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지만 거침없이 <영웅> 양준모

<천사의 발톱> 이후, 양준모의 행보는 늘 신중하지만 거침이 없었다. <스위니토드> <이블데드> <아일랜드> 등 소극장, 대극장, 창작과 라이선스,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더니, 지난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팬텀에 이어 지금은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으로 오를 준비 중이다. "한 것도 없는데 슬럼프가 오면 안 된다”는 이 욕심 많은 배우를, 한창 진행 중인 <영웅> 연습실에서 만났다.

31살, 동갑의 영웅을 만나다


양준모는 <영웅> 연습과 <오페라의 유령> 대구 공연을 병행하고 있었다. 일주일 중 하루로 쉬지 못하는 강행군이다. 게다가 팬텀 역에 필요한 마스크를 쓰며 피부에 문제가 생겨(전세계 팬텀 중 유일하게 피부에 이상이 생겼다고) 계속 치료 중인 상황으로 머리를 짧게 잘라 가발을 쓰고 있었다. “데뷔 후 겹치기는 처음”이라는 그가 여러 가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이 작품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웅> 초연 공연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워낙 눈물이 없는데 1막부터 눈물이 나더군요. 2막 땐 눈물, 콧물… 와이프도 그런 모습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처음이었고. 나중엔 다른 사람들이 오버한다고 말할 만큼 이 작품에 대해 찬사를 하고 다녔죠.”
공연이 끝나고 OST를 수 십 번 들었고, 들을 때 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인들에게 공연에서 받은 벅찬 감동을 이야기했지만 그 만큼 이 작품에 대해 느끼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러시아 자작나무에서의 단지 동맹에서부터 만주 하얼빈에서의 거사, 그리고 사형집행까지 독립투사의 삶에서 그의 눈물을 건드린 건, 다름 아닌 어머니다.

“제가 어머니, 모정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약해집니다. 고등학생 때 성악을 공부하러 러시아로 유학을 갔는데, 어머니와 통화하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오는 거에요. 안중근 장군 역시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한 사람의 아들로서 어머니에 대한 부분만 나오면 약해지거든요. 어머니가 안중근 장군에게 수의를 건네주는 장면은 가장 뭉클하죠.”

그가 만들어 가고 있는 안중근의 모습은 영웅 이면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역사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고 조심스럽지만 양준모의 색깔이 묻어나는 영웅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치렀을 나이가 동갑이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동질감과 자신감을 주고 있다.
 
“이렇게 명확하게 나이가 나오는 작품은 별로 없어요. 안중근 장군님이 31살에 옥에 투옥돼서 다음해 초 사형이 집행됐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 31살이거든요. 제 또래에 이런 일을 하실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동갑이라는 나이에서 오는 동질감이 커요. 배우로서도 복 받은 거죠.”

양준모와 함께 정성화, 신성록이 이번 무대를 번갈아 가며 선다. 초연이 아닌데다, 이미 큰 사랑을 받은 정성화와 비교하는 시선이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그는 “부담 거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전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라, 연기에 대해선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연기를 할 때 이게 맞는지 틀린지 모르고 제가 느끼는 대로, 움직이고 싶은 대로, 감정대로 하거든요. <스위니토드> 할 땐 정한이 형과 더블이었는데, 왜 그런 부담이 없었겠어요. 지금보다 더 컸죠. 그때 제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그때도 전 그런 건 생각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요. 심지어 팬텀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이클 크로포드와 공연을 해도 긴장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내가 표현하는 인물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1년 반 동안 소극장 무대만
"디테일해진 연기 가장 큰 수확"


한예종에서 성악을 공부하던 그가 성악가의 길이 아닌 뮤지컬을 택한 건 우연히 찾아온 한번의 기회 때문이다. 2004년 경험 삼아 출연한 뮤지컬 <금강>과의 인연이 2005년 북한 무대까지 이어지며 뮤지컬이 가진 힘을 경험했던 것. 공연을 볼 때 웃지 않는다는 북한 사람들이 객석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은 오페라에서 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당시 성악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위해 비자까지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그는 뮤지컬 배우가 될 것을 결심했다.

"북한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당시 함께 출연했던 배우에게 ‘뮤지컬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 봤죠. 그랬더니 오디션 사이트를 가르쳐주면서 이곳에 가면 오디션 정보들이 뜰 거라고 하더군요. 오자마자 오디션 정보를 찾아서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명성황후> 대원군 역 얼터네이트와 <겨울연가>, 정식으로 그의 이름이 걸린 창작 뮤지컬 <천사의 발톱>과 <스위니토드>를 거치며 양준모는 탄탄한 뮤지컬 배우로 성장했다. 그 밑바탕에는 열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디션을 보지 않고 참여한 작품은 한 작품도 없어요. <천사의 발톱> 오디션은 제가 일본에서 <겨울연가>를 할 때였는데, 시놉시스를 보고 정말 배울 게 많아 보였어요. 귀국하면 오디션이 끝나는 시점이라 일본에서 전화를 걸어 ‘너무 하고 싶으니 오디션 기회를 달라’고 해 귀국해서 혼자 오디션을 치뤘죠."

<스위니토드> 이후엔 1년 반 이상 일부로 소극장 무대에만 출연하며 차근차근 무대를 배워 나갔다. <이블데드> <씨왓아이워너씨> 등으로 한 해 동안 원캐스트로 소극장 뮤지컬 300회를 소화했다.

“<스위니토드>를 하고 바로 <이블데드>에 출연하는 건 쉽게 생각하지 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겨울연가>에서 춤 오디션을 보는데 눈 앞이 하얘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웃음). 그래서 <이블데드>가 춤이 있고 코미디가 있기 때문에 출연하고 싶었던 거고요. 관객 바로 앞에서 연기도 해보고 싶었죠. 그러고 나니 <오페라의 유령>으로 무대에 섰을 때, 연기가 조금은 디테일 해 졌다고 평가해 주시더군요. 굉장히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슬럼프를 겪었냐는 질문엔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한 것도 없고 앞으로 할 것도 많아서 슬럼프가 오면 안 된다”다.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수년 전 뮤지컬로 포기했던 유학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 이번엔 더 나은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서다.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이 클래식을 놓으면 안 되거든요. 지금은 그 소리를 많이 잃어버린 것 같고, 그래서 노래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갈 겁니다. 언제요? 3년 전부터 올해 올해 하고 있어요(웃음). 하지만 지금 제 노래에 만족을 못하고 있으니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꼭 떠날 생각이에요.”

앞으로 그가 어떤 무대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던,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길 수밖에. 우선, 그가 만들어 가는 ‘영웅’을 기대해본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정근호(www.knojung.net) 
        에이콤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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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2

  • briann** 2010.12.30

    정중근 못지않게 뛰어난 공연 보여주시는데, 뭔가 매스컴과는 멀어보여 참 안타까웠어요 ㅠㅠ 역시 플디가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듯한 느낌이네요! ㅋㅋ 양배우님 화이팅입니다 :)

  • A** 2010.12.06

    작년에 정중근의 영웅으로 완전한 감동을 선물받았었는데 양중근도 너무나 기대됩니다. 양준모 배우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