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따뜻하게’, 버림받은 자식들을 이야기하다 <에어포트 베이비> 박칼린 연출

1950년대부터 2014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한국 아이들의 수가 15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아동수출국'이라는 오명은 현재 겨우 벗었다지만 2015년에도 약 1,200여 명의 입양아 중 반이 해외로 새로운 부모를 찾아 떠났다. 이들이 성장하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방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건강하게 자란 한 입양아의 뿌리 찾기 과정을 유쾌하고도 따스하게 담아낸 창작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는 여러 가지로 입양과 삶에 대한 생각의 길을 열게 해 줄 작품으로 점쳐진다. 2013년부터 충무아트홀에서 진행한 창작 발굴 프로그램 '뮤지컬하우스 블랙앤블루' 제작발표회와 쇼케이스를 거쳤으며,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뮤지컬 시범 공연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이유를 연출가 박칼린에게 들어보자.

Q. <에어포트 베이비> 설명 자료 중에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신파가 아니다' 였다.
이 작품 엄청 쿨하다. (극이 담고 있는 감정의) 극과 극이 되게 넓은 것 같다. 처음엔 엄청 가볍게 보일 거다. 그러다 한 순간, 두 순간, 그 씬에 진실로 들어갔을 때 그쪽으로 쏠렸다가 그 다음에 확 풀어진다. (작품이 감정을) 들었다 놨다를 잘 한다. 쓴 사람들이 잘 썼다.

Q. 신파가 아닌 입양아의 뿌리찾기,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인가.
절대 울리려는 작품 아니고, 정~말 따뜻한 작품이다. 버림받은 자식들이 모여서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또 다른 가족의 따뜻함과 아늑함. 그래서 공연 보며 웃다가 울다가 끝나고 나면 객석에서 관객들이 "아~" 그러고 나간다.

Q. 지난 3년 간 개발한 작품이다. 그 과정을 다 지켜봤다고.
처음부터 다 봤다. 작곡가와 작가는 나와 10년 이상 알고 지낸, 우리 가족들이다. 그래서 처음에 작품 쓴다고 했을 때부터 고민도 이야기하고 디벨롭잉을 같이 했다. 이야기나 캐릭터나. 특히 주 인물 중 한 명을 못 풀었을 때 캐릭터에 대해 제시를 했는데 그게 딱 맞아떨어져서, 두 달 동안 끙끙 앓고 있던 게 풀리기도 했다. 잘 쓴 걸 엎어서 다시 쓰라고 한 것도 있고. 몇 번의 업데이트를 거쳐서 이제 조금 완성에 가까워진 것 같다.

Q. 두 달 고민했다 풀어졌다는 캐릭터가 '딜리아'인가.
조쉬를 한국에서 도와 줄 사람이 필요했다. 엄마 찾으러 가는 여정을 함께하는. 처음엔 경찰일까? 여경일까? 그러면 러브라인이 만들어질 텐데 우린 러브라인 진짜 싫고. (웃음) 아니면 중앙복지회 사람일까? 고민했는데 못 찾았다. 나는 이것만 제시했다. 버림받은 사람으로서 모진 역경을 다 이기고 해탈한 사람만이 조쉬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런 사람만이 조쉬의 아픈 여정을 같이 가 줄 수 있고, 러브라인으로 꼬이지 않고.


맨 오른쪽이 딜리아

그런데 어느 날 10년도 전에 봤던 사람이 떠올랐다. 공연 때문에 이태원을 연구 삼아 돌다가 새벽에 커피나 한 잔씩 하고 돌아가자, 다들 그래서 허름한 바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있더라. 그렇게 따뜻할 수 없고 그 사람 얼굴에 역사가 다 읽히고, 해탈한 게 다 보이는. 자신이 아마도 대한민국 최초의 커밍아웃 게이였을 거라면서. 그 사람은 진짜인거다. 게이이고 싶어서도 아니고, 게이인 척하는 것도 아니고. 게이스러운 것도 아니고. 정말 너무나도 따뜻한 할머니. 그게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이 인물을 표현하면 숙제가 풀릴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바로 받아들여졌다.

대한민국에서 게이 역할은 엄청 여성스럽고, 희화화하고 코믹하게 그린다. 그런데 그렇게 말고, 우리 배우(딜리아 역의 강윤석) 진짜 명배우다. 정말 그렇게 따뜻한 할머니가 있을 수 없다.

