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이은결 "폭발하는 상상, 그 이상의 환상 기대하세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FISM 게스트로 섰고, 그 이후에도 10일간 머물면서 공연했어요. 정연두 선생님과 요코하마, 미국, 다시 일본으로 와서 세 번에 걸쳐 ‘시네 매지션’을 했고, 올해 ‘매직 V쇼’ 전국 투어도 했죠.”

지난 해 7월 군 제대 후 이은결(29)의 행보는 이토록 가득 찼다. 세계 최대 규모의 마술 월드컵으로 불리는 FISM(Federation International Society Magic)에서 아시아 최초 제너럴부문 1위 수상을 비롯, 일본 세계매직콘테스트, SA 마술챔피언쉽 등에서 우승을 휩쓸며 대한민국에 마술의 이름을 다시 새겨 놓았으나, 여전히 쉬어감을 모르는 그는 “지금은 정말 많은 가능성이 폭발하는 단계”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폭발의 시작이 <이은결-더 일루션>이 될 것임을 주저하지 않는다.


“무한 상상력, 환상으로 펼쳐드립니다”

오는 11월 7일부터 한 달 간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리는 <이은결-더 일루션>은 굳이 말한다면 실질적인 준비 기간이 3년일 뿐, “14년의 노하우가 없으면 만들지 못하는, 새로운 시도의 대장정”이다.


“가수 콘서트장에서의 열기를 마술 공연에서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어떤 마술을 할까’가 아닌,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마술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연구했어요.”

이번 공연의 중심은 ‘환상’이다. 사라졌다 등장하는 비둘기와 미녀도 있겠지만, 전혀 새로운 세계에 와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되는 것, 이은결이 기대하는 마술은 그것이다.

“ ‘이것이 당신들이 생각했던 마술이다’로 1부가 시작된다면 2부에선 ‘이런 것이 마술이지 않을까’를 함께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정말 내가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 역시 마술이잖아요.”

각기 다른 색의 마술을 동질성 있게 구성하는 것, 그리고 그 이음이 하나의 환상적인 이야기로 풀어지는 것은 언제나 그랬듯 이은결 공연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 규모가 커지고 더욱 견고해 졌다. 하나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술로 25분간 펼쳐지는 건 해외에서도 볼 수 없는 위험(?)한 시도라고.

“중간에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다음에 아주 큰 문제가 일어나요. 비둘기 마술이라고 하면 모자에서 비둘기가 나오는 식이 일반적인데, FISM에서도 제 마술은 카드가 비둘기가 되고, 깃털을 뽑았더니 그게 카드가 되고, 그 카드가 다시 모자가 되고 모자에서 비둘기가 되는, 꼬리를 무는 식이었거든요. 위험 부담은 있지만 이게 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안 했던 걸 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충전 완료

중학생 때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보라”며 부모님 손에 이끌려 마술을 접한 지 14년. 스무 살 국내 최연소 프로마술사에서 한국 마술 발전의 출구로 자리한 이은결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한국 마술사들은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이런 것들에 끊임없이 도전해 왔거든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계속 시도하다가 문득,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나를 태워먹겠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졌죠. 그 시점에 군대에 가게 됐어요.”


해군 홍보단 마술병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1년에 120여 회의 공연을 하는 도중에도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이미지 트레이닝만 죽어라 했다”는 군 시절이 끝나갈 즈음,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의 제안은 그에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시야를 넓혀야겠다, 막연히 다른 예술장르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정연두 선생님이 조르주 멜리에스를 모티브로 한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연락을 해 주셨죠. 이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휴가 나와 틈틈이 컨셉을 공유하고, 제대 후 정연두의 대학 수업까지 청강하며 나와 다른 예술가와 작품세계에 대해 충실히 익혀 펼친 공연은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쉼과 마음의 동력은 작년 겨울 사진작가 김중만과 함께 간 아프리카에서 얻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선생님 스튜디오로 갔더니 “이번에 너랑 나랑 (김)종진이랑 아이돌 가수들이랑 촬영팀하고 케냐로 갈거야. 너 어떻게 생각하니?” 그러시더라고요.(웃음) 그 카리스마에 압도당해서, 가겠습니다, 했죠.”

봉사가 목적이었던 그곳에서 태어나 처음 마술을 접하는 사람들과, 아프리카의 대자연들, 그리고 김중만과 함께 한 시간은 그에게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된, 스스로에게 굉장히 좋았던 시간”으로 기록되었다.

“제 공연이 블록버스터 형태이지만, 크고 화려한 것 만이 ‘크다’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정말 문화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 건 분명히 다른 것에서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공연 중 ‘아프리카의 꿈’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쉐도우 퍼포먼스로 풀어내요. 두 손으로 하지만 어떻게 사람들에게 큰 환상으로 보여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요.”

마술계, 정도 걷는 질적 성장이 필요해

"장난 아니에요, 엄청 꼼꼼해요. 기획안부터 대본, 조명까지 무대감독이 해야 하는 역할도 다 해요. 워낙 많은 쇼를 보고 알기 때문에 국내 마술 연출가들 중 이은결씨 이상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데뷔 시절부터 그를 봐 왔다는 한 공연 관계자의 증언. 라스베이거스에 갈 때 마다 밥 먹는 시간도 없이 하루 두, 세 편의 쇼를 보며 깨알 같은 필기를 해 오곤 했다는 이은결은 여느 공연과는 다른 형식의 마술 무대를 가장 열정적으로 관찰하고 생각하며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필요에 의해서 한 거죠. 초창기엔 보여줘야 될 부분이 가려지고, 안 보여줘야 될 부분들이 보여지는 문제가 생겼거든요. 어떤 조명과 디자인이 마술 공연에 적합한지 전문가들에게 묻고 또 묻다 보니 하나씩 알게 되더라고요.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매직 디렉터인 돈 웨인과 함께 하는 것도 제가 구성해 놓은 무대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의 조언을 얻기 위함이에요. 저의 몇 배의 경험과 시간 동안 수 많은 마술 무대를 만들어 오셨던 분이잖아요.”


스타 마술사로 대중과 미디어 앞에 선지 10년이 넘었으나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도 없고, 친구도 그리 많지 않다며 “그동안 연습실에서만 살았죠”하며 웃는 이은결. 그는 이제 팽창해진 부피만큼 한국 마술계의 질적 성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상업적 목적이 아닌 연구를 위해 두각을 보이는 후배들을 모아 만든 ‘이스케이프’ 역시 그의 한 실천이다.

“후배들에게 제가 배웠던 것을 다시 전달하고, 나름대로 마술에 대한 이론들도 정리하고 있어요. 마술사가 걸어야 할 정도를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나름의 사명감도 갖고 있습니다.”

188cm의 장신, 크고도 빠른 손놀림, 개구쟁이의 얼굴로 넉살을 부리다가도 순식간에 무대를 휘어 잡는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그는 “때론 내가 다중이 같다”며 웃는 훈남이기 전에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마술과 무대를 위해 상상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 뼛속까지 마술사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이 앞으로 이은결은 이렇게 활동하겠습니다, 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전초전이 될 거 같아요. 아이디어가 어떻게 무한 상상력으로 발휘되는가, 이처럼 사람의 순수성을 파고들 수 있는 퍼포먼스들이 마술에서는 좀 낯설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게 바로 제 가장 큰 경쟁력이 될 거라 믿어요. 물론 관객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공연이 잘 되고 못 되고는 다 저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니까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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