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언 "나와 내 음악은 어딜 향하고 있는가"
작성일2009.10.21
조회수14,625
광활하며 섬세하다. 그리고 언제나 새롭다. 그것이 양방언의 힘이자 우리가 언제나 놀라는 까닭이다. 음악가로 개인의 연주 활동 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다큐멘터리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양방언이 음악활동 30년과 한국활동 1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를 연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는 “기분 좋은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5년 만에 새 솔로 음반이 나왔습니다. 5집 이후 시간이 제법 흘렀어요.
그렇죠(웃음). 제가 영상 작품 참여를 너무 많이 했어요. (일본TV 애니메이션 ‘십이국기’, ‘채운국 이야기’, '엠마’와 국내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 ‘천년학’, KBS TV 스페셜 ‘도자기’, ‘차마고도’ 등의 음악을 작곡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그렇고. 그 작품들이 아주 매력적이어서 좋다, 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웃음).
하지만 영상 작품과 솔로 음반은 상호 관계에 있어요. 이쪽(영상)에서 하는 작업이 다른 쪽(음반)에 당연히 반영이 되고, 또 솔로 음반을 내고 연주회를 하면서 얻은 것이 다시 영상 쪽에 반영이 되죠. 그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음악이 또 나오고요.
6집 [Timeless Story]는 과거 앨범과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솔로 음반은 그 당시 그 시기에 그 사람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알고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지 많은 고민을 하고, 알아야 하죠. 지금까지는 다양한 악기를 쓰고, 제한 없이 좋은 것을 다 넣고, 느끼며 많은 걸 해보자, 그런 자세였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배제 해 보자고 생각했죠. 필요 없다는 개념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배제된 후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알고 싶었거든요. 그 결과 피아노와 현,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있었고, 그걸 중심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악기와 장르로서 다양성은 없지만 그런 다양함이 아니라, 좀 더 내 안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의 다양함이라고나 할까요? 음악 만으로서의 다양함을 많이 추구 했어요.
미리 여러 곡을 작곡해 놓고 주제에 맞게 선별하는 편이신가요? 아니면 방향이 정해지면 그 때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신가요?
일부러 무엇을 정하진 않아요. 나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싶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음반에는 어떤 양방언이 반영되어야 하는지. 거기서부터 시작해요. 그러니까 시간이 걸려요(웃음). 금년이 한국 활동 10주년이기도 하고, 반드시 솔로 음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렇다면 지금 나를 다시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전 음반들하고 똑 같은 음악을 당연히 하고 싶지도 않고, 진보하고 싶고, 또 나갈 방향을 스스로 어느 정도 완벽하게 잡은 후에 앞으로 넘어갈 수가 있잖아요. 중심이 잘 잡혀 있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되요.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시작점’에 섰다고 하셨습니다.
음악을 시작해서 30년이 지났어요. 음악적 경험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많은 것이 쌓였죠. 기쁨, 어려움, 무거움들도 당연히 쌓였는데, 그런 것들을 승화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저에게 돌아온다, 그러면 다시 쌓이고, 일종의 순환이라고 할까요? 지금, 30년, 10년이라는 시간이 순환을 떠올리기에 아주 좋은 시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볼 때, ‘아, 이제 다시 시작하는구나, 또 다시 향하고 싶다’는 생각이죠. 몇 바퀴인지는 모르지만 좀 돌았으니, 다시 어딘가를 향해서 그곳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것. 그것에 대한 설레임이 있어요. 다음의 첫 단계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아주 새로운 느낌이에요. 어렵겠지만, 가보자, 했죠(웃음).
쉬운 길은 안 가실 것 같은데요.
그런 것도 있죠(웃음). 재미 없잖아요. 어렵다기 보다는, 음, 역시 설레임이지 않을까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일어날 지도 모르고, 상상하지 못했던 음악가와 만날 수도 있고.
다양한 악기를 사용한 큰 규모의 복합적, 유기적인 음악이라 양방언씨의 곡은 처음에 악보 보기도, 연주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죠(웃음). 역시 서양 음악이 기본이 되고 있고, 그 부분이 전통 악기 연주하는 분들에게 아주 부담이 되요. 간단한 예로 전통 악기는 음정이 낮고 서양 악기는 높죠. 그런데 작업을 할 때는 그런 부분을 알면서 인정을 하고, “그런 것이라도 재밌다, 해 보겠다” 그런 분들과 같이 하는 거죠.
