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와타나베> 전방위 연출가 장항준
작성일2010.04.14
조회수12,768
300원짜리 라이터 하나를 찾기 위해 조직 폭력배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분위기 파악 못하는 백수의 모습을 보고 터지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에서 기발한 발상, 찰진 말 맛을 거침없이 발사하던 총 감독이 장항준 임을 알고 난 후 ‘박봉곤 가출사건’, ‘북경반점’, ‘불어라 봄바람’, ‘귀신이 산다’ 등 그가 각본을 쓰거나 총 지휘를 한 영화들을 통해 전혀 새롭고 유일한 그만의 위트를 발견하는 건 관객으로서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작가이자 영화 감독으로, 때론 배꼽 잡는 캐릭터의 배우로, 전방위 활동 중인 장항준. 그의 첫 연극을 앞둔 관객들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장항준의 활약을 다시 기대해도 좋을까?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이하 사나이 와타나베)를 막 무대에 올린 그는, 부르튼 한쪽 입술을 옴짝거리며 “영화보다 연극이 감독한텐 훨씬 어렵다”고 토로했다.
사나이, 와타나베, 삐지다
3류 영화감독이 한국계 일본 야쿠자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사나이 와타나베>에는 남자들만 나온다. 피 비린내 나는 복수의 핵, 야쿠자와 예술을 사랑하는 열혈 감독 사이에 ‘삐지는’ 무언가가 있단다. 잘 나가다 ‘어랏!’하는 그곳에서 장항준만의 위트는 빛을 발한다.
“남자들이 다 컬러가 달라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굉장히 다른 남자들의 극단적인 모습이죠. 주인에 대해서 복종하는 걸 긍지로 평생을 살아온 아주 소극적인 남자(멀티맨),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인간(와타나베), 그리고 그런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을 경멸하고 상업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아주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는, 순수한 예술의 열정을 가진 사람(만춘), 이 사나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장항준 연출은 ‘삐진다’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다시 내린다.
“인생의 1/3은 누군가에게 삐쳐서 산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화가 났다, 기분 나쁘다 등으로 표현하는데, 실은 삐친 거죠. 예를 들어 동창회에 나갔는데 누가 “그 친구는 어때?”하고 물어봤을 때, “몰라, 걔 얘기 하지마”, 그럼 삐친 거에요.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나, 하면 거의 없거든요. 그런 것들이 어쩌면 인간관계에 있어 재미있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누가 누구에게 삐치고, 또 풀리고, 또 삐치고 하는 거요.”
기회는 올 때 잡는 것
고교시절 자신의 길을 ‘영화’로 결심한 청년이었지만, 장항준 연출에게 연극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른 애들은 학교 입학 전부터 연극연출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내가 한다고 고집 피우는 건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 결론 내린 그가, 서울예대 연극과 재학시절 연극 연출 지원자 모집 당시 번쩍 들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 정원수를 채워주는 희생정신(?) 발휘 후 우연히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항상 희곡과 무대에 가까이 있어 친근했기 때문이다.
“연극을 해 보자는 제의에 오래 생각 안 했어요. 연극이라는 장르를 전혀 몰랐으면 안했을텐데, ‘그래, 어찌 보면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아이템도 하나 있었거든요. 동숭의 홍기유 대표와 대학 동기라 연극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마침 이번 시리즈 제의가 와서 잘됐다, 한 거죠.”
영화 감독들이 연극 연출가로 나선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의 세 번째 주인공인 장항준은 “하고도 싶었고, 할 이야기도 있었는데, 마침 기회도 닿았다”며 절호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기회라는 자의 머리는 뒷머리가 없다고 하잖아요. 왔을 때 앞머리를 잡아야지, 뒤에 머리카락이 없어서 잡을 수 없다고요. 준비하고 있는 자 만이 잡을 수 있는 거죠.”
영화감독 만춘 역의 최필립(왼쪽), 멀티맨 역의 김C(오른쪽)
1인 다역의 멀티맨을 비롯하여, 등장 배역이 모두 더블, 혹은 트리플 캐스팅이다. 한 역에 너무나 다른 개성의 배우들이 뭉친 것에 대해 “같은 모습이면 굳이 더블 캐스팅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멀티맨도 원래 2명이었는데 나중에 이준혁이라는 배우를 추가시켰어요. 순발력이 있는, 애드립 강한 배우가 필요했죠. 김경범은 정극을 잘하는 배우, 김C는 등장만으로 환기가 확실히 되고, 우리가 이미 그의 캐릭터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잖아요.”
영화감독 만춘 역의 정은표와 최필립도 새로운 구성이다. 애초 신하균과 약속해 두었지만 갑자기 영화를 찍게 되어 죄송하다는 그에게 “나 보고 어떡하라고!”라는 절규만 남길 수 밖에 없었다는 장 연출은 끝까지 캐스팅에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다.
