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 정체 없는 음악으로, 진보하는 대중음악을 꿈꾸는 한 사람
작성일2009.06.29
조회수12,081
2003년 5집 ‘There Is A Man’을 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윤상이 6년 만에 새 앨범과 콘서트로 팬들을 찾아온다. 지난 해 윤상이 만들고 불렀던 곡이지만 가수들의 특징을 세심히 배려한 편곡으로 또 다른 맛과 멋을 선사한 ‘송북’으로 그를 기다려온 오랜 팬들의 기대감은 이미 예열된 상태. 새로운 음악과 무대로 채워질 오는 7월에 앞서 더욱 반가운 윤상을 먼저 만났다.
6집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팬들이 많습니다.
많지는 않고요(웃음). 제 팬들은 한 7년 기다리게 했죠. 원래 작년 11월까지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내려고 했는데, 학교 다니면서 하다보니 아무래도(웃음). 이번 작업은 거의 다 집에서 이뤄졌거든요.
포토에세이도 선보이신다고 들었습니다.
앨범하고는 좀 텀을 둘 수 밖에 없는 게, 아직 글을 다 못 써서(웃음). 처음에는 뉴욕을 소개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를 보여주는 거였는데 지금은 유학기 정도가 됐어요. 제가 가서 헤맨 이야기만 할 거거든요(웃음). 전에 미국을 좋아해 본 적도 없고, 학교를 정하다 보니 미국이 된 건데, 유학 가서 일이 일사천리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어린 나이에 간 것도 아니니까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될 부분들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말 못할 고민 같은 것들을 책에 담으려고요.
유학 가실 때부터 미리 계획하신 건가요?
출판사 쪽에서 재작년 말에 뭘 하나 해 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의가 왔어요. 솔직히 책을 내게 된 이유가 학교에서 만들었던 곡들, 실험적인 작품들을 발표할 만한 창구가 없었어요. 이걸 윤상이라는 이름을 단 CD로 내면 들으시는 분들은 대중가요 가수로서 윤상을 생각하니까, 노래도 없고, 잡음이 들리는 CD다, 그러면 반품 내지는, 얘 뭐하나(웃음) 하는 반응이 오잖아요. 팬들을 헛갈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러면 차라리 책의 보너스로 넣으면 되겠다, 그랬죠. 좌충우돌 하면서 6, 7년 보냈던 시간들을 사진들과 글, 음악으로 정리 해 볼까 한 거에요.
유학 후 발매하는 첫 음반에는 그간 공부했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작년에 6집 구상이 끝나지 않았을 때만해도 그걸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중간에 모텟이라는 일렉트로니카 유닛을 결성하게 됐고 그걸 통해 대중가요를 노래하는 사람 입장이 아닌 욕심은 충분히 부릴 수 있었죠. 6집에 유학 때 배웠던 것을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 내지는 욕심이 모텟을 하면서 현재 대중음악, 한국에서의 내 위치가 어떻다라는 걸 알게 된 거에요. 가서 공부한 게 뮤직신디시스라는 건데, 전자음악 내지는 전자 악기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음악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거죠. 그런 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대중성하고 너무 동떨어져버린 거에요. 또 한가지는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유학하면서 배운 새로운 기술들을 다 보여줄 수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6집은, 굉장히 인지도가 떨어져버린(웃음), 대중가수로서의 내 모습을 끌어올리자, 남들은 어렵다고 해도, ‘됐어, 이게 지금의 나야’ 이거는 대중음악 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는 아니잖아요.
시작을 작곡가, 프로그래머로 했다고 하더라도 가수로 제일 많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실추시키면 한편으로는 ‘저 사람은 옛날의 유명한 가수’라는 소리밖에 못 듣게 되요. “가수 하다 인기 떨어지니까 저런 거 하는구나”라는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싫었어요. 인기에 연연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나를 가수로서 좋아해 주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나는 조금 더 특별한 것을 보여주려는, 노래는 나의 한 파트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공부를 하면서 욕심을 채우다 보니, 난 역시 대중가요, 다른 사람에게 곡 주면서 그게 즐거워서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노래 욕심도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는 연주곡이 하나도 없어요(웃음). 다 노래에요.
