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악의 접점으로 편안한 안내를' <하루키 뮤직룸> 사회자 이동진
작성일2015.05.26
조회수15,576
<상실의 시대> <1Q84> <해변의 카프카> 등 발표하는 소설마다 전 세계에 화제를 낳으며 국내외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을 만나보자. 그의 작품 속에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소설 이야기, 더 나아가 하루키의 문학 세계 여행으로 펼쳐지는 색다른 콘서트 <하루키 뮤직룸>이 곧 관객과 만날 참이다. 자칭타칭 하루키 전문가인 작가 임경선이 콘서트의 구성글을 맡고, 76인조 디토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지용이 풍성하면서도 감각적인 선율을 담당할 이번 콘서트에서 무대와 객석을 이어주는 친절한 안내자는 음악평론가 황덕호와 영화평론가 이동진이다.
현재 팟 캐스트 <빨간책방>의 진행뿐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해설자로, 평론가로, 또 다른 역할로 종횡무진 중인 이동진에게도 "이렇게 갖춰진 공간에서, 잘 짜여진 기획과 규모로 음악을 들려주는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는 이번 공연은, 소설가 하루키의 팬들에게도, 또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흥미로운 무대가 될 것이다. 중간중간 선보일 것이라는 이동진표 '썩은 개그'는 그의 글과 시선을 친근하게 신뢰해왔던 이들에게도 유쾌한 선물이 될 것 같다.
현재 팟 캐스트 <빨간책방>의 진행뿐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해설자로, 평론가로, 또 다른 역할로 종횡무진 중인 이동진에게도 "이렇게 갖춰진 공간에서, 잘 짜여진 기획과 규모로 음악을 들려주는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는 이번 공연은, 소설가 하루키의 팬들에게도, 또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흥미로운 무대가 될 것이다. 중간중간 선보일 것이라는 이동진표 '썩은 개그'는 그의 글과 시선을 친근하게 신뢰해왔던 이들에게도 유쾌한 선물이 될 것 같다.
Q. 제목 <하루키 뮤직룸>이 친근한 음악다방이나 하루키의 개인 음악 감상실 같은 느낌이 듭니다.
'뮤직룸'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굉장히 편안하면서 포근하면서, 제가 지은 건 아니지만 굉장히 잘 지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프로그램 리스트들의 낙차가 굉장히 크거든요. 그래서 흥미롭게 들리고요.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 같이 조용히 하루를 마감하기에 좋을 것 같은 곡도 있고 '신포니에타'(Sinfonietta) 같은 곡도 있고. 아마 조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웃음) 또 중간중간에 제가 썩은 개그를 할 거라 주무시고 싶어도 못 주무실 겁니다. (웃음)
Q.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니 '하루키 마니아'의 집합 같습니다.
저만 빼면 국내 최고 라인업이에요. 일단 주변에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다 황덕호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하세요. 김중혁 작가라든지 박찬욱 감독이라든지, 주변에서 자신들이 신뢰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말하면 더불어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되잖아요. 그런 것도 있었고, 황덕호 선생님 책을 몇 권 갖고 있는데 글을 굉장히 잘 쓰신다고 생각했어요. 뵙고 싶었던 분인데 이 기회에 만나게 된 것도 저 개인에게는 상당히 의미가 있고요. 저는 음악에 관해서는 당연히 잘 모르니까 배운다는 마음으로 저한테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는 행사일 것 같아요.
그리고 임경선씨는 하루키에 관한 책을 단독으로 낼 정도로 하루키 마니아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최근에는 하루키가 Q&A를 대규로모 한 걸 다 번역에서 올렸잖아요. 일본어에 능통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번 공연의 작가로서 임경선 작가는 최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에 디토 오케스트라나, 지용씨나 가장 힙하고 핫하신 분들이잖아요. 저만 잘 하면 될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본인은 왜 사회자로 들어가게 된 거라 생각하시나요? (웃음)
외모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제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어요. (웃음)
임경선씨 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제가 하루키를 좋아하고요,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1Q84>나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같은 소설은 하루키 밖에 못 쓴다고 생각해요.
또 하루키 특유의 뭔가도 있어요. 예를 들어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을 보면, 애인이 떠나서 혼자 남겨진 남자가 외로워하다 비누를 보면서 독백을 해요, "비누야, 그동안 많이 야위었구나". 만약 그게 다른 감독의 영화에 나왔다면 닭살 돋아서 어떻게 듣겠어요. 근데 왕가위 감독 영화에선 그런 장면을 봐도 닭살이 안 돋아요. 그게 예술가의 힘이잖아요. 하루키 소설에도 굉장히 쿨한 면도, 굉장히 감상적인 면도 있는데 그런 것이 최적의 상황으로 어울려 있어요. 그런 면에서 하루키는 굉장히 좋은 스토리 텔러죠. 리얼리즘 문학과 환상적인 요소가 있는 문학을 교차시키면서 쓰는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가에요.
