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지 않는 가족, 슬프고 아픈 '손님들'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극 '손님들' 국립극단 기획초청작으로 다시 무대에 존속살해 소재로 한국사회 풀어내 소년 역 배우 김하람 열연 눈부셔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극 ‘손님들’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다녀왔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소년이 해맑은 목소리로 외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아들을 본체만체 한다. 부모의 눈빛은 퀭하고 몸에서는 냄새가 난다. 아들의 표정은 티 없이 밝다.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가족. 이들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프로젝트 내친김에의 연극 ‘손님들’은 기괴하면서도 슬픈 가족의 이야기다. 얼굴에 갖가지 분장을 한 엉뚱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과장되게 연기하지만 그 모습이 낯설기는커녕 안타깝게 느껴진다. 작품 분위기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소통이 부재한 한국사회의 이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의 부모가 소통만 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소년의 부모는 각자 다른 욕망을 갖고 있는, 처음부터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존재였다. 군인으로 성공을 꿈꿨던 권위적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통해 영부인이 되길 바랐던 어머니. 이들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그대로 투영하며 소년을 구박하고 학대한다.

소년은 제목처럼 ‘손님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부모가 손님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소통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버려진 길고양이 ‘3단지’, 초등학교 화단의 더렵혀진 동상 ‘오뎅’, 아파트 뒷산 허물어진 무덤가에 사는 ‘동수아저씨’ 등 손님들은 모두 다 버림받고 낡은 존재들이다. 소년의 부모는 아들을 대하듯 손님들도 무시할 뿐이다.

한 가족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작품이 한국사회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음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부모는 고도성장을 겪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겪은 기성세대이고 아들은 그런 기성세대 밑에서 고통 받는 젊은 세대임을 작품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손님들은 성장이라는 가치 아래 희생 당하고 사라져간 것을 보여준다.

기괴하고 엉뚱한 작품은 중반부에 잠시 분위기가 밝아진다. 소년과 또래인 소녀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소년은 맹랑한 소녀 앞에서 수줍게 사랑을 고백한다. 집에서는 부모의 학대를 받고 있지만 밖에서는 또래들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소년의 모습은 이 작품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작품 후반부 소년의 선택은 더욱 충격적이다. 알려졌듯 ‘손님들’은 존속살해를 소재로 한다. 그러나 작품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가족을 통해 소년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차라리 당신들이 손님이었다면 보내버리면 될텐데”라는 소년의 대사는 극장 밖을 나설 때까지 관객 마음을 아프게 한다.

‘칼집 속에 아버지’ ‘처의 감각’ 등으로 잘 알려진 극작가 고연옥과 젊은 연출가 김정이 함께 한 이 작품은 지난해 연극계 각종 상을 휩쓸었다. 올해 국립극단 기획초청 공연으로 1년 만에 재공연에 올랐다. 존속살해라는 무거운 소재를 재기발랄한 연출 속에 공감 가는 이야기로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작품의 일등공신은 소년을 연기하는 배우 김하람이다. 희로애락이 뒤섞인 소년의 감정을 날것처럼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쥐었다 놨다 한다. 김정 연출은 ‘연출의 글’을 통해 “‘행복이란 그토록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서글픈 생각도 들지만 부서진 이들의 소박하고 작은 미소를 보며 진실한 위안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7월 15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극 ‘손님들’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극 ‘손님들’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극 ‘손님들’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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