‘대중가수’라고 강조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오히려 젊은 가수들은 그런 수식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경향도 있는데, 10년 이상 활동한 가수분들이 ‘대중’이란 단어를 강조하시더라고요.
제가 하는 게 클래식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 유행하는 음악을 하는 아이돌도 아니고. 아마 대중이라는 표현이, 보다 자기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서 제가 사용하는 것 같아요. 그치만 대중음악이라는 게 저희 세대만 하더라도, 클래식과 차별되는 싸구려, 정통성을 벗어난 하나의 딴따라 문화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거기에 대한 이유 있는 입장을 얘기하게 되는 거에요. 아이돌로 인기가 있을 때에는 클래식이 아니어도 되고, 자기 스스로 대중음악가라고 얘기를 안 해도 되요, 왜냐면 스타니까. 근데 나이를 먹다 보면, 과연 나는 어떤 가수일까,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일까를 생각하게 되죠.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음악들이 지금 한창, 음악의 끝은 어디일까를 헤매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위한 음악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계속 연구하고 공부하는 거니까. 클래식과 입장 차이를 두려는 게 아니라 트로트든 뭐든 모든 게 아우러져서 결국에는 하나의 장르로, 하나의 정당성을 두기 위해서 대중음악가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유학기간에 익힌 것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대중음악이 발전하려면 유행가만 따라가는 것이 대중음악이라는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나이를 먹어서도 대중음악을 할 때 “어차피 공부 안 해도 돼”라는 얘기를 제발, 좀, 없애고 싶었어요, 가능하다면,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대중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이 필요한데요. 요즘 젊은 친구들도 완성 되서 무대에 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일들이 필요하거든요. 사운드 엔지니어링부터 시작해서 대중들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동물본성을 가진 작곡가들이라든가. 그 사람들의 역할을 자꾸 ‘이래도 된다, 이래도 된다’ 하면 구심점도 없이 정통도 없고, 한마디로 족보 없이 계속 미국 거 따라 하는 것 밖에 없거든요.
후진 가수들은 어디에도 있어요. 자기 관리 철저한 송대관, 태진아, 이런 사람들만 기억하잖아요. 트로트 쪽에서도 그런 분들은 후배들에게 선을 안 긋고 다 키워주고. 스타로서 존재하면 독주 밖에 안 되죠.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만 인기 있어야 하는. 그런 것 보다는 저는 어차피 작곡가로 시작했기 때문에 가수로서 내가 최고야, 이런 생각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고, 많은 가수들이 내 곡을 받아서 인기가 있었으면 좋겠고, 저는 그걸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는거죠. 지금은 다행히 가수 뿐 아니라 프로듀서는 뭘 하는 사람인가, 여러 사람들에 대한 입지들이 다져지다 보니까 나는 이쪽에서 이 사람들이랑 놀아야겠다,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고, 느꼈던 노하우가 있으면 저하고 필이 맞는 친구들한테 나누고, 그 친구들이 잘 돼서 또 도와주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몇 해 전(대학교 재학 중) 한 신문에 실린 글에서는 “언젠가는 가수를 버리고 작곡가로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글은 완벽한 대필이에요. 엄청난 각색이 들어있죠. 당시 너무 가수에 치중되어 있는 현실이 너무너무 싫었어요. 지금은 힙합이면 힙합, 트로트면 트로트, 각자가 행복하잖아요. 그 때는 다 뭉쳐서. 군대식으로 치면 해군이 하는 일은 해군이 하고 육군이 하는 일은 육군이 해야 하는 건데, “너희는 군인이야” 그러니 특수성도 없고 우스워 보이는거죠. 군인은 전문인인데. 저는 상대방의 어떤 입장을 함부로 폄하하는 사회분위기가 너무, 너무, 너무, 죽도록 싫었어요. 이제 와서는 평등을 외치고 있으면서 왜 남의 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함부로 얘기하냐, 이거였죠. 그래서 가수를 단지 저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만드신 곡들의 느낌은 대체로 부드럽고 감미롭고,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작업 방식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전자음악을 하는 건 제가 악기 연주가 불가능 했기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에요. 못 치는 연주라도 프로그램을 하면 되죠. 그래서 저는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사람이거든요. 또 음악을 꼭 돈만 되는, 전 국민을 울리는 곡이 아니라, 자기와 감성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게 깊게 포커스를 맞춘다면, 저는 유재하나 이런 사람들을 저의 선배로 봤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그런 느낌, 그런 감성, 대중을 싸게 묶어버리지 않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죠. 그러려면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근데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컴퓨터를 사용해서 친구가 잘못 친 걸 듣고 고치고. 그래서 그 공부를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대신 제가 전자음악만의 고유한 색깔로 처음부터 들이대려고 했다면 대중음악가가 아니라 현대음악을 하고 있어야겠죠. 그건 아닌 것 같고. 또 노래, 가요나 팝들 그런 것을 주로 듣다 보니 비록 전자악기를 쓰지만 감성 자체는 오히려 헤비메탈 하는 사람들보다 서정적이지 않나 싶어요.
