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항상 살아 숨쉬어야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 원작자 미하엘 쿤체 & 실베스터 르베이

프랑스의 실존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드라마틱한 삶을 담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지난 주 막을 올렸다. 김소현, 옥주현, 윤공주, 차지연 등 화려한 캐스팅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 <레베카> <엘리자벳> 등 국내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흥행작의 창작 콤비,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의 작품이라는 점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하반기 기대작에 올리는 큰 요소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라이선스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이례적으로 지난 3주간 한국에 머물며 직접 작품 수정과정에 참여했던 원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와 꾸준히 르베이를 비롯해 한국 프로덕션과 교류하며 이야기의 틀을 다시 세운 작가 미하엘 쿤체를 <마리 앙투아네트> 첫 공연을 올린 후 마주했다. 이들은 2006년 일본에서 초연했지만 이번 한국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을 '완전한 신작', '월드 프리미어'라고 불렀다.

Q. <마리 앙투아네트> 한국 초연을 어떻게 보았나?
미하엘 쿤체
(이하 쿤체) : 이번 형태의 공연이 너무 마음에 든다. 그간 4개의 프로덕션을 거쳐오면서 공연이 많이 개발된 것 같다. 이 작품은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다. 그래서 항상 역사에 진실 되려고 노력하는데, 관객들이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잘 몰라도 작품의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이 되고자 노력했다.

실베스터 르베이(이하 르베이) : 관객 반응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이 굉장히 집중하고 있었고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반응을 하며 따뜻하게 박수도 보내줬다. 커튼콜 때 다들 기립해줘서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이 크게 느껴졌다.

Q. 공연 후 극장 로비에서 관객들의 사인 요청을 다 받아주고 함께 사진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르베이 : 쿤체 씨와 내가 몇 년간 계속 그렇게 해오고 있다. 우리는 관객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진심이 느껴져서 그들과 교류하는 것이 정말 좋다. 관객들이 주는 신뢰가 우리의 책임감을 더욱 크게 만들고 항상 긴장시킨다. 참 좋은 거다. (웃음)

Q. 첫 공연 후 제작진들이 무대 위에 올라 관객인사를 할 때 로버트 요한슨 연출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작업 과정이 무척 힘들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쿤체 : 작품 안에 너무나 많은 장면과 복잡한 이야기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작업을 해야만 한다. 요한슨 연출이 하루 14시간 씩 일했다고 들었다. 연출 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준비했다. 르베이 씨도 3주 동안 한국에 와서 악보를 수정했고 나 역시 9월에 한국에 한번 들어와서 수정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마리 앙투아네트>를 완전히 새로운 공연이라고 말하는 거다. 월드 프리미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다.


미하엘 쿤체

Q. 작품을 수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쿤체 : 스토리가 좀 더 명확해지길 바랐다. 초연 때 객석에서 관객들과 같이 공연을 봤는데 그들이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다. 그때부터 무엇이 문제일까 계속 생각했다. 혁명의 움직임 뿐 아니라 마리가 아주 어린 소녀에서 주변 상황을 이해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좀 더 관객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르베이 : 스토리가 바뀌면 음악도 테마에 맞춰 장면, 음악간의 연결고리를 생각해 흐름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쿤체 씨와 매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수정했다. 또 오케스트라나 배우에게도 수시로 수정된 걸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첫 공연 끝나고도 말했듯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한 팀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돕게 된다. (웃음)

