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단 한 사람, 이승환
작성일2008.12.03
조회수13,151
이승환 콘서트에서 매년 ‘쳐 달려온’ 팬들에게 2008년도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그의 무대는 매우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로 감성을 더해 온 발라드 곡만을 선별해 어떠한 가감도 없는 담백하고 진정한 ‘오리지널’ 음악을 들려준다는 예고이다. 새벽까지 연습과 준비에 한창이라는 그와 마주한 시간, 지금까지의 인터뷰 중 ‘가장 홍보스러우며 영업의 끝을 달렸다’고 했지만, 그의 무대만큼이나 너무나 솔직하고도 환상적이었던 이야기들을 담아 본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어떤 분이 ‘이승환씨 콘서트 예매 했는데 내가 너무 어려서 못 즐기면 어쩌나 걱정이다’라는 글을 올려 놓았더라고요.
(웃음) 맞아요. 20대 팬은 마니아일 경우이고, 일반적인 20대 관객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80년 생 작곡하는 친구가 지난 번 ‘라스트 수퍼 히어로’ 공연에 86년 생인가? 하는 여자친구랑 와서 봤다는데, 여자친구가 공연을 너무 좋아했대요. “와, 공연 너무 잘한다, 재미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대요, “근데 나이가 넘 많아”. 으하하하하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세요?
많죠, 우리나라 가요계에서는. 그런데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나이를 밝히지 않으니까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저를 더 많게 보는 상황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재미로 방송에 나가서 “저 6년 뒤 50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팬들이 나이 드는 것에 대해서는요?
서글프죠, 그들이 주름이 자글자글해지는데(웃음). 애 데리고 공연장 오시는 것도 봤고. 지금도 10대들이 몇몇 오는데, ‘학교에서 따뜻한 보살핌은 받고 있냐’ 물어보는 정도지. 외국처럼 롤링스톤즈 팬이 10대까지 가는 것처럼 되기에 아직 우리나라는 분위기가 안 잡혀 있으니까.
이승환의 콘서트를 위해선 ‘밥 잘 먹고 동네 한 바퀴라도 뛰고 가는 준비’가 필요 했었는데요.
몸 좋게 하고, 근력 운동도 하고(웃음). ‘환장 지침’이라는 게 있는데 운동하고 오는 게 십계명 중에 하나였죠.
이번 공연은 발라드 노래만으로, 스탠딩도 아닌 ‘지정좌석제’ 라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이번은 ‘중장년층이 위로 받을 수 있는 공연’ 이에요. 저도 걱정이 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제작비를 많이 썼죠. 발라드를 하면 분명히 흥겨운 공연 보다는 재미있는 쇼가 없을 수 있으니까. 저는 보여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발라드가 주축이 되는 이번 공연 1부에서 총 18곡의 노래와 함께 남녀 주인공들이 다 이끌어 나가는 영상이 있어요. 약간의 스토리와 많은 이미지들을 전달하게 되겠죠. 음악에 붙는 영상이고, 영화처럼 너무 큰 스토리는 음악에 방해가 되니까, 음악을 이해하는 감독이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뮤직 비디오 감독님이 찍으셨어요. 영상이 음악에 방해가 되는 콘서트가 되면 안되죠.
영상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요, 2부는 좀 더 색다른 무대인가요?
연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사실 달리는 공연은 빵빵 터지고, 불쑥 튀어나오는 장치들이 효과가 좀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그런 연출을 해야 해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고.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관객들이 찾아오잖아요. 특히 내 공연이라는 건 예전부터 음악이 기본으로 된 쇼 적인 것이 강했기 때문에. 그걸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나의 즐거움이 있어요. 그걸 생각하는 게 즐겁죠.
