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인간 존재 보여주고 싶다” <쓰릴 미>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

"사랑하라거나 용기를 가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발가벗은 인간 존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다." 인간 내면의 추악함과 아름다움을 모두 조명하고자 하는 쿠리야마 타미야(60) 연출에게 <쓰릴 미>는 궁합이 잘 맞는 작품일 것이다. 1924년, 전도유망한 두 청년이 방화·살인을 저지르며 미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을 무대로 옮겨온 이 뮤지컬은 극한적인 상황에 몰려 치열하게 갈등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비춘다. 일본의 대표적 연출가로 알려진 쿠리야마 타미야는 이러한 매력에 빠져 지난 2011년부터 <쓰릴 미>의 일본공연을 연출해왔고, 그가 만든 무대는 올해 한국으로도 옮겨졌다. <쓰릴 미> 본공연이 시작된 지난 21일 만난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은 한국의 배우들에게서도 깊은 인상을 받은 듯 했다.

프리뷰공연이 끝났는데 소감이 어떤가.
느낌이 좋다. 나는 첫 공연이 완성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연을 할수록 점점 배우들이 진화하고 좋아진다고 믿고 있다.

<쓰릴 미>는 어떻게 맡게 됐나.
일본의 공연기획사 호리프로에서 <쓰릴 미>를 공연했는데, 나에게 연출을 맡겼다. 바쁜 일정 사이에서 짬을 내서 만들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그래서 한국공연도 하게 됐다. 깜짝 놀랄지 모르겠지만, 나는 1년에 열 두 편의 작품을 연출한다. 그래서 <쓰릴 미>를 일본에서 초연한 해에는 열 세 편을 했다(웃음).

평소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알기 쉬운 작품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닐 사이먼의 작품은 볼 때는 재미있지만 연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유진 오닐의 작품이나 <쓰릴 미>처럼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작품을 좋아한다.

이번 <쓰릴 미>의 특징을 몇 가지 소개한다면.
예전 공연을 본 적이 없어서 내 작품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는 대본에 쓰여진 대로 연출을 한다. 두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지 하나하나 대본에서 찾는 작업을 했다. 대사나 음악에서뿐 아니라 등장인물이 침묵하는 시간에도 많은 것들이 표현될 수 있도록 했다.
안톤 체홉의 작품을 보면 어떤 것을 직접 표현하는 대사보다 그렇지 않은 대사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당신을 너무 싫어해'라는 대사가 실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런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쓰릴 미>도 단순하게 만들려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재미가 없다. 서브텍스트를 얼마나 많이 도입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정상윤 배우가 '연출님이 무척 디테일하다'고 하더라. 배우들과의 작업스타일은 어떤가.
배우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리지는 않는다. 그들의 생각을 많이 존중하는 편이다. 단지 '그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식으로 조언만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인물이 입체적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조명, 무대 디자이너와의 작업에서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무대가 2층으로 꾸며졌는데 그 이유도 궁금하다.
대본을 읽을 때부터 이 작품의 세계관을 어떤 무대 장치를 통해 표현할 지가 머리 속에 그려진다. 그래서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조명도 마찬가지다. 대본을 읽을 때부터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세세히 말씀 드린다.
일본에서 <쓰릴 미>를 초연했을 때 극장이 100석 규모로 굉장히 작았다. 무대를 좀 더 넓게 쓰기 위해 짐이 쌓여있던 2층을 치우고 그 곳을 활용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재공연에서도 2층 무대를 쓰게 된 것이다. 극중 리처드는 주로 2층을, 네이슨은 1층을 많이 쓰다가 마지막에는 마주보게 되는데, 위치와 공간을 통해 둘의 관계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일본에서 공연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쓰릴 미>의 내용이 사실 좀 충격적인데, 일본 관객들은 다카라즈카처럼 알기 쉽고 만화처럼 예쁜 뮤지컬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쓰릴 미>를 무대에 올리면서 과연 관객들이 좋아할까 싶었지만, 나는 절대 관객들에게 맞춰서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공연이 올라간 후에는 매니아 팬들이 생겼고, 공연 할 때마다 그 분들이 다시 보러 와주신다.


이번 <쓰릴 미>에 출연하는 정상윤-송원근과 전성우-이재균 팀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맨 처음 배우들을 만났을 때 OB, YB라고 팀명을 붙였다. 그리고 연습을 했는데 그 느낌 그대로였다(웃음). 팀 별로 전혀 다른 느낌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처음에만 같이 대본을 보고 나중에는 서로 연습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 두 팀 모두 흥미롭고 좋다. 배우들에게 등장인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조금이라도 주면 정말 열심히 찾아서 표현하려고 하더라. 그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난해에도 한국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의 연출을 맡아 이호재, 예수정 등과 작업했다. 한·일배우들은 어떻게 다른가?
기본적으로 배우는 무대에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배우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려고 하는데, 한국 배우는 무대에서 '존재'한다고 느꼈다. 무대에서 그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해서 아파하고 슬퍼한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연극이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직접적으로 와 닿았지만, 뮤지컬에서는 배우들이 좀 더 피상적으로 연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뮤지컬 배우조차도 무대에서 '존재'하더라. 특히 최재웅, 김무열은 정말 훌륭한 배우다.

한국 관객들은 어떤 것 같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커튼콜 때 소리지르는 것이 재미있다(웃음). '와~' 하고 환호해서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불이 켜지면 갑자기 조용해져서 나가버린다(웃음).


아까 타협을 안 한다고 했는데, 평론가나 관객들의 평도 안 보나.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평가를 읽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배우들이나 프로듀서, 기획사 직원들에게 솔직히 말해달라고 한다. 프로들이 한 달 이상 매일 만나며 만들어놓은 작품을 평론가가 단 하루 보러 와서 부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일본은 평론가가 정치가와 똑같다. 안 좋다(웃음).

한일 양국의 연극·뮤지컬 발전양상을 어떻게 보고 있나.
예전에 일본의 신국립극장 예술감독으로 일했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이 그 나라의 문화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다. 한국도 연극분야에서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지원 말고도 한국의 배우들, 특히 뮤지컬 배우들은 정말 실력이 뛰어나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주로 라이선스 작품을 하려고 하고, 작품의 질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모두 지난 전쟁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이노우에 히사시라는 일본의 유명 극작가가 일본인의 잘못을 돌아보게 하는 연극을 많이 만들었고, 나도 그런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앞으로도 역사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을 한일공동작업으로 만들고 싶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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