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하리> 작가 아이반 멘첼, "인간 이중성의 극대화, 그것이 마타하리다"

지난 22일, 내년 서울에서 세계 초연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마타하리>의 리딩 워크숍이 열렸다. 대본과 음악 등을 배우들이 직접 읽고 노래해 보며 공연의 전체적인 그림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리딩 워크숍은 본 공연을 위한 준비로 빠져서는 안될 단계이다. <하이스쿨 뮤지컬> <올리버> <뉴시스> 등을 지휘한 브로드웨이 베테랑 연출가 제프 칼훈, <몬테크리스토> <황태자 루돌프> 등의 작사가 잭 머피, <엑스칼리버> <보니앤클라이드>의 작가 아이반 멘첼, 그리고 <지킬앤하이드> 등 다수의 작품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도 한 자리에 모였다.

워크숍 후 만난 작가 아이반 멘첼은 "내 몸의 혈관을 속속들이 다 보여주는 것처럼 공연에 대해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자리"라며 리딩 워크숍은 언제나 두렵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이 좋아할 비극과 스타일, 모두가 갖춰진 작품이 <마타하리>"라며 워크숍이 만족스럽게 진행되었음을 숨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며 양국의 스파이 활동을 한 것으로 여겨져 총살당했던 실존 인물이다. 한눈에 시선을 앗아가는 뛰어난 외모와 매혹적인 춤 솜씨로 유럽에 이름을 떨쳤던 그녀의 미스터리하고 기구한 삶이 한 편의 드라마, 뮤지컬 <마타하리>로 부활한다. 그녀의 미모와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또 그 안에 흑심을 품고 접근한 많은 세력들과 남자들 속에서 조종사 아르망과 사랑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새롭게 펼쳐낸 것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극으로 3년간 작가로서 창작과정에 참여한 아이반 멘첼에게 내년 정식 개막 예정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어보았다.

Q. 방금 리딩 워크숍이 끝났다. 어땠나?
아주 흥미로웠다. 2년 동안 머리 속에서 '이렇게 불러지겠지, 이렇게 공연되겠지' 상상만 했던 것들을 배우들이 직접 하는 걸 보니 매우 신이 났다. (웃음) 대본은 어쨌거나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여지기 위해서 쓰는 것이니 워크숍은 참 좋다.

Q. 오늘 워크숍에 선 배우들은 단 일주일 간 연습했다고 들었다.
한국 와서 6일 동안 준비했는데, 6일 전 대본과 오늘 대본도 엄청 다르다. 프랭크 와일드혼(이하 프랭크)도 여기 와서 새로 아르망과 남자 조종사들이 부르는 곡('추락할 땐')을 썼고 다른 곡들이 빠지기도, 또 자리가 바뀌기도 했다. 어제까지 새로운 자료들이 계속 배우들에게 전달됐다. (웃음)

Q. 마타하리를 소재로 한 영화, 뮤지컬, 책 등이 이미 있다. 마타하리를 소재로 다양한 콘텐츠가 계속 생겨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녀는 아주 매혹적인 캐릭터 같다. '모던 여성'이 존재하기 100년 전에 이미 그녀는 모던 여성이었다. 법정에서 그녀를 유죄라고 판단하기에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녀에 관한 책 중에서 '그녀가 법을 어겨서가 아니라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마타하리가 살았던 시대는 벨에포크(프랑스어로 '좋은 시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예술과 문화가 번성하며 풍요와 평화를 누렸던 때를 가리킨다.)였는데 이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이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 좋게 보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후 규칙을 어기는 일이 된 것이다. 또 그녀에 대한 진실을 그 누구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뮤지컬 <마타하리> 서울 워크숍 장면

