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파격 성시연 단장 …"삶도 음악도 역전의 연속"

국공립악단 1호 여성지휘자 성시연 경기필 예술단장 올해 임기 4년째…최초 행진 계속 '브라보' 경기필 '비상' 슬로건 삼아
국공립오케스트라 첫 여성수장인 성시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겸 예술단장이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을 지휘하고 있다. 성 단장은 “콘서트홀 바로 그 자리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에 관객이 감동하고 즐거워할 때 자유롭고 행복하다”며 “더 깊이 있는 연주를 위해 끊임 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사진=경기도문화의전당).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성시연(41)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겸 예술단장 앞에는 ‘파격’ ‘도전’ ‘최초’ 같은 수식어가 곧잘 붙는다. 2014년 1월 경기필하모닉에 국공립악단 사상 첫 여성수장으로 부임한 뒤 공식 첫 연주회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선보일 때부터 남달랐다. 2015년에는 국내서 좀처럼 접할 수 없던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전곡 연주에 도전해 강한 인상을 남겼고 지난해 국내 오케스트라 중 최초로 ‘인공지능’(AI)이 작곡한 곡을 연주해 큰 화제를 낳았다. 창단 20돌을 맞은 올해는 더 파격적이다. 오는 9월 독일 베를린 뮤직페스티벌에 아시아 오케스트라로는 처음 초청받아 윤이상의 교향곡 ‘예악’ ‘무악’을 무대에 올린다.

이데일리와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만난 성 단장은 “출발은 단순했다”며 웃었다. 이어 “한국 청중이 좀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다양성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새로운 시도는 티켓판매가 줄 수도 있고 오케스트라 연습량 등의 이유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기필하모닉의 마인드와 소리가 열려 있다고 본다. 악단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거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젊음과 열린 마인드가 잘 만나서 도전이 가능했던 것 같다. 하하.”

△금녀의 벽…여성 1호 지휘자 “열정 이끌어”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는 더 큰 책임감을 주는 동시에 명예를 안겨주는 단어인 것 같다.” 국내 악단의 양대 편견으로 지적받는 ‘여성’과 ‘지역’을 깨온 성 단장의 말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 국내에 덜 알려진 작품을 추구하는 도전정신은 그녀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미국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도 137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지휘자(2007~2009)라는 기록을 남겼고,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도 첫 여성 부지휘자(2009~2013)로 활약했다.

“관중이 여자 지휘자라는 호기심에만 집중할까봐 안타깝기도 하다. 호기심은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다. 경기필하모닉의 지휘를 맡은 지 4년째 접어드는 시점에서 올해는 그 질문이 줄어들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성 단장의 꿈은 원래 피아니스트였다. 5살에 우연히 친구가 다니던 피아노학원을 따라갔다가 피아노에 매료됐다고 했다. 1994년 서울예고를 졸업한 뒤 스위스 취리히음대 피아노과에 입학, 1996년 독일 베를린국립음대로 옮겨 에리히 안드레아스 교수를 사사했다. 그러다가 2001년 돌연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 지휘과에 들어간다. 무대 위 건반에 손을 얹으면 불안이 엄습했던 탓이다. ‘그만둬야 하나’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피아노만 고집하지 말고 다방면으로 눈을 돌려보라”는 안드레아스 교수 조언은 25살의 늦은 나이에 지휘봉을 잡는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조금은 뒤로 물러서서 사람 사는 모습을 관찰한다. 묘한 감동을 주고 힘을 내게 하더라. 음악은 삶의 연장선상으로 인생의 굴곡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내려가면 다시 오르는 순간이 있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악보를 파고들며 몰입했다. 결과는 곧 나타났다. 2006년 게오르크솔티콩쿠르 우승에 이어 2007년 구스타프말러지휘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하면서 유럽음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해 여기까지 온 여정에는 열정과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라는 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어려움이 있어도 연주하는 순간의 희열과 순간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창단 20돌…굵직한 대작·도약의 원년 될 것

경기필하모닉은 창단 20주년을 맞아 굵직한 대작연주를 앞두고 있다. 올 한 해 브람스의 ‘독일레퀴엠’,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말러의 교향곡 9번‘ 등의 대곡을 잇달아 연주한다.

“3년간 겪은 단장이라는 자리는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했다.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경기필하모닉을 흔들리지 않는 고지에 올려놓고 싶다. 올해는 경기필하모닉의 위치와 선호도가 더 탄탄할 수 있도록 더욱 도전적으로 나아가고 싶다. 실력과 대외적 입지, 20년을 기점으로 더 도약하겠다.”

성 단장은 올해를 “경기필하모닉만의 소리를 만들기 시작하는 해”로 정했다고 했다. “원색적인 파워가 있는 악단이다. 자유로운 표현 안에서 조화를 이룰 때 힘있는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단원 개개인의 역량이 매연주마다 100% 모일 수 있는 소리를 만드는 게 꿈이자 그 마음이 경기필하모닉의 색깔인 것 같다.”

리더로서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지휘자는 경험하면 할수록 어려운 직업인 것 같다. 리더십도 있어야 하고, 음악·기획도 잘해야 한다. 사람도 잘 봐야 하는데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도 필요하다. 리더로서의 덕목과 원칙이 있다면 ‘구성원과 더불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되 나의 뜻과 계획이 너무 앞서도 뒤처져도 안 된다. 때로는 앞에서, 때론 뒤에서 끌고 밀어야 구성원과의 거리감이 좁혀지고 시너지가 난다.”

존경하는 음악가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다. 성 단장은 “아흔의 나이에도 음악과 연주를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내가 추구하는 지휘자상이다.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 더 깊은 음악을 추구하고 약점과 실수를 보완하며 극복해 나아가겠다.”


▶ 당신의 생활 속 언제 어디서나 이데일리 ‘신문 PDF바로보기
▶ 스마트 경제종합방송 ‘이데일리 TV’ | 모바일 투자정보 ‘투자플러스
▶ 실시간 뉴스와 속보 ‘모바일 뉴스 앱’ | 모바일 주식 매매 ‘MP트래블러Ⅱ
▶ 전문가를 위한 국내 최상의 금융정보단말기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3.0’ | ‘이데일리 본드웹 2.0
▶ 증권전문가방송 ‘이데일리 ON’ 1666-2200 | ‘ON스탁론’ 1599-2203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