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알았어요, 준비하면 기회는 온다는 걸” <아이다> 암네리스, 안시하

지난 해 봄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사람이 <아이다>에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관계자를 통해 들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우리들도 놀랐다”는 그들의 연이은 말은, 제작 공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나 홍보성 멘트만은 아님을, 본 공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운 가창력, 노련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실력 있는 참신한 여배우가 더욱 고팠던 무대에 희소식, 새로운 암네리스 안시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준비된 신데렐라 탄생

2012년 <아이다>의 배우들을 뽑는 오디션이었다. 지원자들의 상대 배역을 해 주는 리딩 파트너가 지방 공연으로 갑자기 빠지게 되었고 연출부는 <헤어스프레이>의 앙상블로 공연 예정이었던 안시하에게 급하게 부탁을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귀찮은 일일 수도 있거든요. 대본을 외우고, 3, 4일간 시간을 내야 하니까요. 그리고 전 <아이다>를 본 적도 없어서 작품 연구도 따로 해야 했고. 그런데 흔쾌히 한다고 했어요. 한편으론 날 연기를 좀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추천한 것 같았고 또 신기한 경험이겠다, 싶었거든요.”

처음 접한 <아이다>의 대본은 깊이도 재미도 있었다. 아이다도 하고 암네리스, 메랩, 조세르 장면 등에 따라 의상도 네 벌을 준비 했다. 그러니 주변에선 노래도 해 보라고 했다. 오디션 심사자들도 “네가 좀 하는 아이구나” 했단다.

“최종 2명 중에 암네리스를 뽑는 것만 남았고 저는 할 일을 다 했으니 가려고 했어요. 근데 대표님이 “수고했으니까 노래 하나 해봐” 하시더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아니에요, 가보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주변 스텝들이 어서 해보라고. (웃음) 다행히 일주일 전에 <아이다>의 첫 곡인 ‘Every Story is a Love Story’를 다른 오디션에서 자유곡으로 부르려고 친구가 연습하는 거 보고 익혀두었거든요. 연습을 많이 했던 건 아닌데 연습할 때 보다 더 잘 됐었어요. (웃음)

노래 끝나고 나니 다들 놀란 표정으로 3초간 정적, 그러고 나서 장면도 해 보라 하셔서 수트 신을 했죠. 오디션 리딩 파트너를 하면서 연출이 주문하는 걸 계속 봤던 터라 그렇게 했더니 “넌 내 말을 다 듣고 있었구나”하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얼떨결에 오디션을 마친 안시하는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다시 전화를 받고 연습실로 돌아갔다. “이런 경우가 다 있네”라는 말은 안시하와 오디션 심사위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렇게 안시하는 암네리스가 되었다.

“가녀리거나 섹시하거나, 모든 남자의 사랑을 받는 등 뻔한 여자 캐릭터가 많잖아요. 하지만 암네리스는 발랄하고 통통 튀고 때론 코믹스럽기도 하고, 슬픔의 반전과 강함까지 보여주니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그런 역할을 하게 되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너무 행복했죠.”

철 모르는 공주에서 사랑의 상처를 딛고 당당한 한 나라의 수장이 되는 아름답고도 강인한 매력적인 캐릭터.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 관객들에게 암네리스의 매력은 곧 배우 정선아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2010년부터 암네리스 역을 맡아 온 정선아와의 더블 캐스트는 안시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해외 캐스트 OST를 들어보면 선아 만큼 못해요. 선아가 훨씬 잘해요. 그래서 저도 그만큼 해야 어느 정도 한다고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엄청 컸어요. 선아와 비슷하게만 하면 저 정도의 실력은 있다고 인정 받을 수 있고 못하면 처참해질 것 같았죠. 하지만 워낙 소화하기 어려운 캐릭터라는 인식도 있었고, 열심히 하면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을 했어요.”

결과는 ‘모’ 였다. 가는 팔다리, 언뜻 여려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는 에너지 넘치는 시원한 가창력과 오랜시간 앙상블로 무대를 다져온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다>의 암네리스를 거뜬히 소화해 내었다.


