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과 조윤성의 만남? "굉장히 재미있을 거에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이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을 '천재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조윤성과 함께 한다. 그 공연은 바로 오는 20~22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루시드폴 위드 조윤성 세미-심포닉 앙상블'. 루시드폴은 섬세한 가사와 부드러운 선율로 익히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조윤성은 탁월한 연주 실력을 자랑하며 국내외에서 활동중인 재즈피아니스트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합동공연은 어떤 느낌일까? 루시드폴 정규 5집 <아름다운 날들>에 수록된 '어부가' '그리고 눈이 내린다' '불' 등을 들으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유희열의 소개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루시드폴 5집 작업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음악 스타일에 익숙해졌고, 그 결과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고. 이번 공연에는 위의 곡들뿐 아니라 재즈, 팝, 라틴 음악 등 루시드폴과 조윤성이 함께 편곡하고 연주하는 다채로운 음악이 가득 펼쳐질 예정이다. 풍성하면서도 독특한 무대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이들을 미리 만났다.

 '세미-심포닉 앙상블' 이라는 이번 공연의 컨셉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루시드폴 : 저와 윤성씨가 함께 만드는 콜라보레이션 공연이에요. 루시드폴의 곡을 조윤성씨가 해석한 것도 있고,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곡도 있어요. 둘 다 좋아하는 브라질 음악을 편곡해서 새로운 스타일로 노래, 연주하는 곡도 있고요. 이번 공연에서는 제 노래 중에서도 잘 안 알려진 곡, 정규앨범에도 없는 곡을 많이 부를 거에요. 조금 생소할 수는 있지만, 이번 공연이 아니면 듣기 힘든 '레어 아이템'을 만나실 수 있어요. 싱어송라이터와 음악 프로듀서가 함께 만드는 공연이 흔치 않기 때문에, 이번 공연은 루시드폴을 잘 모르시는 분들께도 독특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희가 잘 해야겠지만, 굉장히 재미있을 거에요.

 루시드폴의 예전 앨범에 있는 '샘(Sam)' '시간' 같은 노래도 부르실 예정인가요?

루시드폴 : '샘', '시간'은 안 부를 거에요. 일단 조윤성씨와 같이 작업하기에 재미있을 만한 곡을 골랐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평범하거나 편곡이 군더더기가 되는 곡은 제외되더라고요. 반면 3집에 수록된 '당신 얼굴, 당신 얼굴'은 편곡을 해보니 굉장히 신선했어요. 5집에 있는 곡들은 앨범에서처럼 연주하겠지만, 그 외에는 덜 알려진 곡들이 많아요. 어차피 이번 공연 자체가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이런 곡은 전혀 몰라'하는 분들이 '이런 곡도 있었나?'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이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악기가 많이 들어갈 것 같아요.

루시드폴 : 곡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밴드 구성이 20인조 이상 될 것 같아요. 기본 팝 밴드에 퍼커션, 스트링, 퍼스트·세컨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까지 더하면 10인조 이상이 되고 거기에 프렌치혼, 트럼본, 플룻, 윈디 인스트루먼트까지 등장하니까요.

조윤성 : 플룻이나 프렌치혼, 트럼본은 팝에 잘 나오지 않는 악기들이에요. 브라질 음악이나 재즈에서는 많이 쓰죠. 플루겔혼은 트럼펫처럼 생겼는데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악기에요. 남자 보컬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어울리죠. 의외로 굉장히 잘 어울려요. 듣는 사람에게 새로운 음악적 색깔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혹시 조윤성씨도 이번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시나요?

조윤성 : 같이 부르는 곡은 없어요. 전 노래를 진짜 못해요. 가끔 솔로 연주를 하면서 노래하는 버릇이 있는데, 사람들이 말리더라고요.(웃음) 리차드 보나 (Richard Bona)라는 베이시스트가 있는데, 이 사람은 노래에 흑인 특유의 느낌 있는 허밍을 넣어요. 이런 건 짤막하게 있을 것 같아요.


 편곡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조윤성 : 윤석씨가 쓴 곡을 일단 같이 들어봐요. 그러면 그 순간 떠오르는 선율이 있죠. 또 집에 가서 윤석씨가 보내준 음원을 들으면서 어떤 것이 어울릴지 피아노를 쳐보기도 하고요. 제가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작업할 때도 있어요. 그래야 반주가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 편한지를 알 수 있거든요.

 서로 음악적 스타일이나 의견이 잘 맞는 편인지 궁금해요.

루시드폴 : 처음에는 윤성씨의 연주를 듣고 굉장히 당황했어요.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죠. 누구나 한 분야에 오래 있다 보면 타성에 젖잖아요. 저도 가요를 해오면서 나름대로 익숙해진 코드진행이 있고요. 처음 윤성씨가 편곡한 '그리고 눈이 내린다'를 들었을 때는 첫 코드가 너무 생경해서 '이게 뭐지' 했어요. 오늘 그 때 윤성씨가 보내준 데모를 다시 들어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그 동안 윤성씨를 더 잘 알게 되고, 윤성씨의 연주를 많이 듣다 보니 이해가 생긴 거죠. 지금은 윤성씨가 제 곡을 편곡해서 들려주거나 어떤 연주를 할 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조윤성 : 예를 들어 제가 루시드폴의 곡에 '아마존 코드' 같은 독특한 화음을 넣는 거에요. '아마존 코드'라는 건 제가 붙인 이름인데, 브라질 팝에 많이 들어가는 화음이에요. 화음 자체만 들었을 땐 낯설지만, 한발 짝 물러서서 보면 전체 음악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죠. 앞으로 제가 윤석씨 노래를 편곡하면서 이런 요소를 많이 넣을 거에요.

