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극작가의 절규
작성일2017.03.28
조회수2,964
쥐꼬리 원고료·유명무실 저작권·검열 ‘三重苦’
열악한 처우에 꺾인 창작 꿈
신작 공연 잘해야 年 1편
극작으로 번 연수입 1000만원 안돼
시나리오 훔치기에 속앓이
각색 요구…대본작가 전락
“현실에 맞는 작가료 책정
근본적인 창작환경 개선 절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1. 6년 차 극작가 이모(33) 씨는 보조강사 아르바이트(알바)로 근근이 살고 있다. 최근 1년여 동안 수정과 탈고를 거쳐 희곡을 완성했지만 공연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극작활동을 통해 작년 번 돈은 고작 200여만원. 그나마 선배작업에 합류해 자료를 찾고 틈틈이 각색을 도운 덕분이다. 이씨가 극작·연극 외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연평균 수입은 1000만원이 채 안 된다.
2. 중견 극작가인 정모(41) 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자신의 희곡으로 지방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지원금을 받은 공연임에도 사전에 작가에게 알리지 않았고 작가료 협의도 없었다. 정씨는 바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연극하는 사람끼리 왜 그러냐. 한참 선배인데 이번 한 번만 넘어가자”는 핀잔이 돌아왔다.
비단 이씨나 정씨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연극계 사각지대에 놓인 열악한 극작가 처우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발단은 국립극단이 2016년 창작극 개발사업인 ‘작가의 방’에 참여한 극작가 9명에게 “‘개구리’ 같은 작품을 쓰지 말아 달라”고 강요한 사실이 계간지 ‘2017 연극평론 봄호’를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박근형 작·연출의 연극 ‘개구리’는 2013년 국립극단에서 올린 작품이다. 박정희·근혜 전 대통령 부녀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문화예술계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태의 시발점이 됐다.
△잘해야 1년에 한편 생활고…작가료 후순위 밀려
검열 논란의 불씨는 극작가의 처우문제로 번지고 있다. 극작가 고연옥은 ‘연극평론’에 게재한 기고문 ‘왜 한국의 극작가는 교육 혹은 교정의 대상인가-국립극단 ‘작가의 방’을 통해 들여다본 창작극 부재의 이유’에서 “검열문제를 떠나서라도 국립극단은 극작가를 예술가로 존중하는 태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작가의 방에 참여했던 김슬기 작가는 “데뷔 후 오랜 시간 작가 인큐베이팅 경쟁 시스템 속에 있느라 너무 지쳐 있었다”며 “공연의 기회가 절실했다”고 했다. 이어 “경쟁 시스템 속에서 버티는 일도 힘겨웠지만 연극을 하면서 처한 극악한 경제사정도 버거웠다”며 “작가는 ‘을’, ‘약자’, ‘도구’가 아닌 세상을 자기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예술가다. 국립극단을 비롯한 모든 단체들이 ‘갑’의 입장에서 내려와 함께 작품을 만드는 동행자로서 지원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극계는 분명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극작가협회에 따르면 10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연극계 극작가 환경은 별반 바뀐 게 없다. 김수미 한국극작가협회 이사장은 “공연 한 편이 올라가면 지원금 제도나 행정상에서 작가료는 매번 후순위로 밀려 난다”고 말했다. 이어 “아르바이트로 밥벌이를 하지 않고는 못 버틴다”며 “신춘문예 등에서 희곡상이 사라지는 요즘 신작공연도 잘하면 1년에 한 편, 그마저도 힘들 수 있어 펜을 꺾는 극작가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극작가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3년마다 예술인실태조사를 하곤 있지만 극작가를 단독으로 분석한 내용은 따로 없다. 대부분 배우를 제외하곤 스태프로 묶어 통칭될 뿐이다.
그나마 201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실시한 ‘공연예술 전문인력 표준인건비 산출연구’ 설문조사에 따르면 작가의 경우 연극관련 수입이 621만원, 교육 및 예술외 활동까지 합한 1년 수입 평균이 2380만원 정도로 다른 직군(연출·배우·스태프)보다 평균수입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마저도 샘플 수(전체 387명 중 작가 23명)가 적고, 경력 등의 표본 기록이 없어 극작가 일반에 적용하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는 이 수치가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협회 회원 극작가 수는 200명 미만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는 열 손가락에 꼽힌다는 게 협회 측의 설명이다. 김 이사장은 “작가료의 차이는 국공립단체·극단·개인·지방 등 작업환경에 따라 다르다. 중견작가급임에도 극단에서 사정을 해 턱없이 적은 원고료를 받고 집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특히 “연극계 지원금이 줄다 보니 지원액의 10%를 작가에게 지급하라는 관례도 옛말이 됐다”고 토로했다.
