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보지 못한 저의 새로운 모습 기대하세요" 피아니스트 윤한
작성일2013.08.08
조회수13,546
"제가 어떤 사람이냐고요? 완전 웃긴 사람. 썰렁한 개그도 잘 하고, '개그콘서트'도 잘 흉내 내요. 맨날 와인만 마시고 잘 때도 수트 입고 잘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 절대 아니거든요. 망가지는 것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고, 여자도 물론 좋아하지만(웃음) 남자도 좋아하고. 앞으로는 그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라는 타이틀로 먼저 알려진 윤한은 젠틀한 '엄친아'로 굳어진 자신의 이미지가 답답한 듯 했다. 멋있는 척, 고상한 척하기보다 맨 얼굴의 자신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저도 괜찮은 사람이거든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과감하고 추진력 있는 윤한의 성격은 피아니스트가 된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대학 진학을 1년 앞두고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하고는 그 때까지 한 번도 쳐보지 않은 피아노에 도전했다. "입학시험을 보려면 포트폴리오 2곡을 준비해야 되거든요. 연주를 해야 하는데 피아노를 안 쳐봤잖아요. 주변에 수소문해서 버클리 대를 졸업하신 분을 섭외했어요. 그분한테 '나 버클리 가야 되니까 5개월 안에 딱 2곡만 가르쳐 달라'고 했죠. 뭘 치는지도 모르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다 암기해서 그냥 기계적으로 친 거에요.(웃음)"
급작스레 변경한 진로에 대해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있었을 법도 한데,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늦게 시작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동기 중에 저와 동갑인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클래식을 하다 오신 분도 있었고, 재즈강의를 하다 온 분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분들이 와서 더 힘들어했어요. 하던 게 있으니까."
칠 줄 아는 곡은 단 두 곡뿐, 발전가능성을 인정받아 들어간 대학에서 그는 오히려 '백지상태'라서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버클리 음대 졸업율이 40%밖에 안돼요.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데, 수업도 제대로 안 들어는 사람이 많거든요. 저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그러니까 교수님들이 점수를 잘 주셨죠." 경쟁을 즐기는 성격도 학교의 커리큘럼과 잘 맞았다. "입학하면 악기 별로 시험을 봐서 1부터 8까지 등급을 나눠요. 등급에 따라 수강할 수 있는 수업이 정해져 있어서, 듣고 싶은 수업이 있으면 열심히 해서 등급을 올려야 돼요. 한국의 다른 형, 누나들은 3~4등급을 받고 들어와서 거기서 못 벗어나는데, 저는 한 학기마다 한 등급씩 올라가서 7등급으로 졸업했어요. 등급을 하나씩 올리는 재미가 있었죠."
대학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한 윤한이 원래 하고 싶었던 음악은 재즈였다.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적인 음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점차 다양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게 됐다고. "재즈 쪽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이루마 씨에요. 미국에서는 케니 지(Kenny G).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음악을 하는데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음악가들이죠. 근데 제가 재작년에 이루마 씨 공연을 보고 그 분이 왜 인기가 많은지 확 느꼈어요. 쉬운 음악을 한다고 해서 그게 정말로 쉬운 게 아니거든요. 그걸 잘 표현하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실제로 재즈 피아니스트에게 이루마 씨 곡을 쳐보라고 하면 못 쳐요. 그 부드럽고 감미로운 느낌이 안 나요. 그러면서 저도 마음이 많이 열렸어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하고, 대중들이 원하는 음악도 하자. 그렇게."
지난해 뮤지컬 <모비딕>을 통해 처음 연기에 도전한 것도 다양한 영역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망설이기도 했다고. "사실 그 때 되게 힘들었어요. 제가 처음 뮤지컬을 하니까 손동작이나 발음을 디렉팅해주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거든요. 예를 들어 친구를 떠나 보내는 장면에서 시선이나 손 모양, 이런 테크닉한 부분을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그냥 '가장 친한 친구가 떠났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표현해봐' 하니까 막막한 거에요. 그래서 한번은 안무가와 대판 싸운 적도 있어요. 그 때 (지)현준 형이 많이 도와줬죠."
연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면서 그는 자신이 맡은 '이스마엘'도 그만의 색깔로 새롭게 해석했다. "공연 첫 날엔 틀리지 말아야지, 잘해야지 라는 생각만 했어요. 근데 반응이 '외워서 한 것 같다. 열심히 했네' 정도인 거에요. 그래서 다음 번에는 마음을 완전히 바꿨어요. 틀리지 말아야지, 열심히 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무대에서 나를 보여줘야겠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윤한으로서 해야겠다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스마엘에는 외향적인 윤한의 성격이 그대로 투영됐다. 작살잡이 퀴케그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도 윤한의 이스마엘은 낯선 상대에게 겁 먹지 않고 선뜻 손을 내밀었다. "반응이 오히려 더 좋았어요. 며칠 새 많이 발전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죠.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도 그걸 느끼고 (신)지호랑 할 때와는 다르게 하더라고요. 현준이 형은 저랑 같이 할 때는 몸에 흰 색 페인트를, 지호랑 할 때는 검은 색 페인트를 칠했어요. 자기만의 해석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니까 오히려 극 안에 묻어날 수 있었던 것 같고, 좀 더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생각이 많으면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말하는 그는 무엇을 하든 남들의 평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단순해서 그런가(웃음) 곡을 쓸 때도 그런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좋은 거고, 아니면 할 수 없고.(웃음) 저는 제가 잘 못하는 것에 대해서 더 자신감을 가지려고 해요. 어쨌든 제게 뮤지컬은 새로운 분야였잖아요. 주인공이고 극을 끌어가는 사람인데, 능숙하지 않은데다 자신감까지 없으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누구보다 더 자신감 있게 했죠. 속으로는 엄청 두려웠지만. 두려움의 크기만큼 자신감이 커지는 것 같아요."
윤한은 오는 17일 화성공연에 이어 31일 서울에서 여는 공연 < SOUND Off>에서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 "좀 무거운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예전 공연에선 밴드도 나오고 제가 노래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재즈 색깔이 강해요. 피아노·드럼·콘트라베이스로 재즈 트리오를 구성해서 거의 연주곡만 할 거에요." 연주곡과 직접 부른 노래가 수록된 1,2집 앨범을 통해 그의 음악은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음악적 색깔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아 균형을 맞추고 싶었다고. "사실 제가 가수는 아니거든요. 예전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노래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만족할 수 있는 공연, 제가 하고 싶은 음악에 중점을 뒀어요."
색다르게 준비한 공연을 통해 그가 기대하는 반응은 어떤 것일까? "관객들이 제일 먼저 받으셨으면 하는 느낌은 '아, 윤한이 저런 음악도 하네' 에요. 솔직히 제 공연에 오시는 분들의 98%가 여자에요. 제 음악이 좋아서 온 분들도 있겠지만, 그냥 저를 보러 오는 사람도 많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걸 좀 없애고 싶어요. 내가 노래를 안 하고 뒤돌아서 연주만 해도 내 음악을 좋아해주면 좋겠고, 남자들도 내 음악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음악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거든요. 윤한이 저렇게 음악적으로 깊이가 있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공연을 끝내고 올해 하반기에는 정규 3집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지금 생각하는 앨범 제목은 '피아노 치는 남자'에요. 감미롭고 로맨틱한 이미지가 아니라 약간 잘난척하고 재수없는 남자(웃음). '내가 누군지 알아? 나 피아노 치는 남자야~' 약간 건방진데 섹시한 느낌? 남자들이 보면 재수없어 하겠죠?(웃음)"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