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별일 없었는지> 연출가, 장기하 ‘별일 많은 청춘’

원룸 구석에 앉아 음악이 담긴 CD를 구워내고, 포장을 했다. 가끔씩은 음반 가게에 직접 배달을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장기하’를 맡고 있는 이 남자의 얼굴은 한국 인디 음악의 마스코트가 됐다. ‘인디계의 서태지’, ‘장교주’라는 그럴싸한 별명도 생겼다. 독야청청,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앨범을 만들던 그에게 소속사도 생겼다. 수 많은 변화를 선물해준 1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단독공연 <정말, 별일 없었는지>를 앞두고 있는 장기하, 요즘 별일 없이 지내고 있을까?

연출가 장기하 _ “바빠요”
지난 9월, 남산예술센터 2009 시즌프로그램 기자간담회장에서 만난 장기하는 11월 드라마콘서트를 통해 ‘연출가 장기하’의 등장에 대한 운을 띄었었다. 11월, 드라마콘서트 <정말, 별일 없었는지>의 공연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 요즘, 그의 근황은 한 마디로 “바쁘다”이다.

“전에는 요즘 어떠냐, 바쁘냐고 묻는 질문에 항상 ‘바쁘지 않다’고 대답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정말 바빠요. 저희 멤버 여섯 명에, 코러스 네 명, 건반 한 명, 기타 한 명.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뮤지션만 열 두 명이거든요. 열 두 명이 매일같이 모일 순 없어서 코러스, 연주자가 따로 만나서 연습했던 부분을 합치는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저는 총감독이라, 그 작업에 다 참여해야 하니까 하루가 짧죠. 그리고 배우들, 공동연출하고 있는 연출님, 무대감독님, 영상감독님과의 회의도 진행해야 되고요.”

코알라 혹은 나무늘보 같은 여유만만 느낌을 가진 장기하 입에서 바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일이 빠르게 성사되고 있는 모양이다. 연출자 장기하의 도전이 어렵진 않을까?

“어떤 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쭉 연출가 장기하였다고 생각해요.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이후로, 제 머릿속에 담아냈던 일들을 꾸며왔거든요. 곡 순서에 따른 구체적인 흐름을 상상하고, 거기에 맞게 멘트, 퍼포먼스를 생각했어요. 제가 쓴 시나리오에 따라서, 작업을 꾸려온 거죠. 이번에 최초로, 제가 한꺼번에 다룰 수 없는 분량의 시나리오가 나온 거에요. 무대, 영상, 연기 등 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라서 공동작업이 많아요. 의견조율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고 있어요.”


장기하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혼자 보기 아깝다”는 말에 공감할 것이다. 랩보다는 느리다, 그냥 웅얼거림인가 싶어서 잘 들어보면 판소리인가 싶다. 가만히 듣다보니 또 그 가사가 일품이다. 미미언니들과 함께 선보이는 율동에 가까운 몸놀림을 보고, 실소가 시작된 관객석은 한바탕 웃음으로 번지기 일쑤다. 콘서트만 해도 충분한 볼거리를 가진 얼굴들이거늘, 드라마까지 얹어낸 이유는 뭘까?

“작년에, 40명 정도의 관객을 두고 드라마 형식의 소규모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장기하네 방에 놀러 온 컨셉 이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좋은 기억이 남아서, ‘정말 연극 같은 무대를 음악가들하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거든요. 단독공연을 꼭 하고 1집 활동을 마무리해야겠다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던 찰나에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을 하자는 제의가 왔어요. 극 형식의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콘서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딱 맞아 떨어져서 드라마 콘서트 형식의 공연을 준비하게 됐죠.”


싸구려 커피 _ “우울하고, 허한.  나의 20대”
1년 6개월 사이,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어요. 좋은 점은, 음악 외에는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 걸 하지 않고 음악만 해도 된다는 점이죠. 안 좋은 건, 제가 원하는 상황보다 바쁜 일들이 많다는 거요.”

“장기하는 커피도 별로 안 좋아하고, 자취방에 살아본 적도 없는 강남구민이라며! 그런데 어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는 표현을 할 수가 있어?” 장기하를 향한 분노인지 원망인지 모를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봤다.

