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혹은 파리…'모던걸' 훔쳐본 두 공간
작성일2017.12.26
조회수1,828
-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 도착하다' 전
'개화기 전후 韓여성 풍속·변화상' 망라
신여성 취지 벗어난 근대작품은 겉돌아
-예술의전당 '마리 로랑생: 색채의 황홀' 전
색채 무기로 남성주도 미술사조에 반기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나혜석, ‘경희’, ‘여자계’ 2호, 1918).
#2. “지루하다고 하기보다 슬퍼요. 슬프다기보다 불행해요. 불행하기보다 병들었어요. 병들었다기보다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았다기보다 나 홀로. 나 홀로라기보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보다 죽어 있어요. 죽었다기보다 잊혀졌어요”(마리 로랑생, ‘진정제’. ‘391’ 4호, 1917).
1910년대 후반 경성과 파리. 두 공간에는 같은 듯 다른 비애가 흐른다. 그 묵직한 비감을 이끄는 이는 나혜석(1896∼1948)과 마리 로랑생(1883∼1956). 두 여인은 시대가 이름 붙인 ‘신여성’ 혹은 ‘모던걸’이다. 천재성으로 당대 미술계를 휘저었던 두 화가는 글 쓰는 데도 재주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위치는 좀 달랐다. 나혜석이 여성을 둘러싼 사회굴레에 강하게 반발하는 쪽이었다면, 로랑생은 세계사의 풍랑이 가져온 굴곡진 생애에 몸을 던진 쪽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두 여인에겐 진한 공통점이 있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내려다봤던 사조에 돌덩이를 던진 일이다. 반쪽이 비었던 여성성은 두 여인의 눈과 손을 빌려 비로소 각을 맞추고 속을 채울 계기를 찾았다.
비단 이들뿐이었겠나. 국립현대미술관과 예술의전당이 근대여성의 ‘돌팔매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자고 나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관에서 ‘신여성 도착하다’ 전을, 예술의전당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가람미술관에서 ‘마리 로랑생: 색채의 황홀’ 전을 열고 있다. ‘신여성 도착하다’ 전이 개화기 전후 한국 신여성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빼내는 데 주력했다면, ‘마리 로랑생’ 전은 로랑생이란 한 여성의 일대기를 통해 당시 서구 여성상을 엿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취지와 내용은 다르지만 때마침 동·서양의 ‘근대여성’을 집중해볼 기회란 점에서 의미가 적잖다.
둘 다 방대한 규모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회화 100여점을 비롯해 조각·자수·사진·인쇄미술 등 500여점을 걸고 세웠다. 예술의전당은 유화 70여점을 앞세워 석판화·수채화·사진·일러스트 등 160여점을 옮겨왔다. 다리품을 팔아보자 작정한다면 한 시대를 관통한 예술사적 흐름에 제대로 몰입해볼 수 있다.
△신여성 ‘망라’…기둥 못 세운 나열식 아쉬워
‘망라’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거다. ‘신여성 도착하다’ 전은 신여성과 연관된 거의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갖췄다. 웬만한 사립미술관이 엄두조차 못 낼 국립미술관의 장기를 여지없이 발휘한 셈이다. 500여점 전시품에 작가 68명이 동원됐고 그중 22점은 국내 최초로 공개한 것이다.
무엇보다 근대여성 계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여성잡지’를 대거 내놓은 게 눈에 띈다. ‘부인’ ‘신가정’ ‘여성’ ‘신여성’ ‘별건곤’ 등은 표지화로서는 물론 자료적 가치까지 특별하다. 1900년대 초반 삽화가·문필가로, 영화인으로 이름을 떨친 안석주(1901∼1950)의 만문만화나 신문삽화 또한 당대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귀한 작품이다.