연주 뿐 아니라 작곡, 음반 프로듀싱 등 대부분의 작업을 맡고 계십니다. 작업 시 동료들은 양방언씨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모르겠어요, 좀 집요하다?(웃음) 자기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고집은 크죠. 왜냐하면 왜 자기가 거기까지 하는가를 생각했을 때 역시 만족감이라는 점이 있어요. 다른 사람과 함께 했을 때 완성도가 높아지는 측면도 당연히 있지만, 다른 사람이 들어옴으로써 자기가 목표하는 데 도달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경험이나 다른 기술, 지식이 내 안에 있으면 목표에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는 거죠. 다시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고, 또 다른 시각으로 음악을 볼 수 있어요.
음악 연주나 편곡이 아닌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음악을 볼 수 있다는 건, 완성된 작품으로서 음악을 생각할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제가 다른 엔지니어와 일을 할 때에도 그 작업의 방식을 알고 있으면 아주 쉽게 진행이 될 수 있고요. 과정이 힘들기는 하더라도 마지막에 도달하는 단계, 그 과정에 진화가 있다는 점이 아주 좋아요.
한국에서 첫 공연, 기억 나시나요?
그럼요.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바꾸고(그는 제주도가 고향인 아버지와 신의주가 고양인 어머니를 두고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8년에 처음 한국에 왔어요. 그 다음 해 문화일보홀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당시에는 우리말을 지금보다 훨씬 못해서 연주하는 것 보다 연주 후 멘트 하는 게 너무 걱정이었어요(웃음). 그런데 그 때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따뜻했어요. 우리말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와주시고, 역시 계속 한국에서 더 많이 활동하고 싶다, 그런 느낌 들었죠.
5살 때부터 대학 교수에게 피아노 교육을 받았다고요.
누님이 정말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어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하셨죠. 그 누님이 동생한테도 피아노를 치게 하자고 한 거죠. 그런데 솔직히 전 부담스러웠어요. 남자가 피아노를 치는 게 당시엔 부끄러웠거든요. 친구들하고 야구를 하거나 그러고 싶었죠. 그런데 계속은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계속 했던 게 결과적으로는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고,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어린이였을 것 같은데요.
반반?(웃음) 반항도 했는데 뭔가 본능적으로 밸런스(균형)를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너무 한쪽으로 가 버리면 안 좋지 않을까,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폭소). 바로 음대에 가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서의 상황은 의대에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이었죠(의사인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그의 형제들은 모두 의대나 약대에 진학했다). 음대 갈 가능성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일단 그 말을 따라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서 당시 대학생들과 하던 밴드도 그만 두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죠. 하지만 의대에 들어가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웃음)’ 그러고.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위한 밸런스랄까.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이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웃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매우 크신 것 같습니다. 다른 작업 계획은 없으신가요?
아주 많은 도전을 하고 싶어요. 지금도 언제나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갑자기 다양한 걸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겠죠. 또 그런 것들 중에 순서라는 것도 있어야 하잖아요. 제 안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 마음 속으로 ‘이것이다, 이것으로 간다’가 정해진 후에는 진행은 아주 빨라요, 너무 빨라요.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좀 많이 생각을 하죠. 개인적으로 그 과정이 가장 재밌어요. 혼자 스튜디오 안에서 이야기 하고, 웃고 있어요(웃음).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도 흥미롭고, 또 발레 작업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서로 잘 맞는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서로 매력을 느끼고 자극이 되는 작품에 참여를 해야 마무리도 잘 할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겠죠.
그간 주로 아시아에서 활동하셨는데 유럽으로의 진출 계획은 없으신가요?
있어요. 지금까지는 14년간 영국에서 녹음 작업을 주로 했는데, 그것과는 좀 다른 형식으로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좀 클래식적인 측면에서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50의 나이를 ‘지천명’이라고도 합니다. 50세 양방언이 깨달은 하늘의 뜻은 무엇인가요?
하늘의 뜻을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폭소) 역시 음악, 음악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20대에, 특히 가출을 하고 음악을 시작했을 때 50대가 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많이 생각했었어요. 과연 음악을 계속 하고 있을까, 하고요. 하늘의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큰 뜻이 있는 느낌은 들어요. 이 길로 간다, 향한다, 날아가고 싶다, 새로운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느낌이요.
