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피해자 가족의 복수, '용서'에 관한 묵직한 질문

국립극단 연극 '2센치 낮은 계단' 복수 준비하는 인물 심리에 초점 여자 배우가 오빠 역할 맡는 등 새로운 연극적 시도 '눈길'
연극 ‘2센치 낮은 계단’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립극단이 ‘2018 젊은연출가전’으로 선보인 연극 ‘2센치 낮은 계단’은 한 편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친절한 금자씨’다. 여러 명의 피해자가 등장해 복수를 모의한다는 설정이 비슷해서다. 그러나 ‘친절한 금자씨’와 같은 복수의 카타르시스가 ‘2센치 낮은 계단’에는 없다. 대신 피해자가 겪어야 할 복잡한 마음, 깊은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작품은 살인 피해자의 가족 여섯 명의 이야기를 그린다. 뺑소니를 당한 남편, 집단폭행으로 목숨을 잃은 아들, 스토커에게 끌려가 익사 당한 동생과 강도에게 폭행 당한 동생, 동거남에게 구타를 당해 죽은 딸, 상가에서 살해 당한 오빠 등 이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기구하다. 각기 다른 살인이지만 피해는 참혹하다. 이들이 복수를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친절한 금자씨’의 피해자들은 주인공 금자씨가 세운 철저한 계획아래 복수를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2센치 낮은 계단’의 등장인물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복수의 계획을 세우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죽은 이를 떠올리며 그들이 죽기 전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을 상상하고 또 상상한다. 계획대로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도 이들의 분노와 절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덕분에 80분 남짓한 공연시간 동안 관객은 피해자 가족의 심리를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연출을 맡은 이는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로 ‘로풍찬 유랑극장’ ‘썬샤인의 전사들’을 발표한 연출가 부새롬이 다. 부 연출은 이 작품을 드라마투르그 김나볏, 배우 마두영·백석광·김정·신정원·조재영·노기용의 공동창작으로 완성했다. 보통의 복수극이 복수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복수를 준비하는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한 점이 눈에 띈다. 부 연출은 “정의를 이뤄내기 위한 복수가 아니라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이들이 끝나지 않는 악몽 같은 삶을 끝내기 위해 복수를 이루려는 마음을 복수심을 짐작해 봤다”고 설명했다.

‘젊은연출가전’ 작품답게 새로운 연극적 시도가 눈에 띈다. 공동창작이다 보니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배우들이 때로는 연출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빠 역할을 하는 여자배우, 여동생 역할을 하는 남자배우 등 상식을 깨는 요소가 숨어 있다. 독특한 형식이 다소 낯설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용서라는 단어는 피해자가 아닌 타인이 함부로 꺼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관객에 따라서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어찌보면 당연하다. 등장인물과 같은 피해를 입지 않고서는 이들이 낱낱이 드러내 보이는 고통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품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용서와 화해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제목은 피해자의 심리와 감정을 대변한다. 대부분은 무심결에 지나갈 2㎝의 작은 차이도 피해자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 있다는 의미다. 부 연출은 “보통 사람은 계단이 몇 ㎝가 낮은지 거의 느끼지 못할 텐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라며 “복수심에 가득 찬 사람들이 무언가를 아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18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

연극 ‘2센치 낮은 계단’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연극 ‘2센치 낮은 계단’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연극 ‘2센치 낮은 계단’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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