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같은 나의 첫 무대 <프루프>의 강혜정, 이윤지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 천재성과 더불어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정신질환까지 자신 안에 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부녀 관계에 아슬함을 더한다. 연극 <프루프>는 아버지와 그의 딸, 자매간, 타인 간의 관계를 통해 어긋나 있던 소통의 궤도가 제자리를 찾게 될 가능성을 그리고 있다. 데뷔 후 첫 연극 무대에 도전하는 강혜정과 이윤지에게는 작품 속 증명의 숙제 뿐 아니라,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도 빛나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연기하는 마음 가짐은 언제나 같아. 강혜정

‘무대가 좋다’ 시리즈 작품이 줄곧 큰 관심을 받아왔다. 그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가?
첫 작품이 잘 되면, 두 번째, 세 번째도 그만큼 잘 되야 된다는 부담감, 없진 않다. 영화나 드라마, 또 공연을 할 때나 그런 생각만 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자꾸 딴 생각을 하면 흐트러진다. 특히 나 같은 경우가 그렇다.(웃음) 흥행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감은 있지만 그걸 목표로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진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생각한다. 이 앞에 앉아 계신 분부터 저 끝의 관객에게까지 목소리가 가야 한다, 이런 것들 포함해서, 지금도 훈련하고 있다.

지금 공연 중인 <클로져>는 봤는가?
절대 쉬운 공연이 아니더라. 배우들이 상당히 연기를 매끈하게 잘 하신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문근영은 사실 우리에게 큰 스타배우지 않느냐. 그런 스타배우가 과감히 자기의 몸을 무대 위에서 드러내 춤을 추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어린 친구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나도 그 나이땐 못할 게 없었지만(웃음) 저 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놀랐다.

함께 출연하신 진경 선배님을 보면서 와, 어떻게 작은 발성으로 저 멀리까지 전달할 수 있을까, 굉장히 안정된 톤으로 연기하시는 것 같았다.

그 나이때 못할 게 없었다고 했는데, 그래도 못했던 것이 있다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역할은?
난 아직 어리다.(웃음) 건방진 소리일 수도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지금도 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단 열 일곱 살 고등학생 역할이어도. 그러나 그런 작품을 내게 주진 않으시겠지.(웃음) 그러나 그녀(문근영)에겐 갈 거 아닌가.(웃음) 기회만 된다면, 스물 다섯의 강혜정으로 돌아간다면, 공룡이나, 골룸 같은 역할? 해보고 싶다.(웃음)


수학이 소재로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가?
실제로 수학을 풀어햐 하는 장면은 없다. 그래서 따로 수학 공부를 하진 않았지만 관심은 생겼다. 어느날 포털 사이트에 ‘i=허수’라는 문구를 봤는데 예전같으면 쳐다도 안 봤을 걸 그걸 클릭해서 찾아보기도 했다.(웃음) 작품의 작가가 진짜 이야기 하고 싶은 건 꽉꽉 막힌 수학자들이 답답한 수학적 소통법으로 소통하다가, 사람 관계에 답 안나오는 경우 되게 많지 않느냐, 그렇게 증명이 안되는 모습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의 관계, 그런 것들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사실 좀 의외다, 라는 반응을 보이실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언젠가는 내가 꼭 한번 겪어야 될 관문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시더라. 잘 할 수 있을거란 말씀을 많이들 해 주신다. 영화 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가장 마음 단단히 먹는 부분이, 그분들에게 창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출산 후 복귀가 빠른데, 체력적인 것을 비롯해 힘든 점은 없는가?
일을 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받기 때문에 힘이 딸린다는 느낌은 없다. 다만 극대화된 에너지를 보여주고 나선 비단, 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지치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랑 떨어져 나오는 건 너무 힘들다. 더 같이 있고 싶고 계속 놀고 싶다. 연기를 하고 싶단 욕심만으로 이 작품을 택한 건 아니다. 연극이라는 게 머리에서 발 끝까지 보여주는 작업이어서 나를 단련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더라. 그런 걸 겪다 보니 내 몸을 회복하는 부분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작품을 오랜 시간 두고 분석하고 리딩하며 서로 이야기 주로 받는, 이런 과정을 통해 10개월 가까이 굳어 있던 머리가 회전하는 것 같고. 또, 창피하지 않은 날씬한 엄마가 되고 싶기도 했다.(웃음)

기존 작업들과 연극 연습과정에서 느껴지는 차이점은?
영화는 한 장면, 장면으로 찍어나가고, 그 한 장면을 위해 하루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나 연극은 장면, 장면이 연결된 한 극을 위해 그 하룻동안의 에너지를 쏟아야 된다. 그게 젤 적응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어려울 것 같은데,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연습 많이 하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예전에 무대를 하나도 모를 때도 그렇고, 그냥 공연만 보러 다녔을 때도 그렇고, 지금에도 드는 생각이, 저 무대 위에서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고 하면 모든 게 다 신경이 쓰인다. 제대로 걷기가 참 힘들다. 지금 무대 연기를 하시는 많은 분들이 어마어마한 고충을 통해서 이 무대에 올라간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된다.

