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 5PM> 복서가 된 배우 오달수

왜소한 몸, 그에 비해 너무 커다란 머리가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부풀리지 않는 연기에 천성적인 코믹 요소를 가진 주시할 만한 배우.

언젠가 그가 출연한 연극을 보고 난 후 쓴 메모를 들춰본다. 꼭 이 작품만이 아니더라도 무대 위에서, 스크린에서 오달수의 존재를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장면에 출연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 한 장면이라도 ‘오달수의 힘’으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7년 전 그 작품에 다시 오달수가 선다.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놓아 버리기에도 어정쩡한 시간, 그런 어정쩡한 인생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연극 <먼데이 5PM> 연습에 한창인 오달수를 만났다. 역시 새로운 영화도 찍고 있다는 그와 어울리게, 무얼 시작해도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을 수요일 한 낮에 말이다.

지워지지 않는 ‘내 향기’ 있을 것

명품조연, 감초배우, 연기파 배우, 오달수를 수식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코믹, 이쪽으로도 많이 부르기도 하고, 다작 배우?(웃음). 일이니까, 제 업이니까, 일단 그것에 대해 말들이 많으면, 이슈가 되는 건 좋죠. 참 기분이 좋았던 적은 예전에 <405호 아줌마는 참 착하시다>라는 연극에서 50대 경비원 역을 90대로 바꿔서 해 봤어요. 다른 분들은 거의 퇴장 없이 2시간을 무대에서 하셨는데 전 딱 한 장면 나왔거든요. 근데 많이 기억해 주시고, 커튼콜 때 박수도 제일 많이 받고, 분장실에서 구박 많이 받기도 했죠(웃음).

악역을 하실 때도 보면 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아직 그런 작품을 못 만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악이라는 건 없습니다. 어떤 악한이라도 자기 연민이든, 남들이 봤을 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든 연민이 있는 거죠. 또 연기라는 게 연기의 질도 중요하고 다 좋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향기, 그 사람이 버리지 못하는, 지워지지 않는 향기라는 게 있거든요. 그 사람만의 향기, 독특함. 뭐, 그런 것들이 좀 풍겨지지 않았을까. 악역을 해도 감독님들이 “뭐, 됐다, 그러면 됐다, 그러시고”(웃음)

물론 제 안에 악한 모습도 있고 선한 모습도 있겠죠. 그러나 선한 모습이 더 많지 않나?(웃음) 제가 함부로 농담 안하고, 말할 때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그래서 아마 그런 이미지를 받으시는 것 같아요.

말을 쉽게 하는 편은 아니시라고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1년이 넘었는데, 제가 30대 중반쯤인가, 세배를 드렸는데 그 때 “말을 더듬어라” 그런 덕담을 해 주시더라고요.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정치인들만 봐도 “아, 그, 저, 또..” 그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엄청난 생각이 깔리잖아요.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게 아닐까. 그 때 말씀을 가슴에 새겼었죠.

<먼데이 5PM>을 비롯해 연극 <코끼리와 나> 등 작가들이 오달수를 배역으로 생각하고 작품을 쓴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작가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웃음). 같이 생활해 봐서인지 딱히 연기 안 해도 되게끔 써 주는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가령 미친 역할도 어렵지 않게 연기할 수 있다는 그런 신뢰?(웃음)

3류라도 좋다, 주변부 인생의 행복에 대해

7년 만에 <먼데이 5PM>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요?
올해 극단(오달수가 상임 대표로 있는 신기루 만화경) 운영위원회에서 뭘 할까, 얘기를 하다가 이해제씨가 이 작품에 욕심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초연(2002년) 때 연출가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다시 하기로 했죠.

어떤 면에서 욕심이 났던 걸까요?
초연 당시에는 밑바닥, 주변부 인생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그 막차 격이 이 작품이었죠. 해제씨는 그런 느낌을 좀 더 지금에 맞게 세련되게 구성해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연극적으로, 좀 더 미학적으로. 또 해제씨가 글을 쓰니까, 각색한 부분이나 독백 부분을 보면 좋은 대사들이 참 많습니다. 결말이나 큰 변화는 없지만 많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가 해석 할 때 행복이라는 부분을 놓치고 갔거든요. 구질구질한 우리 일상, 그런 것에 빠졌다고나 할까요? ‘인생이 왜 이렇지?’하고 가는 때와 ‘가장 행복한 한 순간에 죽는 구나’ 이런 마음으로 가는 것과 분명히 다르고, 그런 면에서 울림이 좀 더 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표현은 같을지라도 행복이라는 부분을 인식하고 했을 때 묻어나는 늬앙스는 다르거든요. 좀 더 뭉클하다,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대부분이 더블 캐스트네요. ‘스타’가 되셔서 인가요?(웃음)
그건 전혀 아니고(웃음) 좀 버글버글하게, 극단 식구들이 총 출동해서 축제 형식으로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더블 개념이 아니라 두 개로 팀을 꾸려서 하자, 그런 거죠.


