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수, 철저히 외로운 황노인으로 변신, “운명입니다, 그저, 하는 것이죠”
작성일2011.02.21
조회수11,031
고립된 한 아이가 바깥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 <해님지고 달님안고>에서 오달수(44)는 집 나간 아내에 대한 한을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표하는 인물이다. 처절히 외로운 인물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반송장이 되어 이승과 저승 어디쯤에 있기도 하다. 스크린에서 보았던 ‘웃음 종결자’의 모습을 기대하면 당황하겠다. 하지만 여기서도 오달수는 다르지 않다. 여전히 깊게 생각하는 진지한 표정이다. 하긴, 희극적 역할에서도 그 스스로 폭소하며 웃음을 이끌어 낸 경우는 없었다. 이것이 연극이나 영화를 가르지 않고 ‘그저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오달수의 고요하고 치열한 진가다.
<해님지고 달님안고> 작품이 마냥 쉽게만 다가오진 않더라고요.
동이향 작가 작품의 특징이, 언어가 굉장히 다듬어지고 상징적이며 시적이기까지 하죠. 그런데 거기에 속으면 안돼요. 그 안에 무언가가 있겠지만, 보이는 데로 읽으면 되거든요. 그러면 아주 쉽게 볼 수 있어요. 아마 대사들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을 땐 ‘어, 무슨 이야기 했지? 어떻게 넘어갔지?’ 의아해 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문제가 없지 않아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구성 면에서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고 시공간도 초월하며 배역이 서로 바뀌기도 하는데요.
그 점이 이 연극에서 빠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관객 반응을 어떻게 느끼고 계시나요.
많은 것들을 생각하시나 봐요. 아이가 성장해 가는 그런 모습이 보이고 왜 이렇게 되었는가, 생각할 거리가 있으니까요. 관객 반응이 좋은 이유는 아마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따뜻하고, 뭔가 정서적인 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관객을 즐겁게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성기웅 연출과는 첫 작업입니다.
아마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성기웅 연출도 처음일걸요. 조용한 연극, 그런 식의 작품을 해 오다가 이렇게 몸 쓰고 하는 건 처음인 듯 해요. 저희 극단(신기루만화경)의 작품 스타일이 <설공찬전> 같은 시끌벅적 한 작업들을 해 오다 보니, 이번 작품이 서로서로 자극이 되요. 배울 것도 많고, 서로 많이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동이향 작가의 작품은 처음은 아니시지요?
아주 옛날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숲을 이룬다>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 때 생각하면 진짜 끔찍하죠.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대사를 쳤으니까, 워낙 어려워서.(웃음) 이 작품은 작가가 스물 두 살 때 썼다고 하니까 기가 막히죠. <네 개의 문>이나 다른 동이향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점점 커가고 있고, 아주 좋은 작가임은 틀림 없습니다.
지난 해 유독 영화 작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원래는 이 연극을 못할 뻔 했죠. 그런데 타이밍이 적절하게 맞았어요. 문제는 영화 촬영이 끝나자마자 2, 3일 만에 바로 연극 연습에 들어가서 체력적으로 좀 후달렸죠.(웃음) 이번 작업 끝나면 몇 주라도 좀 쉬어야 될 것 같아요.
황노인이라는 인물은 집착이 강한 인물입니다.
산 속 깊은 곳에 살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많은 걸 뜻하죠. 속세를 떠난 사람이 아니면, 아주 외로운 인물을 의도했을 거에요. 작품의 때, 장소 등을 봤을 때 아이에 대한 집착도 집착이지만, 이 사람의 외로움도 강하게 보여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에게 힘을 실어, 아이에 대한 집착을 조금 더 강조하고 있어요.
본질적인 외로움이 아니라 스스로 외로움의 길을 고집하는 사람 같더군요.
맞아요, 그렇습니다.
연극 <해님안고 달님지고> 중
그간 남편 역할을 맡은 적은 많았지만 아이를 둔, 부성애를 가진 전형적인 아버지 캐릭터는 드물었어요.
이제 슬슬 그런 작품들 들어오기 시작해요. 그 전에는 뭐 사시마가 왔다 갔다 하고(웃음). 아직 때가 아니지 않았을까, 해요. 이제 마흔 중반에 들어서니 그런 역할들을 시작해서, 나중에 맡을 역할은 아버지 밖에 없지 않습니까.(웃음)
많은 배우들이 희극이 더욱 어렵다고 하지만, 정작 배우 오달수는 희극적 이미지가 강해서 비극적인 배역을 선보이기가 더욱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극과 비극에 관한 그 말씀은 통계적으로 나와있는 이야기에요. 또 사실 무대 위에서 릴렉스 되기 위해서는 꽤 많은 경력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희극이 더 어렵다고 말씀 드린 거지요.
