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스틸러 ②] 무대의 달인, 김원해

주연과 조연의 경계 없이 객석의 눈과 마음까지 사로잡는 빛나는 배우 열전 ‘씬스틸러’. 배역과 장면과 작품에서 살아 숨쉬는 배우들을 플레이디비가 만납니다.

“도대체 왜 저를 인터뷰 해요?”, 김원해 배우와의 인터뷰는 <키사라기 미키짱> 김남진이 아닌 키무라 타쿠아 김원해를 인터뷰 하는 이유, ‘현재 작품 활동 없음’의 공식 실업상태인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유, “나는 무명배우다”를 외치는 김원해를 인터뷰하는 근본적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늘근 도둑 이야기><짬뽕><오빠가 돌아왔다><로미오 지구 착륙기><키사라기 미키짱>을 관람했던 당신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아니, 어떻게 김원해 배우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나요”.


관객들은 그에게 “김원해 배우는 그 동안 어떤 작품을 했던 건가요?”라고 묻는다. 뼛속부터 뿜어져 나오는 애드립은 경력배우의 내공을, 낯선 얼굴은 신인배우의 신선함을 선사한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전 배우였어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시작하면서부터 ‘아,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구나’라는 걸 알았죠. 서울예대 88학번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1기로 한예종 무용과에 입학했어요. 10년 동안 <난타>를 하느라, 졸업은 못했지만요.”

청춘의 팔 할을 ‘몸으로 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 흥미, 상상으로 보냈다. 배우가 주목 받을 수 없는 <난타>를 10년 이상 지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친구들이랑 사물놀이를 접목한 넌버벌 퍼포먼스에 관심이 많았어요. 몸으로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통했던 친구들이었거든요. 리더였던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제가 리더가 됐는데. 제 역량이 부족해서 그 팀이 와해가 됐어요. ‘몸’으로 하는 무대에 대한 막연한 환상, 꿈이 있었어요. 그 환상을 <난타>를 통해서 채우고 싶었고, 정말 재미있게 했어요. 우리 나라에서는 최초로 시도했던 거니까, 제가 하는 것들이 역사가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지금은. 많이,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너무 오래했어요. (웃음) 막연한 후회가 있다고 할까요. <난타>를 하면서 상대적으로 좋은 기회들을 놓쳤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선배, 후배들이 다른 작품을 하면서 각자의 내공을 쌓은 시기에 제 10년이 남긴 건 ‘<난타>배우 10년’ 이거였으니까요.”

<짬뽕><늘근도둑 이야기><오빠가 돌아왔다><키사라기 미키짱>등 ‘배우가 보이는’ 무대에 올랐던 5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김원해의 존재감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저 배우, 어디에서 나타난 거야?”
“<짬뽕>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잊혀지는 역사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키사라기 미키짱>같은 경우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창작극만 하겠다’는 신념으로 수많은 번역극들을 거절했었는데, 이건 일본 작품이잖아요. 제작사 대표, 피디분이 “이 작품 후회하지 않을 거다, 김원해 배우와 정말 잘 맞는다”고 확고한 말과, 이해제 연출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했어요.”

일당 오천 원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던 <짬뽕>, 후배들을 챙기느라 돈을 내면서 공연해야 했던 동문공연 <로미오 지구 착륙기>. <키사라기 미키짱> 덕분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아내에게 ‘돈’을 갖다 줄 수 있었다.


“<키사라기 미키짱>이 독도 되고, 약도 된 것 같아요. 약이 된 부분은 올라간 개런티. 독은 올라간 개런티로 인해서 다른 작품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에요. (웃음) 저도 아예 돈을 받지 않더라도 <짬뽕>처럼 배우들의 의지, 의식이 반영된 작품을 선택하거나, 아예 돈을 벌 공연을 선택해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중간한 작품에 출연하고 싶지는 않아요. 차라리 쉬자라는 생각. 연극 신작이 많이 없다는 것도 안타깝고, 극장주인들만 돈을 벌고 있는 지금의 시스템도 답답해요. 기가 막힌 실정 이에요. 카드로 말하면,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거죠.”

작품을 해야 한다는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어정쩡한 작품은 하지 않는다’는 작품을 하지 않는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불행하게도 쉬고 있어요. 최근에는 마트에서 쌀 판매원으로 일했었어요. 집에 가만히 있기도 그렇고. 여기는 시간당 오 천원을 주거든요, <짬뽕> 일당이 오 천원이니까 돈으로만 따지만 열 배를 더 줘요. (웃음) 쌀을 팔 때도 그냥 일반적으로 팔지 않고 굉장히 재미있게 팔아요. 배우 본능이 있어서 ‘내가 저 사람에 쌀은 못 팔지언정, 이 사람들을 다 웃기겠다’는 생각으로 시끌벅적하게 하거든요. 총각인 줄 알고 대쉬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직진으로 달려온 길, 앞으로도 그렇게


<굿모닝 프레지던트><로맨틱해븐>, 학생주임으로 출연했던 <써니>까지. 스크린에서도 그의 감초연기는 빛을 발했다.

“아무도 저를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 서울예대 동문인 장진 감독은 ‘배우’라고 이야기해주고, 관심을 가져준 사람이에요. 영화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도 것도 장진 감독이고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해요. (웃음)”

“스무 살 이후부터는 배우 말고 다른 모습을 그려본 적이 없다”는, 오로지 하나의 길만 바라 본 김원해에게 ‘배우’, ‘무대’라는 이름이 풍족한, 따뜻한 의미를 준 적은 없었다. 불혹을 넘은 나이. “황당할 만큼 많은 기획사에서 영입제의가 들어온다”는 말처럼. 요즘이 배우 김원해에게 새로운 전환기임은 분명하다.

“서른 중반 때만 하더라도 ‘다른 친구들은 유명해졌는데 나는 왜 이런가, 뭐가 잘못 된 건가’ 고민하면서 배 아파한 적도 많았고,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10년 동안 했던 <난타>를 끝내고 5년 정도 활동을 해보니까 ‘애를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시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전 배우였고, 딱 지금의 상황이었어요. 지금이 그때와 비교해서 나빠지지 않았거든요. 앞으로 10년도 더 발전했으면 발전했지, 더 나빠질 것 같진 않아요. 큰 욕심은 없어요.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 와중에 저와 잘 맞는 작품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더 늙어서는 아내와 여행을 다니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시간만 가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스튜디오 춘_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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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3

  • leeyerin12** 2011.09.03

    김원해님 너무 좋아요~ 연기도 잘하시고ㅠㅠ

  • A** 2011.08.30

    어디 마트인지 남겨주세요~ 저도 쌀 떨어져서 사러가야합니다!

  • A** 2011.08.30

    그 마트 어딘지......나도 가서 쌀 살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