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태규 “뮤지컬 풋내기,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세포까지 바람이 든 바람둥이부터 똘끼 가득한 양아치, 어리바리한 고등학생까지. 배우 봉태규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맡은 캐릭터는 대부분 평균을 살짝 빗나간, 조금은 모자라거나, 조금은 넘치는 독특한 인물들이었다. 봉태규는 그만의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로 이 캐릭터들에게 미워할 수 없는 친근함을 부여했고, 그는 충무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주연급 배우로 활동해 왔다. 그래서 봉태규 첫 뮤지컬 <폴링포이브>는 그가 지금껏 걸어오지 못한 영역이자 새로운 탐험과도 같다. 데뷔 11년, 첫 뮤지컬에 입문해 하루 하루 뮤지컬이란 고비를 넘고, 행복한 커튼콜을 맞는 봉태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세상의 모든 남자, 아담을 연기하다

첫 뮤지컬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뮤지컬이란 장르가 적응이 돼가나요?
사실, 적응을 하면 할수록 미칠 것 같아요. 하하.  연극을 할 때는 매 무대마다 노트를 하면서 바로 바로 고칠 수 있었어요. 뮤지컬은 적응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게 보이고, 고치려고 해도 지금 내 상황으론 힘드니까. 특히 노래에 대해서는 별별 레퍼런스를 다 찾아봤던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봤어요. 그래도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요. 잘못된 걸 알아도 바로 고치는 능력이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폴링포이브> 제작발표회 당시 봉태규씨 노래가 인상 깊었어요. 의외의 노래실력이라는 생각이 들던데요.
노래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음반까지 나왔었고, 어디 가서 노래 못 부른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어요. 그런데 몰랐던 거죠. 뮤지컬은 노래가 아니더라고요. 연기인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에요. 제작발표회 때는 극과는 상관없이 서서 노래를 하는 거라 편하죠. 하지만 무대에서는 마냥 곱게만 부르는 게 아니라 상황을 설명하면서 대사처럼 불러야 해요.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건 그 부분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한 것이 관객에게는 잘 전달이 안 되더군요. 그건 제 문제죠. 그런 평가가 듣기 싫다고 예쁘게 부른다면 더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작품을 위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노래가 처음 생각과는 너무 달랐군요. 만약 시작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그래도 아마 했을 거에요.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관심이 무척 많았어요. 지금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행복해요. 연극과는 또 다른 보람이 있어요. 워낙 힘들고 벽이 많으니까 한 회 한 회 끝난 뒤 만족감이 커요. 한 회 한 회가 고비거든요. 커튼콜 할 땐 항 상 그 안도감에 인사를 드려요. 그래서 더 행복하고. 

<폴링포이브>는 만약 아담이 사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이라는 발상이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배우로서 어떤 매력을 느꼈나요.
우선 접근 방식이 좋았어요. 로맨틱 코미디는 굉장히 많잖아요. 소재에 큰 차이가 없다면 보는 사람에게 확 다가가지 않는데, 정말 절묘하게 아담과 이브를 가지고 로맨틱 코미디를 덮었더군요. 또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신뢰가 갔고요.
 

공연을 보기 전에는 마냥 순진한 아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우직하고 남자다운 이브였어요.
작가가 말하려고 한 건 결국 세상의 모든 남자를 아담의 이름을 빌려서, 세상 모든 여자를 이브라는 이름을 써서 나타냈다고 봅니다. 아담이 순진무구하다는 텍스트에 갇혀 있으면 캐릭터 자체가 너무 밋밋할 것 같았고 연출님도 동의해 주셨어요. 배우라면 텍스트 안에 숨어 있는 것도 생각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점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앞으로도 점점 계속 변하지 않을까 합니다. 낮 공연이 다르고 저녁 공연이 다르고, 앞으로 남은 공연은 또 달라질 것 같아요.

봉태규씨 하면, 자연스러운 코믹 연기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이번 무대에서는 코미디를 자제하는 게 보이더군요.
연출님이 그렇게 의도 하셨기 때문에 호흡이나 대사에서 약간씩 표현하는 것 이외에는 자제하고 있어요. 저는 애드립을 좋아하지도 않고 굳이 극을 해쳐가면서 나서는 스타일도 아니라 전적으로 연출님에게 맞춰요. 이 작품은 이브가 주인공이고 아담은 서브거든요.  아담은 다른 캐릭터들을 매 장면마다 받쳐줘야 해요. 그래서 아담은 흐트러져서도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되요. 다른 배우들이 워낙 연기를 잘 하기 때문에 저는 중심 잡기가 정말 좋죠. 아쉬운 건 하나. 상훈이 형이나 대종이 형과 직접 대면하는 씬이 별로 없다는 것. 뭔가 더 시너지를 낼 수 있었을텐데요.