이번 연극에서 황노인 역할은 지금까지 저의 이미지와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연극은 약속이에요. 이것도 역시 통계에 나와 있는 이야기인데, 어떤 이미지가 굳어 있는 사람, 그 사람의 다른 이미지에 관객들이 익숙해지는 시간이 약 10분 이라고 합니다. 10분이 지나면 서로 연극에 대한 약속이 이뤄지는 거죠. 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웃을 준비를 하셨다가도 10분쯤 지나면, 아, 저 사람이 어떤 역할이고 어떤 이야기를 하며 심리 상태가 어떤지 파악할 수 있거든요. 그 10분을 버티면 되요.
씬 스틸러, 미친 존재감, 웃음 종결자. 배우 오달수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일단 그런 말 자체를 싫어합니다. 어떻게 씬을 훔치며, 미친 존재감이라는게, 존재를 증명하기도 힘들어 죽겠고만.(웃음) 수식어에 대한 거부반응은 없지만,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애드립이 많지도 않고 표정이나 동작이 크고 과격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나 연극에서 배우 오달수를 금새 알아차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과찬의 말씀이신데, 그렇게 느끼셨다면 섬세해서 그렇지 않나. 저도 잘 몰랐는데, 박찬욱 감독님이 어디선가 인터뷰 하신 걸 보니, 저를 굉장히 섬세한 배우다, 라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저는 디테일하게 연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거짓처럼, 연기하는 것 같이 안 보이기 위해서 디테일이 중요하죠. 아주 일상적으로 보여져야 되요.
연기를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해야 한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듣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힘겨워 하는 게 일상이 지루한 까닭도 크거든요. 일상과 같은 연기, 일상처럼 연기가 지루하고 괴로워질 때는 없는지요.
걱정하지 마십쇼. 곧 죽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일상을 지루하게 생각하지 마십쇼. 언젠가는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요. 그 때까지는 뭐, 어쩌겠습니까.
연기가 지루하다 생각이 들면 염세적으로 점차 빠지겠죠. 쇼펜하우어도 죽겠다고 권총 들고 산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늙어 죽었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운명입니다.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면 되요.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그런 운명이 있습니다. 자기가 타고난 운명. 그냥 하는 거고, 그래서 그냥 가는 거지요.
낭독 워크숍 등 지난 해 극단 신기루만화경이 좀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어요.
10주년 행사를 하려고 했다가 쪽 팔려서(웃음). 이제 10년 되어 놓고 뭘 시끌벅적하게 하나, 됐다, 했지요. 대신 이다 극장에 상주단체로 선정되어서 작년에 참 좋은 경험 많이 했어요. 워크숍을 잘 하지 않는데 여건이 되니 낭독회 등, 수확이 아주 컸습니다.
배우가 아닌 극단 대표로서의 걱정도 있을 듯 합니다.
그렇긴 한데, 짐, 일이라는 건 나누면 되요.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혼자, 혹은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희 극단은 운영위원들을 두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조언들을 받아서 같이 가는 거지, 내가 대표임네, 완장, 이런 건 별로. 그래서 비교적 좀 편안하게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원래 대표가 종신제였는데 곧 바꿀 생각입니다. 단원들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해 봐야 또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대표로서 이 극단을 이끌어 가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좀 더 긴장들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해님지고 달님안고> 관람 예정인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같이 사는 사람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을 때 굉장히 놀랍고. 어차피 연기하는 거니까. 굳이 새롭다, 그런 거 없이 그냥 편안하게 보시면 될 거에요. 제 역할에 코미디 코드는 없습니다. 허나 다른 도깨비라든지 볼거리들이 풍성합니다. 재미있는 연극이니까 얼마든지 부담 없이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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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향 작가 작품의 특징이, 언어가 굉장히 다듬어지고 상징적이며 시적이기까지 하죠. 그런데 거기에 속으면 안돼요. 그 안에 무언가가 있겠지만, 보이는 데로 읽으면 되거든요. 그러면 아주 쉽게 볼 수 있어요. 아마 대사들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을 땐 ‘어, 무슨 이야기 했지? 어떻게 넘어갔지?’ 의아해 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문제가 없지 않아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 점이 이 연극에서 빠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시나 봐요. 아이가 성장해 가는 그런 모습이 보이고 왜 이렇게 되었는가, 생각할 거리가 있으니까요. 관객 반응이 좋은 이유는 아마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따뜻하고, 뭔가 정서적인 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관객을 즐겁게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아마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성기웅 연출도 처음일걸요. 조용한 연극, 그런 식의 작품을 해 오다가 이렇게 몸 쓰고 하는 건 처음인 듯 해요. 저희 극단(신기루만화경)의 작품 스타일이 <설공찬전> 같은 시끌벅적 한 작업들을 해 오다 보니, 이번 작품이 서로서로 자극이 되요. 배울 것도 많고, 서로 많이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주 옛날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숲을 이룬다>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 때 생각하면 진짜 끔찍하죠.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대사를 쳤으니까, 워낙 어려워서.(웃음) 이 작품은 작가가 스물 두 살 때 썼다고 하니까 기가 막히죠. <네 개의 문>이나 다른 동이향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점점 커가고 있고, 아주 좋은 작가임은 틀림 없습니다.
