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아의 만나고 싶은 사람] 훈훈한 폭풍성장, 공연은 끝나도 계속되는 이들의 이야기! 대한민국 1대 빌리

처음 연락을 할 때 순간 멈칫 했습니다. 불과 6년 전에 "세용아, 지명아~"라고 불렀던 아이들이었는데, 물론 저와 함께 나이가 들어갔다지만, 이제 그들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씨? 군? 호칭을 정하는데도 망설이기를 몇 번. '군'으로 통일하고 절로 나오는 존댓말로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나를 포함해 정말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우리 한번 모이는 거 어때요?"

흔쾌히 좋다고 답하는 그들이 고맙고 더욱 궁금했습니다. 내년 드디어 재연이 확정되어 많은 관객들이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는 <빌리 엘리어트>, 그 역사를 세운 2010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역들. 바로 대한민국 1대 빌리들 김세용(세종대학교 무용과 1년), 이지명(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1년), 정진호(안양외국어고등학교 3년), 박준형(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2년) 군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을까?

어른들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대작의 주인공으로 서며 발레, 탭댄스, 아크로바틱 등의 다양한 테크닉 뿐 아니라 전 세대를 울리는 감동 드라마를 고스란히 비춰 내어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그들. <빌리 엘리어트>의 추억과 함께 그간 차곡차곡 쌓아왔던 이들의 꿈도 함께 나눠봤습니다.

아, 지명군은 고단한 대학생활과 자유로운 자취생활로 인해 아침 알람을 듣지 못하는 불상사를 딛고 뒤늦게 약속 장소로 달려왔습니다. 다른 빌리들이 부득이하게 개인 일정으로 헤어진 뒤 진행된 지명과, 그런 형을 위해 기꺼이 남아준 진호의 대화는 중간 중간에 '드라마틱한 포지션'으로 삽입함을 미리 알립니다. 지난 24일 일요일 아주 이른 아침에 시간을 내어준 빌리들, 고마워요!

몇 년 만인가! 청년이 된 빌리들!

- 이렇게 한 자리에 다 같이 모인 게 오랜만이죠? 그런데 어색함이 전혀 없네요.

정진호(이하 진호): 한 3년 만? <빌리 엘리어트>(이하 <빌리>) 첫공 기념으로 저희끼리 만나서 LG(아트센터)에 한 번 갔었어요.

박준형(이하 준형): 그 때도 선우는 없었어요. (일동 웃음) <빌리> 막공 끝나고 다 같이 만난 적이 없어요, 저랑은 같은 학교 다녀서 맨날 만났는데.

이지명(이하 지명): 친척들 명절 때 한 번씩 보면 반갑잖아요. 그런 느낌? 핏덩이 일원 같은? 너무 가족 같으니까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고 그러지 않아요.

진호: 맞아요. "와, 진짜 반가워" 이런 거 없이, 만나면 그냥 가식 없이 편안해요.

김세용(이하 세용): 아, 저 올해 12월에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해요. <호두까기 인형>.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다들 보러 와.

- 선우는 콩쿨 준비 때문에 무척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세용: 나도 다음달부터 콩쿨인데, 안되겠네. (웃음) 선우도 정말 많이 컸어요. 얼굴도 징그러워졌어요, 목소리도. (웃음)

준형: 목소리가 저 보다 굵어요. (웃음) 중학생 땐 맨날 붙어 다녔는데. 집도 가까워서 학교 끝나면 무용 교정센터 같이 다니고. 둘 다 야구 기아 팬이거든요, 그래서 맨날 핸드폰으로 야구 보고.


무용수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김세용

- 세용이는 대학생이 됐죠? 꿈과 낭만의 캠퍼스 라이프 중인가요?

