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배우’사이에서의 치열한 고민, <멜로드라마> 최대훈

최근 <멜로드라마>에서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결혼 10년 차 찬일 역으로 나오고 있는 최대훈은 '연기가 놀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간 <환상동화> <여신님이 보고계셔> <프라이드>등에서 개성 강한 역으로 무대에 올라 인상을 남긴 그이지만 사실 연기는 그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명함을 받고 우연히 찾아간 잡지사에서 그와 비슷한 또래의 학생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땅을 쳤다. ‘그동안 난 왜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라는 억울함에 건축에서 연기로 진로를 바꿔 대학에 들어갔다. 창작수업 중 무대에 가로등이 필요하다는 하늘 같은 선배의 말에 후배들을 데리고 학교 운동장으로 출동해 실제 가로등을 뽑아와 무대에 세우는 등 대학 생활 4년은 무대에 미쳐 빠르게 지나갔다.

무대뿐만 아니라 영역을 넓여 드라마, 영화라는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연기가 놀이라는 그의 다짐은 변함없다. 다만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수록 본인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진정한 배우 최대훈으로 불리기를 갈망하고 있는 그와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전한다.

Q 오늘부터 처음으로 <멜로드라마> 캐스팅이 바뀐다고. (인터뷰는 1월 13일에 진행됐다.)
연습부터 어제 공연까지 계속 고정으로 갔는데 오늘부터 처음으로 김소이 역이 박민정에서 김나미로 바뀐다. 그래서 오늘 공연이 더 설렌다. 배우가 바뀌는 것에 따라 묘한 분위기가 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배우들마다 다른 결과 색을 지니고 있어서 매 공연마다 느낌이 다르고 긴장된다.

Q 이번 작품에서 결혼 10년 차 김찬일 역을 맡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장유정 연출과 작업할 수 있는 기회이고 함께하는 배우들도 너무 좋아서 <멜로드라마>에 참여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조금 감이 안 잡힌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미혼인지라 결혼 생활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극이고 일상적인 연기여서 대사도 빨리 외워서 일단 시작은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주변의 결혼하신 선배들 이야기도 많이 들어보고, 꼭 부부가 아니더라도 남녀 사이의 소통은 연애할 때도 비슷한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많이 접목시키려고 노력했다.

Q 제작발표회 때 장유정 연출이 연습실 분위기와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다고 칭찬을 엄청 하더라.
출연하는 선후배들이 다들 의욕적이고 열심이라 연습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다. 다 밝고 즐겁고 순한 사람들인데 극이 끝으로 갈수록 어두운 분위기라 연습할 때나 무대에서는 집중해서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그럴 필요 없는 분장실에서는 잘 놀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Q 이 작품은 흔히 통속극이라 이야기하는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따르고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불륜은 하나의 소재일 뿐 우리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작품에서는 악인이 없다. 그래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하지만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를 못할 뿐이지 누구라도 그 상황에 놓이고 그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힘들고 어려운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사람들도 무슨 큰 일을 겪고 나면 흔히 이런 말들을 하지 않나. “이거는 내 이야기야. 내가 그랬어. 안 믿기지. 처음에는 나도 그랬어.”라고. 찬일이 놓인 상황과 그 인물을 있는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Q 미현 역을 맡은 전경수 배우와는 불륜 사이라는 것을 잠시 잊을 만큼 잘 어울리더라. 연습하면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연습할 때부터 미현과의 장면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단순히 불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먼저 보이길 바랬다.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먼저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현을 사랑해야 되니까 일단 연습에 들어갈 때 마음 속으로 ‘오늘부터 이 친구를 사랑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이야기하고, (전)경수에게는 장난을 많이 쳤다(웃음). 상대방 마음이 열려야 이야기도 하고 연습도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행히 경수도 내 손을 잡아줬다. 관객들도 미현이 침대 밑에서 발각되는 것에서부터 ‘아 얘네들이 불륜이었지’라고 그제야 인지를 하시더라.

Q 전작인 <프라이드>에서는 1인 3역의 멀티맨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동연 연출님이 저랑 (김)종구 배우에게 이름만 바꿔서 똑같은 메일을 보내셨다. (웃음) ‘이런 작품이 있는데 작은 역할이라고 서운해하지 말고 임팩트 있으니까 날 믿고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짧지만 힘이 느껴지는 메일이었다(웃음).

멀티맨 역은 멀티맨 사관학교인 <김종욱 찾기>를 졸업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웃음). 다만 3역 모두 짧지만 강한 역이라 연습할 때 고민이 많았다. 사실 연습할 때는 이 작품이 과연 잘 될까? 걱정이 많았다. 종구와 연습실 한 쪽에서 앉아 발 밑에는 간식 쌓아 놓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그랬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엄청 헤맸는데, 막상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니까 신이 나더라.