쌘 곡들은 다 2부로 미뤘어요. 예전보다 쌔지는 않지만, 살짝 달리는(웃음). 너무 안 달리면 재미 없잖아요. 개인적으로 발라드만 부르는 거 싫어하거든요. 실현자로서 내가 지루할까봐(웃음). 내가 안 움직이는 걸 내가 참을 수 없어요. 막 움직여야 살아 있음을 느껴요. 20대들이 나보다 점프를 못할 때 희열을 느끼잖아요, ‘너희들 왜 나보다 못해, 난 아직 팔팔해’ 그러면서(웃음). 관객들의 기를 빨아 먹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나만 회춘하고 얘들은 자글자글 늙어, 하하하하. 골수팬들은 왜 안 뛰냐고 나에게 삿대질 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간 공연하면서 발라드 비중을 높였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 같아요. 아쉬운 사람은 ‘난 뭐 돌콘이나 보지’ 그러고. ‘돌발 콘서트’라고 홍대에서 쳐 달리는 공연이 있어요. 공연장에 온통 물 뿌리면서 노는. 진정 록을 원하는 사람은 거기 오면 되니까요.
공연 스텝진들도 바뀌지 않네요.
거의 대부분 13년 이상 호흡을 맞췄어요. 처음 만났을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했던 사람들을 뽑아서 만난 거였는데, 그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해요. 처음에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아마 누군가 도태되면 일은 같이 못할 수도 있다, 실력을 키우자” 그랬는데 여전히 다 최고예요. 주변에 오래된 사람이 많고, 내 사람일 때 만큼은 굉장히 잘해주죠. 친구들도, 스텝들도, 밴드들도. 초창기는 갈등이 되게 많았는데 그러면서 신뢰감이 굉장히 쌓였죠. 서로 믿으니까. 지금은 뭐랄까, 전혀, 정말 갈등이 없어요. 최근에 전 참 그게 좋아요.
팬들하고도 꾸준히 교류하는 편이신가요?
그런 거 절대 없어요. 아하하하. 전 팬클럽도 없고요. 점조직이 되어야지, 규모가 커지면 권력이 되는데 전 권력이 되는 건 싫어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질 수도 있고. 대신 팬들에 대해서는 무대나 다른 걸로 보답하죠. 공연하면서 휴지 폭탄을 던지는데, 이건 환경에 위배되는데 팬들은 좋아하고, 그렇다면 나무를 심자. 그래서 종로에 청운 공원에 가면 우리가 심은 나무가 있어요. 조만간 그 동산에 이름도 붙여준대요. 이런 거 할 때 팬들한테 김밥도 주고. ”내가 너희들한테 손 벌리지 않겠다, 다만 좋은 일을 한다면 우리가 도와줄게” 그거죠. 그들은 우리 공연에 와서 허리가 휘어지도록 공연비를 쓰잖아요(웃음).
욕정덩어리라는 별명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데요?
하하하하. 욕정 멘트 막 하고. 근데 말만 그렇게 해요. 처음에는 환장이라는 말을 먼저 썼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다 그 단어를 쓰니까 환장발이 안 먹혀서 욕정이란 말을 붙인거죠. 그런데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공연장 구호가 ‘환장과 욕정의 대동단결’ 이에요. 그때부터 쳐 달리는 거예요, 팬들간의 신호죠.
요즘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음악 잘 하는 후배들을 많이 아는 걸 되게 좋아해요. 자극을 받을 수 있으니까. 장기하와 고고스타. 참 잘해요. 인디쪽으로 잘하는 얘들이 많아요. 장기하 노래는 처음에 듣고 “와, 이거 뭐냐” 했는데, 쌈싸페(쌈지싸운드페스티벌) 때 터진거죠. 새로운, 아주 독특한 시도인 것 같아요. 편을 나누는 건 아니지만, 음악하는 사람은 음악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편하다는 걸 최근에 새삼 깨달았어요.
최근 영화 OST로 선보인 곡들은 들으면 경쾌하고 발랄하고, ‘요즘 즐거우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 맞아요. 고민이 별로 없다니까요. 무대 관련 소송 빼고는(웃음). 개인사를 대놓고 얘기하는게 쑥스러워서 빗대는 경우도 있고, 아예 그런 이야기를 안하고 영화보고 쓴 곡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때도 있고. 맹세코 개인사를 묶어서 음악 마케팅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분명한 것은 내 삶이 녹아 있어야 내 음악이니까, 그런 음악을 하는 것 뿐이고(여기서 그는 ‘~할 뿐이고’라는 최근 유행어를 한참이나 패러디 하며 웃었다). 혹은 내 연애사에 있어서 뭔가 있으면 분명히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줘선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순애보 적인 가사를 쓰게 되는 것 같고. 분명 미움이 있을 수 있는데 너무 강하게 쓰면 혹시라도 나는 다른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인데 다른 사람이 피해를 받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건 굉장히 자제하려고 해요. 여태까지 260곡 정도 노래를 썼는데, 그 중에 미움을 쓴 가사는 5곡도 안될 걸요. 순애보를 쓰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요.