정작 본편은 따로 있다. 나혜석의 ‘자화상’(1928), 나상윤의 ‘누드’(1927), 박래현의 ‘예술해부쾌도 전신골격’(1940), 천경자의 ‘조부’(1943) 등은 흔히 접할 수 없던 여성화가의 그림이란 점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한다. 기생화가로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은 이들의 출현 역시 새롭다. 1910년대를 전후해 두각을 나타낸 서화가들이었다. 1920년대는 기생화가를 대신해 여학교·미술학교 출신의 ‘교육받은’ 여성화가가 대거 등장하는데 전시는 이들의 수려한 작품 역시 비중있게 선보인다. 정찬영의 ‘공작’(1937), 원금홍의 ‘석란’(1935), 배정례의 ‘봄’(1950) 등이다.
그런데 과유불급이라고 했나. 전시품을 향한 과욕이 전시의 한계도 동시에 드러냈다. 우선 신여성을 내세운 그림과 글을 두고 그저 ‘그 시대 것’이라면 ‘오케이’한 듯한 인상이 강하다. 가령 쪽진 머리의 모녀를 나무로 정갈하게 깎은 조각가 윤효중의 ‘사과를 든 모녀상’(1940년대)이라든가 한국화 거장인 이유태가 고운 한복 자태의 여인들을 그린 연작 ‘여인삼부작’(1943), 근대화가 오지호가 흰저고리의 단아한 여인을 그린 ‘처의 상’(1936) 등 남성미술가의 ‘걸작 편’이 이번 전시에 굳이 나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거다.
저항이 됐든 일탈이 됐든 계몽이 됐든 신여성에 대한 주체적 해석이 부족했던 탓이 아니었나 싶다. 기둥이 없으니 백화점 식 나열이 될 수밖에. 차라리 남성작가의 주도적 대열에서 벗어난 창작자의 시선으로만 신여성을 직시했다면 밀도감을 더 쌓을 수 있었을 터. “그간 남성중심적 서사로 다뤄온 개화기·일제강점기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다”는 의도는 절반의 성과만 낸 셈이다. 전시는 내년 4월 1일까지.
△파리 모던걸, 자의식이 만든 색채의 세계
파리의 ‘모던걸’ 편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단 한 사람 ‘마리 로랑생’만 이해하면 된다. 로랑생에 붙는 수식어는, 예측이 가능하듯, 격동의 시대를 풍미한 여성에게 붙일 수 있는 거의 전부가 따라붙는다. ‘1·2차대전의 풍랑을 온몸으로 맞은’ 그래서 ‘영화나 연극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에 더해 ‘자유분방한’ ‘실연을 예술로 승화한’ 등등. 다 놓친다 해도 하나는 쥐고 가야 한다. ‘색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려 한 화가’라는 것. 이 타이틀은 ‘색채의 마술사’로 일컫는 마크 샤갈 다음순서쯤에 붙여도 무방하다. 입체파니 야수파니 남성이 주도하던 20세기 초 미술사조를 따르지 않고 뽑아낸 특별한 ‘색’이다.
로랑생은 수많은 인물을 그렸고 대다수는 여인이었다. 또 여인 중 열에 둘은 자회상이다. 덕분에 강한 자의식과 고집, 자존감, 열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럼에도 천재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실연이 할퀸 상처는 평생 안고 간 듯하다. “죽은 여자보다 불쌍한 것은 잊힌 여자”란 명제를 삶의 지표로 삼았다고 할까. 로랑생은 아폴리네르의 명시 ‘미라보다리’의 주인공이다.
로랑생을 본격 조명한 국내 첫 전시다. 20대 무명작가 시절부터 대가로 인정받고 세상과 하직한 73세까지의 연대기를 따른다. 전시작 대부분은 마리로랑생뮤지엄에서 옮겨왔다. 이 미술관은 일본에 있다. 로랑생에 빠진 일본인 컬렉터가 전작을 사들인 뒤 세웠단다. 그 컬렉터의 아들이 현재 미술관을 운영 중이다. 소녀상과 여인상 사이 자리잡은 유화 ‘파블로 피카소’(1908)나 다색석판화 ‘최초의 르노자동차’(1936) 등이 눈길을 끈다. 2억 3000만엔(약 21억 9000만원)에 낙찰받았다는 소장품 중 가장 비싼 작품 ‘성(城) 안에서의 생활’(1925)도 나들이를 나왔다. 전시는 내년 3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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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나혜석, ‘경희’, ‘여자계’ 2호, 1918).
