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한 걸음으로 존재 알린 기대주, <청춘예찬> 김동원
작성일201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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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받은 첫 인상은 그가 무척이나 우직하다는 것이었다. 연기를 배우고 싶어 무작정 대학로에 찾아가 잡일부터 했다는 이야기부터 '화장실이 좋아서' 찾은 아르코 극장에서 만난 또 다른 세상, 그리고 <뜨거운 바다><청춘예찬>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겪고 또 배워온 이 배우가 앞으로 차곡차곡 밟아나갈 길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스무 살 무렵 불현듯 떠오른 배우의 꿈
무작정 찾아간 대학로서 잡일만 서너 개월
<청춘예찬>에서 스물 두 살의 청년으로 분해 열연 중인 김동원, 먼저 그는 스무 살 무렵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궁금했다. '막 까져서' 놀지는 않았지만, 학교 생활이 늘 재미없었다는 그는 지루한 고교생활을 끝내고 경영학과에 입학해 한 학기를 다 마쳤을 때쯤에야 문득 연기자의 꿈을 떠올렸다고.
"재미가 없더라고요. 평범한 대학교에 학점도 딱 3.0. 뭐지?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연히 배우나 영화 쪽 일을 한번 해볼까? 그 마음이 갑자기 간절해졌어요."
어린 시절부터 몰래 할머니 방에 숨어들어가 '길버트 그레이프' '빌리 엘리어트' 등 '주말의 명화'를 두근거리며 보곤 했던 그는 그렇게 돌연히 떠오른 생각에 이끌려 무작정 휴학계를 내고 대학로로 향했다. 그 때까지 제대로 된 공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TV에서 배우들이 '대학로에서 연기했다'고 얘기하는 걸 보고 막연히 연기하려면 대학로에 가야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수원(집)에서 대학로로 가는 길이 왠지 여행 떠나는 기분도 들고…스무 살짜리 애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뭔가 스스로 하고 싶다는 의지로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처음 대학로를 찾아간 날은 공연이 없는 월요일이었다. 유일하게 문이 열린 곳은 어느 개그공연을 하는 극단이었고, 그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음날부터 그곳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포스터도 붙이고, 지하철의 잡상인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그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 곳은 깨끗한 화장실이 좋아보여 찾아간 아르코 극장.
"일요일 낮이었는데,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나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거에요. 뭔데? 이 공연은 뭐지? 싶었어요. 그래서 맨날 포스터를 붙이면서 다녔던 그 길을 쭉 한 바퀴 걸었어요. 대학로부터 성균관대학교 뒤쪽까지. 아, 다른 공연도 많구나, 이게 다가 아니구나…내가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해봐야겠다, 연극영화과도 들어가보자, 하는 욕심이 생겼죠."
그렇게 전공을 바꿔 들어간 학교는 그전과는 전혀 달랐다. "완전 좋았죠. 일단 나와 비슷한 애들이 있다는 것도 즐거웠고, 수업도 다르고. 또 전에 했던 잡일들이 은근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떨리면서도 '아 맞다, 음향은 이렇게 했지, 무대에 이렇게 섰지' 하면서 자신감도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조금씩 머리가 커지면서 두려움이 생기긴 했지만. 진짜 재미있었어요."
서른 앞두고 막막하기만 했던 날들,
치열한 경쟁 뚫고 출연한 <뜨거운 바다>에서 자신감 얻어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배우의 길로 돌아오기까지 그는 또 한차례 방황을 거치게 된다. 모델처럼 훤칠한 외모를 가진 그에게 여러 연예기획사에서 연락을 해온 것. '알바비 줄 테니 오라'는 기획사 사장을 따라 간 곳에서 김동원은 잠시 '겉멋'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스무 살 중반이었고, 대학교 은사님은 "연기가 어떻게 하나도 안 늘었냐"고 뼈아픈 질타를 던졌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기획사와의 관계를 모두 정리하고 주저 없이 입대를 했다.
"스물 일곱 살에 전역해서 학교에서 두 작품을 하고 나니까 스물 여덟이 되더라고요. 그 때까지도 대학로 공연계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래도 연극영화과 다니니까 서류는 봐주겠지 했는데 다 안 되더라고요. 왜 안 되지?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나이는 스물 여덟이고, 이제 와서 청춘 하이틴 스타는 절대 될 수 없으며, 연기는 계속 하고 싶은데 여전히 부족하고. 어떡하지? 막막했죠."