세용: 꿈과 낭만요? (웃음) 한 달 다녔는데 벌써 1년 다닌 것 같아요. (웃음) 배우는 것도 엄청 많아요. 발레는 해도해도 어렵고. 콩쿨을 되게 많이 나가게 돼서, 오히려 고 3때보다 더 힘들 정도에요. 동아무용콩쿨 나가고, 국제 콩쿨도 있는데 아직 결정나진 않았고요.

- 특히 남자 무용수들은 콩쿨 입상이 군대와 연결되어 있잖아요.

세용: 그렇죠. 남성 무용수들이 제일 걱정하는 게 그거에요. 군대 갔다 오면 무용수로서 인생이 거의 끝이 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망가져요. 무용하는 사람들은 몸이 되게 건강해서 거의 다 현역으로 가거든요.

- 지명이는 대학생활 어때요? 네 곳 합격해서 골라갔다는 소문이 자자해요.

지명: 어떻게 운이 좋아서죠, 운이 좋아서. (웃음)

- 왠지 술도 잘 할 것 같은데. (웃음)

지명: 못하진 않습니다. (웃음) 주량은 두 병 정도? 그 뒤로는 컨디션에 따라. (웃음) 학교에서 집까지 2시간 걸려서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어요.

- 독립생활은 처음인 거죠?

지명
: 네. 하기 전에는 정말 좋을 줄 알았어요. 제가 고독을 좀 즐기는 스타일이라.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까 '아, 외롭다' 이런 생각 많이 들더라고요. 학교에서 다 같이 재미있게 수업하다가 집에 오면 혼자니까.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이제 저만의 고독을 즐기고 있어요. (웃음)

- 진호는 고3이고요.

진호
: 수능이 207일 남았어요.
준형: 이 형은 좋은 대학 갈 수밖에 없어요. 뉴스에서 전국 몇 등, 뭐 이런 거 나오고.

- 나도 깜짝 놀랐어요. 전국 고교 경제 올림피아드에서 동상도 타고, 테셋(TESAT, 종합경제이해력검증시험) 개인 부문에서 전국 3등을 했더라고요. (300점 만점에 297점)

진호
: 테셋이 한국경제신문에서 하는 건데 경제 자격증 같은 시험이에요. 상경계쪽 목표로 하니까 공부했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죠.

- 예전부터 춤추는 경제학자가 꿈인, 공부 열심히 하는 빌리였잖아요.

진호: 아니에요. (웃음) 그땐 세용이 형이랑 지명이 형이 중학생이다 보니까 내신 챙겼어야 했고,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라 그렇지 않았어요.

준형: 형은 그래도 했잖아. 전 그냥 놀았어요. (웃음) 세용이 형도 공부 엄청 잘했어요. 1등 하고.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해 논할 뻔 했던(?) 정진호

- 현역 뮤지컬 배우인 준형이는 요즘 어때요? 오랜만에 공연하는 거잖아요.

준형: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고등학교 뮤지컬 학과를 갔거든요 그런데 진호 형 소개로 <뉴시즈>를 알게 됐어요. 페이스북에 저를 태그해서, 이 작품이 <빌리>랑 뭔가 닮았다고. 원래 1학년 때는 외부 활동이 제한되어 있어요. 그래서 학교엔 아프다고 빠지고 (웃음) 오디션 보러 다녔죠. 다행히 뮤지컬과다 보니까 선생님들이 팍팍 밀어주셔서 학교 생활은 문제 없어요. 대신 아침에는 꼭 나가야 해요, 8시 반까지.

진호: 몇 년 전에 <뉴시즈> 영상을 봤어요. 발레도 나오고 아크로바틱도 나오고 하니까 진짜 재밌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 올라오면 좋겠다, 했는데 딱 올라온 거에요. 그런데 전 고3이라 오디션을 볼 수 없으니까 지명이 형도 알려주고 준형이도 알려주고 세용이 형도 알려줬어요. 은일이 형이라고 크런치 역 하는 형도 알려주고.

잊지 못할 <빌리 엘리어트>, 특별무대 서고 싶어요!

