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숙·정은혜 "권력 눈먼 여인 비극 더 강렬하게"

창극 '레이디 맥베스' 21일부터 한태숙 "언제든 모험할 작품" 연희장면 전통국악으로 재해석 정은혜 "레이디 맥베스 내것으로" 원작 못잖은 강렬함 보여줄 것 "시대와 공감하는 작품 되길"
연출가 한태숙(오른쪽)의 대표작인 ‘레이디 맥베스’ 창극버전의 주역은 소리꾼 정은혜다. 한 연출은 “창극 배우라도 연극 화법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정은혜를 선택하는 데 큰 고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정은혜는 “연출가가 믿어주는 만큼 레이디 맥베스를 나만의 캐릭터로 소화해 관객에게 강렬하게 다가가고 싶다”며 각오를 전했다(사진=국립국악원).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광기와 욕망에 사로잡힌 한 여인의 비극. 연출가 한태숙이 1998년 발표한 연극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맥베스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초연 이듬해인 1999년 서울연극제 작품상·연출상·연기상을 수상한 한태숙의 대표작이다.

‘레이디 맥베스’가 3년 만에 앙코르무대(21일부터 30일까지 국립국악원 우면당)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더 특별하다. 국립국악원과 함께 창극 버전으로 새롭게 구성했기 때문이다. 한 연출은 “오래전부터 ‘레이디 맥베스’의 강렬한 주제와 함축적인 대사가 ‘창’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주연배우도 바뀌었다.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했던 소리꾼 정은혜가 새로운 레이디 맥베스로 나선다. 두 사람을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만났다.

△한태숙 연출가 “언제든 모험할 작품”

창극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사진=국립국악원).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인물의 감정을 다양한 물체로 표현하는 ‘오브제극’이란 독특한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한 연출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레이디 맥베스’를 꾸준히 무대에 올린 이유로 “언제든 모험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레이디 맥베스’는 늘 나 자신을 일깨워주는 힘이 있다. ‘원작을 그렇게 훼손하면서까지 작품을 만들어야 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작의 주제를 강조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버전을 달리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 그런 점이 내게 힘이 된다.”

창극 버전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이다. 한 연출은 “원래 창을 좋아했다. 음악과 미술이 같이 어울린 작업으로 창극을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레이디 맥베스’의 줄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오브제와 음악이다. 2013년 대학로예술극장에 올린 공연이 오브제를 강화한 버전이었다면 창극버전은 음악을 보다 강화한 결과물이다.

창극으로 바뀌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도창’(창극에서 일종의 해설자 역할을 하는 인물)의 등장이다. 도창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염경애 명창이 맡았다. 가야금·피리·타악 등 국악기와 함께 콘트라베이스로 음악을 구성한 점도 눈에 띈다. 전통적인 창극과는 다소 거리가 먼 악기 구성이다.

한 연출은 “전통적인 창도 등장하지만 현대 관객의 정서에 맞춰 아리아처럼 작품을 꾸몄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창을 ‘사탕발림’처럼 사용한 건 아니다”라며 “연극에선 다소 축소했던 연희장면을 전통국악의 품격 있는 장면으로 재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창극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사진=국립국악원).
△새로운 주역 정은혜 “무모한 용기와 도전”

‘레이디 맥베스’ 하면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연극배우 서주희다. 초연 때부터 레이디 맥베스 역으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서주희는 한 연출과 함께 작품의 명성을 쌓아온 또 다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창극인 만큼 새로운 레이디 맥베스가 나선다. 바로 소리꾼 정은혜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은혜도 “서주희를 따라가는 것은 너무 어렵고 시작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것은 이번 작품이 연극과 달리 전통 소리를 기반으로 해서다. “무모한 용기와 도전으로 시작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정은혜에 대한 한 연출의 강한 믿음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2012년과 2013년 국립극장에 올린 ‘장화홍련’과 ‘단테의 신곡’으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한 연출은 “창극 배우라도 연극의 화법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정은혜를 선택하는 데 큰 고민은 없었다. 정은혜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은혜는 한 연출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 부단히 연습 중이라고 전했다. “나이테가 많이 있는 작품에 워낙 늦게 승선하다 보니 준비가 쉽지 않았다”면서도 “연출가가 믿어주는 만큼 쉽지 않은 레이디 맥베스를 나만의 것으로 소화해 강렬한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창극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사진=국립국악원).


△권력이야기 시국과 맞물려…“공감대 생기길”

‘맥베스’가 끝없는 욕망으로 결국 파멸에 이르는 한 인간의 이야기라면 ‘레이디 맥베스’는 욕망의 이면에 있는 인간의 심리에 집중한다. 인간 내면에 있는 욕망과 광기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 그 근원에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있다.

공교롭게도 ‘레이디 맥베스’가 다루는 권력과 욕망에 대한 메시지는 최근 시국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마녀의 예언을 듣고 고뇌하는 맥베스의 옆에서 왕이 될 것을 부추기는 레이디 맥베스의 모습은 지금 한국사회를 위기에 몰아넣는 사건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물론 우연이 만들어낸 일치다. 연극에 이어 창극에서도 전의와 맥베스로 1인2역을 하는 배우 정동환은 “예전에도 시국과 관계없이 작업했지만 숭례문 방화사건처럼 겹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번 작품은 연출가의 결벽증으로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라사정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욕심과 양심 사이에서 반성해보자는 것이 그렇다”고 말했다.

한 연출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작업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시국이 불안정하고 상실감이 컸을 때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됐다”며 “권력에 대한 과도한 탐닉이 가져오는 종말에 대한 사유는 상징성이 크다. 물론 작품이란 것이 꼭 어떤 목적과 사유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으로 (시대와의) 공감대가 생긴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창극 ‘레이디 맥베스’의 연출가 한태숙(오른쪽)과 주인공 레이디 맥베스를 연기하는 소리꾼 정은혜(사진=국립국악원).



▶ 당신의 생활 속 언제 어디서나 이데일리 ‘신문 PDF바로보기
▶ 스마트 경제종합방송 ‘이데일리 TV’ | 모바일 투자정보 ‘투자플러스
▶ 실시간 뉴스와 속보 ‘모바일 뉴스 앱’ | 모바일 주식 매매 ‘MP트래블러Ⅱ
▶ 전문가를 위한 국내 최상의 금융정보단말기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3.0’ | ‘이데일리 본드웹 2.0
▶ 증권전문가방송 ‘이데일리 ON’ 1666-2200 | ‘ON스탁론’ 1599-2203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