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빈 "지난 1년 동안 '여유' 배워 왔어요"
작성일2011.09.27
조회수19,309
지난해 6월 연극 <레인맨> 이후, 한동안 무대에서 배우 고영빈의 모습을 찾기란 어려웠다. 알음알음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건 얼마 후였다. 남들이 보기엔 갑작스럽게 떠난 미국 행.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 여의 시간을 뒤로 하고 그가 다시 국내 무대에 복귀한다. 지난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봤다는 작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가 그의 복귀작.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의 '치열한' 오후 연습 뒤에 가진 잠깐의 인터뷰. 한결 편안한 미소를 짓는 고영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디다 이야기 하고 가야 해요? 하하하.”
어느 날 문득 미국 행을 택했던 고영빈의 반문에 장난끼가 묻어났다. 지난해 연극 <레인맨> 이후 예정된 스케줄도 양해를 구해 취소하고 갑작스럽게 떠난 지 1년. 귀국하자마자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연습에 뛰어들어 4주차를 넘기고 있었다.
“작년에 초연 중인 이 작품까지 보고 미국으로 갔어요. 주변 분들도 이 역할(토마스 위버)이 어울리겠다고 말씀을 하셨고. 마침 한국으로 들어올 때 즘 연락이 왔어요.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해보자 싶었죠.”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의 연습실은 즐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다. 특히 오랜만에 한국 무대 서는 그가 더 의욕이 솟는 건 당연할 지 모른다. 고영빈, 이석준, 이창용, 카이처럼 '형, 동생'으로 이뤄진 이 작품의 연습은 좀 더 특별해 보였다.
“전 연습 때 저만의 단계를 거치는 버릇이 있어요. 처음부터 짠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주변분들이 볼 때 공연이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할 정도로 천천히 밟아나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이번 작품은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어서 심적으로 편해요. 잘 할 수 있다고 믿어주시는 것에 힘을 얻기도 하고요.”
고영빈은 이번 무대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하나 있다. “어떤 배우가 서도 한 가지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역할에 너무 많은 캐스트가 나오는 것엔 반대해요. 누가 했을 땐 이렇고, 누가 했을 땐 저렇고. 판이하게 갈리는 건 좋지 않다고 봐요. 그 공연 하며 그 배우가 떠오를 수 있는 시스템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작품은 그래도 다행인 게, (배우들이) 형과 동생이거든요. 어떻게 맞춰 나갈지 함께 연습할 수 있어서 다른 공연들처럼 무대가 달라지진 않을 것 같아요.”
지난 1년 간 뉴욕 맨하탄에 머물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여유로움이라는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닌 듯, 그의 얼굴엔 내내 웃음 띤 편안함이 걸려 있었다. 2000년 <포기와 베스>로 데뷔해 2003년 일복 극단 사계에 입단, 이후 2006년 <바람의 나라>로 국내 무대에 컴백하는 등 지난 10여 년 이상 줄곧 무대를 놓지 않고 달려 온 그다. 지난 해 무작정 미국 행을 감행한 건 어쩌면 본능적으로 쉼표를 찍어야 함을 느껴서 일지도 모른다. 배우라 간직하던 고민과 의문을 매듭 지어야 할 때도 됐다고도 생각했다.
“한 공연이 올라가기 전에 계속 트라이아웃을 거치다, 아 이건 완성된 작품이다 싶을 때 관객 앞에서 장기 공연을 하는 것. 이게 제가 가장 바라는 모습이었어요. 짧게 단기 공연을 하면 배우는 그 다음 공연은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하고, 쉬지 않고 달려야 할 것 같죠. 사실상 배우는 지치고 소모돼요. 이런 회의감을 느껴서 미국엘 갔어요. 정해진 스케줄도 있는데 양해를 구하고 소리 소문 없이 떠났죠.”
그는 그 동안 슬금슬금 생긴 “내가 너무 유별난 건지, 유난을 떠는 건 아닌지”란 고민에 직접 맞닥뜨리고 싶었다. 브로드웨이의 백스테이지가 보고 싶고, 무대의 워크샵에 참여해 보고 싶고, 배우들의 삶과 제작 과정을 보고 싶기도 했다. 단 한번도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떠나 본 적 없었던 그였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가방을 싸 뉴욕으로 날라갔다. 도착해 언어를 익히며 정보를 수집하는데 주력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성공적인 한 해였던 것 같아요. 뉴욕에 가보니 언어가 부족해서 불편한 건 없더군요. 그래서 괜찮다고 하는 액팅 스쿨 워크샵도 신청해서 보고, 공연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것도 가서 보고 NYU에 한국 친구들이 많아서 그들의 소개로 졸업작품, 중간발표를 어떻게 준비하는 지도 봤죠. 공연도 많이 보고. 그러다 보니 1년이 훌쩍 가더군요.”(웃음)
무엇보다 배우 고영빈이 아닌, 인간 고영빈을 위하는 방법을 발견함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뉴욕이 싫었어요. 지저분하고 거지도 많고. 빈부격차가 굉장히 커서 맨하탄 서쪽은 길도 지저분하고 지하철엔 쥐도 지나다녀요. 처음엔 나 혼자 깨끗한 것처럼 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나도 자연스럽게 동화되더라고요. 청바지 하나를 한달 내내 입고 다니는데도 인식 못했고, 머리에 새치가 자라도 상관 안 했어요. 그 전엔 무조건 깨끗하고 좋은 것만 찾았었는데 겉으론 깔끔하게 다니지만 내 스스로 그걸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던 것 밖에 없었다는 걸 알았어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소박한 삶을 누리는 것. 삶은 돈으로 누리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누리는 것임을 그곳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어요. 참 좋았죠.”