- <빌리>가 너무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잖아요. 정말 재연 기다리는 사람 많았는데, 드디어 내년 재연이 확정됐어요.

세용: 집이 학교랑 가까워서 자전거 타고 다니거든요. 집에서 나오면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거기에 <빌리> 포스터가 붙은 거에요. 깜짝 놀라서 찾아봤더니 오디션 한다고 하더라고요. 또 진호가 태그해줘서 아, <빌리>가 드디어 올라오는구나, 했죠. 계속 '<빌리> 안 하나, 안 하나' 그런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준형: "성인 빌리 역 안 하냐?" 그런 얘기 엄청 많이 들었어요. 진짜 키만 안 크고 변성기 안 왔으면 지금도 빌리 했을 거에요. (웃음) 저희가 심사위원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진호: 항상 하는 얘긴데, 5주년, 10주년, 그런 행사 하잖아요. 저희가 피날레 때 단체로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이하 '일렉')' 한 번 해 봤으면 좋겠어요.

세용
: 대박이겠다.

진호: 불러만 주신다면. (웃음)

- 다시 빌리로 서고 싶나요?

세용: 하고 싶죠. 잊지 못할 것 같아요.

- 왜 또 하고 싶어요?

준형: 일단 주인공이다 보니까. (일동 웃음) 아직 항상 막내다 보니까 힘드네요. (웃음) 콜타임도 빠르고 사회생활도 빨리 배우는 것 같아요. (웃음)
세용: 아직 멀었어. (웃음)

- 6년 전 그때로 돌아가 볼까요? 한국에서 공연하기 전에 저는 런던에서 먼저 이 작품을 봤었어요. 아직도 생생한 건 '다른 건 몰라도 한국에서 빌리를 찾아 키우는 건 아직 불가능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던 거에요. 그런데 해내더라고요.

지용: 저도,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준형: 집에 아직도 대본이 있어요, 빨간색 대본이. 이렇게 두꺼운데 그걸 어떻게 외웠는지도 잘 모르겠고. 3시간 동안 빌리가 이끌어가는 극인데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고된 훈련도 어찌 그리 잘 해내었는지(2010년 <빌리 엘리어트> 연습 중 ⓒPlaydb)

- 그때는 어려운걸 몰랐나요?

세용
: 어려운 거 몰랐죠. 물론 연습도 엄청 힘들고 그랬는데, 저희는 진짜 공연을 즐기면서 했거든요. 잘해야지, 그런 거 말고 즐기면서.
준형: 어렸으니까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웃음)

- 준형이는 뒤늦게 합류해서 형들 만큼 잘 해야 된다는 부담감도 컸을 것 같은데.

준형: 전 정말 형들 공연 많이 봤어요. 각자 열 번은 본 것 같아요. 그런데 봐도봐도 안 지겨운 거에요, 진짜로. 아, 멋있다, 그러고.

진호: 난 그 얘기 들었어.(웃음) 준형이가 빌리 스쿨 하고 공연장 넘어오면 너무 피곤하니까, 공연 중에 자다가 '일렉'하면 깨서 보고 또 잤다고.

준형: 내가 그랬나? (웃음) 그랬던 것 같다. 엄청 힘들었거든요. 졸다가 중요한 장면은 깨서 보고. (웃음)

- 몸 근육 쓰는 게 다르기도 할 테고, 발레 하는 사람들이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세용이는 어떻게 빌리 지원하게 된 거에요?

세용: 발레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장르 넘어가는 거에 대해 거부감이 있어요. 저도 그랬고, 특히 저희 엄마가 심하셨거든요. 근데 아빠가 빌리 오디션 볼 생각 없냐고, 좋은 경험이니까 한번 해보자고 해서, 처음엔 정말 억지로 끌려 갔었어요. '내가 이걸 왜 하지?' 그러면서.

