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인간은 나의 영원한 화두”

사방이 유리벽으로 막힌 커다란 큐브 안.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자신들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모른다. 지구 멸망의 소식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춰지고, 어디선가 낯선 눈동자가 이들을 감시하는 듯 하다. 여기는 어딜까? 어떻게 된 일인가.

형식도 사고도 기발한 인간에 대한 또 한 편의 탐구다. 치밀한 전개와 풍부한 상상력이 다시금 돋보이는 이 작품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2003년 발표한 그의 첫 희곡. ‘인간'(원제:인간은 우리의 친구).

소설 ‘개미’, ‘아버지들의 아버지’, ‘뇌’, ‘파라다이스’ 등 한국이 더욱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번엔 연극으로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오는 7월 공연 예정인 <인간>을 앞두고 지난 금요일 그와 나눈 대화는 그간의 소설 이야기가 아니어서 더욱 색다르고 의미 있다.


지난 해 9월 이후 다시 한국 방문입니다. 몇 가지 일정을 이미 소화하셨지요.
이번이 다섯 번 째인가요? 여섯 번 째?(웃음) 한국을, 또 한국 독자들을 좋아해요. 처음에 저를 발견해 준 독자들이기도 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저를 쫓아와주셨죠. 매번 올 때마다 독자들을 만나는데, 굉장히 교양이 많고 질문도 재밌어요.


한국 독자들이 창작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다음 발표될 소설이 ‘카산드라의 거울’인데, 프랑스 여자 아이와 한국인 남자와의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을 알리고 싶다고 여러 번 말씀하십니다. 왜인가요? 또 어떤 모습을 알리고 싶으신지요.
프랑스 독자들에게 굉장히 재미있는 나라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미래지향적인 나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동기를 유발시키는 국민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한국이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

‘인간’은 작가의 첫 희곡입니다.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일단 희곡을 쓰고 싶었어요. 인물도 많지 않고, 장소도 많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요. 대신 서스펜스가 있고 효과가 많은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배우 각 한 명씩을 통해서 철학과 유머를 같이 보여주고 싶었죠.

외계인이 보는 인간의 모습, 독특한 설정입니다.
철학적인 면에 있어서 관찰하고 있는 것에 어떠한 이야기를 하려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외계인이라는 3자의 시선을 선택했습니다. 철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다르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구나!’ 하고 깨닫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그렇게 시각을 넓히는 것이기 때문에 외계인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우리의 시각을 좀 더 넓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죠.

등장하는 남, 녀의 캐릭터가 굉장히 다릅니다.
가능하면 두 인물을 최대한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음과 양처럼 아주 다르게요. 가장 반대되는 것을 한 자리에 놓았을 때 효과가 더 크잖아요. 하지만 둘 다 동물과 관계가 있어요. 여자는 호랑이 조련사이고, 남자는 실험실에서 쥐를 가지고 실험하는 과학자죠. 한 명은 동물에 의해 위협 받는 직업이고 또 한 명은 동물을 위험하게 하는 사람이에요. 서로가 보완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저는 세 번째 시각을 둔 거죠. 이 둘을 동물로 보는 외계의 시각이요.

그게 바로 구조의 마술인데, 등장인물이 있고 외계인이 있는 거죠. 그 외계인을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결국 세 존재가 있는 것이에요. 또 주인공을 동물들 캐릭터에 연관 짓고자 해서 여자는 고양이, 남자는 곰 같게 표현하기도 했어요.

희곡을 읽다 보니, 극 후반에 이르러 남자와 여자가 결국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서로가 닮아가는 것이죠. 이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두려움과 공격성을 갖고 있다가 서로 사랑하면서 변하게 되는 모습을요.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남녀가 그들 스스로 ‘재판’이라는 설정 아래 열띤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재판이라는 것이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봤어요. 인류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나, 한 발 멀찍이 물러나서 보는 게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 그래야지 그들이 뭘 잘못했고 뭘 잘했는지 볼 수 있잖아요. 이 연극에서 보여드리는 건, 잘못 되고 있는 게 계속 진행되다가는 지구가 망할 것이다, 하는 부분이죠.