배우로서 성공하기 보다 내 삶을 멋지게 사는 걸로 목표가 바뀌자 오히려 배우로서의 폭도 넓어짐을 느꼈다.
“인간 고영빈은 구속 받길 싫어하고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사람인데, 배우 고영빈은 정확하고, 단정하고, 흐트러짐을 스스로 용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은 이걸 합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걱정을 놔버리니 오히려 더 좋은 컨디션이나 아이디어로 매진할 수 있겠더군요.”
물론 한국으로 돌아올 때가 되자 약간의 걱정과 함께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지인들과도 연락이 끊긴지 몇 달이 넘어가는 시점.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할 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 때 즘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에서 연락이 왔다. 통장 잔고도 보고, 지나온 시간도 생각하고, 가면 다시 못 올 수 있는데 미련이 남는 건 없는지 스스로 질문해 봤다.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와 입국 바로 다음주부터 연습에 참여했다. 좋은 배우들과 넘치는 열정에 그는 요즘 “의욕충만”이라며 웃는다.
이 작품 이후로도,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보아온 고영빈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의 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저는 배우이고, 배우를 바라봐주시는 관객, 연출가들의 눈을 믿어요. 억지로 욕심 내지 않아요. 그분들이 바라봤을 때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이라고 하면 거부하지 않을 거에요. 만약 어느 한 연출가가 네 안에 다른 걸 꺼내 볼래? 그럼 좋아요. 하지만 타고난 모습과 성격이 싫어서 일부러 바꾸려고 하지 않을 거에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에게, 유학 덕분에 실력이 늘었는지 관심을 갖지 않냐고 묻자 바로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니까 플레이디비가 써주세요. 저 공부 안 했습니다. 자유인으로 시간을 즐기다 왔어요!”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이민옥(okjassi@daum.net) /오디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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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다 이야기 하고 가야 해요? 하하하.”
어느 날 문득 미국 행을 택했던 고영빈의 반문에 장난끼가 묻어났다. 지난해 연극 <레인맨> 이후 예정된 스케줄도 양해를 구해 취소하고 갑작스럽게 떠난 지 1년. 귀국하자마자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연습에 뛰어들어 4주차를 넘기고 있었다.
“작년에 초연 중인 이 작품까지 보고 미국으로 갔어요. 주변 분들도 이 역할(토마스 위버)이 어울리겠다고 말씀을 하셨고. 마침 한국으로 들어올 때 즘 연락이 왔어요.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해보자 싶었죠.”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의 연습실은 즐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다. 특히 오랜만에 한국 무대 서는 그가 더 의욕이 솟는 건 당연할 지 모른다. 고영빈, 이석준, 이창용, 카이처럼 '형, 동생'으로 이뤄진 이 작품의 연습은 좀 더 특별해 보였다.
“전 연습 때 저만의 단계를 거치는 버릇이 있어요. 처음부터 짠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주변분들이 볼 때 공연이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할 정도로 천천히 밟아나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이번 작품은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어서 심적으로 편해요. 잘 할 수 있다고 믿어주시는 것에 힘을 얻기도 하고요.”
고영빈은 이번 무대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하나 있다. “어떤 배우가 서도 한 가지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역할에 너무 많은 캐스트가 나오는 것엔 반대해요. 누가 했을 땐 이렇고, 누가 했을 땐 저렇고. 판이하게 갈리는 건 좋지 않다고 봐요. 그 공연 하며 그 배우가 떠오를 수 있는 시스템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작품은 그래도 다행인 게, (배우들이) 형과 동생이거든요. 어떻게 맞춰 나갈지 함께 연습할 수 있어서 다른 공연들처럼 무대가 달라지진 않을 것 같아요.”