처음 오디션에서 '솔리다리티(Solidarity)' 부분 같았는데 그거 하라고 시키고 노래도 하라고 해서 하다 보니까 계속 다음 오디션도 보고, 또 다음 오디션도 보고, 아, 이렇게 내가 붙는 거구나, 그렇게 재미를 느끼다 보니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하게 된 거죠.

진호: <빌리>가 오디션 방식이 되게 특이해요. 다른 오디션은 지정곡 주는데, <빌리>는 놀면서도 오디션 보거든요. '익스프레싱 유어셀프(Expressing Yourself)'도 슬픈 듯이 불러라, 뛰어 다니면서 불러라, 그런 얘기도 하고. 안무도 막 재밌게 놀다가 알려주고, 그렇게 오디션 같지 않게 봤어요.

준형: 전 오디션 때 처음 탭을 했었어요. 여럿이 모여서 세 줄로 서서.


우아한 실루엣과 뛰어난 테크닉을 자랑했던 세용빌리(2010년 공연 중 ⓒPlaydb)

세용: 그때 완전 떨렸는데. 저도 그전까지 탭 슈즈라는 걸 신어본 적도 없고, 탭이란 걸 알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각 한 사람 앞에 탭 슈즈가 놓여 있었어요. 한 명씩 탭을 알려주고 따라 해 보라고 하는데, 한 사람 보더니 심사위원이 옆 사람한테 조용히 '노'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큰일났구나, 싶었죠. 어쨌든 열심히 했는데 통과가 된 거에요. 그때 '아, 내가 탭에 소질이 있구나', 물론 처음이었지만. (웃음)

- 빌리들 중 유일하게 지명이는 뮤지컬(<라이온킹>, <명성황후>) 출연 경험이 있었어요.

지명: 무대 경험이 있다는 게 좋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한 두 번 무대 서면 경험은 생기는 거잖아요. 전 발레나 탭을 처음 한다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기초부터 탄탄히, 오랜 시간 거쳐서 만들어져야 되는 거고, 어쨌든 준비가 되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거니까. 준비 과정이 너무 혹독했어요.

진호: 저랑 형은 정말 발레를 처음부터 배웠거든요. 그런데 형은 되게 몸이 유연해요. 뮤지컬 하면서 안무도 배우고 해서.

지명: 근데 난 태어날 때부터 유연했어. (웃음) 유치원 때 사진 보면 다리 찢기 하고 있고, 다리를 목 뒤에 걸고 '브이'하고 있고.

- 또 '힘지명'이었고요 (웃음)
지명: 그렇죠. 어디 가도 힘으로 지진 않습니다. (웃음)


힘이 넘치는 이지명의 덤블링 연습 (2010년 ⓒPlaydb)

빌리는, 가능성으로 찾는 아이에요

- 곧 2대 빌리 찾기 오디션이 진행되는데, 지원자들을 위한 팁 좀 주세요.

세용
: 적극적으로 자기를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쑥스러워하고 숨고 그러는데 못해도 그러면 안 되요.

준형: 오디션 때 저희도 엄청 못했어요. 자기가 하고 싶다는 열정만 있으면 연출가님이나 안무가님이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진호: 성인 <빌리> 오디션 볼 때는 얼마나 완성되어 있나, 얼마나 잘 하나를 보시겠지만, 저희는 어렸으니까 잠재력을 보셨던 것 같아요. 또 결정적인 건 얼마나 빠르게 배우고 체화를 시키는가. 그게 핵심인 것 같아요. 오디션 보고 나서도 계속 워크숍을 했는데 매일매일 영상을 찍어서 영국으로 보냈어요. 하루하루 얼마나 늘어가는지, 얼마나 빠르게 습득하고 열심히 하는지. 그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 빌리로 뽑히고 나니 정말 좋던가요?

준형: 오디션 합격, 이런 건 사실 실감이 안 났고, 첫 공연 딱 섰을 때 진짜 실감이 났어요.