“전체 구성상 젊은 캐스트를 원했는데, 필립이 너무 하고 싶어 했어요. 또 필립이 굉장히 깍쟁이 같이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해병대 출신이기도 하고 굉장히 남자다워요. 대학 때 천재 소릴 들었던 열혈 감독으로 설정했죠. 그런 모습을 더욱 끌어내서 무대에 보이고 싶어요.”
이상은 높고 할 일은 많다?
공연 준비하면서 유난히 “까칠해졌다”는 본인의 고백뿐만 아니라 “정말 많이 삐치는 사람은 바로 감독님”이라는 배우들의 은근한 폭로도 이어졌다.
“머리 속에는 완벽주이자인데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행동은 굉장히 덜 떨어진(웃음), ‘안 되면 말아’하고 쉽게 포기하고. 그런 사람들이 사실은 속으로 곪죠. 이상은 높은데 퀄리티는 못 맞춰주니까. 조금만 그게 맞춰지면 막 신나게 하는데, 막히면 간극이 생겨버리는 거죠.”
최근 그와 작가인 그의 부인이 함께 쓰고 만든 케이블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그는, 영화, 드라마에 이어 이번 연극을 통해 소위 ‘연출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푸하하하, 그랜드 슬램이요? 다른 장르였다면 모르겠는데, 일단 제가 연극과를 나왔고, 그걸 기초로 보고 있다는 거죠. 영화는 생긴지 얼마 안 됐고, 수 천 년을 내려온 드라마는 연극 밖에 없거든요. 연극은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극의 장르가 다르더라도 제가 이야기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한 것이지요.”
하지만 작업의 ‘재미’ 부분도 놓을 수 없는 그이다.
“영화는 한번 틀기 시작하면 의도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만, 연극은 전 날의 공연을 모니터 해서 다음날 고칠 수 있잖아요. 그것이 바로 매력인 것 같아요. 흔히 영화는 감독 예술이고, 드라마는 작가 예술, 그리고 연극은 배우 예술이라고 하는데, 많이 공감해요. 그만큼 좋은 배우들이 많이 필요하고, 그만큼 배우의 능력이 발휘되는 장르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저로서 영화든 연극이든 또 드라마든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죠.”
그는 연극의 마지막에 나오는 영상을 놓치지 말라고 덧붙인다. 야쿠자로 살아온 와타나베가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인생에 있어 돌이키고 싶었던 순간으로 돌아가 또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이 4분 30초의 짧은 영화로 펼쳐진다. 누구에게나 있을 ‘그 때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순간을 건드리는 장면이다.
“각자 다른 세 남자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성공하는 것”이라는 장 연출은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크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현재 또 다른 ‘심각한’ 드라마를 준비 중인 그이지만, ‘사나이 와타나베’와 있을 때는 맘껏 웃으라는 조언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이미지팩토리_송태호(club.cyworld.com/image-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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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영화 감독으로, 때론 배꼽 잡는 캐릭터의 배우로, 전방위 활동 중인 장항준. 그의 첫 연극을 앞둔 관객들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장항준의 활약을 다시 기대해도 좋을까?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이하 사나이 와타나베)를 막 무대에 올린 그는, 부르튼 한쪽 입술을 옴짝거리며 “영화보다 연극이 감독한텐 훨씬 어렵다”고 토로했다.
사나이, 와타나베, 삐지다
3류 영화감독이 한국계 일본 야쿠자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사나이 와타나베>에는 남자들만 나온다. 피 비린내 나는 복수의 핵, 야쿠자와 예술을 사랑하는 열혈 감독 사이에 ‘삐지는’ 무언가가 있단다. 잘 나가다 ‘어랏!’하는 그곳에서 장항준만의 위트는 빛을 발한다.
“남자들이 다 컬러가 달라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굉장히 다른 남자들의 극단적인 모습이죠. 주인에 대해서 복종하는 걸 긍지로 평생을 살아온 아주 소극적인 남자(멀티맨),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인간(와타나베), 그리고 그런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을 경멸하고 상업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아주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는, 순수한 예술의 열정을 가진 사람(만춘), 이 사나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장항준 연출은 ‘삐진다’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다시 내린다.
“인생의 1/3은 누군가에게 삐쳐서 산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화가 났다, 기분 나쁘다 등으로 표현하는데, 실은 삐친 거죠. 예를 들어 동창회에 나갔는데 누가 “그 친구는 어때?”하고 물어봤을 때, “몰라, 걔 얘기 하지마”, 그럼 삐친 거에요.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나, 하면 거의 없거든요. 그런 것들이 어쩌면 인간관계에 있어 재미있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누가 누구에게 삐치고, 또 풀리고, 또 삐치고 하는 거요.”
기회는 올 때 잡는 것
고교시절 자신의 길을 ‘영화’로 결심한 청년이었지만, 장항준 연출에게 연극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른 애들은 학교 입학 전부터 연극연출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내가 한다고 고집 피우는 건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 결론 내린 그가, 서울예대 연극과 재학시절 연극 연출 지원자 모집 당시 번쩍 들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 정원수를 채워주는 희생정신(?) 발휘 후 우연히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항상 희곡과 무대에 가까이 있어 친근했기 때문이다.