올해 한국 활동 10주년 기념 공연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활동 초기의 곡들도 연주하고, 새 음반에 실린 곡들도 당연히 연주하고요. 아시는 예술가분이 협력 해 주시기도 할 예정이에요. 곡 리스트는 공연장에서(웃음). 제 개인적인 기준이라고 할까? 공연에서 다음 곡이 무엇인지 알면서 듣는 것과 모르고 듣는 건 느낌이 다르죠. 서로를 위한 설레임이랄까요. 이번 연주회 역시 추억에 남는 무대가 될 것 같아요. 여러분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또 음악에게도 또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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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웃음). 제가 영상 작품 참여를 너무 많이 했어요. (일본TV 애니메이션 ‘십이국기’, ‘채운국 이야기’, '엠마’와 국내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 ‘천년학’, KBS TV 스페셜 ‘도자기’, ‘차마고도’ 등의 음악을 작곡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그렇고. 그 작품들이 아주 매력적이어서 좋다, 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웃음).
하지만 영상 작품과 솔로 음반은 상호 관계에 있어요. 이쪽(영상)에서 하는 작업이 다른 쪽(음반)에 당연히 반영이 되고, 또 솔로 음반을 내고 연주회를 하면서 얻은 것이 다시 영상 쪽에 반영이 되죠. 그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음악이 또 나오고요.
솔로 음반은 그 당시 그 시기에 그 사람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알고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지 많은 고민을 하고, 알아야 하죠. 지금까지는 다양한 악기를 쓰고, 제한 없이 좋은 것을 다 넣고, 느끼며 많은 걸 해보자, 그런 자세였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배제 해 보자고 생각했죠. 필요 없다는 개념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배제된 후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알고 싶었거든요. 그 결과 피아노와 현,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있었고, 그걸 중심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악기와 장르로서 다양성은 없지만 그런 다양함이 아니라, 좀 더 내 안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의 다양함이라고나 할까요? 음악 만으로서의 다양함을 많이 추구 했어요.
일부러 무엇을 정하진 않아요. 나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싶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음반에는 어떤 양방언이 반영되어야 하는지. 거기서부터 시작해요. 그러니까 시간이 걸려요(웃음). 금년이 한국 활동 10주년이기도 하고, 반드시 솔로 음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렇다면 지금 나를 다시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전 음반들하고 똑 같은 음악을 당연히 하고 싶지도 않고, 진보하고 싶고, 또 나갈 방향을 스스로 어느 정도 완벽하게 잡은 후에 앞으로 넘어갈 수가 있잖아요. 중심이 잘 잡혀 있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되요.
음악을 시작해서 30년이 지났어요. 음악적 경험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많은 것이 쌓였죠. 기쁨, 어려움, 무거움들도 당연히 쌓였는데, 그런 것들을 승화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저에게 돌아온다, 그러면 다시 쌓이고, 일종의 순환이라고 할까요? 지금, 30년, 10년이라는 시간이 순환을 떠올리기에 아주 좋은 시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볼 때, ‘아, 이제 다시 시작하는구나, 또 다시 향하고 싶다’는 생각이죠. 몇 바퀴인지는 모르지만 좀 돌았으니, 다시 어딘가를 향해서 그곳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것. 그것에 대한 설레임이 있어요. 다음의 첫 단계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아주 새로운 느낌이에요. 어렵겠지만, 가보자, 했죠(웃음).
그런 것도 있죠(웃음). 재미 없잖아요. 어렵다기 보다는, 음, 역시 설레임이지 않을까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일어날 지도 모르고, 상상하지 못했던 음악가와 만날 수도 있고.
그렇죠(웃음). 역시 서양 음악이 기본이 되고 있고, 그 부분이 전통 악기 연주하는 분들에게 아주 부담이 되요. 간단한 예로 전통 악기는 음정이 낮고 서양 악기는 높죠. 그런데 작업을 할 때는 그런 부분을 알면서 인정을 하고, “그런 것이라도 재밌다, 해 보겠다” 그런 분들과 같이 하는 거죠.