세용: 맞아요, 첫공 끝나고 나니까, 아, 빌리구나, 빌리가 된 거구나.

지명: <라이온 킹>이나 <명성황후> 할 때는 정말 놀이터처럼 무대를 즐겼는데 <빌리> 하니까 놀이터를 넘어선 느낌? 첫공 딱 끝났을 때, '와, 이거다. 내 길은 이거다'. 노래 가사대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전율이 있었어요.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너무 행복했어요.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평생 이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 때 딱 들었어요. 그 이후 한 번도 다른 생각이 안 들었어요.

진호: 첫공은 정말 생각이 없어요. 처음 하다 보니 정신이 없는 거에요. 공연장에서 런 쓰루를 저희가 다 하지 않았거든요. 누구는 1막, 누구는 2막만 하고. 다 한 건 선우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지명이 형이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지? 그랬다고. (웃음)


2010년 <빌리 엘리어트> 공연 당시.
이렇게 맑은 얼굴과 작은 몸집으로 큰 무대를 이끌었던 이들(ⓒPlaydb)

- 그때 진호 별명이 '정연출', '부남회장'(부녀회장 패러디)이었잖아요. (웃음)

세용: 아, 맞다! (웃음) 진호가 매일 공연 끝나면 형들한테 "여기가 좀 아쉽다, 어디가 좋았다" 계속 말하는 거에요. 황재헌 연출님이 그거 보고 정연출이라고. (웃음)

준형: 진호 형 단점이 있어요. 뭐 하나 틀리면 되게 스스로를 괴롭혀요. '아, 왜 그러지?' 이러면서.

- 피곤한 스타일이네요.

준형: 약간요. (웃음) 특히 저한테 맨날 잔소리했어요. 게임하면 '게임 그만 해라' (웃음) 저희가 진짜 게임을 좋아했거든요. 선우는 모험책처럼 게임을 공책에 다 그리기도 하고.

세용: 제가 공연할 때였는데, '익스프레싱' 하고 토니 신으로 넘어가는데 무대 세트가 안 나오는 거에요. 우당탕탕하면서 조명도 안 나오고. 거의 30분인가 멈췄었어요. 그때 대기실에 들어와서 쉬고 있는데, 지명이가 커버였거든요. 둘이 같이 그 사이에도 게임을 하고 있었죠. 그걸 준형이가 보고 엄청 웃더라고요. '익스프레싱' 옷 입고 둘이 게임하고 있으니.

준형: 아니, 그 중요한 순간에도 게임을. (웃음)

진호: 제 세미 막공 때 중간에 세트가 안 빠지는 거에요. '익스프레싱'을 범준이 형이랑 하고 있는데 중간에 노래가 끊긴 거죠. 무대 감독님이 공연 중단하라고 큐를 내렸는데 저희는 그걸 모르고 계속 노래하고. 범준이 형이 입으로 반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저는 그런 주변이 없는데 형은 확실히 그런데 탁월해요. 그래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퇴장했죠.

준형: '드림발레' 장면이 하이라이트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은 플라잉 기계가 안 맞아서 못 난다는 거에요. 그래서 인터미션 때 대체 장면 순서를 받아서 했죠.


<뉴시즈>의 뉴스보이로 출연 중인 박준형

- 사고를 대비한 대체 장면도 다 있었군요.

진호: 그래서 <빌리>가 정말 대단한 작품인 거에요. 대체 장면도 다 준비되어 있고, 음악도 따로 있어요. 그 대체 장면을 주는 큐사인도 달라요.

- 어린 나이었는데, 공연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였어요?

지명: 제가 한번 부상을 당했던 기간이 있었어요, 인대가 늘어나서. 공연에 못 서는 죄송스러움도 있었고, 저 대신 무대에 서주는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것도 있었고. 그 때가 엄청 슬럼프였어요.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되게 힘들었어요.