Q. 딜리아로 인해 이 작품이 '한 인물의 뿌리 찾기'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건 아니다. 게이 이야기도 별로 없다. 정말 버림받은 자식들의 모임이다. 고아로 버려져 입양된 애들, 게이라서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버림받은 자식들이 '어? 내가 누구지?' 한번 찾아보고, 아님 말고. 꼭 피붙이만이 가족이 아니고 이렇게 서로 보듬는 사람들이 더 나은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다양한 사랑에 대해, 자기 자신이 자기 옷을 잘 입었을 때 오는 행복, 이런 것들이 작품에 오히려 더 많이 담아 있다. 어떤 메시지를 얻든 정말 따뜻한 작품 봤다, 대본 잘 썼다, 음악 참 좋다, 이런 게 남을 것이다. 저 배우는 어떻게 저렇게 게이스럽지 않게 너무나 따뜻하게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나올까? 그런 코멘트를 디벨롭 과정에서 많이 들었다.

Q. 주인공 조쉬도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라고 들었다.
작가, 작곡가에게 각각 입양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두 남녀의 이야기를 섞어서 픽션을 만든 거다. 남자는 유태인 집안으로 입양되었고, 여자는 어머니를 찾는 게 어려웠다. 그런 요소들을 더해서 조쉬를 그렸다.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 연습 중

Q. 작가(전수양), 작곡가(장희선)에 대해서.
진짜 난 팔이 안으로 안 굽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둘은 정말 잘 쓴다. 10년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혹독하게 지켜봤고, 많이 요구도 했다.

뮤지컬 창작자들이 좋은 짝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에서도 로저스&해머스타인, 팀 라이스&앤드루 로이드 웨버, 이렇게 쌍으로 얘기가 되지 않나. 그 이유가, 그렇게 맞는 짝을 찾으면 잘 안 놓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 창작하는 친구들에게 짝 찾기 교육을 한다. 서른 명 대상 중에 서로 동대문 가서 천도 보면서 삼베에 꽂히면 둘이 삼베에 대해서 작품 쓸 얘기도 해보고, 책방에서 작품 소재도 같이 찾고. 그렇게 서로 같은 것에 꽂히는지, 또 서로 맞는 레벨인지. 한 사람은 초등학교 6학년 음악을 쓰는데, 다른 사람은 대학 레벨의 글을 쓰면 안 되는 거니까.

두 사람은 그런 과정 다 거쳐서 제대로 배웠고, 한예종 문창과, 뉴욕대 다시 들어가서 또 배우고. 시키는대로 다 한 친구들이다. 그렇게 죽이 맞아서 둘이 삼아 남은 거다.

Q. 관객들은 이렇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잘 모를 것이다.
모른다. 그런데 관객이 알 필요가 있나? 그들은 공연만 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또 우리 일은 약간 신비에 싸여져 있어야 하고. 우리는 백조의 발처럼 물 밑에서 막.(웃음) 그게 우리의 일이다. 자식 낳는 아픔을 힘들게 겪고, 그 끝에 작품 좋다고 박수 쳐주면 그걸로 다 해소하고.

Q. 극중 한국어, 영어, 그리고 사투리도 등장한다. 넘버 중에 '우짜쓰까잉'이라는 곡도 있고.
원래 모델로 삼았던 여자 입양인 엄마 고향이 광주인가 목포다. 그래서 조쉬가 엄마를 찾아가는 곳을 목포로 했다. '우짜쓰까잉'은 조쉬 외삼촌의 넘버인데, 외삼촌도 엄청 따뜻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다. 우리 배우 중 한 명이 엊그제도 이런 얘길 했는데, 다른 작품 하면서는 소모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여기에선 멀티를 해도 조쉬의 스토리를 받쳐주고 싶지, 소모되는 느낌이 하나도 안 든다고. 극중 캐릭터가 다 중요하다. 버릴 캐릭터가 아무도 없다.


Q. 음악감독으로, 현재 <넥스트 투 노멀>의 다이애나 역을 맡아 배우로도 활동 중이기도 하지만, 점점 연출가로서의 행보가 활발해진다.
내가 연출 실력이 있어서 하는 건 아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나. 다만, 이 작품은 잘 안다. 내가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적인 요구사항도 되게 많다. 음을 홀딩하는 길이, 배우가 감정을 잡고 있을 때 포즈를 잡아야 하는 것 등. 그래서 우리 작가나 작곡가가 내게 연출을 해달라고 한 것 같다. 뮤지컬은 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게 75%라면, 25%는 무조건 남과 부딪혀서 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연출은 못해도, 이 작품의 의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배우들과 세밀하게 연습하는 거 좋아하고, 음악과 리듬과 느낌, 감정들과 싸우는 것도 좋아하고. 작품 준비하는 과정이 되게 자연스러웠다.

Q.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는데,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쇼 적인 것 같다. 장르에 꽂혀있진 않다. 서커스, 연극, 뮤지컬, 이런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시어트리컬 쇼(theatrical show)'라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씨어터에서 일어나는 쇼, 그런 쪽으로 파고 있다. 그런데 물 흐르듯이 가고 있다. 일 없으면 쉬고, 있으면 하고. (웃음)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댓글1

  • kontin** 2016.02.24

    역시 박칼린 선생님이시네요! 챙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창작이라니 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