△일부 연출 희곡 맘대로 손대…정당한 대우 요구 작업환경 절실
저작권 문제는 연극계가 풀지 못한 해묵은 과제다. 오세혁 극작가는 “작가료를 받지 못했다고 고민하는 후배 극작가가 주변에 정말 많다. 작가란 자존심 때문에 얘기도 못 꺼내는 편이다”라며 “정당하고 떳떳하게 작가료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극작가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공연만을 위한 각색을 요구하거나 대본작가로 전락시키고 연출 마음대로 극을 바꾸는 행태도 문제”라며 “어떤 창작지원제도는 주제를 아예 정해 작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유명무실한 저작권보호법 대신 법 틀안에서의 객관성 있는 작가료 책정과 저작권을 보호·관리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연극계 어려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극본적인 창작환경의 개선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창작에 대한 현장 및 교육에서의 인식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 발표한 ‘2015년 예술인실태조사’를 보면 연극인이 1년간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평균 1285만원이다. 이마저도 평균일 뿐 대다수가 국민 최저소득 이하의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막노동은 기본이고 대리운전·주차요원 등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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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1. 6년 차 극작가 이모(33) 씨는 보조강사 아르바이트(알바)로 근근이 살고 있다. 최근 1년여 동안 수정과 탈고를 거쳐 희곡을 완성했지만 공연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극작활동을 통해 작년 번 돈은 고작 200여만원. 그나마 선배작업에 합류해 자료를 찾고 틈틈이 각색을 도운 덕분이다. 이씨가 극작·연극 외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연평균 수입은 1000만원이 채 안 된다.
2. 중견 극작가인 정모(41) 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자신의 희곡으로 지방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지원금을 받은 공연임에도 사전에 작가에게 알리지 않았고 작가료 협의도 없었다. 정씨는 바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연극하는 사람끼리 왜 그러냐. 한참 선배인데 이번 한 번만 넘어가자”는 핀잔이 돌아왔다.
비단 이씨나 정씨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연극계 사각지대에 놓인 열악한 극작가 처우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발단은 국립극단이 2016년 창작극 개발사업인 ‘작가의 방’에 참여한 극작가 9명에게 “‘개구리’ 같은 작품을 쓰지 말아 달라”고 강요한 사실이 계간지 ‘2017 연극평론 봄호’를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박근형 작·연출의 연극 ‘개구리’는 2013년 국립극단에서 올린 작품이다. 박정희·근혜 전 대통령 부녀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문화예술계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태의 시발점이 됐다.
△잘해야 1년에 한편 생활고…작가료 후순위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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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에 참여했던 김슬기 작가는 “데뷔 후 오랜 시간 작가 인큐베이팅 경쟁 시스템 속에 있느라 너무 지쳐 있었다”며 “공연의 기회가 절실했다”고 했다. 이어 “경쟁 시스템 속에서 버티는 일도 힘겨웠지만 연극을 하면서 처한 극악한 경제사정도 버거웠다”며 “작가는 ‘을’, ‘약자’, ‘도구’가 아닌 세상을 자기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예술가다. 국립극단을 비롯한 모든 단체들이 ‘갑’의 입장에서 내려와 함께 작품을 만드는 동행자로서 지원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극계는 분명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극작가협회에 따르면 10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연극계 극작가 환경은 별반 바뀐 게 없다. 김수미 한국극작가협회 이사장은 “공연 한 편이 올라가면 지원금 제도나 행정상에서 작가료는 매번 후순위로 밀려 난다”고 말했다. 이어 “아르바이트로 밥벌이를 하지 않고는 못 버틴다”며 “신춘문예 등에서 희곡상이 사라지는 요즘 신작공연도 잘하면 1년에 한 편, 그마저도 힘들 수 있어 펜을 꺾는 극작가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극작가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3년마다 예술인실태조사를 하곤 있지만 극작가를 단독으로 분석한 내용은 따로 없다. 대부분 배우를 제외하곤 스태프로 묶어 통칭될 뿐이다.
그나마 201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실시한 ‘공연예술 전문인력 표준인건비 산출연구’ 설문조사에 따르면 작가의 경우 연극관련 수입이 621만원, 교육 및 예술외 활동까지 합한 1년 수입 평균이 2380만원 정도로 다른 직군(연출·배우·스태프)보다 평균수입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마저도 샘플 수(전체 387명 중 작가 23명)가 적고, 경력 등의 표본 기록이 없어 극작가 일반에 적용하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는 이 수치가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협회 회원 극작가 수는 200명 미만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는 열 손가락에 꼽힌다는 게 협회 측의 설명이다. 김 이사장은 “작가료의 차이는 국공립단체·극단·개인·지방 등 작업환경에 따라 다르다. 중견작가급임에도 극단에서 사정을 해 턱없이 적은 원고료를 받고 집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특히 “연극계 지원금이 줄다 보니 지원액의 10%를 작가에게 지급하라는 관례도 옛말이 됐다”고 토로했다.
△일부 연출 희곡 맘대로 손대…정당한 대우 요구 작업환경 절실
저작권 문제는 연극계가 풀지 못한 해묵은 과제다. 오세혁 극작가는 “작가료를 받지 못했다고 고민하는 후배 극작가가 주변에 정말 많다. 작가란 자존심 때문에 얘기도 못 꺼내는 편이다”라며 “정당하고 떳떳하게 작가료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극작가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공연만을 위한 각색을 요구하거나 대본작가로 전락시키고 연출 마음대로 극을 바꾸는 행태도 문제”라며 “어떤 창작지원제도는 주제를 아예 정해 작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유명무실한 저작권보호법 대신 법 틀안에서의 객관성 있는 작가료 책정과 저작권을 보호·관리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연극계 어려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극본적인 창작환경의 개선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창작에 대한 현장 및 교육에서의 인식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 발표한 ‘2015년 예술인실태조사’를 보면 연극인이 1년간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평균 1285만원이다. 이마저도 평균일 뿐 대다수가 국민 최저소득 이하의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막노동은 기본이고 대리운전·주차요원 등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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