눈앞이 깜깜한 불안 속에서 그는 매일같이 오디션 공고를 확인하고 원서를 넣었다고 한다. 몇 달간 초조함 속에서 똑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여성연출가전의 <햄릿>이 드디어 첫 번째 기회를 열어주었지만, 그 후에도 오디션 당락에 큰 변화는 없었다. <햄릿>을 비롯해 아시아연출가전, 국립극장단막극까지 세 작품을 겨우 마친 것이 불과 작년 3월. 그리고 나서 만난 작품이 고선웅 연출의 <뜨거운 바다>다.
"국립극장단막극까지 하고 나서 내심 '이제 서류는 되겠지' 생각했어요, 근데 <뜨거운 바다>는 서류심사에서 지원자 전원을 다 붙여주더라고요. 허탈했죠. 그래도 (오디션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몇 십 명이 다같이 소리지르면서 춤도 추다가, 어떤 장면을 해보라고 하면 또 해보고."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된 오디션에서 그는 최종 합격자로 선정됐다. 나중에 고선웅 연출은 '그래도 네가 밉상은 아니었어'라고 툭, 한 마디를 던졌다고.
"<뜨거운 바다>를 하면서 언제 내가 이렇게 대극장에서, 두 시간도 넘는 시간을 뛰어다니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소리질러볼 수 있을까 싶었어요.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아, 그래도 내가 이 큰 무대에 한 번 섰구나'하는.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어요."
다행히 다음 작품과의 인연도 금방 다가왔다. 이어서 <빨간 버스>에서 만난 박근형 연출이 <청춘예찬>의 주인공 역을 제안한 것. "박근형 연출님은…잘한다기보다 부족한 점을 많이 얘기해주시죠.(웃음) 힘을 많이 빼라, 동원아. 생각을 계속 많이 해야 한다. 뭐가 됐든 책도 많이 읽고, 무대를 설 때도 아닐 때도 매일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얘기를 해주세요. 관객이 많을 때, 적을 때, 비가 올 때, 눈이 올 때 매일매일 공연이 다 달라야 한다. 관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상대 배우와 같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많이 혼나요.(웃음)"
앵콜공연 중인 <청춘예찬> 아직도 어려워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계속 이 길을 갈 것"
"'얘는 뭐 하는 애지?' 하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길지 않은 대본인데 지문도 하나도 없고. 그러다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되게 불안했어요. 워낙 알려진 작품이라 부담감도 컸고. 그러다 공연이 다가오면서 '에이 몰라, 어떡해, 내 깜냥이 그렇게밖에 안 되는데'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죠."
극중 그가 낭독하는 <그리스인 조르바> 독후감은 책을 읽고 직접 쓴 것이다. 서른 살을 맞은 배우 김동원으로서 느낀 것들을 직접 적어 내려간 글이 어느새 한 권을 훌쩍 넘겼다고. 그렇게 하나씩 작품을 이해했지만, 청년이 하룻밤을 함께 한 여자 '간질'을 데려오는 장면 등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그 장면이 아직도 힘들어요. 대본을 읽으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내가 이 여자를 어떻게 데려오지? 근데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더라고요. '내가 널 한번 자고 버리려는 게 아니라, 나랑 살면 진짜 뭐 없어. 정말로 너 힘들어' 하는데도 여자는 계속 '잘 할게요' 하잖아요. 그래서 '너 진짜 나랑 한번 살아볼래? 그래, 가보자' 그런 생각으로 데려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처음엔 왜 화만 내냐고 많이 혼났어요.(웃음)"
밥도 혼자 먹는 것보다 다같이 수저 섞어가며 먹는 것이 좋고,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이 배우는 작품활동을 하나씩 해 가며 새로운 인연을 맺고, 쉬는 날엔 그 인연으로 다른 공연을 보러 가는 요즈음이 행복하다고 한다. <청춘예찬>이 끝난 후에는 5월 말 <빨간버스> 재공연으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 작품 한 작품 할 수 있는 것이 소중하고, 사람들 만나는 게 기쁘고…여전히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지 초조하고 조급하지만, 그런 고민도 행복한 거죠. 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누가 불러주든, 불러 주지 않든. 중간에 갑자기 음식점을 차린다거나 하고 싶지는 않아요. 굳이 거창한 작품에서 큰 역할을 하기보다, 계속 그냥 무대에 서고 싶고. 그러려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계속 생각하고, 걸어가면서도 관찰하고. 매 순간 다르게…네, 행복해요, 요새.(웃음)"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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