Q. 해외 대작의 경우 라이선스 계약 조건에 '수정 불가' 항목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원작의 의도가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기도 할 것이다.
쿤체 : 우리는 각 나라의 문화, 생각들이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조항을 주장해 본 적이 없다. 또한 연기적인 면도 문화나 전통에 따라 다르다. 사실 브로드웨이 공연이라면 원작 그대로 무대에 올려도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명 그림이나 또는 유명 인사를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흥미롭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뮤지컬이 성취해 내야 하는 것은 무대와 객석의 교류이다. 뮤지컬은 항상 살아 숨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 숨쉬는 뮤지컬과 미술관에 걸려진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작품은 굉장히 다르다. 또 여러 나라 프로덕션의 수정과정을 통해서 우리 역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Q. 2006년 일본 초연과 가장 다른 부분은 마리와 마그리드, 두 여인이 작품 중심에 나란히 서고 있다는 것이겠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두 인물의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서서히 변해가는 걸 볼 수 있다.
쿤체 : 맞다. 그게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이다. 보통 드라마 구조에선 주인공과 그에 대적하는 악역 캐릭터가 있는데 대부분 스스로 무언가를 깨닫는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교육을 얻는 전개는 굉장히 드물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특별한 점은, 끝으로 가서는 결국 두 사람 모두 처음보다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구성은 우리 작업에서도 처음이었다. 또한 모든 캐릭터들은 완벽한 인물들이 아니다. 어두운 면도, 결점도 있다. 그래서 좀 더 현실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르베이 : 대부분의 한국 뮤지컬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많다고 프레스콜 때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작품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여성 캐릭터를 사랑한다. (웃음)

Q. <모차르트!> <엘리자벳> 뿐 아니라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등장 인물들이 천재, 로열 패밀리 등 비범한 사람이나 지극히 평범한 삶, 인간적인 삶을 꿈꾸고 그것을 얻기 위해 고뇌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쿤체 : 이 인물들이 관객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교훈을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극중 인물들이 실패를 해도 그것을 통해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생각할 수도 있다. 마리는 굉장히 버릇없는 아이 같은 캐릭터인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남편과 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영웅적인 면이 모든 여자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여자라도 자신의 남편이나 아이가 위험에 처한다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래서 비록 공연에 천재나 왕족이 등장하지만 결국 일반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중
 마그리드와 시민들(위), 마리와 그의 남편 루이 16세(아래)

Q.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은 마그리드가 등장할 때가 많다. 마리와 마그리드의 듀엣곡 '헤이트 인 유어 아이즈'(Hate in your eyes)를 비롯해서 군중과 함께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르베이 : 두 여자의 대립 장면은 쿤체 씨의 아이디어였다. 젊은 관객들도 굉장히 그 장면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여왕도 우리와 같은 문제를 갖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는 것 같다.

쿤체 : 이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현대성을 띄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군중 장면이다. 현대에도 많은 이들이 자신이 맞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운다. 종교나 사회 변화를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행동들도 많이 일어나는데,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마그리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정의를 요구하지만 사실 마리처럼 부유하게 살고 싶은 거다. 그런데 공연이 진행될 수록 마리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또 정의와 더 나은 세상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이 타인을 죽이는 행동 또한 정의롭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공연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부분들이 우리가 매일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는 문제점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회가 안고 있는 부분이다.

Q. <모차르트!>나 <엘리자벳> 등 전작에서는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음악 장르가 느껴진 반면,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느껴진다.
르베이 : 그렇다. 마리의 감정 변화에 따라,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음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복잡한 이야기들, 감정들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마리가 왕비가 되고 아이를 낳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등의 이야기와 분위기를 다 담아야 했다. 또 마그리드와 앙상블들은 왕족들의 옷차림과는 달리 좀 더 현대적이라 그들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을 염두에 두고 장면 분위기에 맞는 변화를 음악에 담아야 했다.

오페라와는 달리 뮤지컬에서는 다양하게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내겐 다행이고 또 행복한 부분이다. 로즈나 레오나르 캐릭터는 매 순간 중요한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관객들을 기쁘게 해줘야 하기 때문에 매우 유머러스한 음악을 적용했다.

Q.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캐릭터나 장면이 있나?
쿤체 : 물론 있다. (웃음) 재판 장면인데 이 장면은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정말 마스터피스 같은 장면이라 생각한다.
르베이 : 장면 자체가 작은 뮤지컬 같다.
쿤체 : 그 장면에서 굉장히 많은 대사를 주고 받아야 하는데 그걸 음악적으로 표현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을 거다. 대사를 음악처럼 전달해야 하니까. 르베이 씨의 마스터피스라고 볼 수 있다.