“‘싸구려 커피’를 물리적인 빈곤과 연관시켜서 생각해보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배신감이 들었다고 하셔도 제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 20대에는 실제로 그런 날들이 많았어요. 우울하고, 허한 기분.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이 있는 건 아닌데 이런 기분이 주기적으로 찾아와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지금까지 해온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만든 노래에요.”

HOT와 젝스키스에 열광했던 학창시절을 지나 카라, 소녀시대에 열광하고 있는 1982년생 또래들 치고는 지긋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많은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잘 안 듣는데(웃음). 중학교 때는 ‘패닉’ 팬이었어요. 패닉 1,2집은 지금도 가끔씩 꺼내서 들을 정도로 좋아해요. 아, 아까 가수활동의 장점 중에 한 가지 빼먹은 게 있어요, 매체나 음반을 통해서 만났던 분들과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거요. (이)적이형 하고는 공연 끝나면 뒤풀이도 하고, 가끔 만나기도 해요.”

“느리게 걷자” _ 치열한. 나의 20대”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를 외치는 장기하지만, 따지고 보면 여느 누구보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있다. 단, 음악에 있어서.

“원래는 최고의 프로 드러머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당시에 저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하루에 8시간씩 연습해야 프로가 된다”는 말을 해주셔서 정말 ‘8’이라는 숫자를 머리에 넣고 꼬박 8시간씩 연습했어요. 치열하게는 했어도, 일을 빠르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 군대(공군)에 있을 때는 잠깐 빨라졌었죠(웃음). 고참이 되면 저도 빨리빨리 하라고 시켜야 했으니까. 천성적으로 일을 빨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군대에서나 발동이 걸렸던 장기하의 숨겨진 ‘빨리빨리’ 본성이 조금씩 발동이 걸리고 있는 요즘이다. “이번 공연은, 할 일이 많아서 정말 힘들어요. 그렇지만, 정말 잘하고 싶거든요. 지금 한 달을 밀도 있게 살지 못하면 나중에 정말 후회할 것 같아서 속도를 내고 있어요.”

2집 이야기를 꺼내봤다.
“모든 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말 만들고 싶을 때 만들면 가장 좋은 게 나오지 않을까요? 2집이 나오는 시기도 인위적으로 “언제까지 냅니다”라고 약속할 수 없어요. 기약 없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길 기다리고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더 빨리 나올 것 같기도 해요(웃음).”


따지고 보면 오늘은 그가 말하는 ‘생각보다 바쁜’ 안 좋은 상황 중 하나였다. 리허설과 공연 사이, 짬을 내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 상황. 미술관 한 켠,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사진 포즈도 잡아야 했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인터뷰도 해야했다.

성실한 대답과 태도. 인터뷰이로는 100점이었지만, 팬심으로 돌아가 바라보자니 장기하의 모범적인 모습에 또 다른 맛의 배신감이 느껴져 “의외로 잘 따르시네요”라는 깨방정 어린 질문을 던졌다. “피곤하잖아요, 서로”라는 답이 돌아온다. 시니컬한 기운에 묻어나는 솔직함. 그래, 이런 매력이 있어야 장기하지, 바로 이 맛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매력지수가 실린, 달이 차오르고 있다. 가자!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 (club.cyworld.com/docuherb)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댓글15

  • A** 2009.11.13

    은근 중독성 있는 매력있는 밴드!!! 언제나 공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진지한 얼굴의 장교주님 너무 좋아요! 공연 화이팅! 보러갈게요~

  • A** 2009.11.12

    쌈지 숨은고수 오디션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을 처음 만났어요. 전 다른팀을 응원갔다가 완전히 이 정체모를 밴드한테 반하게 되었어요. ㅎㅎ 랩인지 중얼거림인지,, 듣다보면 송창식님 스타일같기도 하고 참 묘한 매력이 있어요. 유명세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을 계속 해나가셨으면 좋겠어요. 티비보다는 홍대 공연장에서 봐야지 더 멋있는거 아시죠~

  • A** 2009.11.12

    정말 묘한노래로 사랑받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 들으면들을수록 끌리는 노래 ^^ 공연 준비 잘하시고요 좋은공연 부탁드립니다.. 목요일마다 이문세라디오에서도 잘듣고있어요 ㅋ 화이팅~!!

더보기(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