<프루프> 연습하면서 들었던 칭찬과 지적이 있다면?
난 빨리 배운다고 하더라. 그리고 나머지가 다 지적이다.(웃음) 습관적으로 걸어왔던 품세나 말하는 것이 연극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많이 지적받는다.

더블 캐스팅 된 이윤지를 평가해 본다면?
내가 평가를 내릴 입장이 아니어서 조심스럽다. 다만 그 친구는 머리가 정말 비상하다. 분석력도 뛰어나고, 감성적으로 갖고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것들이 연습할 때 캐릭터의 동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것에서 배우는 게 너무 많다. 감성도 좋고, 머리도 좋고. 게임 끝난거 아니냐.(웃음) 내가 더 잘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더라.(웃음) 노력하는 사람에게 이길 제간이 없더라.

배우 인생에 중요한 포인트 될 것. 이윤지

강혜정이 똑똑하고 섬세하다고 이야기 하더라. 그렇다면 이윤지가 보는 강혜정은?
실제로 난 화장실에 있다가도 이따금 엄마를 부른다.(웃음) 그 정도로 겁이 많고, 그러다 보니 조심성이 많은 것 같다. 망설이는 게 많고, 그런 부분을 보고 이야기 하신 좋은 평가 같다.

실은 언니를 처음 본 건 올드보이 오디션 장이었다. 언니가 오디션 하는 걸 듣기만 했는데, 그때 알았다, 그냥 집에 갈까?(웃음) 그게 어떻게 보면 내 시간을 아끼고,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웃음)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고, 또 현재 스타일리스트도 같기 때문에 언니 소식도 자주 접하고, 남다른 친근감이 있었다.

같은 역할이고, 언니와 내가 상반된 이미지라 이번 작품에서 연기할 때 아마도 작전을 다르게 짜야 할 것 같다. 연습실에서 언니 하는 걸 볼 때 너무나 색다른 표현을 하셔서 놀라곤 한다.


앞서 짐승 같은, 본능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말을 했는데, 배우 이윤지 뿐만 아니라 인간 이윤지로서의 다짐이나 도전 같이 느껴진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정말 좋은 것이다. 아직 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스물 일곱에 이런 작품과 배역을 맡은 건 결정타이며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간 굴레스러웠던 것들을, 본능에 충실해서 연기를 하다 보면 조금 더 그 굴레를 잘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굴레를 깨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내가 노력을 하고 원해서 만들었던 것이고, 뭔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해 왔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는게 아니라, 내가 조금 더 외면했던 부분에 좀 더 솔직하고 진실에 가깝게, 그러면 내 굴레를 지키기가 더 수월해 질 것 같다.

대학 재학 시 연극을 하기도 했다. 어떤 작품의 어떤 역할이었나?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겨울이야기>라는 작품이었다.(2008년 12월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50주년 기념 공연) 헤르미온이라는 왕비 역을 맡았었는데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판타지 한 작품이었다. 학교 작품이었다고 하기엔 규모가 무척 컸다. 그때 역시 스스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연습실 공간 자체가 너무 좋다. 모든 게 갖춰진 채로 보여지는 내가 아니라, 앞구르기도 하고 다리도 찢고(웃음) 그런 모습들, 잊으면 안 되는데 잊었던 것들을 다시 찾는 곳이 연습실이다. 아직 많이 배워야겠지만 연습실이 너무 좋고, 쉬는 날에도 다른 분들도 나와 계셔서 자극이 많이 된다.

<프루프> 말고 하고 싶은 작품이나 배역은?
정말 인터뷰를 위한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이 작품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무실 실장님이 스케줄을 정리하시면서 “만약 이 작품을 하게 된다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때 “하게 된다면이 아니라 할거에요”라고 이야기 했다.(웃음) 내겐 정말 필연적인 작품이다. 아마도 캐서린이라는 역할을 통해서, 연습기간까지 몇 개월을 살고 나면 좀 더 여유 있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솔직하고 좀 더 진실한 사람이 될 것 같다.

무대에 대한 욕심을 더욱 내게 될 것도 같다. 학교 다니면서 많은 연극을 한 건 아니지만 친구들을 보며, 어떤 밀도로 짜여지는지 알다 보니, 원래 이 느낌이지, 이거지, 하는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프루프> 다음에 드라마든 영화든 접하게 되면 그 때 내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여러모로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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