르베이
: 나 역시 그 장면을 무척 좋아한다. 또 2막 첫 곡, 마리가 페르젠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도 좋다. 음악만 들었을 때도 굉장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사와 함께 들었을 때 감동이 정말 확 와 닿는 것 같다. 또 하나는 루이의 곡 '난 왜 나다운 삶을 살 수 없나'(Why Can't I Just Be A Smith)인데, 그의 감성과 캐릭터가 그대로 드러난다.

Q. <맨 오브 라만차>의 산초 등 위트 있는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던 배우 이훈진의 루이 16세 변신도 관객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쿤체 : 정말 너무나 만족스러운 캐스트다. 루이 역을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연기를 펼칠 수 없을 것 같다.
르베이 : 루이가 노래를 할 때, 절대 아리아처럼 부르면 안 된다. 한 문장 안에도 굉장히 많은 감정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목소리 톤이나 방식을 크게 불렀다가 작게 불러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훈진 배우가 그걸 굉장히 잘 하고 있다.


실베스터 르베이

Q. 70대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쿤체 : 작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웃음) 우리에겐 일이라기 보다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찾아서 음악적이나 어떤 형태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의욕이 크다. 뭔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에 희열이 큰 거다.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이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르베이 : 우리가 작품을 쓸 때도 다 쓰고 나서 그냥 두었다가 며칠 지난 후에 다시 보고 듣는다. 쿤체 씨도 항상 "관객들이 좋아할까?"라고 묻는데, 그런 느낌이 들어야만 작품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삭제한다. 뮤지컬은 우리를 위해 만드는 게 아니라 관객들을 위해 쓰는 거다. 와서 사인해 달라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하시는 분들을 위한 것이다. (웃음)

Q. 좋은 뮤지컬을 쓰고자 하는 한국의 예비 창작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쿤체 : 물론 재능도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은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 역시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 등의 작품을 굉장히 많이 공부했다. 우리가 만든 작품을 통해서도 배우시는 분들이 계실 거라 생각하는데, <레베카> <모차르트!>를 봤으니까 이번 주 주말에 나도 그런 작품을 쓰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작품의 구성, 구조를 공부해야 한다. 구성을 잡아두면 다른 것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마치 건물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건축가처럼 글쓰기를 해야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짓는' 과정을 배웠으면 좋겠다. 특별히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공연을 보면서 공부하면 된다.

르베이 : 음악도 마찬가지다. 만약 재능이 없다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건 공부하는 것이다. 나 역시 작곡을 전공하지 않았고, 영화음악으로 시작해서 다른 작곡가들이 어떻게 훌륭한 뮤지컬들을 창작했는지 많이 공부했다. 또 뮤지컬 작곡가가 되기 위해 4, 5곡의 좋은 곡만 쓰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곡을 써야 하고 가사에 담긴 의미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뮤지컬의 음악은 반드시 스토리를 받쳐줘야 하고, 스토리와 관객들을 생각하는 음악을 써야 한다.

또, 자신이 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관객들은 좋아할 것 같은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굉장히 힘든 경우다. 나 역시 '더 이상은 못하겠어, 집에 갈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2주만 지나면 '다음 작품 언제 시작하나' 생각하게 된다. 작곡가들도 힘들 수 있고 우울할 수도 있는데, 그런 감정을 여유롭게 즐겼으면 좋겠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게 쉬워 보일 수 있겠지만,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반드시 다시 빛이 나오지 않는가. 뮤지컬을 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인데, 창작자로서 느끼는 행복감은 정말 믿기 힘들만큼 크고 좋다.

Q. <마리 앙투아네트> 관람을 앞둔 한국 관객들에게
쿤체 : 어떠한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공연을 즐겼으면 좋겠다. 프랑스 혁명이나 마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도 좋다. 열린 마음, 그것이 유일하게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이다.

르베이 : 만약 여유가 있다면 두 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배우가 다르기도 하지만, 배우들이 같은 이야기를 해도 굉장히 다른 느낌을 줄 거다. 틀리고 맞다는 개념이 아니라 정말 다른 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이 볼수록 발견할 것이 많은 것이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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