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세계> 한국 최초의 신극, 100년 만에 부활하다
당시 혼란스러운 한국사 기로에 서서 강한 현실성을 바탕으로 신연극의 효시라 불리는 <은세계>가 초연 10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선다.
올해 한국 근현대극이 시작된 지 100년을 맞아 크고 작은 기념행사와 공연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 연극 <남사당의 하늘>로 한국연극 100주년 기념 개막작을 선보인 극단 미추가 이번에는 <은세계>를 공연한다.
정동극장과 극단 미추의 공동제작으로 오는 10월 선보이는 <은세계>는 신소설의 효시로 평가 받는 ‘혈의 누’, ‘귀의 성’ 등을 쓴 이인직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 1908년 국내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자 현재 서울 신문로 새문안교회 자리에 있었던 원각사에서 이인직이 직접 대본까지 맡아 창극의 형태로 초연된 작품이다.
17일 있었던 작품 기자간담회장에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는 말로 운을 뗀 손진책 연출은 “이인직에 대한 공감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당시에 새로운 연극, 창작 연극을 해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을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인직은 이완용 측근 역할 등의 친일 행적 논란이 끊이지 않은 인물 중 하나이다.
이에 손 연출은 “이인직의 치부를 직시하여 새로운 시대에 치열하게 반응했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 객관적인 시선을 보이고자 했다”며 “이번 <은세계>는 은세계의 재연이 아닌, 은세계라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주안점”이라고 강조했다.
극본을 쓴 배삼식은 “자신의 뿌리와 근대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으로 <은세계>를 설명하며 “근대극을 떠올릴 때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했던 일제 시대 등의 배경이나 그것에 대한 부끄러움 등을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떨쳐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에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무대를 지켰던 많은 연극인들에 대해서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소감을 밝혔다.
‘은세계’라는 작품을 준비하는 당대 소리광대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본 공연에서, 초연의 형태가 창극이었다는 점을 살리기 위해 왕기석, 이덕인, 한승석 등 한국의 명창들이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인직 역에는 얼마 전 <리어왕>에서 리어 역을 맡은 정태화가, 그의 전처 역은 김성녀가 맡는다.
원뿔형의 무대는 원각사의 모습을 재연할 것이며, 스크린에 영상을 투영해 공연장 안팎의 이미지를 보여줄 예정이다. 스크린에 투영하는 영상으로 또 다른 효과를 꾀하며, 실제 국악 라이브 연주로 진행되어 작품의 멋을 더할 것이라고 한다.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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