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남자 매력 없다고요? 너무나 매력적인 착한 남자, 박시환
작성일2016.05.11
조회수14,936
Q 작년 <총각네 야채가게>로 처음 뮤지컬에 출연했는데, 그 계기가 궁금하다. 낯선 장르인데 망설여지지는 않았나.
이쪽 업계에 있다 보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러다 마침 <총각네 야채가게>로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때는 <송곳>도 촬영하고 앨범도 준비하던 중이라 괜히 했다가 민폐를 끼치면 어떡하나 걱정이 컸다. 바쁘지 않았다면 흔쾌히 제안을 받아 들였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내가 바쁘게 지내야 되는 시기인가보다, 하고 수락했다. 걱정이 컸는데 예상한 것보다 더 즐겁고 재미있었다. 배워간 것들도 많았다. 굉장히 밝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와는 정반대로 힐링받는 느낌도 들었다. 역할에 푹 빠져드는 것에 이런 재미가 있구나, 를 느꼈다.
Q <마이 버킷 리스트>의 경우엔 처음 대본을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
일단 해기라는 역할이 내 외관상의 이미지와 많이 맞아서 제의가 들어온 것 같았다. 약하고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원하시는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캐릭터 안에 들어가보니 굉장히 강하고, 살려는 의지가 뿜어져 나오는 인물이어야 하더라. 예상 외로 더 밝고 건강한 모습이 보여져야 하는 캐릭터다.
처음엔 사실 강구 역을 해보고 싶었다. 양아치에 반항아, 죽고 싶어하는 역할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박시환, 하면 해기를 할 거라는 생각들을 하실 텐데 그런 것도 깨보고 싶었고.
Q <송곳>에 출연할 때 남동협이라는 인물이 자신과 달라서 연기하기 힘들었다고. 강구의 경우에도 그런 점이 염려되진 않았나.
동협이와 강구는 다른 캐릭터다. 동협이는 좀 우악스럽고, 형들 옆에 붙어 다니면서 좀 움츠러들어있는 친구라서 연기하면서 정신적으로 좀 힘들었다. 답답하기도 했고. 그런데 강구를 보면 살면서 저렇게 한번 표현하고 반항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불평불만이 있던 부분들을 정말 무겁지 않게 가볍게 터뜨려보고 싶기도 하고.
Q 실제로는 화가 나면 어떻게 하나.
참는다. 겉으로 표현을 안 하고, 그러지 않아도 될 만큼 속으로 두 번 세 번 더 생각해봤다가 손해 보는 타입이다(웃음). 근데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보니 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보통은 화를 참는 편이다.
Q 해기와 닮은 점이 있다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 현실보다 이상을 좀 더 찾으려고 하는 모습이 닮았다. 근데 사실 해기도 의외로 나와 닮은 점이 별로 없다. 해기처럼 절실했던 적이 몇 번 없다. 그리고 해기는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많이 노력하는 캐릭터인데, 나는 사실 그렇게 외향적으로 밝지는 않다. 해기의 그런 좋은 점들을 닮아가려고 하고 있다.
Q <총각네 야채가게>를 하면서 힐링을 받은 것처럼 해기에게서 받는 에너지도 있나.
정말 좋은 건 사소한 것들에 눈을 돌리고 소중히 여기게 됐다는 거다. 사실 연기를 할 때는 좀 힘들다. 처음엔 살고 싶다는 그 슬픔이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렇게까지 살고 싶다는 절실함이 내게 있었을까? 한 번 있었다. <슈퍼스타K>에 나갔을 때(웃음). 그때 딱 한 번 있었는데 다시 여기서 절실함, 죽음을 앞에 두었다는 것, 게다가 밝으려 노력하는 것까지 이해하고 연기하려니 힘들더라. 너무 어려워서 연출님과 상의도 많이 했다. 대사도 자극적인 것들이 있어서 힘들었다.
Q 예를 들어 어떤 대사들인가.
예를 들어 강구의 손목에 있는 상처를 언급하면서 “죽을 용기도 없지?”하고 욱해서 얘기한다거나 하는 부분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다. 그런 시도를 한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그런 분들이 혹여 공연을 보러 오셨다가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내가 대사를 해석한 방향이 맞는지 상의도 많이 했다. 웹툰 <아만자>를 보기도 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무겁구나, 훨씬 더 깊이 들어가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려운 점만 얘기했는데(웃음) 좋은 점은 사소한 것에 눈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것들을 해볼 수 있는지, 작은 것들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슈퍼스타K>에 출연했을 당시 다양한 일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과거가 화제가 됐다. 과거의 자신이나 혹은 강구처럼 힘든 시기를 지나는 1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발 담배는 안 보이는 곳에서 피고(웃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좋은데 조급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기가 정말 즐기기 위해 공부하는 것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나도 정말 후회하는 것이 그 나이에 기타나 드럼 같은 악기, 하다못해 그림이라도 그렸으면 좋았을 것 같다. 왜 그런 것들을 공부하지 않았을까 항상 후회된다. 그런 것들이 나중에 정말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오래 해왔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다.
일탈하는 친구들의 대부분은 욕구불만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친구들도 많을 것이고.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 더 많이 있다는 걸 알고, 자기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돈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것들, 하다 못해 아르바이트로라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찾아봤으면 좋겠다.
