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해야하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봐야하는 연극과 보고 싶은 연극이 있다.
아무 선택이 필요 없는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알고 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누구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이야기
선행으로 소문이 자자한 문관 관리와 이를 시기하는 무관 관리의 모함과 이를 둘러싼 권력 다툼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현세까지 고전적으로 전해 내려온 비극 드라마의 전형이다. 게다가 출생의 비밀과 복수, 화해라는 옵션까지 곁들여진다면 완벽한 암투극이 완성된다. 최근 개막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역시 이 조건을 두루 갖춘 한 편의 비극이다. 그러나 비극 드라마의 전형적 틀 안에 버무려진 여러 스타일의 연극적 양식을 통해 엄청난 몰입과 결코 가볍지 않은 상고의 시간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이전에 공연된 수많은 비극 드라마와 차별성을 갖는다.

 

 

 

영화적 표현 방식으로 관객의 감정선을 완전히 리드하다
무대 삼면을 둥글게 감싼 벨로아 커튼을 여러 겹으로 설치하여 무대 아웃라인을 둥글게 설정하고 커튼이 극적 맥락에 따라 배우들의 연기와 어울려 개폐 될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은 마치 영화에서 카메라 렌즈를 통해 관객의 감정선을 완전히 리드하는 미쟝센을 형성하는 것과 흡사한 맥락이다. 영화에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크고 자세하게 보여주고자 할 때 렌즈에 노출된 공간을 클로즈업하여 좁은 구역을 크고 자세하고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무대의 크기가 배우가 등 퇴장과 더불어 변화한다는 것은 연기 구역의 변화를 의미한다. 연기 구역의 크기 변화는 각 장면이 강조하는 심리를 리듬감 있게 표현 한 도구이다. 그러니 영화에서 장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촬영 기법의 변화를 주어 미쟝센 만드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출자의 의도였건 아니건 결과적으로 이러한 기법에 이 큰 무대에 적용되어 별다른 무대 장치나 오브제들 없이도 작품에 정서적 몰입이 빠르다는 점이 정말 놀랍다.

 

 

 

 

‘오늘 중의 오늘’에 대해 말하는 이 연극

세 시간 남짓한 긴 런 타임이 나오는 이 연극이 이렇다 할 대단한 오브제 없이 강도 높은 정서적 몰입을 가능케 했던 또 다른 요인은 오늘 한국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표면적인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작품이 다루는 소재는 현실과 달라서 ‘뭐가 비슷해’ 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정해진 운명의 사이클에 따라 복수를 하고, 그 복수가 끝나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평온을 찾고, 축배를 드는 조씨고아의 모습과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한평생을 희생한 ‘정영’의 허탈함은 오늘날 한국의 현실과 섬뜩할 만큼 닮았다. 우리 사회가 겪는 진통이 지나가고 악의 무리들이 벌을 받게 된다 한들 한국 사회가 치유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국민은 이미 허무함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복수에 성공을 하는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이 작품의 결말은 오늘날 국민이 느끼는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 시국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아니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주인공은 조씨고아가 아니다. 조씨 고아는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운명을 타고나 운명에 따라 정해진 대로 삶을 산다. 인생의 매 순간 선택과 집중에서 오는 고뇌와 싸워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순간의 선택과 고민, 후회, 희생 등의 감정을 모른다. 작품에서 역시 그가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인물로 완벽히 그려냈다. 이에 비해 권력과 이기의 사이에서 표면적인 상관관계가 없는 시골 의사 정영은 매 순간 고민하고 매 순간 후회하며 번민하는 인물이다. 대의를 위한 자기 삶의 한 조각을 내어주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하는 정영은 누구보다 주체적인 인물이다. 사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과 자신의 영달을 유지하는 일 사이에서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평생 하며 일생을 보낸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작품에서는 분명 정영이란 인물을 정의의 사도로써 칭하고 있지만, 정영을 영웅시하거나 그의 행적을 감동스토리로 포장하지 않았다. 소위 ‘정영처럼 살아야 한다.’라는 진부한 메시지는 이 작품의 목적과 매우 다르다. ‘정의를 위해 수 없는 고뇌를 한 개인의 희생‘이 과연 의미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텅 빈 무대를 가득 채운 고요로 연극의 막을 내린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개인의 노력과 희생은 값지고 의미 있으며 필수 불가결하지만 그다음 이어질 세상에 대한 희망을 누가 보장하느냐는 것이다.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끝난 이 작품의 결말은 단순히 열린 결말이라 정의하기엔 신성하다. 대한민국의 시국이 맞이할 미래와 너무나 닮아있다. 누군가 악한들의 잘못을 단죄하고 그들은 일정 부분이라고 죗값을 치른 우리는 대한민국이 ‘안정되었다손 치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반백 년 곪아 터진 대한민국이 일면의 정의로써 부정의 척결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불신과 자괴심은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진지하게 내놓은 결말의 장면을 통해 감정 이입된다. 이 작품이 창작단계에서 시국에 대한 상징성을 부여하며 제작되었든 아니든 소름 끼칠 듯한 시 의적 맥락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경의를 표하고 싶다.

 

 

사진제공_국립극단

 



나여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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