진호: 그때 선우도 몸이 안 좋았거든요. 둘이 같이 아팠어요. 그래서 저랑 세용이 형이랑 계속 더블로 공연했어요, 4회씩 하고. 저도 그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형이 너무 미안해 하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데 또 많이 하니까 많이 늘더라고요.

- 지난해 '더뮤지컬 15주년 콘서트' 때 모두 모여 <빌리> 장면을 선보였죠. 보면서 저도 뭉클하더라고요. 기분이 어땠어요?

지명: 와, 정말 너무 좋았어요. 무대에 오랜만에 서 봤고, 그것도 <빌리>로. 그 때 대학 입시 준비 할 때라 할까 말까 고민 많았는데 다시 한 번 날 일깨워주고, 제 삶의 원동력이 다시 되어 준 것 같아요.

진호: 원래 저도 하고 싶었는데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거든요. 초연 때는 제가 어리기도 했고 열심히 매일 연습했었는데 오랜만에 나와서 오히려 예전 모습 못 보여드리면 어떻게 하나, 좀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전화가 온 거에요, 준형이한테. '앵그리 댄스(Angry dance)' 안무를 모르겠으니까 와서 가르쳐 달라고.

세용: 전 대사, 노래는 다 까먹어도 안무는 절대 안 까먹는데. 몸이 기억하니까 못 까먹겠더라고요.

준형: 정말 웃긴 건 다른 건 다 기억하고 있는데 '앵그리 댄스'만 기억이 안 나는 거에요.

세용: 거짓말 하지마. (웃음)

준형
: 정말이야. 그래서 진호 형을 불렀어요. 한 일주일 남은 총 리허설 중이었는데, 그땐 정말 안무를 몰라서 불렀는데 "형 요즘 어떻게 지내?" 그러니까 시험도 끝나고 괜찮데요. 그래서 같이 하면 괜찮겠다, 해서 하기로 했죠. 팬들은 아마 진호 형 나올지 모르셨을 걸요?

진호: 하길 잘했어요. 안 했으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진짜 재밌었어요.

세용: 저도 하면 좋았을 텐데, 그 때 한창 입시 준비할 때라 정신 없었어요. 일단 대학을 가야 하니까.

준형: 꿈에 그리던 선배님들과 같이 있다는 게, 세상이 달라 보였어요. 마이클리 배우님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 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할 때였는데, 퇴근길 기다렸다 만나서 일주일 뒤에 보자고 했어요. (웃음) 무슨 소린가, 하셨을 텐데, "더뮤지컬 갈라 콘서트 한다"고 얘기했죠.

강필석 배우님도 진짜 와, 대박이었어요. 이번에 좀 친해졌거든요, 사진도 같이 찍고. 얼마 전에 <아랑가>도 보고 퇴근길에서 기다렸어요, 너무 멋있어서. 그런데 강필석 배우님이 먼저 전화번호 물어보셔서, 재균이 형이랑 친하다고 <뉴시즈> 보러 오신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들의 꿈은 여전히 ing

- 초연 때 '빌리 앓이'하는 팬들의 성원도 어마어마했잖아요.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세용: 한 분 계세요. 키도 조그마시고, 닉네임이 '빌리 화이팅'이셨는데, 매일 공연장에 오셨어요.

준형: 아, 맞다! 그 분 '더뮤지컬 15주년 콘서트'때도 오셨어요. 정말 오랜만에 인사도 하고.

진호: 그리고 '밥 아저씨'! 전 세계의 <빌리> 공연을 다 다니시는 분이세요. 우리 첫공 때도 한 번 오시고, 중간에도 오시고 막공도 보셨던 것 같은데. 메일도 한 번 주고 받은 적 있어요. 선물도 많이 주셨고.