모텟 앨범에는 전자악기 고유의 특성이 잘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실험이었어요. 전자음악에도 레벨이 있어요. 쉽게 들리는 음악, 어렵게 들리는 음악. 음악보다 소리가 중심이 되는 것도 있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를 최대한 살려보자, 하는 음악도 있어요. 학교에서 공부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정보를 받고, 그렇게 받은 정보들을 어떻게 표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것이 모텟이죠. 배웠던 기술적인 부분들을 사용해서 다양한 비트들이 어떻게 하면 리듬 같이 들릴까, 그런 것들을 했어요. 모텟 멤버들 중 나머지 두 명은 정말 엄청나요. 이 친구들은 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영감을 받는 전자음악을 위한 제너레이션이죠. 시작은 재밌었는데 마무리 작업에선 머리에 지진이 나는 줄 알았어요(웃음). 세 명의 의견이 공통적으로 들어가야 하니, 밤 새서 작업한 것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다른 친구가 다시 수정하고 또 조율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밴드 음악 같기도 하고, 재밌었어요.
윤상씨의 음악을 들으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어떤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영상과 함께하는 OST 작업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대단히 감사한데 ‘누들로드’가 처음이에요. 아직까진 일반적으로 제가 알고 있는 영화감독과 같은 분들은 저를 한 사람의 가수로만 생각하지, 어떤 음악을 만드는 사운드 메이커란 생각을 못해요. ‘누들로드’의 이욱정 프로듀서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누들로드’가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 된 게, 기회가 된다면 비주얼하고 음악을 맞춰보고 싶었거든요. 한편으로 제 음악을 그렇게(비주얼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주시는 분들은 제게 와서 이야기 하면 오히려 제가 가수로서의 입장을 얘기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서로가 어려워 했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을 깨는 역할로 ‘누들로드’가 작용을 했으면 하는 기대치가 있죠. 만약 다른 사람들이 해도 되는 음악을 내가 노래 한다면, 나 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부르는 게 나은 거지, 굳이 내가 해야 될 이유는 없다, 그런 욕심이 역설적으로 노래를 만들 때 사운드라든지, 편곡에 더 중심을 두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소녀시대, 동방신기 등 젊은 가수들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대만족! 동방신기에게 준 노래는, 전 죽었다 깨어나도 부를 수 없는 노래죠. 나이 40이 넘었는데 젊은, 뭔가 안무가 생각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잖아요(웃음). 그런데 그런 작업이 6집에 참고는 됐어요. 나도 거기서 나하고 맞지 않은 것을 뺀다면 뭔가 절대적인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요. 비록 제가 준 곡이 동방신기의 타이틀로 갈 수는 없지만, 그 친구들에게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쓴 거죠.
‘랄랄라’는 소녀시대를 위해 만든 곡은 아니에요. 제 십 몇 년 전에 알로라는 팀에게 곡을 줬었는데 잘 안 알려졌었거든요. 그 곡은 어린 친구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가사와 멜로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녀시대들이 불렀을 때 그 에너지가 느껴지니까 그 자체로 이 곡이 의도대로 갔다는 생각, 리메이크 될 당위성이 생기는 거죠.
이번 콘서트에는 어떤 모습을 담으실 건지.