그리고…혹시나 (강구처럼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분명 너무 무서울 거다. 혹시나 그런 시도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장담하건대 사는 게 훨씬 낫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막상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분명 후회할 거라고 생각한다.
Q <김광석 다시부르기> 콘서트에 2014년부터 지금까지 쭉 출연해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공연인가.
<김광석 다시부르기>는 정말 모든 가수들이 가고 싶어하는 콘서트다. 나도 관객 분들도 다 함께 노래 부르며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그리고 거기 계신 선배님들도 너무 좋은 분들이다. 처음에 콘서트에 참여하게 됐을 때는 가요계 대선배님들을 본다는 생각에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갔는데 ‘어 어서 와~’하고 동네 아저씨나 형들 같은 분들이 계시더라(웃음). 음악계로 와서 가장 처음으로 따뜻하게 정을 붙인 콘서트다. 다른 가수 분들도 있는데 계속 나를 불러주시는 것을 보면 그렇게 즐기려고 했던 모습들이 선배님들께 좀 기특하게 보이지 않나 생각한다. 앞으로도 즐겁게 하고 싶다. 돈 같은 것과 상관없이 정말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무대다.
Q 어느 인터뷰에서 “서른 다섯 이후에 진짜 내 노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작사작곡도 하고 있나.
지금 이렇다 할만한 작사작곡을 하는 건 없고, 혼자 녹음하고 끼적거리는 정도다. 서른 다섯 정도로 잡았던 건 어렸을 때부터였다. 스무 살 초반이나 십대 후반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좋은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당장은 못하겠네, 당장은 먹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할 거라고 생각했고, 서른 다섯 정도가 되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든 내 노래가 나오는 앨범을 내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막연하게나마 장기적인 목표였는데, 지금은 (서른 다섯이) 얼마 남지 않아서(웃음)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노래를 시작하긴 했지만 조금 늦게 시작하지 않았나. 지금 쌓아가고 배워가는 것들이 그때쯤 정리가 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다.
Q 그 때 하는 음악은 어떤 노래가 될까.
되게 재미없을 거다(웃음).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정말 개인적이고 소소한, 거의 혼잣말 같은 노래가 나올 수도 있고. 지금은 대중과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중간에서 타협해가는 과정이라면, 그때는 정말 내 개인적인 곡, 그리고 그러면서 만들어간 내 모습이 담긴 음악 사이에 타협점을 잘 찾아서 완성이 됐으면 좋겠다. 회사가 바라는 곡은 넣지 않을 거다(웃음).
Q 잘 참는 성격은 어떻게 갖게 된 건가. 그냥 타고난 것?(웃음)
아버지께서 워낙 착하신 분이다. 거기서 인성을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어디 가서 착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상도 공부 잘해서 받은 건 없고 ‘착한 어린이상’ 같은 걸 많이 받았던 것 같다(웃음). 인사 잘하고 다닌다고.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이 내게도 편하다. 거기서 오는 반응이나 대답이 기분도 좋고.
이건 뒤늦게 느낀 것이지만, <슈퍼스타K> 출연 이후 가수도 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던 것이 그 동안 딱히 나쁘게 살지 않아서 온 행운 같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재미없게 살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내가 생각해봐도 정말 재미없게 살았다. 딱히 나쁘지 않게 살아온 것이 좋은 운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 앞으로도 기부라든가 내가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행동들은 계속 하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Q 팬들의 사랑이 각별하다고 들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오랫동안 생각해봤는데 처음에 나왔을 때 내가 불쌍해 보여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웃음). 물론 음악적인 부분 때문에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특히 슬픈 노래를 불렀을 때 많이 공감하고 좋아해주시더라. 그런 부분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건 내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좋아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처음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제 행복하세요? 이제 행복하셔야죠’ 였다. 나를 그렇게 키워주시고 싶은 게 아닐까(웃음). 그래서 애정도 남달리 많이 주시는 것 같다. 물론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냥 부담으로만 지나가지 않게, 다른 배려를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Q 올해 안에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여행도 가고 싶고, 올해가 지나는 동안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산타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아기들한테 사탕을 나눠주고 싶다. 자선단체 같은 곳에 가서 할아버지인척 하고 선물을 나눠주면 재미있을 것 같다. 사실 전부터 생각만 했던 일인데, 이번 뮤지컬을 하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예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 이렇게 이것저것 하고 있는 걸 봐서(웃음) 앞으로도 더 이것저것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뭐든 웬만하면 피하지 않고 하려고 한다. 피하려고도 해봤는데 힘들더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즐기자, 라는 마음으로 해보려고 한다. 막상 하면 또 재미있으니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정말 단순하게 먹고 살 만큼 돈 벌면서 앨범도 계속 내고 노래도 계속 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이자 계속 가져가야 할 목표인 것 같다. 나이를 오십, 칠십 살 먹고도 계속 노래하고 싶다. 내가 설 자리가 없다면, 잊혀져서 아무도 모르는 가수가 된다면 기타 하나 들고 버스킹하면 된다. 그런 것들도 재미있지 않을까. 살면서 그때그때 나오는 감정대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