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3세’ 캐릭터·황정민의 힘

셰익스피어 원작 다룬 고전극 희대의 악인 연기한 황정민 돋보여 쉽고 설명적이지만 관객 상상력 제한해 아쉬워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나의 죄를 묻는 그대들의 죄를 묻고자 한다.”

‘악인’ 황정민은 강렬했다. 6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리차드 3세’다. 15세기 전란을 겨우 수습한 영국을 다시 혼란에 몰아넣은 리차드 3세를 연기했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라 우리에게 ‘영국의 수양대군’이라 불리는 자다. 날 때부터 곱사등에 못생긴 얼굴로 멸시당하다 스스로 악을 택했다. 계략으로 왕궁의 경쟁자를 차례로 숙청하고 때론 직접 망치로 내려쳐 죽이는 잔인무도함도 있다. 자신을 “삐뚤어졌다”고 말하는 자에겐 “삐뚤어진게 아니라 뒤틀린 것”이라며 광기를 드러낸다.

‘리차드 3세’는 리차드 3세라는 캐릭터의 힘으로 극을 이끈다. 역사가 쓰고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희대의 악인을 황정민이 입었다. 호흡 좋은 배우가 매력있는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나오는 시너지가 좋다.

황정민은 10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특수분장으로 만든 곱사등을 짊어지고 왼팔을 한껏 꺾어 추했던 리차드 3세의 외형을 표현했다. 다리를 절며 뒤뚱거리면서 무대를 종횡무진한다. 사실상 혼자 극을 이끌어가는 만큼 대사량이 많으나 소화하는데 무리가 없다. 고전극 특유의 문어체가 입에 안 맞을 듯한데 관객에 직접 말을 건네는 등 여유가 있다. 10년 만에 돌아온 연극 무대이지만 어색함을 찾을 수 없다.

‘리차드 3세’는 무겁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해학을 더했다. 등장인물들의 갈등상황에 주고받는 대사에 말 맛을 살려 리듬감이 있다.

고전극이 주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수백 년 전 영국에서 일어난 왕위경쟁이 소재이나 현재의 관객도 느끼는 바가 있다. 연출한 서재형은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고 남을 의심하며 적을 제거하려한 리차드 3세에게서 왕관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우리와 사회의 모습을 반추하려 했다.

쉽게 표현하려다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리차드 3세가 간계를 부리거나 등장인물들이 목숨을 잃는 등 극적인 장면마다 대형 스크린을 활용했는데 필요 이상으로 직접적이다. 극의 초점을 주인공에 맞춘 탓에 다른 인물이 부각하지 않는다거나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만 활용하는 등 단편적인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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