다른 무대보다 조금 차이를 뒀어요. 드럼도 베이스도 없죠. 전자음악의 사운드가 이들을 대신할 거예요. LG아트센터라는 공연장에 맞는 편곡으로. 예전에는 밴드 편성이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콘서트장의 느낌까지도 수용해서 사전에 준비를 심각하게 하고 있는 중이에요. (국악 정가, 장구, 북, 태평소 등과 클래식의 현악기들이 일렉트로닉 음악과 어울려 특이하고 독특한 시도를 하게 될 것이라는 관계자의 설명도 이어졌다) 콘서트 후에는 6집 활동으로 당분간 많은 분들 만나게 될 것 같아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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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팬들이 많습니다.
많지는 않고요(웃음). 제 팬들은 한 7년 기다리게 했죠. 원래 작년 11월까지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내려고 했는데, 학교 다니면서 하다보니 아무래도(웃음). 이번 작업은 거의 다 집에서 이뤄졌거든요.
포토에세이도 선보이신다고 들었습니다.
앨범하고는 좀 텀을 둘 수 밖에 없는 게, 아직 글을 다 못 써서(웃음). 처음에는 뉴욕을 소개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를 보여주는 거였는데 지금은 유학기 정도가 됐어요. 제가 가서 헤맨 이야기만 할 거거든요(웃음). 전에 미국을 좋아해 본 적도 없고, 학교를 정하다 보니 미국이 된 건데, 유학 가서 일이 일사천리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어린 나이에 간 것도 아니니까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될 부분들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말 못할 고민 같은 것들을 책에 담으려고요.
유학 가실 때부터 미리 계획하신 건가요?
출판사 쪽에서 재작년 말에 뭘 하나 해 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의가 왔어요. 솔직히 책을 내게 된 이유가 학교에서 만들었던 곡들, 실험적인 작품들을 발표할 만한 창구가 없었어요. 이걸 윤상이라는 이름을 단 CD로 내면 들으시는 분들은 대중가요 가수로서 윤상을 생각하니까, 노래도 없고, 잡음이 들리는 CD다, 그러면 반품 내지는, 얘 뭐하나(웃음) 하는 반응이 오잖아요. 팬들을 헛갈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러면 차라리 책의 보너스로 넣으면 되겠다, 그랬죠. 좌충우돌 하면서 6, 7년 보냈던 시간들을 사진들과 글, 음악으로 정리 해 볼까 한 거에요.
유학 후 발매하는 첫 음반에는 그간 공부했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작년에 6집 구상이 끝나지 않았을 때만해도 그걸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중간에 모텟이라는 일렉트로니카 유닛을 결성하게 됐고 그걸 통해 대중가요를 노래하는 사람 입장이 아닌 욕심은 충분히 부릴 수 있었죠. 6집에 유학 때 배웠던 것을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 내지는 욕심이 모텟을 하면서 현재 대중음악, 한국에서의 내 위치가 어떻다라는 걸 알게 된 거에요. 가서 공부한 게 뮤직신디시스라는 건데, 전자음악 내지는 전자 악기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음악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거죠. 그런 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대중성하고 너무 동떨어져버린 거에요. 또 한가지는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유학하면서 배운 새로운 기술들을 다 보여줄 수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6집은, 굉장히 인지도가 떨어져버린(웃음), 대중가수로서의 내 모습을 끌어올리자, 남들은 어렵다고 해도, ‘됐어, 이게 지금의 나야’ 이거는 대중음악 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는 아니잖아요.
시작을 작곡가, 프로그래머로 했다고 하더라도 가수로 제일 많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실추시키면 한편으로는 ‘저 사람은 옛날의 유명한 가수’라는 소리밖에 못 듣게 되요. “가수 하다 인기 떨어지니까 저런 거 하는구나”라는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싫었어요. 인기에 연연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나를 가수로서 좋아해 주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나는 조금 더 특별한 것을 보여주려는, 노래는 나의 한 파트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공부를 하면서 욕심을 채우다 보니, 난 역시 대중가요, 다른 사람에게 곡 주면서 그게 즐거워서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노래 욕심도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는 연주곡이 하나도 없어요(웃음). 다 노래에요.
‘대중가수’라고 강조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오히려 젊은 가수들은 그런 수식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경향도 있는데, 10년 이상 활동한 가수분들이 ‘대중’이란 단어를 강조하시더라고요.
