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는 원시인> 1인극에 도전하는 공형진

라디오 스케줄을 마치고 대학로 연습실로 들어오는 공형진의 손에는 패스트푸드 봉투가 들려있었다. 그는 간단한 점심으로 허기를 채우며 인터뷰를 함께 해나갔다. 곧 연습에 들어가니 따로 할 시간은 없었다. 팍팍한 스케줄과 코 앞까지 다가온 개막일 때문에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두터운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책 한 권을 모두 외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1인극 대본. 드라마, 영화, 케이블TV 촬영장에서도 틈틈이 외우고 또 외운다. 그 말대로 ‘스케줄이 이렇게까지 몰린 건 처음’이라지만, 그는 1인극 <내 남자는 원시인>이라는 가파른 언덕을 다시 넘어가고 있었다. 영화 드라마 라디오를 넘나드는 데뷔 20년 차 배우의 모습이다.

엄청난 대사량, 살인적인 스케줄 "나를 시험하는 무대"

드라마 <추노>, 라디오 <공형진의 씨네타운>, 케이블 토크쇼 <택시> 여기에 한 매체 칼럼도 연재한다.
드라마와 영화가 조금씩 늦춰져서 몰렸다. 나도 이렇게까지 몰린 건 처음이다. 한 번에 두 작품을 찍어 봤지만 그때는 데일리 스케줄이 없었다. 이번엔 라디오를 매번 진행하니… 칼럼은 손으로 직접 쓴다. 컴맹이기 때문이다.

무리하는 건 아닌가.
사실 맞다. 제일 무리가 되는 건 스케줄인데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순 없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냈건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다. 국내 초연이고, 많은 관객을 만나고도 싶었다. 내가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지 스스로 보고 싶기도 했다. 이걸 해냈을 때 좋은 역량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걸 보실 수 있을 거다. 내 생각엔 잘 될 것 같은데, 모르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내 남자는 원시인>에서 ‘형진’ 역할이다.  어떤 캐릭터인가.
현대 남자들의 평균치? 조금은 피터팬 신드롬이 있기도 하지만 절대 특별하지 않은, 우리 주위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남자다. 남자로 사는 게 좋다는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남성우월주의 그런 건 아니고.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1인극으로 남녀의 차이에 대해 스탠드업 코미디로 토크쇼처럼 풀어나간다고 알고 있다.
정확하다.

어떻게 진행되나.
모노 드라마는 관객의 호응은 배제하고 스토리 라인을 따라간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되지만, 대신 대사를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이 안 날 때는 정말 연극 막 내려야 한다. 관객의 반응을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편안할 듯 하지만 배우는 사실 힘들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니까.

엄청난 대사량이 관건 같다.
아마 우리나라 최고일 거다. 한 시간 반동안 1초도 쉬지 않는다. 인터미션도 없고. 계속 이야기를 한다. 한번 보라. 이게 대본이다. (두꺼운 대본에 그의 대사만 빡빡하게 적혀있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한 권이 모두 대사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연습을 위해 조연출과 숙식을 함께 한다고 들었다.
조연출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촬영장도 같이 가서 대본을 숙지하게끔 해준다. 디테일도 잡아주고. 1인극의 장점이 나만 있으면 연습이 가능하단 것이다(웃음).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어제는 집에 들어가자 마자 가방도 풀지 않고 쓰러져 잤다. 너무 힘들어서. 체력이 뛰어난 편인데도 어제는 때려 죽여도 대본을 못 보겠더라.

클레오파트라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무대다. 무대 욕심이라고 봐야 하나.
내 직업은 배우이고, 배우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장르는 연극이다. 연극은 배우 예술이고 영화는 감독예술이다. 뮤지컬은 하고 싶어도 능력이 안 따라 주면 못하는 장르다. 기존의 뮤지컬 배우들보다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해낼 수 있는 부분에선 분명히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영화연기는 내가 톱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영화연기는 나 밖에 못하고 충분히 공형진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 것이고. 연극도 마찬가지다. 연극 전공을 했고 연극 무대에 향수를 가지고 있다. 배우라면 연극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존재다. 좋은 연출과 좋은 기획사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더할 수 없이 행복한 작업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욕심을 낼 수 밖에 없다.

남자와 여자, 원시시대부터 달랐을걸?

지금 행복하게 작업 중인가.
행복하다. 그런데 부담은 된다. 사실 쉽게 접근한 것도 있었다. 자신 있게, 내가 하는 것이니, 호기있게 내가 해야겠다고. 연극은 시간 싸움 같다.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는가에 따라 공연의 질이 달라진다. 그 부분들이 핸디캡이자 딜레마다.

배우 공형진하면 코믹한 연기와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번 무대에서도 코믹한 역랑이 발휘되나.
난 코믹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에 대해 부인은 안 하지만 거기에 대한 감각도 없다. 개그맨이 아니니까. 극 중에서 화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다. 유독 코믹한 이미지가 남았다면 내가 더 즐겼을 거란 생각은 있다. 이 작품에서 그 부분을 기대 하는 분들은 기대해도 된다. 다른 부분을 원하는 분도 원하면 된다. 나를 보면서 즐거워하기 보다 작품 속 이야기 때문에 즐거워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남녀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스스로도 남녀는 선천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나.
지극히. 나는 평소 남아선호사상, 남존여비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여자들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으면 했지. 그러나 구조적으로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 때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들어 놨다고 생각한다. 남녀는 같아질 수 없고 달라져야 한다. 여자도 힘쓸 수 있고 남자도 커피 탈 수 있다. 하지만 해서 더 어울리고 잘 하는 일들이 있다. 보기에 어울린 다는 것이다. 저변이 다르니까 의식과 구조도 다른 것이다. 그것에 대해 상세하게 푼 예가 우리 작품의 큰 줄기다.

제목에 ‘원시인’이 들어간다. 왜 원시인인가.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 남자는 왜 만날 여자들에게 웬수 취급을 받을까. 물론 그렇지 않은 완벽한 남자들도 있겠지만 대동소이하게 그렇지 않나. 언제부터 이랬을까. 지금보다 훨씬 더 예전 남자들의 생활상도 이랬을까. 알고 봤더니 원시시대 남자들도 그랬다는 것이다.

곧 개막을 앞두고 있다. 1인극으로 극 전체를 혼자 이끌어 가는데, 최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 적 있나.
최고의 상황은 대사를 한번도 잊지 않고 하는 거다. 최악의 상황은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관객들과 눈은 마주 치고 있는데도 대사를 못하는 경우다. 하지만 신인과 다르게 어떻게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내 남자는 원시인>는 어떤 재미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나도 저런 모습이구나,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기혼이든, 미혼이든. 결국 남자는 여자를 만나야 하거든. 특정 소수를 제외하면 말이다. 남녀 관계의 소통해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남자가 나와는 다른 종족이라는 걸 얼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
오셔서 쟤 어떻게 하는지 봐야지, 그런 마음보단 나와 함께 즐기셨으면 좋겠다. 내가 버벅거리거나 막히면 힘도 좀 주시고, 이런 경우는 어떠냐고 제의해 주셔도 된다(웃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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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 2009.12.03

    쉽지 않은 도전일텐데, 용기있게 도전하는 모습이 좋네요. 꼭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