“노래에 대한 자신은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요도 많이 듣고 부모님이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셨는데 사과 창고에서 혼자 새벽 2, 3시까지 노래하곤 했거든요. <아이다>는 조금이라도 호흡이 뜨면 힘들어서 노래에 대한 부담감은 아직 있지만 이제서야 좀 즐기면서 하는 것 같아요."(웃음)

꿈이 없던 소녀, 커튼콜에 홀리다

충남 예산에서 나고 자란 안시하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막내 딸이었다. 하지만 안정적일 것 같아 지원했던 유아교육학과 입시에 낙방 후 터울 큰 언니, 오빠들과 서울에 올라온 이후 우연히 TV에서 방송아카데미 뮤지컬과의 광고를 보게 되었고, 그녀의 인생은 예상하지 못했던 길로 나가게 된다.

“광고를 보며 저게 뭐지? 궁금했어요. 전화를 해서 뮤지컬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연기하고 춤추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나도 해도 되냐고 했더니 내일 오라고 하기에 부랴부랴 원서 써서 다음 날 가서 노래도 부르고 말도 안 되는 연기하고.(웃음) 그런데 어디에서 연기 배운 적 있냐고 웃으시며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낮엔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엔 아카데미 수업을 듣는 주경야독의 시간이 계속되었지만 피곤한 줄을 몰랐다. 꿈이 없는게 고민이었다는 고교시절의 그녀는 이제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아카데미 마지막 워크숍 공연 커튼콜에 충격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나만 보고 나에게 박수를 쳐 주는데 소름이 쫙 돋는 거에요. 무대에 있을 때 만큼은 어떤 걱정, 상념 없이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죠. 아, 이 길이 정말 내 길인가,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대에 대한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다. 주변의 권유로 두 달 간 입시를 준비해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하게 되었고, 졸업 하자마자 2004년 <달고나>로 데뷔, 꾸준한 러브콜 덕분에 쉼 없이 무대에 섰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한게 아니었다.

“거의 창작극을 했어요. 만들어가는 기쁨이 컸거든요. 그런데 고생하며 만들었어도 창작극이 잘 안되면 여러가지로 배우에게 안 좋더라고요. 못 받은 출연료를 합하면 거의 집 한 채 값은 될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돈을 떼 간 회사는 거의 다 망했어요. 또 어느 순간 방송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나쁜 사람들에게 속아서 2년간 방황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한 작품이 <렌트>(2011)에요.”


소극장에서 같이 주연을 하던 동료 배우가 대극장 주역으로 설 때, 앙상블로 무대 뒤에서 춤을 춘다는 건 마냥 행복한 일은 아니다. 주변에선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으니 지금 상황에 기죽지 말라”며 위로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위로를 해 주던 그 동료들이 희망의 증거로 안시하를 바라보고 있다.

“예전엔 왜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준비가 없으면 기회가 와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걸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언제나 준비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안시하는 공연 다음날도 9시 전엔 일어난다고 한다. 늦잠 자는 시간이 아까워 오전에도 운동이든 뭐든 하며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그녀는 최근에 영어를 좀 더 배워볼 준비를 하고 있다. 길을 걸으며 시원한 병맥주를 따 마시던 유쾌한 아가씨이지만 공연 연습부터 마지막 공연 때까지 금주는 기본이다.

“우선 <아이다>를 정말 잘 끝내고 싶어요. 차기작은 정해진 게 없지만 예쁜 거 말고 이것 저것 다 해 보고 싶어요. 힘 주지 않고 던질 수 있는 연기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왈가닥도 좋고 재미난 역도 좋고요. 제가 사투리 하면 다들 빵 터져요.(웃음)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미지의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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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2

  • spero0** 2013.04.01

    저도 암네리스하면 정선아배우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선아배우의 그림자가 커서 기대반 걱정만으로 프리뷰를 잡았었는데 제 걱정을 한방에 날려주셨습니다. 앞으로 차기작도 기대할게요~

  • waseda** 2013.03.30

    정선아 배우의 암네리스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관람했었는데, 가녀린 체구에 걸맞지 않은 폭풍 성량에 인형 같은 외모로 또 다른 매력의 암네리스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퇴근길에서도 그 미모는 여전했고 또한 서글서글한 성격까지! 앞으로도 성장하는 배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안시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