남과 여, 작가로서 어느 인물의 태도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셨나요?
양쪽 다 균형이 잡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도 때론 한 쪽 편에 섰다가도 다시 또 다른 편에 서기도 하고, 객관적이었다가도 주관적이 되잖아요. 저도 글을 쓸 때 어느 순간에는 여자가 옳다고, 또 다른 순간에는 남자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중심이 잡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서스펜스가 진행이 되거든요.

 그림까지 직접 그린 작가의 사인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개인으로서는 어떤 형의 인간인가요?
날마다 달라요(웃음). 단기적으로 봤을 땐 약간 비관주의자인데, 장기적으로 봤을 땐 긍정적인 것 같아요. 뭔가 잘못을 저지른다는 건 단기적으로 봤을 땐 당장 안 좋은 결과이지만, 나중에 길게 다시 봤을 때는 ‘아, 그것이 잘못된 거였구나, 실수였구나’ 라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죠.

역시 글쓰기의 화두는 ‘인간’과 ‘인류’이군요.
그렇습니다. 이 작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작품에서도 인류는 저의 화두이죠.

소설을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조사 및 공부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십니다. 이번 ‘인간’을 쓰기 위해 그와 같은 별도의 노력이 있으셨나요?
희곡이라 대사를 쓰는 데 주력했어요. 말로 두 사람이 논쟁하는 것이요. 연구실에서 하는 준비라기 보다는 일종의 남녀의 심리학적인 부분을 많이 공부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미 공연이 되었지요?
프랑스에도 했고, 체코와 러시아에서 공연했어요. 러시아는 프랑스 버전과 많이 달랐어요. 무대 뒤쪽에 외계인의 눈을 크게 만들었고 큐브의 설치도 좀 달랐고요. 프랑스 공연이 더 다이나믹하고 공격적인 재미가 컸는데, 러시아는 더 클래식하고 정적이었어요.

동명의 영화(우리 친구 지구인, 2007년)는 직접 연출하셨죠?
사실 영화는 연극과 많이 다릅니다. 제목은 같지만 내용은 사뭇 다르죠. 영화에서는 정말로 외계인이 지구인을 이해하려는 시선이 등장해요. 단편 영화(2003년)로 먼저 찍었고 나중에 장편으로 만들었어요.

또 다른 연극을 올리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희곡은 다 준비가 되었는데 아직 연극으로 만들진 않았습니다. 공연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프랑스에서 공연 하기 전에 러시아에서 먼저 선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이야기인가요?) 그건 비밀이에요(웃음).


희곡, 영화 시나리오, 소설. 장르마다 글쓰기의 묘미가 다를 듯 해요.
공통점은 처음, 중간, 끝까지 가는 아이디어가 좋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디어가 좋고 처음부터 이어지는 흐름이 좋으면 80%는 성공한 것으로 봐도 좋아요. 그 이후에 몇 명의 인물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따라오는 것이고요. 이 외 여러가지 제약들이 있는데, 그것들로 인해서 새로운 무언가가 창조되기도 해요.

오전에만 글쓰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엔 새 작품 때문에 오후에도 글을 쓰고 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 조금 늦어졌거든요. 오늘 아침에도 꽤 많이 썼고, 내일이나 모레쯤 끝날 것 같아요. 책이 여러분의 사랑을 받을 것인가, 못 받을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일단 끝난다는 것이 기대됩니다.

한국 공연을 접해본 적 있으신가요?
영화 이외 공연은 본 적이 없어요. 한국에 올 때마다 기타 시간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공연을 보러 가도 한국말을 이해 못하니 관람이 어렵지 않을까요? 계속 통역해 주시는 분이 이야기 해 줄 수는 없으니까요. 한국말을 배워야 할까 봐요(웃음).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김귀영(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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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3

  • A** 2010.05.24

    개미 참 즐겁게 보았는데요.. 연극도 기대되네요. 웹메이드 연극 기대합니다~

  • A** 2010.05.20

    ^^ 한국어 배우셔서 공연 관람하세요 ㅋㅋㅋ 한국 창작뮤지컬이며 연극, 정말 좋습니다 ㅋㅋㅋㅋㅋ

  • A** 2010.05.18

    팬이에요. 공연으로도 정말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