원래는 이 연극을 못할 뻔 했죠. 그런데 타이밍이 적절하게 맞았어요. 문제는 영화 촬영이 끝나자마자 2, 3일 만에 바로 연극 연습에 들어가서 체력적으로 좀 후달렸죠.(웃음) 이번 작업 끝나면 몇 주라도 좀 쉬어야 될 것 같아요.
산 속 깊은 곳에 살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많은 걸 뜻하죠. 속세를 떠난 사람이 아니면, 아주 외로운 인물을 의도했을 거에요. 작품의 때, 장소 등을 봤을 때 아이에 대한 집착도 집착이지만, 이 사람의 외로움도 강하게 보여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에게 힘을 실어, 아이에 대한 집착을 조금 더 강조하고 있어요.
맞아요, 그렇습니다.
연극 <해님안고 달님지고> 중
이제 슬슬 그런 작품들 들어오기 시작해요. 그 전에는 뭐 사시마가 왔다 갔다 하고(웃음). 아직 때가 아니지 않았을까, 해요. 이제 마흔 중반에 들어서니 그런 역할들을 시작해서, 나중에 맡을 역할은 아버지 밖에 없지 않습니까.(웃음)
희극과 비극에 관한 그 말씀은 통계적으로 나와있는 이야기에요. 또 사실 무대 위에서 릴렉스 되기 위해서는 꽤 많은 경력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희극이 더 어렵다고 말씀 드린 거지요.
이번 연극에서 황노인 역할은 지금까지 저의 이미지와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연극은 약속이에요. 이것도 역시 통계에 나와 있는 이야기인데, 어떤 이미지가 굳어 있는 사람, 그 사람의 다른 이미지에 관객들이 익숙해지는 시간이 약 10분 이라고 합니다. 10분이 지나면 서로 연극에 대한 약속이 이뤄지는 거죠. 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웃을 준비를 하셨다가도 10분쯤 지나면, 아, 저 사람이 어떤 역할이고 어떤 이야기를 하며 심리 상태가 어떤지 파악할 수 있거든요. 그 10분을 버티면 되요.
저는 일단 그런 말 자체를 싫어합니다. 어떻게 씬을 훔치며, 미친 존재감이라는게, 존재를 증명하기도 힘들어 죽겠고만.(웃음) 수식어에 대한 거부반응은 없지만,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과찬의 말씀이신데, 그렇게 느끼셨다면 섬세해서 그렇지 않나. 저도 잘 몰랐는데, 박찬욱 감독님이 어디선가 인터뷰 하신 걸 보니, 저를 굉장히 섬세한 배우다, 라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저는 디테일하게 연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거짓처럼, 연기하는 것 같이 안 보이기 위해서 디테일이 중요하죠. 아주 일상적으로 보여져야 되요.
걱정하지 마십쇼. 곧 죽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일상을 지루하게 생각하지 마십쇼. 언젠가는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요. 그 때까지는 뭐, 어쩌겠습니까.
연기가 지루하다 생각이 들면 염세적으로 점차 빠지겠죠. 쇼펜하우어도 죽겠다고 권총 들고 산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늙어 죽었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운명입니다.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면 되요.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그런 운명이 있습니다. 자기가 타고난 운명. 그냥 하는 거고, 그래서 그냥 가는 거지요.
10주년 행사를 하려고 했다가 쪽 팔려서(웃음). 이제 10년 되어 놓고 뭘 시끌벅적하게 하나, 됐다, 했지요. 대신 이다 극장에 상주단체로 선정되어서 작년에 참 좋은 경험 많이 했어요. 워크숍을 잘 하지 않는데 여건이 되니 낭독회 등, 수확이 아주 컸습니다.
그렇긴 한데, 짐, 일이라는 건 나누면 되요.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혼자, 혹은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희 극단은 운영위원들을 두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조언들을 받아서 같이 가는 거지, 내가 대표임네, 완장, 이런 건 별로. 그래서 비교적 좀 편안하게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원래 대표가 종신제였는데 곧 바꿀 생각입니다. 단원들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해 봐야 또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대표로서 이 극단을 이끌어 가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좀 더 긴장들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같이 사는 사람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을 때 굉장히 놀랍고. 어차피 연기하는 거니까. 굳이 새롭다, 그런 거 없이 그냥 편안하게 보시면 될 거에요. 제 역할에 코미디 코드는 없습니다. 허나 다른 도깨비라든지 볼거리들이 풍성합니다. 재미있는 연극이니까 얼마든지 부담 없이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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