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연극 vs 10분 극장…대학로 실험 ‘극과 극’

‘카라마조프가의…’ 3권짜리 소설 무대로 출연 배우 "대사량 엄청나지만 도전 의미" 배우 정동환은 1인4역 5시간 무대 올라야 공연전 자투리시간 공략한 단막극도 등장
7시간 대작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위)과 공연전 자투리 시간을 공략한 수현재컴퍼니의 ‘10분 극장’(사진=극단 피악·수현재컴퍼니).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무려 7시간짜리 연극이 온다. 극단 피악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이 작품은 러닝 타임만 총 7시간. 대학로 연극 3~4편을 하루에 보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다.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총 3권의 장편소설이 바탕이다. 극단 피악이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를 주제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죄와벌’에 이어 선보이는 3번째 작품이다. 19세기 후반 제정 러시아 시대에 시골 지주 집안인 카라마조프 집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변론과정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나진환 극단 피악 대표는 “방대한 원작의 인문학적 힘을 연극적 언어로 충실히 옮기려고 했다”며 “고전 문학작품의 연극화로 문학을 사랑하는 대중들에게는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봤다. 작품이 길다 보니 공연 시작 시간도 고민거리. 1부와 2부로 나눠 독립된 2개의 공연을 오는 19일까지 날짜를 달리해 이틀간 보도록 했다. 하루에 전부 보려면 1, 2부가 공연하는 11일, 18일 토요일을 공략해야 한다.

드미트리 역의 배우 김태훈(왼쪽)은 “일단 외워야 하는 대사량이 상당하다”며 배우들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3시간 안팎의 연극이 흔하지만 국내 제작 여건은 열악하다. 움직임부터 리허설 등 일반 연극보다 몇 배 더 신경써야 한다. 그럼에도 도전하는데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7시간 연극은 관객입장에서도 도전이다. 피악 측은 “긴 시간 부담도 있겠지만 호기심에 찾는 관객도 있다. 토요일 같은 경우 좋은 객석은 모두 나간 상태”라며 “보기 어려운 작품인 만큼 그런 의미를 두고 관람하려는 관객층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3일에는 세월호 참사 7시간을 형상화한 실시간 퍼포먼스 ‘33한 날에 돌아와요’가 광화문광장 블랙텐트에서 공연한다. 오후 3시 4분부터 10시4분까지 7시간 동안 33인의 예술가들이 선보인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공연된 작품 중 가장 길었던 연극은 2006년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7시간30분짜리 연극 ‘형제 자매들’이다. 러시아 출신 세계적 연출가 레프도진이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의 배우 40여 명과 내한해 선보인 연극이다.

1990년 극단 뮈토스(연출 오경숙)가 창단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린 그리스 비극 ‘사람들’로 7시간이었다. 2004년 국립극단의 5시간짜리 연극 ‘뇌우’(연출 이윤택)도 긴 연극으로 꼽힌다. 4막 중 2막 후 35분간의 인터미션이 한 차례 주어졌다. 국립극단은 저녁시간이 짧은 것을 고려해 미리 잔치국수를 준비했다가 관객에게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공연 가운데에는 연극계 거장 피터 브룩가 1985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에서 방대한 분량의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를 선보였는데 총 공연 시간이 12시간에 달했다. 2000년 독일 하노버엑스포 문화행사로 공연됐던 피터 슈타인의 2부작 ‘파우스트’는 21시간, 영국 켄 켐벨의 ‘날실’은 22시간의 공연기록을 각각 갖고 있다. 연극사에서 의미 있는 장시간 공연은 주로 1970년대에 많이 공연됐다. 2015년 처음 내한해 화제가 됐던 현대 공연예술의 거장 로버트 윌슨은 밤새 12시간 공연하는 ‘스탈린의 삶과 시간’, 밤낮 가리지 않고 7일 동안 공연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반면에 아주 짧은 시간 펼쳐지는 연극도 등장했다. 10분 극장은 공연 전 자투리 시간을 공략해 수현재컴퍼니에서 처음 선보였다. 2016년 5월 20일 첫 무대로 수현재 7층 옥상극장에서 10분극장으로 진행, 10월엔 작가 데뷔프로그램 일환으로 쇼케이스 형식으로 선보인바 있다. 지금은 추운 날씨 탓에 쉬었다가 5월께 다시 재개할 예정이다.

수현재 측은 “매주 금요일 공연장에 일찍 도착한 관객에게 새로운 형태의 재미를 선사하고 젊은 창작진에게 공연의 기회를 제공코자 기획했다”며 “처음부터 1시간 30분~2시간 작품 제작을 하기 어려울 수 있는 신진 작가, 연출가들이 단막극을 통해 관객의 반응을 먼저 살펴볼 수 있어 관객과 평단의 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가장 짧은 연극 작품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숨’이다. 짧은 절규, 누군가의 들숨과 날숨소리 등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길이는 약 35초다. 연극 시간의 다양화는 관객층의 요구에 따른 변화의 하나다. 고정 마니아 관객층을 위한 긴 고전극부터 공연시작 전 쉬는 틈새 시간을 공략해 생겨난 짧은 연극으로 관객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조재현 수현재컴퍼니 대표는 “로맨틱코미디가 주를 이루는 상업극이 성행하는 대학로 연극의 현실을 딛고 새로운 관객 발굴을 위한 다양한 시도”라며 “문화 경험이 있는 40~50대 중장년층의 발길을 대학로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현재가 선보이고 있는 중년 주인공의 작품이나 자투리 시간을 보낼 수 10분 극장도 이와 일맥상통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10월 23일 광주 아시아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한 장면. 현대 공연예술의 거장 로버트 윌슨의 실험 오페라이자 그의 대표작으로 인터미션 없이 4시간 30분 동안 공연했다. 다만 관객들은 자유롭게 공연장의 등퇴장이 가능하다(사진=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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