그럼 요즘은 딱 한가지 걱정 만 있는 거군요.
우리가 사무실을 크게 운영할 때는 하루에도 남들이 한 달은 앓아 누울 만한 큰 사건들이 팡팡 터졌어요. 그런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면 이제 많은 것이 무뎌져요. 무대 관련 소송건도 처음 하루 이틀 고민하고 훌훌 털어냈어요. 무대는 내 목숨과도 같은 명예인데, 그걸 다쳤으니, 굉장히 큰 일이잖아요. 내가 무뎌져서 큰 일들이 생겨도 고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큰일이 안 생겼을 수도 있고요.
콘서트 무대에 대한 아티스트들과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은 음악을 위한 공연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벤트는 정말 부수적인 장치 일 뿐이에요. 가령 이승철씨도 사운드를 내세우시잖아요. 그런 것에서부터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들 음악에 신경을 쓰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크면 안되지 않을까요? 음악보다 무대 장치나 배경이 더 부각되는 것, 그런 분위기는 안된다는 생각이에요.
내년이면 데뷔 20년입니다. 아무런 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네, 계획 없어요. 내 나이만 뽀록날 뿐이야. 하긴 다 알고 있지만(웃음). 책하고 CD를 막 사고 있어요. 하루가 너무 빡빡해요,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들어야 하고. 요즘에는 나이가 들면, 아주 대중적인 것을 하는 것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기 위해선 내가 정말 표현을 제대로 해야 하고,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에요.
그는 얼리어답터 답게 춤추는 작고 귀여운 스피커를 한참 보여주기도 했고, 아날로그 스타일의 기자에게 넷(Net) 세상을 섭렵한다는 고수로서 최신 인터넷 용어도 몇 개 일러주었다. 그 밖에 레코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만의 재치있는 생각과 심지 굳은 발언을 다 담지 못한 지면의 한계가 안타까울 뿐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건 기어코 해 내고 마는 그만의 매력은 무대에서 가장 크게 빛날 것이라는 확신만은 마지막에라도 적어둔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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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넷 사이트에 어떤 분이 ‘이승환씨 콘서트 예매 했는데 내가 너무 어려서 못 즐기면 어쩌나 걱정이다’라는 글을 올려 놓았더라고요.
(웃음) 맞아요. 20대 팬은 마니아일 경우이고, 일반적인 20대 관객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80년 생 작곡하는 친구가 지난 번 ‘라스트 수퍼 히어로’ 공연에 86년 생인가? 하는 여자친구랑 와서 봤다는데, 여자친구가 공연을 너무 좋아했대요. “와, 공연 너무 잘한다, 재미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대요, “근데 나이가 넘 많아”. 으하하하하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세요?
많죠, 우리나라 가요계에서는. 그런데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나이를 밝히지 않으니까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저를 더 많게 보는 상황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재미로 방송에 나가서 “저 6년 뒤 50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팬들이 나이 드는 것에 대해서는요?
서글프죠, 그들이 주름이 자글자글해지는데(웃음). 애 데리고 공연장 오시는 것도 봤고. 지금도 10대들이 몇몇 오는데, ‘학교에서 따뜻한 보살핌은 받고 있냐’ 물어보는 정도지. 외국처럼 롤링스톤즈 팬이 10대까지 가는 것처럼 되기에 아직 우리나라는 분위기가 안 잡혀 있으니까.
이승환의 콘서트를 위해선 ‘밥 잘 먹고 동네 한 바퀴라도 뛰고 가는 준비’가 필요 했었는데요.
몸 좋게 하고, 근력 운동도 하고(웃음). ‘환장 지침’이라는 게 있는데 운동하고 오는 게 십계명 중에 하나였죠.