#2. “지루하다고 하기보다 슬퍼요. 슬프다기보다 불행해요. 불행하기보다 병들었어요. 병들었다기보다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았다기보다 나 홀로. 나 홀로라기보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보다 죽어 있어요. 죽었다기보다 잊혀졌어요”(마리 로랑생, ‘진정제’. ‘391’ 4호, 1917).
1910년대 후반 경성과 파리. 두 공간에는 같은 듯 다른 비애가 흐른다. 그 묵직한 비감을 이끄는 이는 나혜석(1896∼1948)과 마리 로랑생(1883∼1956). 두 여인은 시대가 이름 붙인 ‘신여성’ 혹은 ‘모던걸’이다. 천재성으로 당대 미술계를 휘저었던 두 화가는 글 쓰는 데도 재주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위치는 좀 달랐다. 나혜석이 여성을 둘러싼 사회굴레에 강하게 반발하는 쪽이었다면, 로랑생은 세계사의 풍랑이 가져온 굴곡진 생애에 몸을 던진 쪽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두 여인에겐 진한 공통점이 있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내려다봤던 사조에 돌덩이를 던진 일이다. 반쪽이 비었던 여성성은 두 여인의 눈과 손을 빌려 비로소 각을 맞추고 속을 채울 계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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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들뿐이었겠나. 국립현대미술관과 예술의전당이 근대여성의 ‘돌팔매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자고 나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관에서 ‘신여성 도착하다’ 전을, 예술의전당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가람미술관에서 ‘마리 로랑생: 색채의 황홀’ 전을 열고 있다. ‘신여성 도착하다’ 전이 개화기 전후 한국 신여성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빼내는 데 주력했다면, ‘마리 로랑생’ 전은 로랑생이란 한 여성의 일대기를 통해 당시 서구 여성상을 엿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취지와 내용은 다르지만 때마침 동·서양의 ‘근대여성’을 집중해볼 기회란 점에서 의미가 적잖다.
둘 다 방대한 규모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회화 100여점을 비롯해 조각·자수·사진·인쇄미술 등 500여점을 걸고 세웠다. 예술의전당은 유화 70여점을 앞세워 석판화·수채화·사진·일러스트 등 160여점을 옮겨왔다. 다리품을 팔아보자 작정한다면 한 시대를 관통한 예술사적 흐름에 제대로 몰입해볼 수 있다.
△신여성 ‘망라’…기둥 못 세운 나열식 아쉬워
‘망라’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거다. ‘신여성 도착하다’ 전은 신여성과 연관된 거의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갖췄다. 웬만한 사립미술관이 엄두조차 못 낼 국립미술관의 장기를 여지없이 발휘한 셈이다. 500여점 전시품에 작가 68명이 동원됐고 그중 22점은 국내 최초로 공개한 것이다.
무엇보다 근대여성 계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여성잡지’를 대거 내놓은 게 눈에 띈다. ‘부인’ ‘신가정’ ‘여성’ ‘신여성’ ‘별건곤’ 등은 표지화로서는 물론 자료적 가치까지 특별하다. 1900년대 초반 삽화가·문필가로, 영화인으로 이름을 떨친 안석주(1901∼1950)의 만문만화나 신문삽화 또한 당대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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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본편은 따로 있다. 나혜석의 ‘자화상’(1928), 나상윤의 ‘누드’(1927), 박래현의 ‘예술해부쾌도 전신골격’(1940), 천경자의 ‘조부’(1943) 등은 흔히 접할 수 없던 여성화가의 그림이란 점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한다. 기생화가로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은 이들의 출현 역시 새롭다. 1910년대를 전후해 두각을 나타낸 서화가들이었다. 1920년대는 기생화가를 대신해 여학교·미술학교 출신의 ‘교육받은’ 여성화가가 대거 등장하는데 전시는 이들의 수려한 작품 역시 비중있게 선보인다. 정찬영의 ‘공작’(1937), 원금홍의 ‘석란’(1935), 배정례의 ‘봄’(1950) 등이다.
