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vs공연] 그 미용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현대인에게 있어 미용실은 아주 특별한 존재다.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으로 운영이 이루어지는, 어찌 보면 숭고한 장소다. 그러나 외모지상주의의 주범들 중 하나로서 인간의 허영심을 이용해 더 많은 이익을 받아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게다가 면도를 위한 칼과 예리한 가위, 그로데스크한 펌 기계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다른 차원에 와 있는 듯하다. 미용실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그 창고는 또 어떠한가. 약품과 수건이 그득한 어두운 창고는 왠지 뭔가 비밀이 하나쯤 숨겨져 있을 것 같다. 미용실과 비밀은 왠지 아주 잘 어울린다. 게다가 미용실 이름이 ‘쉬어 매드니스(shear madness)’라면 더욱.

-오늘의 범인은 누구일까요? 연극 ‘쉬어 매드니스’
이 연극은 ‘쉬어 매드니스’란 제목부터 관객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가위(shear)’랑 비속어인 ‘또라이 (madness)’라니 대체 무슨 뜻이야? 그러나 포스터에 영어 발음을 그대로 한글로 써 놓은 이유가 있다. ‘쉬어’를 ‘shear’가 아니라 발음이 같은 ‘sheer’로 바꾸면 ‘쉬어 매드니스 = 완전 또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주의 깊게 보고, 생각을 좀 해야 ‘아하~!’하고 납득이 간다. 이 공식은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배우들의 행동을 모조리 지켜보고 있던 관객들은 목격자이자 배심원이 되어 형사를 도와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그날의 범인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매 회 공연마다 범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극의 재미는 범인을 찾아내는 것만이 아니다.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블랙코미디의 요소는 관객에게 씁쓸하고 달콤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메가를 운운하는가 하면, 상류층 귀부인 한보현이 자신의 남편 박용호(참고로 박용호는 이 작품의 제작사 대표 이름이다)를 소개하면서, “회사의 이사인건 맞지만 딱히 뭐 하는 일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살인사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낸 연극 ‘쉬어매드니스’는 대학로 예술마당 2관에서 오픈런으로 공연 중이다.

- 대 국민 사기극의 근원지인 미용실, 영화 ‘헤어드레서’
1995년 국민배우 안성기가 출연한 영화 한 편이 제법 큰 화제가 됐었다. ‘미용사’라는 단어가 더 일반적이던 당시 ‘헤어드레서’라는 생경한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안성기가 올백머리에 쌍으로 미용 가위를 들고 가위춤이라는 다소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며 홍보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안성기는 여기서 ‘앙리박’이라는 헤어디자이너로 등장한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것으로 알려진 헤어디자이너 ‘앙리박’은 개업 첫날부터 야수파로 명명된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선풍적으로 유행시킨다. 그러나 앙리박은 사실 강아지 미용사의 조수였을 뿐이다. 앙리박이 있는 미용실 터줏대감이었던 이춘기는 자신이 열세로 몰리자 앙리박의 흠을 찾기 시작하고, 이윽고 앙리박이 개 미용사였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아낸다. 실상을 모르는 방송국은 앙리박의 헤어쇼와 유행의 경향들을 야수파 신드롬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크게 포장해 보도한다. 특히 앵커가 꿈인 아나운서와 본부장을 노리는 국장의 손에 의해 포장은 극을 치닫는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생각대로 되던가. 앙리박은 정말로 불란서 유학 갔다온 방송국 분장사의 머리를 자르다가 당황한 나머지 그녀의 귀를 베게 되고 이로 인해 그의 실상이 폭로된다. 이때부터 앙리박을 포장하려는 사람과 포장을 벗기려는 사람, 새로운 포장으로 갈아치우려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벌어진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였던 미용실을 배경으로, 방송과 사회가 비리로 둘러싸여있는 한국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조아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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