굳이 얘기한다면 이번 행사에서 전 문학적인 부분을 얘기하겠죠. 책에 관한 방송을 하고 있기도 하고 전체적인 행사의 맥락을 잡는 메인 MC를 맡고 있기 때문에 순서적인 흐름, 더 중요하게는 하루키의 문학을 음악과의 접점에서 더 편안하고 쉽게 접하실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될 경우엔. (웃음)
<하루키 뮤직룸>의 음악을 담당할 디토 오케스트라
Q. 하루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악을 주제로 한 콘서트는 기존에도 존재했습니다. 하루키 소설과 음악이 계속 연결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첫 번째로, 하루키는 자신의 인생에서 음악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에요. 하루키 스스로도 자기 인생에서 자신을 가장 잘 버틸 수 있게 하는 두 가지가 책과 음악이라고 얘길 한 적도 있고요.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재즈바 사장이었고. 어떻게 보면 작가로서의 자의식보다 음악 애호가로서의 자의식이 먼저 일어난 사람의 느낌도 있어요.
두 번째는 대부분의 많은 소설들에서 음악이 인용되는 방식은 그게 '힙' 해 보이기 때문이에요. 음악을 다룰 때 클래식이든 팝이든 주로 선호되는 음악이 있을 거고, 그랬을 때 대화의 소재 정도로, 혹은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정도로 음악이 도구처럼 쓰여지는 거죠.
하지만 하루키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고요, 소설 속에서 음악은 양념이 아닌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죠. 예를 들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다자키 쓰쿠루>)에서 리스트의 음악을 빼고 얘길 한다면 주인공과 하이다의 관계는 이해가 안 되는 얘기가 될 거고, <1Q84>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없다고 가정하면, 두 가지 세계가 펼쳐지면서 너무나 신비롭게 교차되는 소설의 맥락을 이해할 수 없어요.
또 다른 제 개인적인 코멘트를 붙인다면, 모든 예술이 결국은 핵심에서 음악적인 상태를 지향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적인 상태라 하면 리듬일 수도, 멜로디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쪽에 굉장히 예민한 하루키라면, 그런 것이 체화된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제 의견이죠.
Q. 이동진 평론가에게도 음악은 큰 영향을 미쳤던 장르이지요?
책은 모르겠지만, 영화보다는 먼저 제게 영향을 미쳤어요. 영화를 광적으로 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였고 음악은 중학생때부터 좀 과하게 들었으니, 원 체험을 선사한 것은 음악이라고 볼 수 있죠.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제 기질일 수도 있고 환경의 영향일 수도 있는데, 제가 음악을 찾았다기 보다 음악이 절 찾아온 거라 할 수 있어요. 능동적으로 무언가가 개입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요.
Q. 이번 공연 프로그램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도 궁금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엔 몰랐던 곡도 있고 좋아하는 곡도 있어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는 하루키 아니었으면 들어보지 못했을 곡이었고 무슨 곡인지도 몰랐어요. <1Q84>를 보는데 처음부터 너무 중요하게 나와서 굉장히 궁금하더라고요. 그때 소설이 국내에서 인기가 있어서 소설 속 음악이 담긴 CD도 나왔는데, 제가 산 건 바르톡과 야나체크의 곡을 하나씩 담은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CD였어요. 그걸 들으면서 '아, 이게 신포니에타구나, 왜 하루키는 이 곡을 하필 이 지점에 썼을까' 하는 상상을 했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팝, 록 쪽이기 때문에 제일 모르는 건 클래식이고 조금 덜 모르지만 역시 모르는 건 재즈에요. 그래서 그냥 느낌만으로 이야기했을 때, 신포니에타가 굉장히 이국적으로 들리는데 향수가 있더라고요. 이국적인 향수라는 건 제가 볼 때 굉장히 중요한 예술의 감정이에요. 왜냐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이 예술의 굉장히 중요한 핵심 중에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1991년생 정도 되는 학생이 <응답하라 1994>를 보는데 굉장히 재밌단 말이에요. 심지어 향수를 느끼는데 그 사람은 삐삐가 있던 시대를 몰라요. 그렇다면 그게 거짓 향수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어떤 근원적인 향수, 노스텔지어를 건드리는 지점이 있거든요.
<1Q84>가 심지어 하늘에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 일종의 평행우주 같은 세계를 변주하는 소설이잖아요. 그럴 때 굉장히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익숙한 향수를 느끼게 하면서도 이국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아마 신포니에타를 쓰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곡을 듣고 하게 됐어요.