이번 공연은 발라드 노래만으로, 스탠딩도 아닌 ‘지정좌석제’ 라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이번은 ‘중장년층이 위로 받을 수 있는 공연’ 이에요. 저도 걱정이 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제작비를 많이 썼죠. 발라드를 하면 분명히 흥겨운 공연 보다는 재미있는 쇼가 없을 수 있으니까. 저는 보여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발라드가 주축이 되는 이번 공연 1부에서 총 18곡의 노래와 함께 남녀 주인공들이 다 이끌어 나가는 영상이 있어요. 약간의 스토리와 많은 이미지들을 전달하게 되겠죠. 음악에 붙는 영상이고, 영화처럼 너무 큰 스토리는 음악에 방해가 되니까, 음악을 이해하는 감독이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뮤직 비디오 감독님이 찍으셨어요. 영상이 음악에 방해가 되는 콘서트가 되면 안되죠.
연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사실 달리는 공연은 빵빵 터지고, 불쑥 튀어나오는 장치들이 효과가 좀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그런 연출을 해야 해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고.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관객들이 찾아오잖아요. 특히 내 공연이라는 건 예전부터 음악이 기본으로 된 쇼 적인 것이 강했기 때문에. 그걸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나의 즐거움이 있어요. 그걸 생각하는 게 즐겁죠.
쌘 곡들은 다 2부로 미뤘어요. 예전보다 쌔지는 않지만, 살짝 달리는(웃음). 너무 안 달리면 재미 없잖아요. 개인적으로 발라드만 부르는 거 싫어하거든요. 실현자로서 내가 지루할까봐(웃음). 내가 안 움직이는 걸 내가 참을 수 없어요. 막 움직여야 살아 있음을 느껴요. 20대들이 나보다 점프를 못할 때 희열을 느끼잖아요, ‘너희들 왜 나보다 못해, 난 아직 팔팔해’ 그러면서(웃음). 관객들의 기를 빨아 먹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나만 회춘하고 얘들은 자글자글 늙어, 하하하하. 골수팬들은 왜 안 뛰냐고 나에게 삿대질 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간 공연하면서 발라드 비중을 높였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 같아요. 아쉬운 사람은 ‘난 뭐 돌콘이나 보지’ 그러고. ‘돌발 콘서트’라고 홍대에서 쳐 달리는 공연이 있어요. 공연장에 온통 물 뿌리면서 노는. 진정 록을 원하는 사람은 거기 오면 되니까요.
공연 스텝진들도 바뀌지 않네요.
거의 대부분 13년 이상 호흡을 맞췄어요. 처음 만났을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했던 사람들을 뽑아서 만난 거였는데, 그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해요. 처음에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아마 누군가 도태되면 일은 같이 못할 수도 있다, 실력을 키우자” 그랬는데 여전히 다 최고예요. 주변에 오래된 사람이 많고, 내 사람일 때 만큼은 굉장히 잘해주죠. 친구들도, 스텝들도, 밴드들도. 초창기는 갈등이 되게 많았는데 그러면서 신뢰감이 굉장히 쌓였죠. 서로 믿으니까. 지금은 뭐랄까, 전혀, 정말 갈등이 없어요. 최근에 전 참 그게 좋아요.
팬들하고도 꾸준히 교류하는 편이신가요?
그런 거 절대 없어요. 아하하하. 전 팬클럽도 없고요. 점조직이 되어야지, 규모가 커지면 권력이 되는데 전 권력이 되는 건 싫어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질 수도 있고. 대신 팬들에 대해서는 무대나 다른 걸로 보답하죠. 공연하면서 휴지 폭탄을 던지는데, 이건 환경에 위배되는데 팬들은 좋아하고, 그렇다면 나무를 심자. 그래서 종로에 청운 공원에 가면 우리가 심은 나무가 있어요. 조만간 그 동산에 이름도 붙여준대요. 이런 거 할 때 팬들한테 김밥도 주고. ”내가 너희들한테 손 벌리지 않겠다, 다만 좋은 일을 한다면 우리가 도와줄게” 그거죠. 그들은 우리 공연에 와서 허리가 휘어지도록 공연비를 쓰잖아요(웃음).
