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빈자리 채우는 '감성'…'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지난 15일 초연 개막한 라이선스뮤지컬 베스트셀러 원작·호화 캐스팅으로 '관심' 박수조차 치기 힘든 정적인 분위기 속 두 남녀의 로맨스에만 오롯이 집중해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사진=프레인글로벌).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태어나 처음으로 나의 모든 걸 걸겠어. 이젠 나를 봐, 프란체스카. 떠나자.”

드넓은 무대 위에서 박은태가 무반주로 조용히 노래한다. “떠나자”는 한 마디에 옥주현은 고개를 돌려 박은태를 바라본다. 노래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눈가엔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1200여석 규모의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 들어온 관객들은 마치 소극장 공연을 보듯 숨죽이며 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정적인 분위기가 깨질까 싶어 그 흔한 박수도 나오지 않는다.

라이선스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6월 1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를 볼 때면 박수칠 타이밍을 찾기 어렵다. 공연 시간은 인터미션(20분)을 포함해 170분. 3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작품은 두 남녀의 로맨스에만 온전히 집중한다. 눈과 귀가 즐거운 ‘쇼’ 대신 애틋하고 아련한 감성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이번이 초연이다. 그만큼 개막 전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뒤따랐다. 소설에 이어 영화로 제작돼 대중성을 인정받은 이야기란 점은 기대를 하게 했다. 반면 불륜이라는 소재, 원작 캐릭터의 연령대와 다소 거리가 있는 뮤지컬배우 옥주현, 박은태의 캐스팅은 우려를 낳았다.

베일을 벗은 공연은 감성적인 측면에서 합격점이다. 캐릭터를 탄탄하게 구축해 원작의 핵심인 로맨스를 충분히 공감가게 그린다. 미국 아이오와의 시골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주인공 프란체스카, 로버트 킨케이드는 서로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간다. 3일간의 짧은 만남이지만 두 사람이 쌓아가는 감정은 깊고도 깊다. 어느 새 관객은 이들의 이야기를 ‘불륜’이 아닌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옥주현, 박은태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두 사람은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해 작품의 정서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2막 후반부, 프란체스카의 선택 이후 이어지는 후일담 장면에서는 터질 것 같은 눈물마저 꾹꾹 참는 절제된 연기로 관객 마음을 아련하게 만든다. 여기에 오래된 나무의 느낌으로 아날로그의 감성을 강조한 무대 세트, 작품 분위기를 강조하는 영상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한다.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사진=프레인글로벌).


대극장 뮤지컬답지 않게 지나치게 정적이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다. 조연 배우들과 앙상블이 함께 부르는 ‘스테이트 로드 21·더 리얼 월드’, 프란체스카의 이웃 마지가 부르는 ‘내게 다가와 줘요’ 등 ‘쇼’를 강조한 장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흥겨움을 느끼기엔 부족하다.

앙상블배우들이 기능적으로만 이용되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이들은 장면마다 대도구와 소도구를 직접 들고 옮기며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를 감시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한다. 연출가 김태형은 그동안 ‘카포네 트릴로지’ ‘벙커 트릴로지’ ‘베헤모스’ 등 주로 연극에서 활동해왔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첫 대극장 뮤지컬 연출작이다. 김 연출은 “대극장 뮤지컬에 기대하는 스타일에서 벗어나 인물의 드라마를 충실하게 재현하는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결혼의 윤리와 진정한 사랑, 도덕과 본성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여주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평가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감성은 중장년 관객에게 더 많은 부분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연장에는 원작의 기억을 간직한 중장년 관객이 많이 눈에 띄었다. 작품의 여운은 공연이 끝나도 극장 밖으로도 이어진다. 극장 로비 바닥 곳곳에 작품의 명대사가 적혀 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로버트 제임스 월러가 1992년 출간해 전 세계에서 5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1995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메릴 스트립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로 제작됐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 중인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2014년 뮤지컬로 올려 그해 토니 어워즈 작곡상, 오케스트레이션상을 수상했다. 이번 국내 초연에는 김태형 연출과 음악감독 양주인이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사진=프레인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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