그냥 합니다, 그냥 버티는 거죠.

영화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도 많아졌습니다. 생활의 변화가 있나요? 물질적인 부분 외에는 큰 변화는 아마 없을 겁니다. 연기자는 연기자니까. 연극을 하든 영화를 하든 뭘 하든지 연기자는 연기만 하면 되니까요.

열정으로 시작해도 물질적인 부분 때문에 일을 이어나가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우리가 그네들의 밥을 책임져 주지 못하면서 그 사람들이 꼭 필요한 양식을 얻겠다는 데에 비난을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고, 그들의 선택과 자유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좀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을 때에는 잠깐 와서, 연극을 위해서라도, 연극무대에 와 주면 좋죠, 감사한 거죠. 그래서 연극 배우들이 대중에게 자꾸만 알려져야 된다는 거에요. 참 이런 부분이 조심스런 부분이긴 해요.

1989년에 연극을 시작하고 2000년대 영화를 찍기 전까지 약 10년을 두고 “버티는 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버팀에 가장 컸던 힘과 장애물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큰 힘은 중독성이죠. 나이 서른 먹어서도 엄마한테 만원 짜리 한 장 받더라도, 그 (연기, 무대의) 중독성은 버리지 못할 것 같고. 그게 제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생활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관두겠다는 생각을 왜 안 해 봤겠습니까. 배운 게 이것 밖에 없으니까, 고등학교 졸업하자 마자 아르바이트 식으로 하다 바로 연극을 했으니 20대, 30대를 고스란히 바쳤고, 다른 걸 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나는 거죠. 그냥 연극을 하는 게 가장 안전빵이었어요,안전빵(웃음).

장애라는 것은, 버티지 못하게 하는, 자기 고민이 가장 큰 유혹입니다. 정말 현명한 사람은 ‘아, 내가 배우를 계속해서 되겠다, 안 되겠다’를 빨리 알 수 있는 사람이죠.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감이 턱 생길 때가 있거든요. 거만이나 자만이 아닌, 스스로 배우라는 자긍심을 가질 때가 옵니다. 그런 순간이 분명히 오는 데 그걸 못 버티는 거죠.

배우를 해야겠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얻으셨나요.
그냥 하는 거에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게 진짜 무서운 말이거든요. 어마어마한 말이죠.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도 이건 설명할 수 없어요. 나이 지긋하신 선배들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했을 때, “그냥 해라” 그 말이 이제 조금 이해가 될랑 말랑해요.

신뢰, 철저히 신뢰.

올해로 마흔 둘(1968년 생), 인생의 반을 배우로 살아오셨네요.
아, 그렇네요. 저는 아직까지 감히 배우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하거든요. 근데 언젠가 이윤택 선생님이 희곡 전집을 내신 후에 저희 집으로 보내주셨어요. 그 앞에 싸인 해 주시고 ‘배우 오달수에게’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이윤택 선생님이야 말로, 대한민국에서 배우라는 칭호를 붙이는데 가장 까다로우신 분인데. 그 글을 보고, ‘아, 내가 배우인가?’ 기분이 묘했어요. 물론 어디 화환 보낼 때는 배우라고 하지만(웃음). 스스로는,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하죠. 제가 콤플렉스 많죠, 사투리도 못 고쳤죠, 발음도 안 좋거든요. 이렇게 문제 많은 배우도 아마 드물 겁니다(웃음).

‘신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십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 작품에 대한 신뢰,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두시나요?
사람이죠. 철저하게 사람이죠. 제가 무당은 아니지만, 그 사람하고 며칠만 지내보면 이 사람이 어떤 인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만큼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 없거든요. 관객들만 봐도 그렇죠. 또 작가가 배우를 믿듯, 배우들도 연출에게 전폭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작품이 됩니다, 내 스타일이든 아니든 간에. 무조건 일단 믿고 따라가보는 거죠.

어느 인터뷰에서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잘 안 되는 부분인데. 이제는 제가 좋은 아빠가 되는 게 아니라 걔가 좋은 딸이 되어주고 있다는 거죠. 아들이라면 좀 빗나가도 전 때려서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빗나가면 도리여 반갑고(웃음). 왜냐면 세상을 좀 더 남자답게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좀 엇나가도 반드시 돌아오거든요. 그런 부분이 젤 두렵습니다. 지금은 참 착한 딸이고 좋은 데 사춘기나 이런 것들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참 고민입니다.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분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이번 작품은, 주변부를 맴도는 3류 복서 이야기이지만, 그리고 노래방 도우미를 나가는 여자와 군대에서 소대장한테 열 받아서 나오는 인간이지만, 어떻게 보면 바닥 인생들의 이야기지만, 가족이 있고, 내가 사모하는 여자가 있고, 형제애도 있고 추억도 있고, 또 복싱하는 행복도 있고, 잔잔한 감동을 받아갈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작품은 어떤 작품이든 감동이 있어야 하거든요. 웃기든 뭘 하든 감동이 없으면 그 작품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신혜(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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