“연극을 해 보자는 제의에 오래 생각 안 했어요. 연극이라는 장르를 전혀 몰랐으면 안했을텐데, ‘그래, 어찌 보면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아이템도 하나 있었거든요. 동숭의 홍기유 대표와 대학 동기라 연극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마침 이번 시리즈 제의가 와서 잘됐다, 한 거죠.”
영화 감독들이 연극 연출가로 나선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의 세 번째 주인공인 장항준은 “하고도 싶었고, 할 이야기도 있었는데, 마침 기회도 닿았다”며 절호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기회라는 자의 머리는 뒷머리가 없다고 하잖아요. 왔을 때 앞머리를 잡아야지, 뒤에 머리카락이 없어서 잡을 수 없다고요. 준비하고 있는 자 만이 잡을 수 있는 거죠.”
영화감독 만춘 역의 최필립(왼쪽), 멀티맨 역의 김C(오른쪽)
1인 다역의 멀티맨을 비롯하여, 등장 배역이 모두 더블, 혹은 트리플 캐스팅이다. 한 역에 너무나 다른 개성의 배우들이 뭉친 것에 대해 “같은 모습이면 굳이 더블 캐스팅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멀티맨도 원래 2명이었는데 나중에 이준혁이라는 배우를 추가시켰어요. 순발력이 있는, 애드립 강한 배우가 필요했죠. 김경범은 정극을 잘하는 배우, 김C는 등장만으로 환기가 확실히 되고, 우리가 이미 그의 캐릭터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잖아요.”
영화감독 만춘 역의 정은표와 최필립도 새로운 구성이다. 애초 신하균과 약속해 두었지만 갑자기 영화를 찍게 되어 죄송하다는 그에게 “나 보고 어떡하라고!”라는 절규만 남길 수 밖에 없었다는 장 연출은 끝까지 캐스팅에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다.
“전체 구성상 젊은 캐스트를 원했는데, 필립이 너무 하고 싶어 했어요. 또 필립이 굉장히 깍쟁이 같이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해병대 출신이기도 하고 굉장히 남자다워요. 대학 때 천재 소릴 들었던 열혈 감독으로 설정했죠. 그런 모습을 더욱 끌어내서 무대에 보이고 싶어요.”
이상은 높고 할 일은 많다?
공연 준비하면서 유난히 “까칠해졌다”는 본인의 고백뿐만 아니라 “정말 많이 삐치는 사람은 바로 감독님”이라는 배우들의 은근한 폭로도 이어졌다.
“머리 속에는 완벽주이자인데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행동은 굉장히 덜 떨어진(웃음), ‘안 되면 말아’하고 쉽게 포기하고. 그런 사람들이 사실은 속으로 곪죠. 이상은 높은데 퀄리티는 못 맞춰주니까. 조금만 그게 맞춰지면 막 신나게 하는데, 막히면 간극이 생겨버리는 거죠.”
최근 그와 작가인 그의 부인이 함께 쓰고 만든 케이블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그는, 영화, 드라마에 이어 이번 연극을 통해 소위 ‘연출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푸하하하, 그랜드 슬램이요? 다른 장르였다면 모르겠는데, 일단 제가 연극과를 나왔고, 그걸 기초로 보고 있다는 거죠. 영화는 생긴지 얼마 안 됐고, 수 천 년을 내려온 드라마는 연극 밖에 없거든요. 연극은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극의 장르가 다르더라도 제가 이야기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한 것이지요.”
하지만 작업의 ‘재미’ 부분도 놓을 수 없는 그이다.
“영화는 한번 틀기 시작하면 의도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만, 연극은 전 날의 공연을 모니터 해서 다음날 고칠 수 있잖아요. 그것이 바로 매력인 것 같아요. 흔히 영화는 감독 예술이고, 드라마는 작가 예술, 그리고 연극은 배우 예술이라고 하는데, 많이 공감해요. 그만큼 좋은 배우들이 많이 필요하고, 그만큼 배우의 능력이 발휘되는 장르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저로서 영화든 연극이든 또 드라마든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죠.”
그는 연극의 마지막에 나오는 영상을 놓치지 말라고 덧붙인다. 야쿠자로 살아온 와타나베가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인생에 있어 돌이키고 싶었던 순간으로 돌아가 또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이 4분 30초의 짧은 영화로 펼쳐진다. 누구에게나 있을 ‘그 때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순간을 건드리는 장면이다.
“각자 다른 세 남자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성공하는 것”이라는 장 연출은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크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현재 또 다른 ‘심각한’ 드라마를 준비 중인 그이지만, ‘사나이 와타나베’와 있을 때는 맘껏 웃으라는 조언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이미지팩토리_송태호(club.cyworld.com/image-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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