욕정덩어리라는 별명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데요?
하하하하. 욕정 멘트 막 하고. 근데 말만 그렇게 해요. 처음에는 환장이라는 말을 먼저 썼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다 그 단어를 쓰니까 환장발이 안 먹혀서 욕정이란 말을 붙인거죠. 그런데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공연장 구호가 ‘환장과 욕정의 대동단결’ 이에요. 그때부터 쳐 달리는 거예요, 팬들간의 신호죠.
요즘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음악 잘 하는 후배들을 많이 아는 걸 되게 좋아해요. 자극을 받을 수 있으니까. 장기하와 고고스타. 참 잘해요. 인디쪽으로 잘하는 얘들이 많아요. 장기하 노래는 처음에 듣고 “와, 이거 뭐냐” 했는데, 쌈싸페(쌈지싸운드페스티벌) 때 터진거죠. 새로운, 아주 독특한 시도인 것 같아요. 편을 나누는 건 아니지만, 음악하는 사람은 음악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편하다는 걸 최근에 새삼 깨달았어요.
네, 맞아요. 고민이 별로 없다니까요. 무대 관련 소송 빼고는(웃음). 개인사를 대놓고 얘기하는게 쑥스러워서 빗대는 경우도 있고, 아예 그런 이야기를 안하고 영화보고 쓴 곡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때도 있고. 맹세코 개인사를 묶어서 음악 마케팅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분명한 것은 내 삶이 녹아 있어야 내 음악이니까, 그런 음악을 하는 것 뿐이고(여기서 그는 ‘~할 뿐이고’라는 최근 유행어를 한참이나 패러디 하며 웃었다). 혹은 내 연애사에 있어서 뭔가 있으면 분명히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줘선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순애보 적인 가사를 쓰게 되는 것 같고. 분명 미움이 있을 수 있는데 너무 강하게 쓰면 혹시라도 나는 다른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인데 다른 사람이 피해를 받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건 굉장히 자제하려고 해요. 여태까지 260곡 정도 노래를 썼는데, 그 중에 미움을 쓴 가사는 5곡도 안될 걸요. 순애보를 쓰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요.
그럼 요즘은 딱 한가지 걱정 만 있는 거군요.
우리가 사무실을 크게 운영할 때는 하루에도 남들이 한 달은 앓아 누울 만한 큰 사건들이 팡팡 터졌어요. 그런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면 이제 많은 것이 무뎌져요. 무대 관련 소송건도 처음 하루 이틀 고민하고 훌훌 털어냈어요. 무대는 내 목숨과도 같은 명예인데, 그걸 다쳤으니, 굉장히 큰 일이잖아요. 내가 무뎌져서 큰 일들이 생겨도 고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큰일이 안 생겼을 수도 있고요.
콘서트 무대에 대한 아티스트들과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은 음악을 위한 공연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벤트는 정말 부수적인 장치 일 뿐이에요. 가령 이승철씨도 사운드를 내세우시잖아요. 그런 것에서부터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들 음악에 신경을 쓰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크면 안되지 않을까요? 음악보다 무대 장치나 배경이 더 부각되는 것, 그런 분위기는 안된다는 생각이에요.
내년이면 데뷔 20년입니다. 아무런 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네, 계획 없어요. 내 나이만 뽀록날 뿐이야. 하긴 다 알고 있지만(웃음). 책하고 CD를 막 사고 있어요. 하루가 너무 빡빡해요,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들어야 하고. 요즘에는 나이가 들면, 아주 대중적인 것을 하는 것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기 위해선 내가 정말 표현을 제대로 해야 하고,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에요.
그는 얼리어답터 답게 춤추는 작고 귀여운 스피커를 한참 보여주기도 했고, 아날로그 스타일의 기자에게 넷(Net) 세상을 섭렵한다는 고수로서 최신 인터넷 용어도 몇 개 일러주었다. 그 밖에 레코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만의 재치있는 생각과 심지 굳은 발언을 다 담지 못한 지면의 한계가 안타까울 뿐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건 기어코 해 내고 마는 그만의 매력은 무대에서 가장 크게 빛날 것이라는 확신만은 마지막에라도 적어둔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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