Q. 이번 공연의 수식어 중에 '이동진'이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그만큼 이동진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이 크다는 것이겠죠?
중압감은 항상 있지요. 사람들이 보는 것보다 제가 자신감이 없어요. 이런 3천 석 객석에서 하는 행사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규모의 자리도 가기 전에 '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어찌 제 능력에 부치게 이런 일들을 하는 거고요.
이번 경우에는 제가 한 번도 안 해 본 일이에요. 이전에도 이런 제안을 몇 번 받아보긴 했는데 그동안 거절했던 이유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엔 스스로가 굉장히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최소한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면 하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안되지만, 이 행사에 내가 플러스가 되진 않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망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무엇보다 재미있는 일이고.
Q. 민폐끼치지 않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과거 인터뷰에서도 몇 번 언급하셨고.
제 책에 사인 같은 거 해 드리잖아요. 글씨를 워낙 못 써서 내 이름만 쓰면 스스로도 너무 한심해 보여서 언젠가부터 제가 생각하는 말들을 적어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런 문구가 한 20여 개 되요. 돌려막기 하고 있는데 (웃음) 그 중에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가 '흘리지 않는 1인분의 삶'이라는 말이에요. 어떤 글을 쓰다 제가 쓴 표현인데, 살다보면 사람이 흘리게 되거든요. 흘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가지만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게 인간이잖아요. 그렇지만 가급적 흘리지 않겠다는 다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다짐을 실어서 써 드리기도 하고, 쓸 때마다 제가 다짐도 하고요. 민폐를 끼칠 수 밖에 없는 게 사람이지만 가급적 덜 끼치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Q. 1인 미디어로 활동하신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영화평론 외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계세요.
어쨌건 저는 직장을 다니는 게 힘들어서 나온 사람이고 그런 상황에서 제가 가진 쥐꼬리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살아가야 하는 생활인인 거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제가 그렇게 진취적인 사람이 아니고 세류가 어떻게 바뀌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트랜디한 사람이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나라는 사람의 상황이나 위치가 특이해서 새로운 제안들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한 사람이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감내하는. 그런데 전 그런 타입은 아니고,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게 더 중요해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은 안 해도 되요. 그런데 하기 싫은 일을 하면 저는 그 상황을 못 견뎌요. 다시 말하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있고 그걸로 삶을 버텨나갈 수 있고, 심지어 재미나 보람까지 있으면 그 일을 안 할 이유가 없어요. 그런 태도로 지난 10년을 한 거에요.
Q. '일 중독'이라고 여겨질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왔어요. (웃음)
그런가요? (웃음) 대한민국 평균적인 남자들에 비하면, 그것보다는 성실한 것 같아요. 그건 사실인 것 같아요.
Q. 무엇보다 '이동진'이 가지고 있는 친근한 느낌 때문에, 대중과 만나는 다양한 장르에서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단점이 많지만 몇 안 되는 제 장점 중 하나가, 제가 딱딱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영역에 선을 긋고 제한을 두는, '왜 영화평론가가 이런 일을 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영화평론가이고 제 인생에서 그 일이 직업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영화평론가로 뼈를 묻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물론 평생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보람이 있겠지만, 영화평론이라는 일 자체가 무용해지는 때가 올 수도 있는 거고요. 어떤 제안이 왔을 때 내가 안 해 본 일이라고 몸을 사리거나 그러진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면 안 되는 일은 하면 안되겠죠.
Q. 끝으로 메인MC로서 <하루키 뮤직룸>에 찾아올 관객들에게 기대를 불러 넣을 한 마디를 하신다면.
하루키와 음악을 연결하는 공연이 처음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특정 공연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일반적으로 콘셉이 구색만 맞추는 경우가 많고 음악을 고를 때나 사람을 초청할 때 기획력이나 제작비 등의 이유로 스스로 한계를 두는 경우가 굉장히 많잖아요. 소품 위주의 곡을 연주한다든지.
그런데 이번 공연은 76인조 오케스트라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로 시작하잖아요. 제가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 곡을 국내에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다가 하루키 관련 공연에서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해요. 전 하루키와 관련된 음악 중 가장 듣고 싶은 단 한 곡을 꼽는다면 신포니에타에요. <1Q84>는 <상실의 시대>와 함께 국내에서나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하루키 소설이고, 작품 속에서 그 음악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잖아요. 그런 음악을 제대로 셋팅된 세종문화회관에서 듣는다? 그건 굉장히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음악적으로도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자리에 같이 합류하게 된 게 큰 영광이기도 합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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