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부부'로 입맞춤…춤·노래 대신 오로지 연기

연극 '대학살의 신' 남경주·최정원 90분간 연기로만 승부하는 작품 폭넓은 캐릭터 변화 위해 맹연습 "웃으며 본 뒤 많은 것 생각하길"
배우 남경주(오른쪽), 최정원은 1989년 '아가씨와 건달들'을 시작으로 수많은 뮤지컬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연극 '대학살의 신'에 함께 출연 중인 두 사람은 "연극은 뮤지컬과 달리 공연이 끝나도 감정의 앙금이 남는다"면서 "연극만의 페이소스를 느끼며 연기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둘이서 같이 연기하면 아무래도 편해요. 오랫동안 같이 호흡을 맞췄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좀 이상해요. 연기하다 이쯤 되면 노래가 나와야 하는데 안 그렇거든요(웃음).”

뮤지컬 1세대 배우 남경주(53)·최정원(48)이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뮤지컬계의 최불암·김혜자’로 불릴 정도로 소문난 콤비다. 1989년 최정원이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할 때 남경주를 만났다. 이번 만남은 특별하다. 뮤지컬이 아닌 연극으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연극 ‘대학살의 신’(7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부부인 알랭·아네뜨 역을 각각 맡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오랜만의 연극이라 뮤지컬보다 더 열심히 연습했다”면서 “소극장에서 관객과 보다 가깝게 만날 생각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힘들지만 ‘힐링’ 얻은 연극 무대

두 사람은 올해 초 뮤지컬 ‘오! 캐롤’을 함께하는 동안 연극 출연 제안을 받았다. 남경주는 2010년 ‘레인맨’ 이후 7년 만의 연극이다. 대본도 받지 않고 연극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출연을 결심했다. 남경주는 “연극은 하루 종일 대본을 들여다보며 캐릭터를 탐구하면서 막힌 부분이 풀릴 때 희열을 느낀다”면서 “오랜만의 연극으로 ‘힐링’을 얻었다”고 말했다.

최정원은 ‘대학살의 신’을 꼭 한 번 출연해보고 싶은 연극으로 꼽았다. 2011년 초연을 본 뒤 4명의 배우가 만드는 연극적인 작품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은 2011년 ‘피아프’ 이후 6년 만이다. 최정원은 “무대 전환 없이 연기로만 승부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꼭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30년 남짓 연기를 해왔다. 이번 작품은 유난히 힘들었다. 최정원은 “대본을 읽을 때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습을 해보니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남경주도 “정원이가 웬만하면 ‘힘들다’는 말을 안 하는데 이번엔 힘들다고 하더라”라면서 “나 역시 캐릭터가 잘 풀리지 않아 힘든 순간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이번 작품이 폭넓은 연기를 요구해서다. 알랭과 아네뜨는 또 다른 부부인 미셸(송일국 분)·베로니끄(이지하 분)와의 신경전 속에서 숨겨둔 속물근성을 낱낱이 드러낸다. 공연 시간 90분 동안 등·퇴장도 거의 없다. 오롯이 연기만으로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아네뜨의 변화가 인상적이다. 초반에는 우아하게 등장했다 말미에는 고상함과 거리가 먼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최정원은 “아네뜨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다른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알랭은 처음부터 은근하게 속물 근성을 보여준다. 남경주는 “내게도 알랭 같은 모습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진짜로 있어서 나 자신에게 많이 실망했다”며 웃었다. 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네 인물 모두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면서 “비슷한 부분을 찾아 캐릭터에 녹아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극 '대학살의 신'의 한 장면(사진=신시컴퍼니).

△돌을 쌓아 올리듯…연극 재미 느껴

아이의 싸움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아이보다 더 유치한 어른의 싸움으로 막을 내린다. 두 사람은 “우리 작품은 겉으로는 교양 있는 모습을 내세우지만 알고 보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자기 잣대로만 타인을 대하지 말고 서로의 다양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여서 관객이 작품을 보고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인 이들이 연극 무대를 계속해서 찾는 이유가 있다. 남경주는 “뮤지컬 배우는 육체적인 지구력은 있어도 정신적인 지구력은 부족할 때가 많아 연극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정원은 연극을 돌을 쌓는 작업에 비유했다. 그는 “뮤지컬과 달리 연극은 우리가 직접 돌을 날라서 쌓고 그 위에 올라가야 한다”면서 “때로는 넘어질 때도 있지만 잘 쌓아두면 그 성취감은 훨씬 더 크다”고 했다.

뮤지컬에 대한 애정도 여전히 크다. 남경주·최정원은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뮤지컬 ‘아이 러브 유’와 ‘시카고’를 각각 뽑았다. 남경주는 “‘아이 러브 유’는 다역을 맡아서 배우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고 그 무렵 결혼까지 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최정원은 “‘시카고’는 노래·연기·춤 어느 하나 모자란 게 없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다음에는 언제쯤 연극을 할 생각인지 물었다. 남경주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다시 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번 연극으로 한 단계 더 성장했다고도  했다. 최정원은 “지금은 당분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아예 안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최정원은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관객과 만나는 경험을 쌓다보면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꾸준하게 연기력을 쌓아서 일흔이 넘어서는 무대에서 편안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연극 '대학살의 신'에서 알랭과 아네뜨 역을 맡은 배우 남경주(오른쪽), 최정원이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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