하지만 러닝 타임은 장장 3시간에 내가 나오는 신은 짧아서 무대 뒤에서 엄청난 외로움과 고독과의 싸움을 했다(웃음). 나치 코스튬플레이어도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그 남자가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슬픔이 있는 친구인 걸 알게 되고 그러면서 마음 한편이 경건해지기 시작했다. 진짜로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작품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오랜만에 연극다운 연극을 만난 것 같아 행복한 추억이 됐다.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

Q 지난 연말에는 <뮤지컬 이야기쇼 이석준과 함께>의 예능 파일럿 프로그램 <배우수업> 촬영이 있었다고.
친하게 지내는 (최)성원 배우한테 지난 여름에 전화가 왔다. “형 시간 돼요? 하루만 같이 자요(웃음).”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배우들이 하룻밤을 같이 보내면서 신체수업, 연기수업, 노래수업의 일환으로 온갖 게임을 섭렵했다. 오랜만에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몸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성원이와 상윤이 빼고는 안면만 있는 배우들이었는데 다들 착하고 서로 궁합이 잘 맞아서 재미있게 촬영하고 왔다. 성내는 캐릭터, 꼬투리 잡는 캐릭터, 당하는 캐릭터, 엉뚱한 캐릭터 등 각자마다 색깔이 있다. 놀리고 괴롭히고 장난치는 건 나와 성원이 담당이고(웃음).

Q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은 편인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장난을 많이 치지만 신조가 있다. ‘까불지는 말자’다(웃음). 장난을 칠 때도 생각을 하고 친다. 그냥 막 던지는 건 안 좋아한다.

Q 그동안 작품을 보면 희극적인 역할을 많이 해왔다. 외모는 상남자 스타일인데 의외다.
대학 때부터 외모는 선이 굵고 상남자 스타일임에도 핍박 받고 망가지고 우스꽝스러운 희극적인 역할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이 쪽 업계가 좁다 보니 계속 그런 역할만 주더라. 예전에는 목소리도 굉장히 얇았고 말투도 정확하지 않고 흐려서 선배들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 저것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다 보니 인상이 점점 변하더라.

<환상동화>를 하면서 처음으로 내 안의 남성성을 발견했다. 예전 나의 전사를 모르는 분들은 겉모습만 보고 남자인가 보다 했다가 시켜봤는데 막상 남자답지 않고 여리여리한 면도 있으니, ‘웃긴 놈이네’ 하고 다시 웃긴 역을 주기도 하고 남자다운 역을 줄 때도 있다(웃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아직 나를 잘 모르니 남성성을 필요로 하는 역을 맡기시고.

겉모습, 말투 같은 것은 쉽게 안 바뀌지만 생각이나 기운을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니까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예전부터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어둡게 봤다. 어느 날 여권 사진 3장을 나란히 모아두고 본 적이 있는데 노예 얼굴부터, 범죄자형 얼굴까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마지막 사진은 괜찮았다(웃음). 마지막에는 “너, 성형했냐.”라는 소리도 들었다. 물론 발전한 사진 기술도 한 몫 했겠지만 그건 다 좋은 기운 덕분인 것 같다.


Q 본인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이 직업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행동에 책임져야 할 나이도 됐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와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반된 면이 나만의 무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하고 있다. 잘생긴 꽃미남은 아니지만 남자다운 외모와 감성적인 성향, 양쪽을 잘 키워 보고 싶다.

또 하나 하고 있는 고민은 배우는 활자 안에 숨겨진 감정을 찾아내 온 몸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라면 항상 예민한 상태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어제 잘 자고 아침에 기분이 너무 좋아 미소를 머금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일터에 가서는 슬픈 감정을 표현해야 되는 사람이 돼야 하고. 물론 그 반대도 있겠지만 그런 것이 어느 순간 힘들어졌다. 남의 감정을 표현하려면 빨리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점점 힘이 든다. 역시 배우는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해서도 안되고 함부로 해서도 안 되는 것 같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이 직업도 마찬가지로 좋은 면도 있고 힘든 면도 있고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욕심나는 캐릭터를 만났거나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내가 하고 싶다’라는 결정적인 한 방이 아직도 날 붙들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Q 그렇다면 최종 꿈은 무엇인가?
‘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최대훈 이름 앞에 있을 때 어색하지 않게. 그렇게 불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정말 온전하게 '배우'로 불리고 싶다. 배우인데 배우라는 소리를 못 듣는다면 정말 슬픈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당장 배고파도 좋은 결을 지닌 사람들과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 옛날에는 무슨 작품이든 작품만 하면 좋았는데 지금은 정말 마음이 동하는,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애정을 쏟아서 자연스럽게 신나서 할 수 있는 작품들 말이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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