기다려라, 그래서 그냥 기브 업(포기)! 안되겠다 싶어서 안물어보기 시작했죠. 그런데 언젠가 유럽에서 쇼스타코비치 협주 후에 부르셔서, 우리 라이프치히(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하고 브람스 같이 하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줄리어드에서 했던 브람스는 다 잊으라고 하셔서, 그 분 집에서 브람스를 다시 배웠어요. 너무너무 고마웠죠.

향후 3년간의 스케줄이 짜여져 있는데, 그 안에 한국 내한공연도 포함되어 있나요?
오우…아니요. 아직 픽스(확정)된 것은 없지만, 그 다음에나 올 거 같아요(웃음).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사진: 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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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2

  • A** 2008.10.20

    어제 예술의전당에서 사라장 연주 듣고왔죠. 정말 황홀했습니다.. 남편따라 내년에 미국 나가게 될텐데, 디즈니홀에서 사라장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 A** 2008.10.20

    너무 멋진 그녀. 최고의 포스가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