지난 1년 간 뉴욕 맨하탄에 머물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여유로움이라는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닌 듯, 그의 얼굴엔 내내 웃음 띤 편안함이 걸려 있었다. 2000년 <포기와 베스>로 데뷔해 2003년 일복 극단 사계에 입단, 이후 2006년 <바람의 나라>로 국내 무대에 컴백하는 등 지난 10여 년 이상 줄곧 무대를 놓지 않고 달려 온 그다. 지난 해 무작정 미국 행을 감행한 건 어쩌면 본능적으로 쉼표를 찍어야 함을 느껴서 일지도 모른다. 배우라 간직하던 고민과 의문을 매듭 지어야 할 때도 됐다고도 생각했다.
“한 공연이 올라가기 전에 계속 트라이아웃을 거치다, 아 이건 완성된 작품이다 싶을 때 관객 앞에서 장기 공연을 하는 것. 이게 제가 가장 바라는 모습이었어요. 짧게 단기 공연을 하면 배우는 그 다음 공연은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하고, 쉬지 않고 달려야 할 것 같죠. 사실상 배우는 지치고 소모돼요. 이런 회의감을 느껴서 미국엘 갔어요. 정해진 스케줄도 있는데 양해를 구하고 소리 소문 없이 떠났죠.”
그는 그 동안 슬금슬금 생긴 “내가 너무 유별난 건지, 유난을 떠는 건 아닌지”란 고민에 직접 맞닥뜨리고 싶었다. 브로드웨이의 백스테이지가 보고 싶고, 무대의 워크샵에 참여해 보고 싶고, 배우들의 삶과 제작 과정을 보고 싶기도 했다. 단 한번도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떠나 본 적 없었던 그였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가방을 싸 뉴욕으로 날라갔다. 도착해 언어를 익히며 정보를 수집하는데 주력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성공적인 한 해였던 것 같아요. 뉴욕에 가보니 언어가 부족해서 불편한 건 없더군요. 그래서 괜찮다고 하는 액팅 스쿨 워크샵도 신청해서 보고, 공연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것도 가서 보고 NYU에 한국 친구들이 많아서 그들의 소개로 졸업작품, 중간발표를 어떻게 준비하는 지도 봤죠. 공연도 많이 보고. 그러다 보니 1년이 훌쩍 가더군요.”(웃음)
무엇보다 배우 고영빈이 아닌, 인간 고영빈을 위하는 방법을 발견함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뉴욕이 싫었어요. 지저분하고 거지도 많고. 빈부격차가 굉장히 커서 맨하탄 서쪽은 길도 지저분하고 지하철엔 쥐도 지나다녀요. 처음엔 나 혼자 깨끗한 것처럼 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나도 자연스럽게 동화되더라고요. 청바지 하나를 한달 내내 입고 다니는데도 인식 못했고, 머리에 새치가 자라도 상관 안 했어요. 그 전엔 무조건 깨끗하고 좋은 것만 찾았었는데 겉으론 깔끔하게 다니지만 내 스스로 그걸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던 것 밖에 없었다는 걸 알았어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소박한 삶을 누리는 것. 삶은 돈으로 누리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누리는 것임을 그곳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어요. 참 좋았죠.”
배우로서 성공하기 보다 내 삶을 멋지게 사는 걸로 목표가 바뀌자 오히려 배우로서의 폭도 넓어짐을 느꼈다.
“인간 고영빈은 구속 받길 싫어하고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사람인데, 배우 고영빈은 정확하고, 단정하고, 흐트러짐을 스스로 용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은 이걸 합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걱정을 놔버리니 오히려 더 좋은 컨디션이나 아이디어로 매진할 수 있겠더군요.”
물론 한국으로 돌아올 때가 되자 약간의 걱정과 함께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지인들과도 연락이 끊긴지 몇 달이 넘어가는 시점.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할 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 때 즘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에서 연락이 왔다. 통장 잔고도 보고, 지나온 시간도 생각하고, 가면 다시 못 올 수 있는데 미련이 남는 건 없는지 스스로 질문해 봤다.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와 입국 바로 다음주부터 연습에 참여했다. 좋은 배우들과 넘치는 열정에 그는 요즘 “의욕충만”이라며 웃는다.
이 작품 이후로도,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보아온 고영빈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의 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저는 배우이고, 배우를 바라봐주시는 관객, 연출가들의 눈을 믿어요. 억지로 욕심 내지 않아요. 그분들이 바라봤을 때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이라고 하면 거부하지 않을 거에요. 만약 어느 한 연출가가 네 안에 다른 걸 꺼내 볼래? 그럼 좋아요. 하지만 타고난 모습과 성격이 싫어서 일부러 바꾸려고 하지 않을 거에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에게, 유학 덕분에 실력이 늘었는지 관심을 갖지 않냐고 묻자 바로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니까 플레이디비가 써주세요. 저 공부 안 했습니다. 자유인으로 시간을 즐기다 왔어요!”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이민옥(okjassi@daum.net) /오디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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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님 2011.09.27
인터뷰 잘 읽었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