 그럼 루시드폴은 이제까지 곡을 쓸 때 화성학적인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그냥 느낌대로 작업해오신 건가요?

루시드폴 : 거의 그랬죠. 윤성씨는 어떤 멜로디가 좋으면 그게 왜 좋은지 이론적인 이유를 아실 거에요. 반면 저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많이 들어본 것 같고, 코드를 찾다 보니 손가락이 이렇게 되고... 이런 식으로 곡을 쓰고 있죠.

조윤성 : 제가 윤석씨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곡을 쓸 때 가사를 먼저 생각하고 화음을 붙이나요, 아니면 화음 진행이나 멜로디를 먼저 떠올리나요?

루시드폴 : 대개 화음진행을 먼저 정하고, 그 다음으로 멜로디와 가사를 쓰죠. 멜로디와 가사는 같이 떠오를 때도 있는데, 요즘은 가사가 조금 느리게 생각나요. 3집까지는 그 세 가지가 같이 나올 때도 있었는데, 점점 음악이 앞에 나오고, 가사는 뒤로 가더라고요.

조윤성 : 제가 느낀 그대로네요. 루시드폴 음악을 1집부터 들어보니 화성학의 변화가 느껴지더라고요. 화성이 화려해지고 음악적인 차원이 달라져요. 특히 5집에서 그 변화가 확실히 느껴지죠. '이건 가요에 나올 수 없는 화성인데?' 싶은 화음이 나오거든요. 그만큼 화성이 많이 발전하고, 음악의 차원이 바뀌어가는 것 같아요.

 루시드폴이 '가사가 점점 뒤로 밀려난다'고 하셨는데, 혹시 예전처럼 가사가 금방 떠오르지 않아 아쉽지는 않나요?

루시드폴 : 아쉽다기보다, 어떤 아련함이 있어요. 지나간 순간을 추억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련함이 있잖아요. 1~3집 작업을 할 때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가사와 모든 것이 한 번에 떠오르는 경우가 있었어요. 이 얘기를 하면 주위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작업을 했던 때가 있거든요. 당시 쓴 음악이 화성적으로 다채롭진 않았겠지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사람도 변하니까 곡을 쓰는 방법이나 곡을 대하는 태도, 모든 게 늘 같을 수는 없겠죠.


루시드폴은 이번 공연이 올해 마지막 공연이라고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루시드폴 : 지금까지 매년 여름, 겨울마다 공연을 했는데, 올해 들어 잠깐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충전 없이 공연을 계속하다 보니 일단 내 자신이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조금 쉬었다가 하려고요.

 오랫동안 많은 공연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언제인가요?

루시드폴
: 소규모 공연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화여대 후문 근처 '빵'이라는 클럽에서 제대 기념 공연을 했는데, 당시 1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에 사람이 가득 찼어요. 마지막에 '그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네'라는 곡을 불렀는데 갑자기 모든 사람이 다 따라 부르는 거에요.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이라서 굉장히 놀랐어요. 그게 벌써 십 년 전 일이네요. 그렇게 작은 공간에서 기타 하나만 들고 하는 공연이 나한테 가장 어울리는 걸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앞으로도 소극장 공연은 계속 할 것 같아요.

 조윤성씨는 이제까지 웅산, 임경은 등 여러 가수들과 협연하셨죠. 앞으로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은 누구인가요?

조윤성 : 꿈이 있다면, 미국에서 잘 알려진 흑인가수들과 함께 작업하는 거에요. 학교에 다닐 때는 흑인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흑인들과 함께 공연할 기회가 많았어요. 백인들의 음악스타일이 체계적이고 타이트한 반면, 흑인들은 좀 더 캐쥬얼하고 긍정적인 면이 있어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같은 아티스트들과 한번 작업해보고 싶어요.

 공연까지 약 2주가 남았네요. 공연을 기다리시는 분들께서 루시드폴 음악과 함께 들을만한 앨범을 추천해주세요.

루시드폴 : 류이치 사카모토와 모렐렌 바움 부부가 함께 한 <까사(CASA)>라는 앨범이 있어요. 브라질의 국민 작곡가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에게 바친 헌정앨범인데,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담겼어요.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듣고 류이치 사카모토를 다시 평가하게 됐죠.

조윤성 :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리버(river)>라는 앨범을 추천하고 싶어요. 메인은 팝 음악인데 오케스트라가 돋보이는 곡도 있고, 현악기를 위주로 한 편곡도 있고, 알앤비(R&B) 스타일도 있어요.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허비 행콕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보여주죠. 독특한 편곡이 많아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제게 큰 동기부여를 해준 앨범이에요.

 앞으로도 함께 앨범작업을 할 계획이 있나요?

루시드폴 : 일단은 가능성은 다 열려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공연에 완전 몰입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어요. 뭐가 됐든 계속 같이하겠죠.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안테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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