그런데 과유불급이라고 했나. 전시품을 향한 과욕이 전시의 한계도 동시에 드러냈다. 우선 신여성을 내세운 그림과 글을 두고 그저 ‘그 시대 것’이라면 ‘오케이’한 듯한 인상이 강하다. 가령 쪽진 머리의 모녀를 나무로 정갈하게 깎은 조각가 윤효중의 ‘사과를 든 모녀상’(1940년대)이라든가 한국화 거장인 이유태가 고운 한복 자태의 여인들을 그린 연작 ‘여인삼부작’(1943), 근대화가 오지호가 흰저고리의 단아한 여인을 그린 ‘처의 상’(1936) 등 남성미술가의 ‘걸작 편’이 이번 전시에 굳이 나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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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이 됐든 일탈이 됐든 계몽이 됐든 신여성에 대한 주체적 해석이 부족했던 탓이 아니었나 싶다. 기둥이 없으니 백화점 식 나열이 될 수밖에. 차라리 남성작가의 주도적 대열에서 벗어난 창작자의 시선으로만 신여성을 직시했다면 밀도감을 더 쌓을 수 있었을 터. “그간 남성중심적 서사로 다뤄온 개화기·일제강점기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다”는 의도는 절반의 성과만 낸 셈이다. 전시는 내년 4월 1일까지.
△파리 모던걸, 자의식이 만든 색채의 세계
파리의 ‘모던걸’ 편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단 한 사람 ‘마리 로랑생’만 이해하면 된다. 로랑생에 붙는 수식어는, 예측이 가능하듯, 격동의 시대를 풍미한 여성에게 붙일 수 있는 거의 전부가 따라붙는다. ‘1·2차대전의 풍랑을 온몸으로 맞은’ 그래서 ‘영화나 연극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에 더해 ‘자유분방한’ ‘실연을 예술로 승화한’ 등등. 다 놓친다 해도 하나는 쥐고 가야 한다. ‘색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려 한 화가’라는 것. 이 타이틀은 ‘색채의 마술사’로 일컫는 마크 샤갈 다음순서쯤에 붙여도 무방하다. 입체파니 야수파니 남성이 주도하던 20세기 초 미술사조를 따르지 않고 뽑아낸 특별한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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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생은 수많은 인물을 그렸고 대다수는 여인이었다. 또 여인 중 열에 둘은 자회상이다. 덕분에 강한 자의식과 고집, 자존감, 열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럼에도 천재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실연이 할퀸 상처는 평생 안고 간 듯하다. “죽은 여자보다 불쌍한 것은 잊힌 여자”란 명제를 삶의 지표로 삼았다고 할까. 로랑생은 아폴리네르의 명시 ‘미라보다리’의 주인공이다.
로랑생을 본격 조명한 국내 첫 전시다. 20대 무명작가 시절부터 대가로 인정받고 세상과 하직한 73세까지의 연대기를 따른다. 전시작 대부분은 마리로랑생뮤지엄에서 옮겨왔다. 이 미술관은 일본에 있다. 로랑생에 빠진 일본인 컬렉터가 전작을 사들인 뒤 세웠단다. 그 컬렉터의 아들이 현재 미술관을 운영 중이다. 소녀상과 여인상 사이 자리잡은 유화 ‘파블로 피카소’(1908)나 다색석판화 ‘최초의 르노자동차’(1936) 등이 눈길을 끈다. 2억 3000만엔(약 21억 9000만원)에 낙찰받았다는 소장품 중 가장 비싼 작품 ‘성(城) 안에서의 생활’(1925)도 나들이를 나왔다. 전시는 내년 3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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