제가 하는 게 클래식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 유행하는 음악을 하는 아이돌도 아니고. 아마 대중이라는 표현이, 보다 자기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서 제가 사용하는 것 같아요. 그치만 대중음악이라는 게 저희 세대만 하더라도, 클래식과 차별되는 싸구려, 정통성을 벗어난 하나의 딴따라 문화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거기에 대한 이유 있는 입장을 얘기하게 되는 거에요. 아이돌로 인기가 있을 때에는 클래식이 아니어도 되고, 자기 스스로 대중음악가라고 얘기를 안 해도 되요, 왜냐면 스타니까. 근데 나이를 먹다 보면, 과연 나는 어떤 가수일까,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일까를 생각하게 되죠.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음악들이 지금 한창, 음악의 끝은 어디일까를 헤매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위한 음악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계속 연구하고 공부하는 거니까. 클래식과 입장 차이를 두려는 게 아니라 트로트든 뭐든 모든 게 아우러져서 결국에는 하나의 장르로, 하나의 정당성을 두기 위해서 대중음악가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유학기간에 익힌 것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대중음악이 발전하려면 유행가만 따라가는 것이 대중음악이라는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나이를 먹어서도 대중음악을 할 때 “어차피 공부 안 해도 돼”라는 얘기를 제발, 좀, 없애고 싶었어요, 가능하다면,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대중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이 필요한데요. 요즘 젊은 친구들도 완성 되서 무대에 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일들이 필요하거든요. 사운드 엔지니어링부터 시작해서 대중들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동물본성을 가진 작곡가들이라든가. 그 사람들의 역할을 자꾸 ‘이래도 된다, 이래도 된다’ 하면 구심점도 없이 정통도 없고, 한마디로 족보 없이 계속 미국 거 따라 하는 것 밖에 없거든요.
후진 가수들은 어디에도 있어요. 자기 관리 철저한 송대관, 태진아, 이런 사람들만 기억하잖아요. 트로트 쪽에서도 그런 분들은 후배들에게 선을 안 긋고 다 키워주고. 스타로서 존재하면 독주 밖에 안 되죠.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만 인기 있어야 하는. 그런 것 보다는 저는 어차피 작곡가로 시작했기 때문에 가수로서 내가 최고야, 이런 생각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고, 많은 가수들이 내 곡을 받아서 인기가 있었으면 좋겠고, 저는 그걸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는거죠. 지금은 다행히 가수 뿐 아니라 프로듀서는 뭘 하는 사람인가, 여러 사람들에 대한 입지들이 다져지다 보니까 나는 이쪽에서 이 사람들이랑 놀아야겠다,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고, 느꼈던 노하우가 있으면 저하고 필이 맞는 친구들한테 나누고, 그 친구들이 잘 돼서 또 도와주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몇 해 전(대학교 재학 중) 한 신문에 실린 글에서는 “언젠가는 가수를 버리고 작곡가로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글은 완벽한 대필이에요. 엄청난 각색이 들어있죠. 당시 너무 가수에 치중되어 있는 현실이 너무너무 싫었어요. 지금은 힙합이면 힙합, 트로트면 트로트, 각자가 행복하잖아요. 그 때는 다 뭉쳐서. 군대식으로 치면 해군이 하는 일은 해군이 하고 육군이 하는 일은 육군이 해야 하는 건데, “너희는 군인이야” 그러니 특수성도 없고 우스워 보이는거죠. 군인은 전문인인데. 저는 상대방의 어떤 입장을 함부로 폄하하는 사회분위기가 너무, 너무, 너무, 죽도록 싫었어요. 이제 와서는 평등을 외치고 있으면서 왜 남의 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함부로 얘기하냐, 이거였죠. 그래서 가수를 단지 저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만드신 곡들의 느낌은 대체로 부드럽고 감미롭고,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작업 방식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전자음악을 하는 건 제가 악기 연주가 불가능 했기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에요. 못 치는 연주라도 프로그램을 하면 되죠. 그래서 저는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사람이거든요. 또 음악을 꼭 돈만 되는, 전 국민을 울리는 곡이 아니라, 자기와 감성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게 깊게 포커스를 맞춘다면, 저는 유재하나 이런 사람들을 저의 선배로 봤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그런 느낌, 그런 감성, 대중을 싸게 묶어버리지 않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죠. 그러려면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근데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컴퓨터를 사용해서 친구가 잘못 친 걸 듣고 고치고. 그래서 그 공부를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대신 제가 전자음악만의 고유한 색깔로 처음부터 들이대려고 했다면 대중음악가가 아니라 현대음악을 하고 있어야겠죠. 그건 아닌 것 같고. 또 노래, 가요나 팝들 그런 것을 주로 듣다 보니 비록 전자악기를 쓰지만 감성 자체는 오히려 헤비메탈 하는 사람들보다 서정적이지 않나 싶어요.
