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형-한아름 콤비 "이번엔 토너먼트 같은 우리네 인생 그렸죠"

서재형-한아름. 매 작품마다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연출-작가 콤비이면서 부부이기도 한 이들이, 그들의 여섯 번째 신작을 초연한다.
2004년 <죽도록 달린다>로 이후 <왕세자 실종사건> <릴-레-이> <호야> 등 형식과 내용 면에서 주목 받으며 한국 연극계의 젊은 에너지로 각광 받은 이들이 올해 첫 선을 보이는 연극은 제목만으로도 녹록하지 않은 <토너먼트>다.

실수하면 바로 추락하는, 토너먼트 같은 인생


한 때 산악인이었지만 친구를 구하려다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택진, 한 때 펜싱 국가대표선수이지만 세탁소를 운영하는 택기, 음악인을 꿈꾸는 막내 택현. 서재형-한아름 콤비의 <토너먼트>는 인생이라는 토너먼트에서 ‘탈락’한 이들의 삶을 적나라게 펼쳐 보인다. 이 땅에서의 삶에 시선을 고정한 이들의 선택이다.

“중소기업 사장이 IMF 맞고, 다시 재기하려다 사업 말아먹고 이혼하고, 그리고 눈 떠보니 서울역이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인생의 세 풍 한 번 맞고, 선택 한 번 잘못하니까 서울역 앞 노숙자가 된 거죠. 그런 것들 것 예전엔 남의 일이었는데 나이 먹고 인생을 책임 져야 할 때가 되니 남의 일이 아니더군요.”(한아름)

한번 실수하면 바닥으로 내려가야 하는 토너먼트 같은 삶. 이를 펼칠 배경은 앞만 보고 달려 나갔던 80년대 중반이다. 극 중 “86아시안게임을 300여일 앞두고” 포장마차촌에 수시로 출동하는 단속반 등은 한아름 작가가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나왔다.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잠실에서 나왔는데, 86년, 88년 올림픽을 앞뒀을 당시 학교에 가면 손톱, 두발 검사를 했어요. 외국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지저분해 보이면 안 된다는 이유죠. 지역엔 부랑자가 있어서도 안 되고, 깡패가 있어서도 안 돼서 2인1조로 순찰을 돌았어요.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인들의 행동에 놀랐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도 그랬거든요.”

펜싱은 인생을 조명하려는 이들 의도에 가장 잘 맞는 운동으로 낙점됐다. 실제 작품후반부에 짧게 등장하는 펜싱 장면을 위해 배우들은 전국가대표에서 몇 개월간 특훈을 받았다.
“펜싱은 점수를 따기 위해 실제로 찌르는 게 아니라, 가짜로 액션을 취해 상대방이 움찔 하는 틈을 타 공격을 하더군요. 배우들 연습하는 것을 보니 갈수록 우리 작품에 딱 맞다 싶었어요. 그런데 순간적인 힘이 많이 들어가야 해서 배우들은 고생 많이 했지요.”(서재형)


인생을 리얼하게 다루다 보니, <토너먼트>의 초고는 상당히 암울했다는 게 두 사람의 전언. 직접 연기하고 감정을 몰입해야 하는 배우들이 충격 받고 힘들어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바닥일 때 사람이 일어나지 않겠냐 했는데, 그걸 경험하는 배우들이 굉장히 힘들어 했다"며  "연습을 진행하며 답답함 속에서 웃음이 있고,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는 이야기로 방향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전한다. 그렇게 해서 결말만 다섯 번을 수정해 나가, 조금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무언가를 관객이 받았으면 한다고.

“결혼하고 새로운 식구들이 생기니까 가족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더라고요. 살면 살수록 힘들고 답답한 일이 많은데, 그걸 위로해 주는 건 가족, 형제가 아닌가 합니다. 가족은 토너먼트가 아니거든요.”

“콤비? 우린 낭떠러지에 손 잡고 선 동지”

동료이자 부부이기도 한 서재형, 한아름은 지난 7년간 콤비라 불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결혼하기 전에도 콤비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의미가 더 생기는 것 같다”는 한아름 작가의 말에 서재형 연출은 “저작권자가 부인이라 더 좋다”고 말해 주위를 웃게 만들기도. 하지만 ‘부부이기 때문에’ 서로 작품을 편하게 할 것이라는 시선에는 경계한다. 

“어떤 분들은 ‘내 남편이 연출이니까 내 작품을 올려 줄 거야’, 혹은 ‘내 부인이 작가니까 텍스트 고민을 별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연출가도 작품이 좋지 않으면 하지 않겠죠. 본인 프라이드가 있는데… 거꾸로 연출님이 제 작품을 가지고 못 만드시면, 저도 다음엔 하지 않을 거고요.”(한아름)

하지만 부부라서, 콤비라서 좋은 점은 분명히 있다.
“서로 핑계를 대지 않아서 좋아요. ‘이번엔 대본이 안 좋았어’ 혹은 ‘연출 디렉션이 별로라 작품이 엉뚱한 방향으로 갔어’ 이렇게는 하지 않아요. 죽으면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이게 콤비인 것 같아요.”(한아름)

그 동안 두 사람은 대부분 함께 작업을 해왔지만, 서로 떨어져 각자의 작업도 종종 한다. 한아름 작가는 지난해 뮤지컬 <영웅> 대본, 작사가로 활동했고, 서재형 연출 역시 오페라 <아랑> 등 연출을 맡아왔다.

 

“저희끼리 서로 외부 작업도 많이 하자고 독려하는 편이에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생각이나 노하우를, 일명 ‘훔쳐온다’고 표현하죠. 계속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일할 때는 낭떨어지에서 같이 손 잡고 있는 동지고.”(서재형)

데뷔 7년 차, 쉽지 않은 무대와의 ‘토너먼트’를 해오며 승부를 펼친 이들이지만 무대는 여전히 이들을 겸손하게 만든다. 조금 편해지지 않았냐는 질문에 서재형 연출이 고개를 흔든다.

“<죽도록 달린다>를 세 번째 공연할 때 배우를 바꿔서 했어요. 백 몇십 회를 해온 건데요 하루에 고칠 노트가 70개더군요. <왕세자 실종사건>도 세 번째 공연이었는데 고칠 게 100개. 진짜 작품을 할 때는 겸손해 져야 해요. 우리가 포기 하지 않으면 작품이라는 아이가 계속 밥 주세요. 좀 더 고쳐주세요, 해요. 애기랑 똑 같아요.”

대본 10줄에 하루 꼬박 걸릴 때도 있다는, 유난히 꼼꼼한 완벽주의자 남편에 대해 한아름 작가는 “전 트리플 B형이라 아무리 무언가를 걱정하고 몰두해도 밤에 잠은 자는데, 연출님은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작품에 몰두한다”고 말한다.

연극계의 차세대 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이들이지만 초연을 앞둔 심정은 항상 떨리고 초조하다.
“저희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왔으니, 이들의 고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이점은 굉장히 절실하죠.”(한아름)
“수고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에게 쫑파티 때 맛있는 맥주를 주고 싶어요. 작품이 안 되면 맥주가 진짜 맛이 없거든요.”(서재형)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