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930년 최신식 모단걸 앤 댄디보이, ‘천변살롱’의 멋쟁이들
노들강변을 따라 살롱이 하나 자리해 있다. 그곳에 들르는 단골손님의 절반은 시인이고 그 시인들의 절반은 각혈을 한다. 왜 시인들은 모두 폐병을 앓고 있을까?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왜 이 살롱으로 하나 둘 기어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강변을 따라 위치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건성으로 붙여졌을 이 천변살롱에도 사연은 넘쳐난다. 마담 박모단만 해도 두루마리 없인 들을 수 없는 과거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3월 24일 개막한 ‘천변살롱’은 5일간에 걸쳐 1930년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다. 박준면과 하림이 안내하는 그 때 그 시절, 경성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 만요(漫謠), 어쿠스틱 살롱밴드 그리고 박모단
진한 아코디언 소리가 일품인 ‘오빠는 풍각쟁이야’, ‘개고기 주사’, ‘왕서방 연서’ 정도는 우리도 알음알음 전해들은 귀가 있어 익숙하다. 어렸을 적 해외 동포 여러분들까지 챙겨가며 방송해 마지않던 가요무대에선 옛날 가수들이 저런 노래들을 곧잘 들려주곤 했다. 일제 강점기 때 유행하던 익살과 해학을 담은 우스개 노래로 이런 곡들의 정식 명칭은 ‘만요(漫謠)’라 한다. ‘천변살롱’은 바로 이 만요를 기본으로 드라마와 라이브 연주가 가미된 음악극이다. 영화 ‘하모니’의 박준면이 살롱 마담 박모단을 연기하고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출국’ 등의 하림이 음악감독, 연주, 연기 등으로 참여했다.
남의 나라 팝에 대해선 비틀즈부터 비욘세까지 줄줄이 꿰면서 정작 우리들은 우리 음악의 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만요는 조용필, 들국화 이전의 우리 가요사일 뿐더러 우리 음악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천변살롱’은 그런 의미에서 옛 우리 음악을 축제처럼 즐기자는 취지인 동시에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가미된 새로운 음악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피아노와 아코디언에 하림, 기타에 염승재, 콘트라베이스에 이동근, 바이올린에 조윤정이 함께 한다.
과장된 연기와 성우의 더빙이 특징인 그 시대 영화 연기를 보는 듯한 박준면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조근 조근 관객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화법, 악사들에게 질문을 하지만 대답 없이 동작만으로 대신하는 의사소통은 한껏 분위기를 잡아 준다. 중간에 삽입된 영상 또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1930년대 실제 대중 극장에 걸려 상영됐을 상업 영화의 한 장면은 세련되지 못한 대사, 투박한 부부 관계 등 촌스러움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 웃음엔 왠지 모를 정이 담겨 있다.
- 그 시절 가장 모던했던 사람들, 멋쟁이라 부르다
지금처럼 쿨 하지 못했던 시대,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은 현해탄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어떤 절망이 그들을 옳아 메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도덕률이든 그 당시 사회 가치관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 둘의 결합은 허락되지 않았다. 김우진에겐 처자식이 있었다. 죽음으로 완성된 사랑? 살롱 마담 박모단에게 이 정도 사연은 댈 바가 아니다. 상대는 각혈시인 진일파. 자칫 친일파로 오해할만한 이름을 가진 그 남자를 박모단은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같이 죽자”는 그의 말에 박모단은 말한다. “살고 싶어요!”
천변살롱 죽돌이, 천주쟁이, 기생질이 취미인 유학파, 각혈시인. 천변살롱의 단골들이다. ‘천변살롱’은 이들의 사연을 들려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쿠스틱 밴드의 악사로 참여하며 대사 한 줄, 커튼콜을 제외한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풍경이 된다. 무성 영화에서처럼 움직이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거기에 남아 사연을 만들고 또 들으며 남아 있을 터. 거기 그렇게 중절모와 검정색 뿔테 안경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서.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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