Q. <마타하리>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마가레트(마타하리의 본명)와 마타하리의 이중성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우리가 대중을 대할 때와 스스로를 돌아볼 때 모습이 다르지 않나. 다들 성공하기 위해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묻고 사람들이 보기 원하는 모습만 드러낼 때가 있다. 그걸 극대화한 것이 마타하리라고 할 수 있다. 라두가 "당신은 사기꾼이기 때문에 이미 스파이로 완벽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녀 인생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마타하리가 추는 시바신에게 바치는 춤은 그 전까지 유럽에서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춤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동쪽의 문화를 서쪽으로 가져온 사람이기도 하다. 진짜 지금 미국에서도 재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야한 춤이었다는데, 상체 속옷만 입고 췄고 그것도 가슴이 작아서 스스로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파이 논란이 있기 훨씬 전부터 마타하리에 대한 호, 불호의 시선들이 확실히 나뉘어 있었던 거다. 천재적인 댄서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말도 안 되는 여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마타하리'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방패막이로 보면 될 것 같다. 어렸을 때 너무나 상처받았고 그래서 세상, 특히 남자에게 다시 상처받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아르망에게서 안전함을 느꼈을 때 자신의 과거 소녀 같은 모습을 꺼내는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마타하리 뿐 아니라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이 이중성을 띄고 있다는 것,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라두와 캐서린은 빌 클린턴과 힐러리를 모델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얼마나 나쁘든 세상이 봐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Q. 사회자가 등장하는 구조다.
마타하리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가 전해져야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타하리 자체가 무대 위의 삶처럼 살다 갔으니까. 그래서 총살을 위한 조준과 발사 사이에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죽기 바로 직전에 그간 살아온 인생이 필름처럼 머리 속에 지나간다고 하지 않나. 마타하리이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에 물랑루즈를 회상할 것 같았다. 물랑루즈는 그녀가 스타가 된 곳이고, 스파이가 되길 요청 받은 곳이며, 또 체포되기도 한 곳이다. 어떤 관점에서든 물랑루즈는 그녀에게 가장 중요했던 곳이고, 사회자는 마타하리가 꾸는 꿈의 해설자 역할을 한다.

Q. 한국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예정한 작품이다. 작업과정에서 더욱 신경 썼던 부분이 있는가?
주인공이 아시아인이 아니지만 첫 프로덕션이 한국이기 때문에 작품이 한국의 영향을 받는 게 신기했다. 첫날 대본을 받아본 배우들이 '이건 아니다, 이건 안되겠다' 등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웃음) 유머 코드나 표현 등을 한국적인 문화와 결합시키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Q. 작가는 전체적인 이야기 뿐 아니라 단어, 어순, 표현 방식 등 아주 섬세한 글자까지 염두하고 글을 쓰는 사람인데, 영어로 쓴 대본을 한국어로 공연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은 없는가.
프로듀서들을 너무나 믿고 있기 때문에 문젠 없다. 한국 대사를 작업하는 분들도 너무나 잘 해주고 있고, 한국어 번역본을 다시 영어로 바꾸는 역번역 작업도 계속하며 확인하고 있다. 3년 동안 대본을 쓰고 또 수정해와서 대본의 모든 부분을 이젠 눈 감고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배우들이 한국어로 연기하지만 말에도 음악성이 있어서 앉아서 듣고 있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 수 있다. 눈 앞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감각들이 더 살아난다고 하지 않나. 이처럼 한국어를 듣고 있으면, 언어는 모르지만 음악의 흐름이나 리듬 등 다른 부분의 감각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스위스에서 독일어로 <엑스칼리버>를 공연했고, <데스노트>는 일본어로 공연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런 작업을 하냐고 하지만 크게 어렵지는 않다.


물론 한국에는 반말, 존댓말 등이 있어서 아르망과 마타하리가 언제부터 편해져서 반말로 대화를 하게 될까, 등의 부분들을 고려하면서 조심스럽게 작업하고 있다. 또 군인 말투도 있고. 스텝들이 워낙 많아서 자기들의 생각을 많이 말해준다. 뮤지컬을 만드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 (웃음)

Q. 프랭크 와일드혼과 함께 호흡을 맞춘 또 다른 작품, <데스노트>도 지금 한국에서 공연 중이다.
한국 배우들은 세계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배우인 것 같다. 내가 만든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되고 불려지는 게 신기하다. 아주 훌륭하고 흥미로웠다. 일본 공연과 같은 작품이지만 다른 분위기가 났다. 아마도 배우들이 달라서 그럴 것이다.

Q. <마타하리>가 올 연말에서 내년 초로 공연 일정이 변경되었다. 기다리고 있는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프로듀서들이 가장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고 그렇게 내려진 결정이라고 본다. <마타하리> 준비를 시작한 날, 프로듀서가 우리는 세계 초연이기 때문에 뭐든지 1등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본이나 곡, 디자이너 등 최고의 조합이라고 생각하고, 또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부분이 바뀌겠지만 기본 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작업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에겐 최상의 공연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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