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15] 당신의 가면은 안녕합니까, 연극 ‘꿈속의 꿈’
꿈은 수면 시 경험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을 뜻한다. 사전적 설명에 의하면 때로 청각, 미각, 후각, 운동감각에 관여하는 것도 있다. 특이한 점은 꿈꾸는 것이 ‘나’임에도 현실의 ‘나’와 단절돼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환상적 경험과도 같은 그 세계가 신기해 우리는 깨어난 후에도 회상되는 꿈에 대해 즐겨 이야기한다. 또한 희망사항이나 목표, 소원 등도 꿈이라고 부른다. 무엇이 됐든 인간은 꿈을 품고 산다. 그것이 그릇된 욕망이라 할지라도 갈망하기를 마지않는다. 신라의 격정적 역사 한가운데서 아픈 꿈을 꾸었던 두 여인이 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그늘에 가려 쉬이 화자 되지 않는 문희와 보희. 연극 ‘꿈속의 꿈’의 문을 여는 것은 가면을 쓰고 앉아있는 문희다. “나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내 문명왕후는 이른다. 상대등 김유신의 동생 문희는 이른다. 나 서현 각한의 딸 아지는 이른다….”
- 꿈과 꿈의 충돌, 부서지는 욕망
꿈은 무의식의 세계라 일컬어진다. 꿈의 영상은 논리적 구조나 당위성을 가지고 출연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상황과 내용이 혼합돼 스스로 해석할 수 없을 만큼 무작위로 나타난다. 한치 앞도 모르는 장님 인생 인간은 이것에서 미래를 찾기 위해 해석하고 예지몽이라 부르며 하나의 계시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꿈은 해석하기 나름. 보희는 서악에 올라 눈 자신의 오줌이 서라벌을 잠기게 하는 꿈을 꾼다. 보희는 말한다. “내 앞길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려나봐.” 동생 문희는 그 꿈을 자신의 비단치마를 주고 산다. 이제 그 꿈은 높은 곳에 올라 서라벌을 잠기게 할 것이라는 정치적 꿈으로 해석되며, 눈물로 나라를 통치하게 되리라는 예언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것은 갓을 쓰고 우물로 들어가는 김춘추의 꿈이 이중적으로 해석되는 것과 맞물려 동일한 암시를 전한다. 즉 인간의 욕망이 꿈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모순된 꿈의 상충을 경험한다. 어렸을 적 순수했던 이상과, 현실에서 이뤄내야 하는 욕망은 서로 다르다. 조화되기 힘든 이 꿈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인간은 행복해질까. 자신이 신라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김유신과 김춘추, 큰 사랑을 원한다는 보희, 신국의 지어미가 되겠다는 문희, 모두 꿈을 이룬 것 같지만 어느 하나 가지지 못했다. 꿈이라는 길고 긴 생(生)의 잠에서 깨어났을 때 과연 내 삶은 단꿈이었을까. 연극 ‘꿈속의 꿈’은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었던 개인의 치열한 욕망을 조명하며 관객들의 꿈을 자각하게 만든다.
- 낭비되지 않는 꿈, 낭비되지 않은 무대
연극 ‘꿈속의 꿈’은 이 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써야했던 가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신은 모든 걸 끌어안고 희생하려는 보희에게 묻는다. “이제는 부처의 얼굴 뒤에 숨으려느냐.” 보희도 반문한다. “오라버니는 어떤 얼굴 뒤에 숨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가면 뒤에 숨어 우리를 바라보는가. 문희는 고백한다. “탈을 쓰고 헛 웃고 거짓 울었습니다. 그래서 아파도 아픈 줄 몰랐습니다.”
역사적 영웅들과 그들 곁에서 소리 없이, 그래서 더 한 맺히도록 아팠던 두 여인을 그려낸 이 작품은 매우 연극적이다. ‘매몽설화’에 숨어있는 인간의 사랑과 야망, 상실과 회의, 상처와 결핍 등을 시각화시킨 연극 ‘꿈속의 꿈’은 고독하다. 무엇보다 거대한 사건들의 회오리 속에서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던 인물들을 연기하기에 배우들의 능력은 충분했다. 배우들은 감정과 연기, 눈물을 단 한 톨도 낭비하지 않았다. 슬픔은 물론, 캐릭터들의 기쁨까지도 연극이라는 사각형 속에 꽉꽉 눌러 담아 빈틈 보이지 않는 푸짐한 상을 차려놓았다. 연극의 본질과 탐구에 대해 다가가려는 노력이 깃든 이 작품은, 연출 또한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묵직하고도 단단하다. 그러나 긴 서사를 담기에 두 시간이 채 못 되는 시간은 조금 짧아보였다. 각 개인들을 모두 쓰다듬고 담아내느라 잦은 암전이 반복됐고, 그동안 관객들의 시선은 무대와 맞닿았다가 단절되기를 반복했다. 숨 막힐 듯 몰입될 수 있음에도 틈틈이 숨 쉴 수 있는 구석을 만들었다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극단 작은 신화의 연극 ‘꿈속의 꿈’은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어루만지는 미덕을 갖고 있다. 이제 거울 앞에 서자. 그리고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을 바라보자. 당신의 가면은 안녕한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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