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플디 백일장-장원 '감옥같은 시간'


2회를 맞이한 플디 백일장의 주제어는 ‘빵’ 혹은 ‘감옥’이었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개막을 앞두고 주인공 장발장과 관련 있는 단어들인데요. 플디 편집부 안에서도 ‘공연과 감옥, 빵이라니, 이건 너무 어렵다’란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런 우려조차 가볍게 불식시키며 재치 있는 사연, 시, 심지어 소설까지 보내준 플디 독자들, 자랑스럽습니다! 이번엔 리얼한 경험담이 장원을 차지했습니다. 즐겁게 읽어 주세요^^


장원_이경재
감옥 같은 시간


전역을 하고 복학을 앞둔 난 설레는 마음으로 후배들한테 어떤 오빠로 비춰질지 기대하며 자주 거울을 보았다. 아직 머리도 다 자라지 않은 군인 티 팍팍 나는 나였지만 우리학과 복학생은 꼭 1년 안에 어린 후배랑 사귄다는 불문율을 믿고 자신감에 넘쳐 하루하루를 기대했다. 그렇게 시작한 새 학기, 사실 예쁜 후배는 몇 없었지만 그 많은 여자 후배들 중 호감 가는 친구가 없을 리 만무했다. 말도 맞고 맘도 맞는 그 친구와 여러 달 대화도 많이 하고 문자도 많이 할 그 무렵, 나는 심심할 때 마다 공연응모를 하곤 했다. 사실 심심하다는 건 핑계였고, 그 친구와 오붓한 데이트를 원했기에 50개나 응모를 했으리라…….

응모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많이 응모했는데 한 개가 당첨이 안 될 리 없었다. 그 때 날 구원해준 공연은 플레이디비에서 당첨된 한 공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다. 바로 그 친구에게 공연이 당첨됐다는 말로 둘러대며 처음으로 둘이서 보게 되는 날을 만들었고 내가 50개나 응모를 한 줄은 꿈에도 모르던 그 친구는 운이 참 좋은 오빠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연당일! 표를 끊고 공연 전까지 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약간의 감기기운이 있어 보였지만 특별히 열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 가끔씩 그 친구가 화장실을 갔지만 그 날의 훈훈한 분위기에 취한 나는 이 친구가 날 맘에 들어 해서 화장도 자주 고치고 오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린 들뜬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감옥 같은 내 생에 최악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눈치만 빨랐더라면 난 아예 그 감옥자리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날의 공연은 무척 기발한 한편의 쇼이면서 연극이었다. 박수도 치고 웃으면서 옆자리의 그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즈음이었다. 은근히 익숙하면서도 내 것은 아닌 다른 사람의 향기, 소리 없는 오묘한 방귀 냄새가 스멀스멀 내 코를 엄습했다. 군대에서도 화생방훈련은 항상 해왔기에 매너 없는 방귀쟁이를 탓하며 난 다시 극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또다시 같은 냄새, 같은 느낌의 그것이 나를 뒤덮었다. 정말 불쾌했다. 아니 어떤 예의 없는 사람이 공연 중 두 번이나 방귀를 뀐단 말인가?

일부러 눈치를 주고 싶기도 했고 호감 가는 이 친구가 혹여 나를 의심할까 싶어 나는 범인을 찾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 앞쪽으로 몸을 기울여보고 또 은근히 뒤를 보면서 뒷사람의 방귀 뀔 순간의 표정변화를 예의주시했다. 하지만 앞에선 아예 비슷한 냄새도 나지 않았고 뒷사람은 표정변화가 없었다. 내 오른쪽은 내 코의 느낌상 정말 아니었다. 그때 또다시 한 번의 화생방습격이 일었다. 그 순간 난 알았다. 이건 이 친구다. 너다. 근데 어째서 이렇게 태연한 표정을 지을 수가 있지? 누구냐, 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공연을 보는 그 친구가 감기기운이 있고 하필 그 감기는 코감기여서 아무냄새도 맡을 수 없다는 걸 기억해낸 건 그 친구가 나머지 장속에 있던 방귀 21발을 모두 발사한 뒤였다. 공연은 내게 없었다. 그곳은 감옥이었다. 처음엔 그 친구에게 갖고 있던 환상이 무참히 부서졌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 정말 견디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그 감옥 같은 시간을 다시 회상하는 것도 가슴 아프지만 반대로 남자로서의 매너 때문에 뛰쳐나가지 않고 그 친구의 매서운 그것을 끝까지 견딘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은 어땠어요?’라고 묻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며 차마 ‘네 방귀는 참으로 지독하더구나. 그걸 맡는 것만으로도 난 용감한 시민상이다’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나의 슬픈 날을 회상하며 그 감옥 같은 시간은 다른 플레이디비 당첨에서 두 번 다시 겪진 않았지만 그 친구에의 호감은 내 마음속 깊고 깊은 상자 속에 봉인해야만 했던 나의 복학 후 사랑추억. 아직까지 좋은 오빠 동생으로 훈훈하게 지내는 우리관계 속에 그런 처참한 비밀이 있다는 걸 안다면 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리 학과의 불문율을 깨고 아직까지 여자를 사귀지 못한 건 내가 처음이라고 한다.

플디 says…
짧은 글 속에 기승전결, 여운까지 재치 있게 풀어내셨습니다. 특히 범인이 그녀란 걸 아는 순간 대뇌 전두엽까지 전달된 충격과 공포가 생생하네요! 아픈 사랑의 추억인데…웃어서 죄송합니다.ㅎㅎ


<제 2회 플디 백일장 수상자>

장원: 이경재
우수: 홍민우(객담화), 박양숙(빵과 감옥사이)

플디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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