배우의 꿈을 키워가는 이지명

- 6년이 지났고 정말 몰라볼 만큼, 물론 어렸을 때 얼굴은 많이 남아 있지만 (웃음) 이렇게 성장했는데, 여전히 '빌리'로 불리는 게 좀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준형: <뉴시즈>에서도 역 이름이 '빌리'에요. (웃음) 데이비드(<뉴시즈> 연출)가 저 <빌리> 한 줄 몰랐는데 통역하시는 분이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빌리'로 그대로 가라! (웃음)

진호: 그런 타이틀 때문에 저희가 더 부각되고, 빌리라고 많이 기억해주시고 많이 대우도 해 주시고. 전 아직 뭔가 작품을 많이 안 해봐서 빌리에 대한 부담감?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공부하는 입장이라 1대 빌리라고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지명
: 더뮤지컬 콘서트 때도 정말 보러 와 주신 분들, 엄청 반가웠어요. 와, 생각하니까 갑자기 소름이 돋네. 신기했거든요, 아직까지 기억을 해 주시고.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다음에 보러 와 주실 때는 '빌리 이지명'이 아닌 다른 지명이로, 빨리 그렇게 찾아 뵙고 싶어요.

- 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지명: <몬테 크리스토>에서 백작 역 하고 싶은데, 괜히 급하게 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공연을 보면서 너무 좋았거든요. 정말 열심히 해야죠, 연륜도 필요하고.

- 세용이에겐 <빌리>가 한 번의 뮤지컬 외도가 된 것일까요?

세용: 아뇨, 아뇨. 뮤지컬은 기회가 되면 하면 좋죠. <빌리>가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은데 옛날부터 발레리노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 좋은 무용수가 꿈이니까 일단 무용수를 향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무용수가 되고 나서도 충분히 다른 쪽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해외 무용단으로 진출할 수도 있겠네요.

세용: 그런 것도 알아보고 있어요. 국제 콩쿨 나가게 되면 '스칼라쉽'이라고 해외 각 발레단에서 와 줬으면 좋겠다, 이런 제안이 있거든요. 그걸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국제 무대도 많이 나갈 거고.

- 반대로 준형이는 발레를 하다 중간에 뮤지컬로 길을 바꿨어요. 발레 그만 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어요?

준형: 엄청 아깝죠. 발레를 배우고 나서 빌리를 알게 된 거니까. <빌리> 영화 보고 발레를 시작한 거거든요. 진짜 발레 때문에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뉴시즈>도 몸을 쓰면서 연기, 노래를 하니까. 그런데 발레를 그만 둔 게 후회되진 않아요. 뮤지컬을 하고 있으니까, 제가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 그렇다면 지금의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요?

지명: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은데, 제가 하고 싶은 걸 통해서 '다른 이지명'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가 이 일을 포기하거나 다른 일로 넘어갈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이건 어떻게 보면 자기 확신인데, 저를 믿으니까. 열심히 해서 진짜 좋은 모습으로 찾아 뵙고 싶어요. 뮤지컬도 하고 싶고 연극, 영화도 하고 싶고. 제 손에 잡힐 수 있는 기회라면 다 하고 싶어요.

진호: 저는 대학.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가고 싶어요. 수시로 가려고 하는데, 잘 해 봐야죠.

준형: 뮤지컬과 대학? 내년에 고3 되니까. 뮤지컬도 계속 하고 싶고. 꾸준히 할 거에요, 내년에도.

세용: 앞으로 좀 더 완성된 무용수로서 나아가고 싶어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남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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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2

  • pym52** 2016.05.15

    빌리들이 이렇게나 컸다니. 뭔가 제가 뿌듯하네요.ㅋㅋ 1대 빌리들 항상 파이팅! 준형군 공연 뉴시즈 파이팅! 1대 빌리들 파이팅! 내년 공연도 참 기대되요:)

  • sidni** 2016.04.29

    그 작고 귀염귀염 하던 빌리들이 폭풍성장했네요! 빌리엘리어트 공연 정말 감명깊게 봤는데, 이 기사는 정말 반갑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