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가시 같은 강렬하고도 낯선 각인, <사보이 사우나> 여신동, 정재일
작성일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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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과 천재가 만났다. <히스토리 보이즈> <필로우맨>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목란언니>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인상적인 무대디자인을 선보이며 많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켜 온 여신동과 ‘천재 뮤지션’으로 불리며 최근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음악감독을 비롯, 가요, 영화 음악의 작곡, 편곡 등 다방면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재일이 그들이다. 남다른 반짝임과 깊이로 무대에 감탄을 낳고 있는 두 명의 젊은이가 만나 ‘낯선 무대’ <사보이 사우나>를 짓고 있는 중이니, 두 사람의 협업이 빚어낼 시너지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여신동의 첫 연출작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방법으로"
올 초 두산아트센터에서 아트랩 작품으로 선보였을 당시 <사보이 사우나> 앞에는 ‘다원예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극, 뮤지컬, 혹은 음악극이라고도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시도와 결합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여신동이 연출가로 선보이는 첫 무대이기도 했다. 자신의 유년 시절 경험과 당시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사보이 사우나>가 워크숍 후 10개월이 지난 오는 11월 본 공연을 앞두고 있다.
“한 동안 무대 디자인을 기능적으로 한다는 생각이 들어 소진되는 느낌, 공허함이 컸어요. 그래서 아트랩을 통해 무언가를 알아가고 느끼는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연출에 대해 배워본 적도,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만나본 적도 없었으니, 개인적으로 워크숍을 통해 많은 배우들과 스탭들을 만나고 연출가로서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알아갔다는데 의미가 컸지요.”(여신동)
워크숍을 지켜봤던 많은 관객들이 그에게 준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하고 싶은 대로 더 막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연출로서 처음 가는 길이라 조심스러웠던 발걸음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던 것 같다는 그는, 비로소 이번 본 공연에서 “처음에 하고 싶었던 대로” 낯선 공연을 추구하고 있다. 어린 시절 다녔던 대구에 실재하는 목욕탕에서의 경험과 당시 혼란스러웠던 기억 등 지극히 개인적인 한 때의 감상을 <사보이 사우나>라는 공간 안에서 낯설게 드러내 보일 예정이다. 작곡가 정재일도 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워크숍을 준비하며 처음 만났다는 두 사람. “재일 씨의 음악을 들으며 ‘이 사람 감각이 엄청나게 열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여신동은 “내가 말하는 모호한 것들을 다 할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라 생각해 지금도 맹신 중이란다.
“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저를 좀 더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커서 재일 씨를 꼭 붙잡고 있어요. 신뢰하니까 다 던져서 맡기는 거죠. 도망가도 계속 쫓아갈 거에요(웃음)." (여신동)
“정확한 디렉션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할 때 영감을 더 많이 주고 제가 뭔가 할 여지를 더 많이 열어주거든요. 어떤 경험이나 한 순간의 감상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계속 하고 있던 작업도 있고요. 그게 굉장히 폭발력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또 워크숍 준비할 때 어느 추운 겨울날 연습실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이미 연출과 배우들끼리 굉장히 깊은 자기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서로 주고 받는 작업들을 해 오고 있더라고요. 이런 소통에서라면 그게 무엇이든 재밌는게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지요.”(정재일)
뜬구름 잡는 이야기? 영감 더욱 불러 일으켜
연출가의 지휘 아래 모두가 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형태가 아닌, <사보이 사우나>는 아티스트로서 배우와 스텝 모두 함께 이야기를 공유하며 작품에 뼈대를 잡아 간다. 공동창작 혹은 협업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저마다 가진 내면의 것들이 무대 위에 발현이 되길 바라는 건 여신동 연출이 바라던 스타일이기도 하다.
“뭔가 정해놓고 그것들을 일관되게 설득시키는 것 보다 배우들을 관찰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이끌어내고 거기에 내가 좀 더 유연하게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나고 싶은 방식대로 작업도, 배우들도 만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여신동)
“여러가지 편린들을 만들었다가 그 모든 걸 한 순간 조합하는 일, 연출가로서의 그 역할을 분명히 하는 지점이 있더라”는 정재일의 말처럼, 작품을 꾸리는 모든 사람들이 내놓는 조각들을 여신동 연출은 ‘낯설음’과 ‘이미지’의 이름으로 조합해 내고자 한다.
“꼬마였을 때 어느 과천의 풀밭에 누워서 <까발레리아 루스티까나>의 간주곡을 들으며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에 막 울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다음부터 곡을 만들 때 그 경험이 계속 제게 작용하고 뭔가 계속 퍼져나갔어요.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었고 저 역시 그런 경험을 언젠가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연출이 당시에 느꼈던 게 무엇일까 계속 공유하려 하고, 그게 제게 오면 이 사람(여신동)의 빛깔에서 벗어나서 제 빛깔로 나오겠죠. 배우나 조명도 마찬가지고. 이런 게 모여서 어떤 분위기를 만들었을 때, 이걸 보러 오시는 분들이 또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돌아가시지 않을까, 생각해요.”(정재일)
일상의 것, 낯설게 다가오면 충격으로 각인된다
무대 위에는 공연명 그대로 ‘사보이 사우나’가 펼쳐질 예정이다. 남탕이다. 전문 누드모델 여섯 명이 헐벗고 무대에서 신체 오브제로 자리한다. 목욕탕에서 옷을 벗고 있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걸 무대 위에서 만나니 당혹스럽고 낯설게 다가오고, 낯선 광경은 곧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출연 배우는 단 두 명. 한국인 한 명과 인도 배우 한 명이 전부다.
“아누빰 트리파티는 올 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정기공연 당시 만난 배우에요. 낯선 인물을 찾고 있었는데 인도 친구라 털도 우리나라 사람보다 훨씬 많고 피부색도 대비되어서 재미 있더라고요. 굉장히 열심히 연습하고 있고, 한국말도 엄청 잘해요.(웃음)” (여신동)
사우나 주인과 손님으로 등장하는 두 배우는 다르지만 또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여신동 연출은 등을 맞대고 있는 모양 같기도 하고 마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알파벳 B와 D를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정했다. 거대한 양의 대사는 없다. 사우나에 와서 옷을 벗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들과 그 끝에 깜짝 놀랄 충격적인 장면이 있을 것도 같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게 힘들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남에게 내 마음을 강요하면 안되겠다는 생각,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작품도 연출가로 첫 작품이니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거창하게 관객들에게 뭔가를 준다기 보다 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고 내내 맘 속에 품고 있었던 걸 같이 나누고 싶다는 의미가 커요. ‘내가 지금 표현하고 싶은, 이 순간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여신동)
“누군가에게 뭔가를 던지면, 상대는 그걸 받아들여서 또 다른 걸 던지는 액팅과 리액팅, 그 느낌에 집중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 어느 보컬리스트가 ‘행복하게 은은히 남는 것 보다 장미의 가시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제가 공연 중에 연주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셔서 독특한 경험을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정재일)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 장소: 두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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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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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g**님 2013.11.06
무대디자이너의 첫연출이라니 궁금.. 목란언니의 김은성 작가 인터뷰도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