"매일 공연장 출근하며 초심 찾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일상 연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줬습니다. 이번 뮤지컬에선 봉태규씨 연기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 같은 것?
연극을 할 때는 부담감이 없었어요. 자신감도 있었고. 그런데 뮤지컬은 뮤지컬만의 시스템이 있고, 장르에 맞는 연기가 있고, 개인적으로 그게 맞는 건가 싶어도 우선 해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담은 후반으로 갈수록 나이가 들지 않는 걸 표현해야 하고, 이브는 그에 비해 나이를 먹어가는 상황이라 같은 대사라도 힘 있게 해야 관객들에게 전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기가)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은 그것 때문일 겁니다. 무대 연기를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무대 연기를 하는 것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은 것도 있지만, 완벽하게 무대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한 건 처음이죠.

가장 신경 쓰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넥스트 투 미'라는 노래 할 때. 아담, 이브, 천사가 독백처럼 노래를 부르는데 말 그대로 노래만 가지고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장면이거든요. 가만히 서서 감정까지 전달해야 하는데다 아담이 제일 앞에 나와 있어서 부담스러운 장면이기도 해요. 정말 다른 배우들하고 비교가 되요(웃음).

실수담이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진짜 많아요. 음이탈도 많았고, 작사한 적도 있고요(웃음). 그 중에서 천사와 대화를 하는 씬이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상훈이 형과 혁주 누나가 웃음이 터진 겁니다. 이 씬에서 아담이 확실하게 잡아주지 않으면 엔딩까지 이어지기가 힘들어서 항상 긴장하면서 연기를 해요. 이 상황에 상훈이 형이 저에게 다가오는데 이미 웃움을 참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거에요. 귓속말을 하는 씬에서 그 웃음을 저에게 퍼트려버리는 겁니다. 제 귀에다 대고. 전 다음 대사가 다 중요한데!(웃음) 간신히 웃음은 참았지만 정말 위기였죠(웃음). 

곧 영화가 개봉한다고 들었어요.
‘청춘 그루브’란 영화에요. 저에겐 한 번 전환점이 될만한 작품이에요.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모습과는 또 다른, 코미디는 일절 없고 어둡고 부정적인, 청춘 끝자락에 있는 친구를 연기했어요. 흥행을 하든 하지 않든 분명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을 법한 작품이어서 기대하고 있어요.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이후 많은 영화에서 쉬지 않고 모습을 보였습니다. 최근엔 그 속도를 늦추는 것 같은데요.
전엔 단순히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안 좋은 일들을 겪으면서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스스로 원망도 해보고 후회도 해보고. 그러면서 얻은 결론은 내 탓이고,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서두르니 시야가 좁아지고, 주위를 힘들게 하더군요. 더 신중하고 느긋해야겠다.. 그때부터 내가 신경 쓰지 말아야 할 것들을 놓기 시작했어요. 좋은 차라든지, 옷이라든지. 내가 누구인데, 이런 것들을 버렸어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많은 분들이 왜 활동을 하지 않냐고 묻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데뷔 10년을 넘긴 배우로서 그런 생각들은 쉽지 않을텐데요.
<폴링포이브>를 하면서 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전 같았으면 그렇지 않았을 거에요. 부정에 부정을 더했을 거에요. 저는 공연의 막내 보람이한테도 노래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봐요. 이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가장 쉬운 일이에요. 어디에 가서 지적을 받는다는 게, 다르게 생각하면 행복한 일이 아닌가. 특히 11년 차 배우가 지적을 받고 고치려고 하는 게 저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공연이 없는 날에도 공연장에 온다고요.
공연을 매일 보면서 초심을 떠올려요. 내가 영화 처음 시작할 때도 이랬지. 촬영이 없을 때도 촬영장에 나갔거든요. 잘 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모르니까 나갔던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러지 않고 있더라고요. 내가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었구나. 지금은 사실 스트레스도 받지만 행복하기도 해요.

이 공연이 끝나면 또 다른 봉태규씨와 마주하겠네요.
그러겠죠. 혁주 누나에게도 이야기했어요. 제가 감히 너무 잘 하려고 한 것 같다고. 인정 해야할 부분은 인정 해야겠다. 나는 풋내기니까 더 열심히 하겠다고.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하는 거죠.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스튜디오 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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