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만의 무대, <엄마를 부탁해> 정혜선

“여기까지 와준 분들이 너무 고마워서 공연이 끝나면 밖에 나가서 일일이 악수하고 싶어.”
환한 미소로 관객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싶다는 배우는, 브라운관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보이는 연기자 정혜선씨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무대로 옮긴 연극 <엄마를 부탁해>에서 그는 자식들에게 헌신하는 또 한 명의 어머니 상을 깊은 연륜으로 매일 소화해 내고 있다. 덕분에 이 공연은 매진을 이어가며 객석에선 눈물 훔치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연기하면서 관객 반응이 바로 바로 전달돼요. 조금만 숨소리가 ‘하’ 이러면 바로 힘이 돼. 그런데 어떨 때는 반응이 별로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런 날에는 더 끄집어 내려고 애쓰고. 웃는 장면 있잖아, 그런 장면에서는 더 웃음을 끌어 내려고 또 애쓰고”

수많은 캐릭터를 소화한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17년 만에 도전하는 연극, 게다가 등장과 퇴장의 반복하는 연극 무대가 힘들지 않을 수 없을 것. 소설보다 비중이 커진 엄마의 역할 때문에 대사 걱정도 빼 놓을 수 없는 관문이었다.
“걱정 많이 했는데,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까 내 것이 됐어요. 그래도 엄마 대사가 늘 비슷하잖아. ‘내가 널 괜히 보냈다’ ‘오빠가 어떤 오빤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았냐’ 이게 헛갈리는 거에요. 참 걱정 많이 했는데 지금까지 크게 실수 하진 않았지.”

정혜선씨의 소박하고 정감 있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네 엄마를 그대 옮겨 놓은 것처럼 친근하다. 오랜 시간 브라운관에서 엄마를 그려온 내공도 있지만 그 역시 자신의 ‘엄마’와 ‘아들, 딸’을 연상시키며 연기한다.

“극 중 그러잖아요. ‘엄마 김치 이런 거 보내지 마. 귀찮아 죽겠어’. 우리 애들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지만 ‘아휴 엄마 그런 건 안 먹어도 돼’ 이러기도 하거든. 연기할 때 이런 것들을 순간적으로 떠올려요. 극 중 아들 이야기 할 때는 실제로 미국에 있는 아들을 떠올리지. 아들도 보고 싶고, 손주도 보고 싶으니까.”

“맡고 싶은 역할? 다 해 봐서 이젠 없어”

원캐스팅으로 매일 저녁 무대에서 체력과 감정 소모가 심한 연기를 하기 때문에 “이 힘든 걸 왜 나한테 해보자고 했을까” 원망 한 적도 있다고. 하지만 역시 현장감을 그때 그때 느낄 수 있는 연극 무대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지금 백성희 선생님이 말씀하세요. ‘너 이런 역할을 평생에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만날 수 없으니 즐겁게 하라’고. 돌이켜 보면 이런 역할을 누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반응이 좋으니까 즐겁게 하고 있지.”

 

그래도 “관객이 얼마나 올까” 걱정해 “컴퓨터 하는 친구들에게 오늘을 몇 석이나 비었나”며 매일 체크한다고. 무대가 주는 긴장감은 십 수년 전, 연극 <햄릿>, 뮤지컬 <사운드오브뮤직>에 출연할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엔 명동국립극장에서 했잖아. 그때는 의자 시트가 빨갛지 않고 하얀색이었어요. 우리가 막 뒤에서 관객이 얼마나 들어왔나 훔쳐보곤 했는데, 정말 하얀 교복의 여학생들이 잔뜩 있다고 생각했었다니까(웃음). 지금은 그걸 내다볼 틈도 없이 다 매진됐다고 하니 흥이 저절로 나죠.”

1961년 KBS 공채 탤런트 1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정혜선씨는 내년에 데뷔 50주년을 맞는다. 반 백 년 간 쉴 틈 없이 TV와 영화, 무대를 오가며 지금은 친근한 전국민의 엄마로 활발히 활동 중인 그에게 다른 캐릭터 욕심은 없냐고 묻자 “다 해봤다”며 손사래를 친다.

“이제 맡고 싶은 역할이 없지. 다 해봤어요. 60년 대에 영화 ‘무녀도’에선 무당도 해보고, 저쪽 대왕대비부터 멋진 사장님, 첩보원까지. 브라운관에서는 젊어서부터 노인 역할을 했어요. 그때 분장한 사진을 보면 정말 딱 노인네 같아. 딱 할머니야(웃음). 그걸 다 소화해 낸 거지. 드라마에서 유독 어머니 역할을 많이 했지만 안 해본 게 없어.”

수 없는 캐릭터를 만나고 연기해 내는 동안 ‘연기’가 좀 더 쉬워졌을까, 어려워졌을까 궁금했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절대”를 말한다.
“절대, 하면 할수록… 대본을 받을 때 마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연구해요. 어떻게 변신할까가 가장 큰 고민이지. 늘 같은 연기를 보여줄 순 없으니까.”

얼마 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무대에 올랐지만 “무대에 올라가니까 다 괜찮아 지더라”며 환하게 웃는 그에게서 18살 소녀 같은 순수함이 묻어 나온다. <엄마를 부탁해>를 함께 하는 연기자들이 모두 다 내 자식 같아서 무엇이든 싸다가 먹이고 싶다는 말에서는 우리네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파서 응급실에 모셔다 놓고도 대사를 외우고 연기를 했다”는 그는 누구보다 배우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배우 정혜선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그저 관객들에게 고마워. 직접 와서 박수도 쳐주고, 먼 길 와 주고. 어렸을 땐 고마움을 몰랐지만, 내가 나이가 드니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웃음). 앞으로 한 달 남았나? 계속 열심히 할거에요.많이들 와주세요.”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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