연주 뿐 아니라 작곡, 음반 프로듀싱 등 대부분의 작업을 맡고 계십니다. 작업 시 동료들은 양방언씨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모르겠어요, 좀 집요하다?(웃음) 자기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고집은 크죠. 왜냐하면 왜 자기가 거기까지 하는가를 생각했을 때 역시 만족감이라는 점이 있어요. 다른 사람과 함께 했을 때 완성도가 높아지는 측면도 당연히 있지만, 다른 사람이 들어옴으로써 자기가 목표하는 데 도달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경험이나 다른 기술, 지식이 내 안에 있으면 목표에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는 거죠. 다시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고, 또 다른 시각으로 음악을 볼 수 있어요.
음악 연주나 편곡이 아닌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음악을 볼 수 있다는 건, 완성된 작품으로서 음악을 생각할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제가 다른 엔지니어와 일을 할 때에도 그 작업의 방식을 알고 있으면 아주 쉽게 진행이 될 수 있고요. 과정이 힘들기는 하더라도 마지막에 도달하는 단계, 그 과정에 진화가 있다는 점이 아주 좋아요.
그럼요.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바꾸고(그는 제주도가 고향인 아버지와 신의주가 고양인 어머니를 두고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8년에 처음 한국에 왔어요. 그 다음 해 문화일보홀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당시에는 우리말을 지금보다 훨씬 못해서 연주하는 것 보다 연주 후 멘트 하는 게 너무 걱정이었어요(웃음). 그런데 그 때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따뜻했어요. 우리말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와주시고, 역시 계속 한국에서 더 많이 활동하고 싶다, 그런 느낌 들었죠.
누님이 정말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어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하셨죠. 그 누님이 동생한테도 피아노를 치게 하자고 한 거죠. 그런데 솔직히 전 부담스러웠어요. 남자가 피아노를 치는 게 당시엔 부끄러웠거든요. 친구들하고 야구를 하거나 그러고 싶었죠. 그런데 계속은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계속 했던 게 결과적으로는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반반?(웃음) 반항도 했는데 뭔가 본능적으로 밸런스(균형)를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너무 한쪽으로 가 버리면 안 좋지 않을까,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폭소). 바로 음대에 가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서의 상황은 의대에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이었죠(의사인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그의 형제들은 모두 의대나 약대에 진학했다). 음대 갈 가능성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일단 그 말을 따라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서 당시 대학생들과 하던 밴드도 그만 두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죠. 하지만 의대에 들어가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웃음)’ 그러고.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위한 밸런스랄까.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이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웃음).
아주 많은 도전을 하고 싶어요. 지금도 언제나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갑자기 다양한 걸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겠죠. 또 그런 것들 중에 순서라는 것도 있어야 하잖아요. 제 안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 마음 속으로 ‘이것이다, 이것으로 간다’가 정해진 후에는 진행은 아주 빨라요, 너무 빨라요.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좀 많이 생각을 하죠. 개인적으로 그 과정이 가장 재밌어요. 혼자 스튜디오 안에서 이야기 하고, 웃고 있어요(웃음).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도 흥미롭고, 또 발레 작업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서로 잘 맞는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서로 매력을 느끼고 자극이 되는 작품에 참여를 해야 마무리도 잘 할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겠죠.
있어요. 지금까지는 14년간 영국에서 녹음 작업을 주로 했는데, 그것과는 좀 다른 형식으로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좀 클래식적인 측면에서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하늘의 뜻을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폭소) 역시 음악, 음악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20대에, 특히 가출을 하고 음악을 시작했을 때 50대가 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많이 생각했었어요. 과연 음악을 계속 하고 있을까, 하고요. 하늘의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큰 뜻이 있는 느낌은 들어요. 이 길로 간다, 향한다, 날아가고 싶다, 새로운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느낌이요.
활동 초기의 곡들도 연주하고, 새 음반에 실린 곡들도 당연히 연주하고요. 아시는 예술가분이 협력 해 주시기도 할 예정이에요. 곡 리스트는 공연장에서(웃음). 제 개인적인 기준이라고 할까? 공연에서 다음 곡이 무엇인지 알면서 듣는 것과 모르고 듣는 건 느낌이 다르죠. 서로를 위한 설레임이랄까요. 이번 연주회 역시 추억에 남는 무대가 될 것 같아요. 여러분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또 음악에게도 또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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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님 2009.11.30
양방언씨의 넘치는 상상력~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