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 잡아 봐라~! 연극 ‘쉬어 매드니스’

2009년의 공연계는 ‘죽음’이, ‘죽음’ 중에서도 ‘살인’이 대세다. 사랑스러운 살인범이 등장하는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 관객까지 매혹시키는 2명의 훈남 살인마 이야기인 뮤지컬 ‘쓰릴 미’, 7월 관객을 찾아올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연극 ‘날 보러 와요’까지 핏빛 명작이 줄을 잇는다. 이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연극 ‘쉬어 매드니스’다. 연극 ‘쉬어 매드니스’는 기본적으로 추리물의 성격을 띠지만 블랙코미디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고, ‘관객 참여 연극’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다양한 장점을 가진 연극이다.

- 관객을 빠져들게 하는 오프닝
이 작품은 시작이 매우 탄탄하다. 공연 10분 전부터 배우들이 나와 미용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선반을 털고, 전화를 받고, 물건을 정리한다. 그렇다고 충실하게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장난을 친다. 손님이 들어오면 정말로 샴푸를 한다. 이런 설정은 관객에게 극의 모든 설정이 사실인양 느끼게 하는 리얼리티를 준다. 진짜 미용실에 와 있고, 정말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을 기꺼이 해결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의무감을 부여한다. 결국 그 의무감은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내어 공연을 더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만든다.

- 관객 참여 연극의 결정판
대학로에서 ‘관객 참여 연극’이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공연 중에 관객에게 독설을 내뱉고, 관객에게 소주를 따라주고, 관객이 시키는 대로 징벌한다. 그러나 그런 수많은 ‘관객 참여 연극’ 중에서 관객이 그 결말까지 결정하는 작품은 ‘쉬어 매드니스’뿐이다. 관객이 극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 후반부 전체를 지배하고 범인까지 결정한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목격자이며 형사이고 배심원이다. 이는 ‘관객이 없으면 연극도 없다’는 공연의 진리도 깨닫게 한다.

- 진짜 미용실 같은 무대장치와 진짜 미용사 같은 배우들
이 작품은 무대 장치를 현실의 미용실과 똑같이 꾸몄다. 손님이 앉을 의자와 거울, 선반에 가득한 샴푸와 각종 헤어용품, 샤워기에서는 정말로 물이 나오고, 면도 크림을 짠다. 소극장 공연은 최소한의 무대장치만을 구비하고 남은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커버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현 시류에, 잘 구비된 세트는 리얼리티와 정성을 느끼게 한다. 관객들은 미용실 한 쪽 구석에서 모든 상황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게다가 자투리 공간의 활용도 훌륭하다. 미용실이면 의례히 있을 창고, 화장실로 통하는 옆문을 만들어 배우의 등장과 퇴장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런 무대 장치에 천연덕스럽다 못해 편안하게까지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극은 완벽한 ‘쉬어 매드니스 미용실’의 살인사건으로 완성된다.


- 웃지만 씁쓸한, 그래서 무게를 잃지 않는 작품
이 작품은 본격적인 블랙코미디는 아니다. 사회 풍자적 요소보다는 인간의 숨은 치졸한 면이 더 눈에 많이 뜨인다. 그러나 타이밍에 맞춰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몇몇 대사들은 관객에게 씁쓸하고 달콤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고상한척 하지만 무식이 엿보이는 한보현은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항의하고 경찰을 ‘포돌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남편 박용호(참고로 박용호는 이 작품의 제작사 대표 이름이다)를 소개하면서 “회사의 이사 인건 맞지만 딱히 뭐 하는 일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골동품 판매자 오준수는 “이렇게 아무나 찍으니까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라며 다소 위험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관객을 웃기면서도 살인사건을 다루는 자세 자체는 진중하다. 경찰은 범인을 잡기위해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를 요청하고, 증거물을 차례로 발견한다. 살인 피해자를 싫어했던 미용사 토니도 그녀의 죽음을 기뻐하진 않는다. 이런 진지함과 블랙코미디의 요소는 극에 무게를 실어준다.

- 결말에서 밀려오는 허무감은 양날의 칼
이 작품은 관객에게 그 결말을 맡긴다. 관객들이 배심원이 되어 범인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관객들은 배심원이기 전에 형사였다는 사실이다. 관객들은 어느새 형사가 되어 증거를 찾고, 범인을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돌연 형사는 배심원이 되고, 허무하게 범인이 결정돼 버린다. 즉 진짜 범인을 찾아내려는 수고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이렇게 관객의 의지로 범인이 결정된다는 사실은 매회 다른 결말에 기대감을 주는 동시에 허무감을 느끼게 하는 양날의 칼이다.

살인사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낸 연극 ‘쉬어 매드니스’는 대학로 예술마당 2관에서 오픈런으로 공연 중이다.


조아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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