모텟 앨범에는 전자악기 고유의 특성이 잘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실험이었어요. 전자음악에도 레벨이 있어요. 쉽게 들리는 음악, 어렵게 들리는 음악. 음악보다 소리가 중심이 되는 것도 있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를 최대한 살려보자, 하는 음악도 있어요. 학교에서 공부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정보를 받고, 그렇게 받은 정보들을 어떻게 표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것이 모텟이죠. 배웠던 기술적인 부분들을 사용해서 다양한 비트들이 어떻게 하면 리듬 같이 들릴까, 그런 것들을 했어요. 모텟 멤버들 중 나머지 두 명은 정말 엄청나요. 이 친구들은 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영감을 받는 전자음악을 위한 제너레이션이죠. 시작은 재밌었는데 마무리 작업에선 머리에 지진이 나는 줄 알았어요(웃음). 세 명의 의견이 공통적으로 들어가야 하니, 밤 새서 작업한 것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다른 친구가 다시 수정하고 또 조율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밴드 음악 같기도 하고, 재밌었어요.
윤상씨의 음악을 들으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어떤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영상과 함께하는 OST 작업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대단히 감사한데 ‘누들로드’가 처음이에요. 아직까진 일반적으로 제가 알고 있는 영화감독과 같은 분들은 저를 한 사람의 가수로만 생각하지, 어떤 음악을 만드는 사운드 메이커란 생각을 못해요. ‘누들로드’의 이욱정 프로듀서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누들로드’가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 된 게, 기회가 된다면 비주얼하고 음악을 맞춰보고 싶었거든요. 한편으로 제 음악을 그렇게(비주얼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주시는 분들은 제게 와서 이야기 하면 오히려 제가 가수로서의 입장을 얘기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서로가 어려워 했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을 깨는 역할로 ‘누들로드’가 작용을 했으면 하는 기대치가 있죠. 만약 다른 사람들이 해도 되는 음악을 내가 노래 한다면, 나 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부르는 게 나은 거지, 굳이 내가 해야 될 이유는 없다, 그런 욕심이 역설적으로 노래를 만들 때 사운드라든지, 편곡에 더 중심을 두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소녀시대, 동방신기 등 젊은 가수들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대만족! 동방신기에게 준 노래는, 전 죽었다 깨어나도 부를 수 없는 노래죠. 나이 40이 넘었는데 젊은, 뭔가 안무가 생각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잖아요(웃음). 그런데 그런 작업이 6집에 참고는 됐어요. 나도 거기서 나하고 맞지 않은 것을 뺀다면 뭔가 절대적인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요. 비록 제가 준 곡이 동방신기의 타이틀로 갈 수는 없지만, 그 친구들에게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쓴 거죠.
‘랄랄라’는 소녀시대를 위해 만든 곡은 아니에요. 제 십 몇 년 전에 알로라는 팀에게 곡을 줬었는데 잘 안 알려졌었거든요. 그 곡은 어린 친구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가사와 멜로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녀시대들이 불렀을 때 그 에너지가 느껴지니까 그 자체로 이 곡이 의도대로 갔다는 생각, 리메이크 될 당위성이 생기는 거죠.
이번 콘서트에는 어떤 모습을 담으실 건지.
다른 무대보다 조금 차이를 뒀어요. 드럼도 베이스도 없죠. 전자음악의 사운드가 이들을 대신할 거예요. LG아트센터라는 공연장에 맞는 편곡으로. 예전에는 밴드 편성이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콘서트장의 느낌까지도 수용해서 사전에 준비를 심각하게 하고 있는 중이에요. (국악 정가, 장구, 북, 태평소 등과 클래식의 현악기들이 일렉트로닉 음악과 어울려 특이하고 독특한 시도를 하게 될 것이라는 관계자의 설명도 이어졌다) 콘서트 후에는 6집 활동으로 당분간 많은 분들 만나게 될 것 같아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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